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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뒷짐을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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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희 수필가

언제부터인지 나도 모르게 뒷짐을 지게 된다. 뒷짐자세를 의식을 하는 순간 얼른 손을 풀고 걷기자세로 바로잡는다. 뒷짐 지고 걷는 자세가 어느새 편한 자세라는 걸 몸이 먼저 알았다면 늙었다는 증거다. 나의뒷짐 때문에 거리의 사람들을 주의 깊게 보노라니 남자나 여자나 성별불문하고 뒷짐을 지고 간다. 구부정한 자세로 뒷짐 지고 가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띤다. 노인이 많다는 얘기다. 사실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어서 남의 모습을 보고 나를 살피고 얼른 뒷짐을 푼다. 뒷짐이라! 무얼 뜻 하는가

뒷짐을 지는 것은 어떤 일을 방관한다는 의미이고 일선에서 물러나 앉는 일이다. 일을 할 때는 손을 앞쪽에서 열심히 무언가 만지고 부지런을 떨게 되어있다. 현역의 자리에 있을 땐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손이 할 일이 많았다. 언제 손이 뒤로 갈 틈이 없다. 아직 건강하고 할 일이 많아 동분서주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손이 어느새 뒤로 가서 마주잡고 뒷짐을 지고 가고 있다. 일손을 놓으라는 암시인가. 뒤짐 지고 손을 맺고 가는 저 사람들은 다르게 말하면 일손을 놓았다는 걸 말해주리라. 뒷짐을 진다는 것은 어쩌면 은퇴의 다른 표현이다.

중년이 뒷짐 지는 자세는 좀 다르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배를 내밀고 자못 거만스럽다. 중년이 팔짱을 끼고 몸을 뒤로 젖히고 있는 모습도 비슷한 인상을 준다. 일을 하지 않은 동작으로 주시 관망하는 모습이다. 감독자의 태도로 시선엔 힘이 들어가 있어 하수인들을 주눅 들게 하는 뒷짐이다. 뒷짐을 지거나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이라면 일단 비호감이고 비생산적이다.

수년 전에 동네 고샅을 나가다가 목격한 일이다. 윗 골목에 사시는 박스를 줍는 할아버지가 구부정한 자세로 뒷짐을 지고 가고 있었다. 그 뒤를 네 댓살로 보이는 사내아이가 구부정한 자세로 뒷짐을 지고 따라가는 모습이라니! 할아버지 걸음의 복사판이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소리 없이 웃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라는 말을 증명해준다. 할아버지의 뒷짐 습관을 손자는 그냥 할아버지를 그대로 따라하고 있으니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해야 할 일이다. 어휘 말투 행동 하나하나를 아이들 보는 앞에서 조심해야할 이유다

요즘엔 뒷짐자세를 운동 동작에 도입하고 있는 추세다. 실제로 해보니까 운동으로서의 뒷짐 자세는 스트레칭 효과가 크다. 반듯한 자세로 허리를 펴고 뒷짐을 질 때 깍지 낀 손바닥을 땅으로 향하고 등 뒤에서 아래위로 올렸다 내렸다 신축과 이완운동을 반복적으로 한다. 거북목이나 오십 견 척추협착 등에 효과가 크다고 하니 수시로 실행해서 허리를 펴야겠다.

아침으로 천변을 산책하는 데도 뒷짐 지고 가는 사람이 많다. 건강하게 살자고 조깅하러 나와서도 구부정한 자세에 전형적인 노인성 걸음들을 보자니 가슴이 답답하고 씁쓸하다.

초등학교로 통하는 우리골목에 등교시간인데도 한 두 명이 띄엄띄엄 조용히 지나간다. 적막하고 쓸쓸한 등하교 시간이다. 출산율 최하위인 대한민국의 시골학교나 도서지방 폐교는 20년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최근엔 중 소 도시 주택가 학교도 폐교 위기에 놓였다는 말이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학령인구 감소가 심각하다. 아침이면 골목 가득 아이들의 발걸음이 왁자지껄하던 옛날이 그립다. 주택가라서 그런지 뒷짐 지고 가는 노인들의 모습만 보인다. 백세 시대가 노인 공화국이라는 말을 증명하듯 노인들이 뒷짐을 지고 간다.

동네 앞 네거리에 어깨를 펴고 활보하는 젊은이들의 보무당당한 모습이 보고 싶다.

박순희 수필가는 <한국문인> 으로 등단했다. 현 행촌수필문학회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수필집 <꽃으로 말한다> <대체로 맑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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