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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설, 택배가 살아있다

▲ 이승수 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어느 선배 우체국장 이야기다. 야근하는데 택배 하나가 작업장을 마구 돌아다니더란다. 잔뜩 긴장하고 달려들어 붙잡았는데, 열어보니 살아있는 닭이었다. 닭발이 포장지 사이로 빠졌고, 놀란 닭이 상자를 둘러쓰고 마구 뛰어다녔다는 이야기다. 야근에 지친 나머지 헛것을 봤거나, 졸다가 꿈을 꾸었거나, 상상했거나……? 정말 닭이었을 거야. 그렇게 믿고 싶었다.

 

2017년 설을 앞두고 다이어트 하는 택배가 여럿 있음을 보게 된다. 아직 기간이 남아있어서 지켜봐야 하겠지만, 더 늘어날 것 같은 예감이다. 이들은 서로 말도 한다.

 

“너는 어디서 왔니. 처음 보는데?”

 

질문을 받은 택배가 답한다.

 

“나이 먹더니 눈이 나빠졌구나. 내가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데 그걸 못 알아본다는 말이야?”

 

“…….”

 

인간은 아름다워지고 싶어 은유 쓴다

 

우체국에서 오래도록 도어 투 도어(화물운송에서 물건이 있는 출하지부터 최종 목적지의 수하인에게까지 서비스하는 것을 말함)를 하다 보니 택배가 생명체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침 작업장에서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뛰고 있는 택배를 보고 있자면 온 세상이 다 그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 경건해진다. 약속이라도 한 듯 매일 일정한 수량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 또한 신기하다. 보이지 않는 손이 조절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익산우체국의 경우 평상시 하루 평균 4000여 건을 접수하고 4000여 건을 배달한다.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가 있다. 이탈리아어로 집배원을 뜻하는 이 영화에는 세계적인 명성의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귀양살이하는 집 전담 집배원 ‘마리오’가 나온다. 시인은 마리오에게 시 쓰기를 권하며 은유를 가르친다. ‘은유는 사람을 후끈 달아오르게 하는 마술과 같아.’라며. ‘들판에서/ 밀의 귀들이 바람의 입속에서 울리고 있음을.’ 이렇게 아름다운 은유를 배운 마리오는 급기야 짝사랑하는 여인 ‘베아트리체’에게 ‘당신의 미소는 장미, 부서지는 은빛 파도.’라는 기막힌 은유를 써서 마음을 얻는다. 촌뜨기 총각의 은유는 섬 전체를 숨 쉬게 하는 마력을 발휘한다.

 

다이어트 한 택배가 묻는다. “나 예뻐요?” 이렇게 답해준다. “앙증맞고 귀여워. 그러니 몸매에 너무 신경 쓰지 마.” 처음에는 이렇게 말하려고 했다. “너만의 아름다움이 있어. 남이 흉내 낼 수 없는 기품이지.”

 

‘백곰 효과’라는 게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대니얼 웨그너’는 실험에서 사람들에게 북극의 백곰을 절대로 상상하지 말라고 했다. 사람들은 백곰을 상상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생각을 억누를수록 백곰 생각은 더욱 커졌다. 교수 연구팀은 백곰이 생각날 때마다 빨간색 폭스바겐을 떠올리라고 했다. 그랬더니 백곰을 생각하는 빈도가 훨씬 줄었다고 한다.

 

생각을 가둬놓고 키우는 '백곰효과'

 

규율을 어기지 않는 것 보다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리라. 백곰과의 한판 승부도 같은 맥락의 고민 때문일 것이다. 갈등하는 설……. 답을 쉽게 찾자. 내 마음이 택배다. 머릿속에서 형상화 된 장면이 떠오르고 그것이 가슴을 흔드는 것이면 된다. ‘시는 시인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마리오. 택배가 세상에 나왔을 때 그것은 물건이라기보다 노래요, 이미지 아닐까. 지금부터 이들의 노래를 적어둬야 하겠다.

 

△이승수 지부장은 익산우체국장으로 저서로는영화에세이 〈울면 지는거야〉, 영화치료 전문서 〈영화치료의 기초 : 이해와 활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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