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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미촌 골목 한가운데 예술가 책방이 있다는 것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선미촌에 책방을 연다고? 일곱명이나 같이? 대체 어쩌려고?”

지인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혼자 조용히 창작하고 살기도 버거운데 굳이 같이 모여 어려운 길로 가야겠냐, 아직 곳곳에 문 열린 업소가 있는 성매매집결지 한가운데 누가 책을 사러 찾아오겠냐 하는 의견이 대다수. 일곱 명이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며 책방을 본다는 말엔 운영비도 없이 그걸 왜 하냐는 핀잔이 돌아왔다. 책 한 권 팔아도 남는 건 뻔한데 돈이 벌릴 리 없다는 염려와 함께, 땅값만 오르고 예술가들만 상처받는 좋지 않은 모양이 될지 모른다는 엄숙한 조언도 이어졌다.

그렇게 올해 1월, 많은 이들의 걱정을 무릅쓰고 문제의 일곱 명이 전주 선미촌에 책방을 열었다. 책방 주소명를 따라 ‘물왕멀’이라 이름 지은 팀은 미술, 음악, 사진, 영상, 문학 등 각각의 장르로 창작하는 삼사십 대로 모두 전주에 살고 있다. 대표는 책방 운영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하면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내가 맡게 되었다. 우리는 창작자이기도 하지만 이를 매개로 콘텐츠를 만들고 기획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책방 이름을‘서사(書肆)’라 지은 것은 서적방사의 줄임말인 서점이란 뜻만은 아니다. 예술가들은 자기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서사(敍事)의 의미를 우리 책방의 중심에 두고 싶었다.

선미촌에서 진행된 전시를 기획하거나 참여한 경험이 있는 팀원 비율이 반 이상이라 이곳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은 옅었다. 매일 마주치는 이웃들과 오고가는 손님들이 이곳에 책방에 있어 다행이라는 말을 할 때면 마음이 쿵쾅거린다. 이제 선미촌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고민하는 지점 가운데 예술가와 책방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나 개인으로서는 아직 선미촌에 대해 하나된 의견이나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 누군가 정확한 답을 요청할 때마다 나는 그 질문이 정확하지 않다고 느낀다. 다만 우리가 이곳에 거주하다시피 발 딛으면서 목격하고 알게 된 것들을 중심으로 창작한 작업물이 점점 쌓여가고 있다는 것을 좀더 이야기한다.

우리는 지난 3월부터 SNS를 통해 매주 각자 코너에 새 콘텐츠를 연재하는 무모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주제는 이곳 선미촌. 여기서 보고 느끼고 감지한 것을 토대로 음악, 사진, 드로잉, 영상, 시로 발표하고 있다. 매주 새로운 창작물을 내고 SNS에 공개까지 한다는 것이 떨리고 두렵지만 그것이 바로 이곳에 작은 책방을 낸 가장 중요한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모이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지역에 살면서 자기 작업을 지속하려는 창작자들에게 흩어짐만은 그리 뾰족한 수가 아닐 수도 있다. 더 나은 지대를 만들기 위한 고군분투는 홀로 해내기 어려운 까닭이다.

때문에 함께 느끼고 실천할 동료들과 가야할 길이 길다. 전주시가 4번째로 매입한 선미촌 4호점 건물, 오래 비어 있던 성매매업소가 작은 책방이 되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과 긴 시간이 증명하듯 우리는 계속 보폭을 맞춰가야 한다. 이제 7개월째 걸음마를 떼고 있는 일곱 명의 운영자들은 이 공간을 어떤 각도로 돌려놓게 될까? 동네 이웃들과 이곳을 찾아오는 분들과 함께 하는 진솔한 방법으로, 한 번도 해보지 않을 일들이 가져다줄 단단한 마음으로. 선미촌 골목 한가운데 작은 책방은 오늘도 문을 열고 있다.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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