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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표현과 문화적 권력의 사이

▲ 정정숙 한국문화기획평가연구소장

이제 이 달 12월을 보내면 2017년을 맞이한다. 2016년을 어떻게 기억하고 표현할 수 있을까. 작년 2015년 한해에는 자살로 사망한 사람이 모두 1만 4427명으로, 하루 40여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10만 명 당 자살자가 27.3명으로 우리나라는 13년 연속 OECD 회원국 중 가장 많은 자살자를 내었다.

 

일반적으로 자살의 원인이 되는 요소로 우울증이 언급되는데, 우리나라가 장기간 연속 1위의 자살률 국가라면 사회 전체가 집단 우울증 상태인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재산을 10억 이상 소지한 4%의 국민을 제외한 96% 국민의 경제적인 측면의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 건강과 외모지상주의의 외곽에 있는 노년층의 고통과 분노, 학력과 취업 문제를 안고 있는 청년층의 좌절과 분노, 육아와 양육의 부담에 시달리는 여성 등 대다수의 국민에게 분노와 그 다른 쪽 얼굴인 우울증이 일상화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일상에 잠식하는 우울증

 

한국자살예방협회의 관계자들은 ‘대부분 자살자들은 필사적으로 살기를 원하지만, 단지 자신의 문제에 대한 대안을 찾을 수 없을 뿐’이라고 하고, ‘그들은 자살의도를 명확히 드러내기 때문에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면 귀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좌절과 분노 속에서도 대안을 찾기 위한 공동의 노력으로 작은 빛을 발견하며, 살아남는 것이 현재 살아있는 존재들의 권리이자 의무가 아닐까. 그 작은 빛을 잃지 않도록 가까운 이웃들과 자신을 쉬게 해주고, 위로해야 하는 12월이다.

 

문화적 표현의 체험은 우리에게 작은 빛의 의미를 선사하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그리고 이웃들에게 작은 빛이 되도록 유도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연극 한 편, 영화 한 편, 음악 한 곡, 전시회의 그림 한 점은 우리에게 작은 빛으로 다가온다. 그러한 창작활동에 직접 참여한다면 더욱 강렬한 빛이 될 것이다.

 

우리는 가정과 사회적 관계에서 학습한 공격적인 언어와 회피적인 행동을 표현하는 데에 익숙하지만, 기실 우리의 정서를 가감 없이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섬세한 문화적 표현에는 취약하다.자신의 정서를 잘 돌보기 위해 필수적인 문화적 표현들을 문화적 권력을 지닌 유명 창작자나 기획자들의 전문적인 영역으로 높이 올려놓고, 우상시했기 때문이다. 문화적이고 정서적인 표현의 취약성은 우리의 삶을 거칠고, 고립되고, 그래서 힘겨운 상태로 이끌어간다.

 

문화적 표현을 체험하고 실습하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솔직하고자 할 때, 나타나는 표현들은 거친 말들을 여과 없이 쏟아내니 오류를 범하기 일쑤이고, 상황을 악화시킨다. 대부분의 솔직하고 거친 언어들의 메시지는 ‘나는 문제가 없고, 당신이 문제가 있어서 결과적으로 내 삶이 괴롭다’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문화적 표현들에 대한 체험은 우리 정서를 객관화시킬 수 있고, 상대방의 정서도 객관화시킬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이해의 폭은 넓어지고, 문제와 거리를 두면서 숨 고르기가 가능해지고, 판단의 순간들에 여유를 갖게 해준다.

 

문화적 표현 체험을 통한 극복

 

2016년과 완전히 이별하기 전에 문화적 표현을 1인극으로라도 실험하고 실습하면서 실천해 볼 필요가 있다. 지적으로 배우는 것도 좋지만 예술체험을 통한 학습이 효율적이다. 창작의 기능적 훈련을 통해 문화적 권력을 소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창작과 관람의 두 국면을 자율적으로 왕복하면서 문화적 표현을 체험하는 주체가 되어, 집단적인 우울증의 포로가 되지 않는 12월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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