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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오은숙 소설가 - 최기우 작가의 '달릉개'

희곡을 낭독하는 일은 겨울바람에 날리는 자기 입김을 보는 것과 같다. 감정을 실어 읽은 글이 상대에게 도착하기도 전에 낭독자를 자극하여 삶을 환기하니 말이다. 글자만 소리 내어 읽는 음독과 달리 장단과 고저를 달리하며 소리에 감정을 얹는 낭독의 즐거움은 희곡이 제격이다.

최기우 작가의 네 번째 희곡집 <달릉개>는 달래의 전라도 방언으로 부채 장수인 주인공의 이름이자 동명 희곡이다. 전주대사습에 나가 장원을 해 참봉 벼슬을 받아 아버지 한을 풀어주려던 꿈을 포기한 달릉개가 서예가 이삼만과 소리꾼 주명창을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작년 봄, 『조선의 여자』 때도 그랬듯이 낭독을 하던 지인과 나는 작가의 시그니처를 마주하며 감탄을 연발했다. 전라도 방언이 살아 있는 입말 속에 숨어 있는 해학과 풍자라니. 『달릉개』 7막 <왜망실 짓거리>에서 《(p.50)주명창: 지꺼리? 짓거리? 그것이 무슨 해괴망측한 짓거리요? 전주를 전봇대라고 허는 같잖은 농짓거리요? 전주를 이번 주, 지난주라고 허는 뻘짓거리요? 컹컹컹컹 개가 짖는 개짓거리, 욕지거리, 쌈짓거리요?》는 지역 특산품을 해학적으로 보여준 단적인 예다.

지인과 주거니 받거니 낭독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긴 하나 시간 맞추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때문에 희곡집 <달릉개>에 실린 나머지 작품은 혼자서 낭독했다. 『녹두 장군 압송 次』를 혼자 메기고 받기를 반복하는 동안 울컥울컥 뜨거운 것이 목울대로 올라왔다. 그러다 유머 섞인 문장을 만나 웃기도 했다. 《(p.80)엿장수: ~ 자네 솜씨를 어디다 댄당가! 지금 여기는 ~ MSG도 없을 것인디. (p.97)정봉준: ~ 기율(紀律)이 없어 다시 싸울 수 없었다. (p.113)정봉준: ~ 전투에서 패했는지 ~ 나는 알았네. (p.113)손민중: 그것이 무엇입니까? (p.113)정봉준: 우리는 정작 농민의 ~ 잊고 있던 것이다. (p.112)정봉준: 조선의 청년아, ~ 더 느리게 가야 할 것이다.》 흥부전 박타는 장면을 다룬 『시르렁 실겅 당기여라 톱질이야』는 그저 흥이 났으며 『월매를 사랑한 놀부』는 《7막 <긍게, 이르믄 안 되는디> 10막 <빌믄 뭐가 달라징가> 15막 <인제 가면 언제 오나>(p.213)놀부: ~월매, ~ 괭이 밥이 아니라 ~ 나, 가네!》를 이리 읽다, 저리 읽으매 애잔하기도 했다. 엿장수와 뻥튀기 장수가 관객들 흥을 돋는 것으로 시작하는 『아매도 내 사랑아』 또한 구성진 장단에 흥이 들고 나서 저 혼자 낭독을 한 것인지 놀이를 한 것이 몰랐다.

벌써부터, 작가의 세 번째 희곡집 <은행나무 꽃>에 수록된 『수상한 편의점』, 『교동스캔들』을 지인과 낭독할 것이 기쁘다. 작가는 희곡집 네댓 권은 읽어야 책 좀 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희곡집 대여섯 권은 갖고 있어야 집에 책 좀 있다고 하는 것이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만큼 희곡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죽어 있는 텍스트에 생명을 불어 넣는 낭독의 힘을 염두한 말인지도 모른다. /오은숙 소설가

오은숙 소설가는

202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납탄의 무게’가 당선돼 소설가로 등단했다. 현재 요양 병원 근무하고 있으며 서울을 오가며 창작 수업을 들었다. 앞으로도 일하며 글쓰는 단순한 삶이 이어질 것이다. 공저로는 <1집 스마트 소설>, <지금 가장 소중한 것은>, <2021 신예작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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