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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화된 혐오

이주경 (전주문화재단 문예진흥팀 주임)

이주경 (전주문화재단 문예진흥팀 주임)
이주경 (전주문화재단 문예진흥팀 주임)

의미 포화라는 말이 있다. 특정 대상에 과도하게 몰입할 경우 그 대상의 정의나 개념이 희박하게 느껴지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일종의 미시감처럼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말하다 보면 그 의미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현상을 말한다.

최근 각종 매체에서 혐오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다 보니 단어 자체가 너무나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얼마나 내가 그 단어에 노출이 많이 되었으면 이런 느낌이 들었는지 궁금해졌고 그래서 나는 지난 한주 동안 ‘혐오’라는 단어가 들어간 인터넷 기사가 얼마나 되는지 검색 해보았다. 검색결과 약 3만 여개. 물론 중복되는 기사도 있고 객관적인 지표로서 활용 할 수 있는 자료는 아니지만 ‘혐오’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이 노출 되고 있는지 단편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수치였다.

혐오라는 단어는 언제부터 우리 곁에 이렇게 존재감을 드러냈을까?

내 기억에 처음으로 ‘혐오의 시대’라는 표현을 인식한 것은 2016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당시 우리 사회는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이 분노할 수 있는 이슈가 있었고 또 그에 따른 진영 간 갈등 또한 최고조에 이르렀다. 자신이 속해있는 진영을 지키기 위해 상대방을 끌어내리는 혐오의 양상은 당연하게 나타났으며 바로 이듬해 새롭게 선출된 미국의 대통령이 ‘더 강한 미국’을 외치며 주변국과 이민자에 대한 다소 강압적인 정책들을 꺼내 놓으며 ‘혐오의 시대’라는 표현을 매체를 통해 더 자주 접하게 되었다.

정치적인 이슈로 예를 들어 이야기 했지만, 나 또한 지난 몇 년간 여러 계층사이에서 존재하는 혐오를 목격 할 수 있었고 또 경험할 수 있었다.

과거 우리사회에서 혐오는 국가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재단되고 폐기되어야 할 것들을 정리하기 위해 사용되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수면 아래 있던 소수자인권들이 하나 둘씩 이슈가 되면서 성소수자 인권, 양성평등, 이민자들의 인권들이 논의가 되고 서로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계층 간의 갈등은 혐오라는 감정과 함께 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혐오라는 정서는 안타깝게도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장과 전염병과 같은 공통의 불안정성, 그리고 경제적인 양극화를 바탕으로 더 널리 퍼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성별, 장애, 정체성과 관련된 멸칭을 하나씩은 들으며 사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삶이 되어버렸다.

자신을 지키려는 본능에서 바탕을 두고 있는 감정이지만 그로 말미암아 생기는 사회 전반에 스며드는 무신경한 폭력성을 어떤 식으로 마주해야 할까.

나는 개개인의 비극을 용기 있게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계층 간에 혐오에 따른 폭력은 언제나 우리주변에 산재하고 그것은 상투적인 보도의 형태로 가공되어 일종의 정보의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정보로서 다가오는 타인의 비극에 둔감해 질 수 밖에 없다.

개개인의 비극이 가지는 단독성을 마주하고 그들이 차별 받게 되는 이유가 온당한지 그들이 속해있는 공동체에서 개인의 존엄성이 무시되는 과정을 면밀히 살피고 평범한 정보로 추락 할 수 있는 개인의 비극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한명의 개인으로 당장의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혐오의 시대’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이주경 (전주문화재단 문예진흥팀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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