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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군산비행장

군산시 옥서면에 위치한 주한미공군비행장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지역민들도 광복 후 미군정 때 만들어졌을 것으로 여기지만, 실제 군산비행장 건설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에 의해 건설된 군산비행장에도 나라 잃은 민족의 아픔이 서려 있다.

1934년 준공된 군산비행장은 솔밭뜸(송촌리)에서 시작해 상제와 중제마을이 포함된 규모로, 당시 마을 주민들은 하제마을이나 불이간척지(지금의 송촌 및 열대자 마을)로 강제 이주 당했다.

당시 비행장의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해방 후 미군이 진주하며 오늘날의 규모로 확장됐다.

군산역사문화연구원과 근대역사박물관 등에 따르면 일제는 비행장 건설을 위해 ‘보국대’라는 이름의 전라북도지역 청장년과 ‘학도근로대’라는 명칭의 어린 중학생들을 강제 징집해 비행장 활주로 공사에 투입했다.

이곳은 일본공군소속 ‘다쓰하라 비행학교’로 운영됐으며, 육군항공대 가미가제 특공대 1개 중대가 주둔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활주로가 지금과 달리 화산의 북서쪽으로 나있었고 비행기는 날개 2개가 달린 붉은 색 쌍엽기가 20대 정도 있었으며, 일본 전역에서 지원한 일본인들이 비행기 조종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이 비행장에는 300여 명의 조종사와 정비병 등이 근무했으며 조종사는 모두 일본인이었지만 정비병은 주로 비행장 인근의 한국 청년들이 취직했기에 성산, 하제의 젊은이들 중 많은 숫자가 해방 후 대한민국 공군 창군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해방이 되자 일본군들은 모든 비행기와 장비를 놓고 철수하지만 일본군이 놓고 간 비행기들은 안타깝게도 우리 공군의 무기는 되지 못한다.

그 이유는 해방 직후 치안 부재의 상황에서 인근 주민들이 비행기를 분해해 고철로 팔았기 때문이라는 게 지역민들의 설명이다.

해방 후 주인이 없던 비행장에 처음 들어온 부대는 같은 해 10월 5일 군산에 진주한 미군 기계화 부대였다.

그 뒤 한국전쟁을 거친 후 이곳은 미군 태평양 공군사령부 예하 부대인 미 7공군의 제 8전투비행대대가 자리하면서 비행장의 규모는 이전보다 대폭 확장, 둘레만도 8㎞에 달하고 면적은 1034만 8063m²에 이르는 규모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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