독일군 포로 된 한국 출신 러시아 군인
강홍식 외에도 5명의 러시아 이주 한인 포로가 그 곳에 있었다. 그리고리 김, 스테판 안, 니콜라이 유, 니키포르 유, 카리톤 김, 이들 모두 모병 또는 징집에 의해 러시아 군인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가 포로 신세가 되었다. 1914년 러시아는 전쟁을 위한 총동원령을 내린다. 이 시기 러시아에 이주하여 살고 있던 많은 한인들이 러시아 국적 없이 살고 있었다. 강홍식과 같이 평안북도에서 태어나 러시아로 이주하여 국적 없이 살던 이들은 안정된 삶을 위해 러시아의 국적이 필요했을 것이고, 모병의 조건이었던 러시아 국적 획득은 전쟁의 참여를 결정하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러시아 국적을 갖기 위해서 또는 금전적인 보상을 받기 위해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던 이들이 독일의 포로수용소에서 노래를 불렀던 이유는 독일의 연구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1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은 세계의 다양한 지역과 문화권의 언어와 음악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연구를 가능하게 한 과학 기술이 녹음이었다. 1878년 토마스 에디슨은 세계 최초로 소리를 녹음하여 재생할 수 있는 기술을 발명했다. 이 획기적인 발명은 이후 레코드의 형태로 발전되며 대중화 되었다. 초기의 음반은 원통형으로 만들어졌고 곧이어 우리에게 익숙한 둥근 접시와 같은 원반의 형태로 발전되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원통형 음반과 원반형 음반의 두 형태로 녹음되었으며 이 소중한 기록들은 1999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당시 독일은 비교음악학과 같은 신생 학문과 녹음·재생의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려는 여러 목적을 위해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강홍식과 같이 전쟁 중 포로수용소에 억류된 다양한 국가와 민족의 포로들이 이 프로젝트에 이용되었다. 이들은 자신의 나라 또는 민족의 언어로 숫자를 세거나, 이야기를 녹음하였고 알고 있는 다양한 노래를 녹음하였다. 강홍식을 포함한 6명의 러시아 이주 한인들이 부른 노래는 ‘아리랑’, ‘수심가’, ‘애원성’, ‘국문뒷풀이’ 등의 민요와 ‘대한사람의’, ‘조국강사’, ‘만났도다’ 등의 독립운동가 그리고 노래 이외에도 숫자를 세거나 이야기를 녹음하였다. 이 녹음자료들은 당시의 언어·음악문화를 연구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전쟁 두려움·고향 그리움 섞어 불러
삶의 터전을 버리고 낯선 환경과 문화 속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 그리 쉽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목적 없는 전쟁에 참여했다 포로가 되어 격리된 상황은 공포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두려움이 가득한 포로수용소에서 자신의 신세를 처량하게 읊조리는 모습이 그들의 노래를 통해서 가슴 깊숙이 느껴진다. 노르망디의 한국인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사진을 통해 만들어진 한 영화의 스토리만큼이나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역경과 삶의 애환이 머릿속에 펼쳐진다. 강홍식이 불렀던 노래를 듣고 있자니 콧등이 찡해져 그 가사를 옮겨 본다.
“와 왔든고 와 왔든고 타도타관 월사동이 산도 설코 물도 설코 / 금수초목 생소한 곳에 뉘길 믿고서야 / 나 울고 돌아갈 길 나 여기 왜 왔단 말이요.”
△이정엽 연구관은 서울대에서 국악작곡을 전공했으며 전남대·전주예술고 등에서 강의했다. 현재 국립민속국악원 장악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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