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서 인력 실은 버스 집결,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 쏟아내
정신없이물건 나르니 몸 곳곳 비명, 탁한 공기에 연신 기침
50분휴식 보장 안돼… 고강도·저임금에 장기근속자 없어
취업 한파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전북지역 청년들의 취업난이 유독 심한 것으로 분석된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2016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건강보험 및 국세 데이터베이스 연계 취업통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반대학, 교육대학, 산업대학, 전문대학, 일반대학원 등 도내 고등교육기관의 지난해 졸업자 취업률은 64.3%로 나타났다.
청년 고용률도 전북이 전국에서 가장 저조하다. 이같은 현상은 청년들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도내에 적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학업이나 군 복무를 하지 않는 청년층이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수도권으로 떠나는 것이다. 결국 도내에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해 지금처럼 전북의 청년고용률이 낮을 경우 젊은 층의 탈 전북 현상은 더욱 가속화 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4∼6월) 15∼29세 청년 고용률은 비수도권이 39.6%로 수도권 45.3%보다 5.7%포인트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전북지역의 청년 고용률은 34.3%에 불과해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낮았다.
이런 가운데, 청춘들이 아르바이트 현장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해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이 한 해 알바생들을 울리고 웃게 한 알바 시장 최고의 주 관심사를 조사했다. 아르바이트 각 분야 1위를 꼽은 결과, ‘시급 많이 받는 알바’ 1위는 피팅모델, ‘강도 최고! 극한 알바’ 1위는 ‘택배상하차’, ‘알바계의 스테디셀러’ 1위는 사무보조였다.
취업난에 허덕이며 알바시장으로 몰리는 청년들이 가장 힘들어한다는 택배상하차 알바를 직접 해봤다.“처음 해보는 거죠? 남자는 9만 5000원부터 시작이고 작업은 보통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 30분까지 합니다.”
아르바이트 알선 사이트에 올라온 물류 업체의 구인공고를 따라 전화를 거니 상하차 작업시간과 급료를 알려준다. 알선 사이트에는 10만 원이라고 올라와 있지만 막상 전화를 걸면 얘기하는 일급은 9만 5000원. 찝찝한 감정이 남았지만 그래도 일을 하겠다고 얘기하니 문자로 셔틀버스의 차량번호, 탑승 장소와 시간을 통보해준다. 문자에 적힌 대로 셔틀버스에 탑승하고 두 시간을 타고 가니 물류터미널에 도착했다.
일하게 된 곳은 충북에 위치한 모 택배사의 물류터미널. 한때 버뮤다삼각지와 비교되며 화물의 블랙홀이라 불렸던 악명높은 터미널이 바로 이곳이다. 전주뿐만 아니라 대구, 청주 등 전국에서 달려온 버스가 이곳에 사람들을 쏟아낸다. 학과 점퍼를 입고 온 대학생 무리에서부터 40대 중년에 이르기까지 연령에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몰리는데 의외로 여성 작업자들도 드물지 않게 보인다. 상하차가 중노동이란 일반적인 인식에 따라 여자가 하기에 어려운 일이란 편견이 있지만 꼭 남자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한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이름을 부르는 물류회사 직원을 따라가 잠깐의 등록절차와 근로계약서 작성을 마치고 나면 저녁을 먹는다. 저녁 메뉴는 냉동식품을 그대로 튀겨 놓은 미니 돈가스와 묽은 김치찌개. 당연히 맛은 없다. “많이 먹어 놔도 일하다 보면 엄청 배고파요. 맛이 없어도 억지로라도 먹어요.” 전주에서 함께 온 A씨의 충고에 억지로 입에 밥을 밀어 넣어 보지만 금새 수저를 내려놓았다.
