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이 되면 편한 옷차림과 운동화는 필수다. 매일 두세 편씩 총 10편~11편의 경쟁작을 보고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진행한 지난 3일 오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수한 반소매 티셔츠에 백팩을 메고 등장한 박진표, 송해성, 김종관 심사위원. 개막식의 말쑥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영화에만 열중한 모습이다. 전날 늦은 밤까지 심사가 이뤄진 탓에 눈가에 깔린 다크서클은 덤. 한국 영화계에 굵직한 작품들을 새겨온 감독으로서 경쟁작을 본 소감과 심사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 박진표 국제경쟁 심사위원 - '밤섬해적단…' 참 아까운 영화
2002년 데뷔작 ‘죽어도 좋아!’로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았던 박진표 감독이 올해 심사위원으로 다시 전주를 찾았다. 떨렸던 신인 때가 엊그제 같은데 심사까지 보게 돼 격세지감을 느낀다는 그. 심사를 맡은 국제경쟁작 10편은 오랜만에 찾아온 그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여성 감독의 활약이 두드러졌어요. 10편 중 반이 여성 감독 작품이었죠. 전체적으로 좋았던 점은 여성이 겪는 차별·불평등을 남성 폄하나 과장 없이 차분하게 서술했다는 거예요. 여성, 개인의 삶을 통해 사회와 국가로까지 확장한 점이 돋보였어요.”
다양한 작품이 대상작으로 거론됐지만 5시간의 논의 끝에 ‘라이플’이 선정됐다. 그는 “전주국제영화제가 추구하는 ‘표현의 해방’이 잘 나타나 있는 영화, 전주에서 상영했을 때 사회 맥락적으로 더 가치·의미 있는 작품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상작에 들지 못해 아쉬운 작품으로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를 언급하기도 했다. 인물 다큐는 주인공의 행동이 80% 이상을 차지하는데, ‘밤섬’은 대상 선정이 좋았고 주인공에 대한 관찰로 시작해 나라 전체로 확대되는 단계적인 구성도 뛰어났다는 설명. 한마디로 ‘꽃길 걸을 영화’라고 말했다.
‘인 비트윈’· ‘공원의 연인’ 등 좋은 의미로 그를 당혹시킨 영화도 있었다. 현장에 있는 감독으로서 영화를 분석하기 보다는 캐릭터의 감정에 녹아들어 영화에 흐름을 느끼는 편인데, 캐릭터,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
“사회적 배경의 차이로 다른 영화제에선 놓칠 수 있던 수작(秀作)을 전주에 잘 가져온 것 같다”는 그는 “좋은 감독을 발굴하고 키워내는 영화제의 역할을 잘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 송해성 한국경쟁 심사위원 - 주제에 깊이 천착한 작품 선택
심사를 위해 후배 감독들의 작품을 보며 반성도 하고 자극도 받았다는 송해성 감독. 같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감독이 표현하려는 의도, 영화가 가진 매력을 존중하면서 봤다.
“올해 한국 경쟁작들은 장르는 다양하지만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친구들의 애환을 다룬 경우가 많았어요. 표현 방식에서는 밝고 긍정적으로 그리려고 했고요. 아쉬운 점은 별로 없었는데, 다만 대중의 호응을 얻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상업성이 가미된 장면도 보여 속상할 때가 있었죠.”
모든 작품을 만족스럽게 봤지만 그 중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그의 심사 기준은 완성도보다는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 대상 수상작인 ‘폭력의 씨앗’ 역시 이에 잘 부합하는 영화였다. 심사위원들도 공감했던지 대상작 선정은 5분여 만에 만장일치로 정해졌다는 후문도 전했다.
‘파란나비 효과’도 호평을 받았지만, 주제와 현 시국 상황을 배제하고 영화 자체로만 봤을 때는 감독 본인만의 표현력이 다소 약했다는 의견이 있었다.
“저 역시 미장센 단편영화제 창립 멤버로서 활동하는 등 다양한 영화제를 다니지만 초청작 중에서 ‘이건 별로야’ 하는 것도 있거든요. 시대의 문제점이 들어있는 영화들을 잘 선정해서 보여준 것 같아요. ”
개인적으로는 ‘B급 며느리’가 인상적이었다고 꼽았다. “영화가 너무 유쾌하다 보니까 이걸 남들에게 더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대중성도 있는데 영화제에서만 틀고 끝나면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럽 5개국에서 촬영된 ‘금속활자의 비밀들’은 블록버스터 작품이라고 농담 섞인 설명을 하며, 구성이 빼어난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호평했다.
△김종관 한국 단편경쟁 심사위원 - 마음의 파장 일으킨 '가까이'
결국 영화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김종관 감독을 포함한 한국 단편경쟁 심사위원들이 심사 후 공통적으로 느낀 감정이다. “영화는 감정을 주고받고 그 과정 속에서 마음의 ‘파장’을 일으키기 위해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상을 받기 위해 만드는 건 아니에요. 다만 상이 ‘격려’가 될 수는 있죠.”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 단편경쟁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인 작품은 배경헌 감독의 〈가까이〉. 심사위원 전원의 고른 지지를 얻었다. 단편소설과도 같은 문학적 스토리를 단편영화의 형식 안에서 훌륭히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 단편경쟁은 극영화 15편, 애니메이션 1편, 실험·다큐멘터리 3편 등 총 19편이다. 수상작은 3편이지만, 경쟁작 중 반수 이상은 상을 받을 만큼 작품성이 좋았다는 평가다.
전반적으로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다룬 사회성 짙은 영화가 많았다.
김 감독은 “모순된 사회 안에서 고민하는 젊은이 혹은 노인들, 개발과 변화 속에서 없어지는 공간 등 한국을 사실적으로 바라보려는 리얼리즘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전반적으로 ‘무거운 내용을 무겁게 다룬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사회 무게를 다룬 영화 외에도 순수한 영화적인 영화 등 ‘다양한 결(성격)’을 가진 작품이 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소재와 주제를 다룬 작품이 많아 작품 상영 ‘프로그래밍 순서’도 수상 여부를 가리는 ‘운’으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단편영화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단편·장편영화가 근본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같다. 다만 단편영화는 예산이나 촬영 회차, 표현방식 등 형식적으로 더 자유롭다. 관습의 틀에서 벗어난 영화를 만들 새로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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