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너무 늦지 않게>를 읽다가 각에 꽂혔습니다. 각! 좋습니다. 잘 다린 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소리가 나거든요. 그 소리는 바빠서 만지면 둥글둥글한 느낌이 듭니다. 면과 면이 만나야 각이 생깁니다. 면은 혼자지만, 각은 상대가 있습니다. 칼 같은 각도 두 면이 힘을 모아야 생겨납니다. 너와 내가 예각으로 만나면 펜이 됩니다. 둔각으로 만나면 팔작지붕이 되고요. 안중근의 집게손가락과 방아쇠가 직각으로 만나 적막해지면, 이토가 쓰러집니다.
“가령, 책상 위 저 종이를/ 가로와 세로 반 대각선으로 수만 번 곱접으면/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나 물방울을 볼 수 있다/ 동화를 들려주는 별들과/ 풀잎 끝 풍경을 모을 수도, 지을 수도 있다// ……/ 지구를 스쳐 지나는 저 유성도/ 실은 우주의 뭇별들과 각을 이루기 위해/ 지상 끝 저 모서리로 내리는 것이다” (‘각’ 중). 펄프의 각들을 헤아리다 밤을 새웁니다. 나무의 둥근 각을 세려면 360일(도)에 5일은 더 필요합니다. 만나지 못했던 각들을 만나려 종이를 접습니다. 저녁노을, 물방울, 별, 그리고 풍경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합니다. 접는 법을 몰라 늘 구겨졌던 마음을 펴보니 각들이 까칠합니다. 지상의 모서리로 갑니다. 뭇별들과 각을 이루기 위해 별똥별이 내려옵니다.
“늦은 밤, 고양이 한 마리/ 빗물 속 달빛을 핥고 있네/ 저 몸짓은 둥근 털실을 잃어버린 고양이가/ 아침을 부르는 의식,/ ……// 이제는 둥근 자동차 불빛에 뛰어들거나/ 달빛을 감으며/ 북~ 찢긴 비릿한 밤의 다른 표정을 감아올리지// ……// 저 먼 달 속으로 순한 눈빛들/ 하나둘씩 가로등처럼 켜져 가네” (‘달빛 감는 고양이’ 중). 고양이는 달빛을 감아 눈 속에 넣었을까요, 털로 바꿔 놓았을까요? 빗물과 고양이 혀의 각도를 따라가면 아침이 아침밥을 차려줄 것 같습니다. 비릿한 냄새와 자동차 불빛은 삶과 죽음의 각을 발라줄 것 같고요. 순한 눈빛이 달에 켜는 각은 재기 어려울 듯합니다.
“발끝에서 당신의 표정이 달라지는 건/ 밤새 안녕한 당신의 얼굴이 물속 잽싼 가마우지 주둥이처럼/ 맨발 안으로 오버랩 되기 때문// 그 표정은 마치 촘촘히 가죽을 잇댄 북소리처럼 둥글고 깊다// ……// 조금 늦은, 그러나 너무 늦지 않게// 단단히 묶었던 신발 끈을 푼 맨발의 표정이/ 발끝을 깨문 듯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때가 있다” (‘스텝’ 중). 우리는 매일 스텝을 밟아 무엇을 만나러 가는 걸까요? 얼굴은 어떻게 내려와 발끝의 각을 달라지게 할까요? 북소리처럼 둥근 각은 왜 피어날까요? 그나저나 너무 늦지 않게 해방된 맨발의 각이 짜르르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총각(總角)은 모두 각입니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세상과 각을 세우고 삽니다. 둥글둥글 산다는 것은 젊음에 대한 모욕이지요. 각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둥글어져야 한다는 믿음이 있거든요. 일렬종대 사관입니다. 각과 둥근 것들이 가로로 길게 줄을 지어 오기도 합니다. 엣지 있게 횡대로 옵니다. 이러니 각을 세울 때와 둥그렇게 행동해야 할 때를 아는 게 중요해집니다. 하늘을 예리한 각으로 찔러야 할 가지가 둥치를 흉내 내면 어찌 되겠어요.
이영종 시인은
2012년에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2020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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