밥을 먹고 저녁 8시가 되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다. 물류터미널 분류는 짐을 내리는 하차, 지역별로 나누는 분류, 다시 짐을 싣는 상차로 나뉘어 있는데 처음 오는 사람들은 대개 상차조로 배정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인원이 부족한지 초보자도 하차조로 배정됐다. 하차조 일은 간단하다. 짐칸에 실린 짐을 가능한 빨리 레일 위로 옮기면 된다. 레일이 차량 안까지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일일이 차량 밖으로 짐을 옮길 필요도 없다. 하지만 간단한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처음 맞이한 차량에 실려 있는 화물은 약재와 소화물. 중량이 나가는 화물도 제법 있었지만 첫 차인 만큼 적당히 정신 차리면서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차량을 맞이하자 난관이 시작됐다. 두 번째 차량에 실려 있던 것은 대량의 업소용 세제와 기업용 화물. 그때부터 이 일에는 차량 운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3~4월에는 상하차 최대의 난관이라 할 수 있는 쌀포대를 상대할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20㎏짜리 콤프레셔 5대, 14㎏짜리 업소용 세제 80통을 비롯해 중량이 많이 나가는 화물을 상대하고 나면 뒤에 오는 저 트럭이 가벼운 화물을 실었기를 간절히 빌게 된다. 그렇게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면 남의 짐 챙기기 전에 내 몸부터 챙기자는 생각이 든다. 이윽고 깨지기 쉬움이라는 빨간색 스티커가 붙여진 화물을 봐도 그런 문구를 무시하고 짐을 던지게 된다. 처음에는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도 하지만 팔목과 허리에 통증이 몰려오는 현실이 무겁다.
작업장에는 고성이 오간다. 기계소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목소리를 높여 의사소통해야 하는데 그렇게 몇 번 소리를 지르다가 대략 새벽이 되면 하나같이 목이 쉬어버린다. 아울러 현장에서 나오는 먼지는 이미 쉬어 버린 목을 더욱 힘들게 한다. 포장된 상자를 던질 때마다 먼지가 쏟아지고 차량 짐칸에 들어갈 때마다 탁한 공기에 줄기침이 이어진다. 어느덧 안경에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양의 먼지가 달라붙어 있다. “여기 공기가 너무 안 좋은 것 같아요. 방금 화장실에 갔을 때 가래침을 뱉고 왔는데 가래가 새까맣더라고요.” 옆 통로에서 일하던 대학생 C씨가 하소연하지만 참고 일하는 것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근로계약서 상에는 50분의 휴식시간이 명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별도의 휴식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유일하게 잠깐이라도 쉴 수 있는 시간은 짐을 내린 차량이 나가고 다른 차량이 들어오는 약 2~3분간의 짧은 휴식뿐이다. 처음 쉴 때는 그 시간에 스트레칭도 하고 기지개도 켜면서 적당히 몸을 풀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냥 서 있는 것조차 힘들게 느껴진다. 어디든 앉을 수 있는 곳에 주저앉아 그 잠깐을 멍하게 즐긴다. 그리고 차량이 들어오면 다시 짐칸으로 달려간다. 그때는 이 일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10여 대의 차량에서 약 1만 건의 화물을 옮기고 나니 어느덧 아침 7시. 깜깜한 짐칸에도 햇빛이 들어온다. 너무 힘들어서 인중에 소금기가 느껴질 즈음에 드디어 끝을 본다. 작업장을 청소하고 들어왔던 길을 따라 나가면서 급료를 받기 위해 줄을 설 때, 일은 끝났고 이제 돈 받고 퇴근할 일만 남았건만 길게 늘어선 사람들 대부분의 표정이 어둡다. 한쪽에서 담배를 피우던 D씨가 꽁초를 버리면서 얘기한다 “오늘로 여기 다섯 번째 왔는데 올 때마다 보는 얼굴들이 바뀌네요. 그만큼 사람이 못배기는 일이란 뜻이죠.”
버스가 전주로 돌아가는 동안 11시간 고된 노동을 버텨낸 몸이 이제 더는 안 되겠다며 잠을 청한다. 잠깐의 잠을 거쳐 전주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세상이 아침의 문을 열고 출근하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그 시간에 저녁의 문을 닫아걸고서 이제야 퇴근한다. 평안했어야 할 시간을 노동으로 채우면서 그 대가로 받은 9만 5000원짜리 노란 봉투를 마주하니 헛웃음이 나온다. 최악의 노동강도와 최저시급 수준의 박봉이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 표정을 읽었는지 같이 버스에서 내린 E씨가 충고를 해준다.
“전주에서 인력시장을 나가도 10만 원은 줘요. 게다가 그쪽이 일도 쉽고 시간도 짧으니 굳이 이 일을 해야겠다 싶으면 차라리 새벽에 인력시장을 나가요. 그편이 나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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