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은 여전
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현재
영화 ‘김복동’의 제작 과정을 기록한 에세이
“누군가 꽃이 진다고 말해도/난 다시 씨앗이 될 테니까요/그땐 행복 할래요/고단했던 날들/이젠 잠시 쉬어요/또다시 내게 봄은 올 테니까/빈들에 마른 풀 같다 해도/꽃으로 다시 피어날 거예요/흙으로 돌아가는 이 길이/때로는 외롭고 슬프겠지만/그땐 행복 할래요”(윤미래의 ‘꽃’ 일부)
윤미래 씨가 부른 영화 <김복동> 의 OST인 ‘꽃’(Prod. 로코베리)의 일부다. 지난 2019년 개봉한 영화 <김복동> 을 만든 송원근 감독이 제작 과정을 기록한 에세이 <그 이름을 부를 때> (다람)를 출간했다. 그> 김복동> 김복동>
송 감독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기림의 날인 8월 14일에 맞춰 에세이를 펴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대표적인 인물인 김복동 할머니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송 감독은 ‘김복동’이라는 인물을 탐구하게 됐다.
‘김복동’이라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삶을 단기간에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송 감독은 끊임없이 김복동 할머니와 관련된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의 삶과 사람 ‘김복동’의 삶을 모두 담기 위해 노력했다. 여전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특이하게 일기 형식처럼 이야기를 담았다. 소설이나 수필처럼 줄줄이 이야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다른 이야기임에도 모든 글 상단에 날짜를 기재해 하나의 이야기처럼 엮었다.
1인 미디어 ‘미디어 몽구’를 운영하는 몽구가 물은 “김복동 할머니 기억하시죠?”에서 시작한 영화 <김복동> 은 누군가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제작된 것도 아니고, 어떤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만든 영화도 아니다. 송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오로지 ‘김복동’이라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삶이 사람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스며들게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김복동>
수요시위가 있는 날이면 일본대사관을 향해 “일본 정부는 사죄하라! 일본 정부는 배상하라!”라고 외치던 사람, 우리 나이로 열여섯에 일본군에 성노예로 끌려가 평생을 힘겹게 산 김복동 할머니다. 아흔넷의 나이에도 일본 정부를 꾸짖었던 ‘김복동’ 할머니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험한 세상을 살다 떠났다.
일본군에게 ‘위안부’는 그저 일본군의 성 노리개, 성욕 배출의 수단으로 필요했던 군수물자였다. 미개한 방식으로 짓밟고 짓이겨 약탈하고 사람을 물건 취급하던 시대였다. 해방되고 70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스러운 삶은 끝나지 않았다.
피해자의 삶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자신보다 더 참혹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보듬어주는 적극적인 존재로 살아온 한 사람의 삶이 일본에 대한 분노를 끓어 올리기도 하고, 무관심했던 ‘나’를 반성하게 만들기도 한다.
책발전소 김소영 대표는 추천사를 통해 “‘김복동’의 이름은 여전히 우리를 슬픔에 젖게 하지만 그 이름을 부를 때, 우리는 더 당당한 모습으로 자세를 바로잡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막연한 연민과 안타까움보다는 그분들의 삶을 존중하고 존경하며, 지지해야 하는 이유를 더욱 분명히 알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송원근 감독은 전북 남원 출생으로, 대학 시절 섬진강, 야학, 어머니의 부재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지난 2003년 MBC에서 방송활동을 시작했고, 시사교양 프로그램 다수 연출을 맡기도 했다. 2013년에는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로 옮겨 세월호 1주기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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