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등단 59년, 섬세하고도 통렬한 어조
팔순의 신달자 시인이 17번째 시집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민음사)을 새로 펴냈다.
올해로 등단한 지 59년째를 맞이한 그는 문단에서 ‘손에 닿는 모든 것이 시가 된다’는 평을 받아 왔다.
이번 시집에서 섬세하고도 통렬한 어조로 나이 든 몸의 고통을 나타내고 있다.
늙어 가는 몸에서 비롯되는 찌르는 통증들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고 시인의 하루는 몸을 어르고 달래는 일로 채워진다.
"밥이 다 되면 전기솥에서 푸우욱 치솟는 연기가/ 극초음속 마하 10 탄도 미사일이라고 생각하는/ 이 전쟁의 핵심은 오늘도 먹는 일/ 먹을 걸 만드는 일/ 밤늦도록 평화로운 공포 속/ 어둠 내리면 붉은 태양 같은 따뜻한 불이 켜지는 내 부엌."(시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 중 일부)
얼음과 숯불 사이를 오가며 먹을 것을 만들어 내는 전쟁과 평화가 있는 부엌은 원숙하고도 고통스러운 노년의 삶에 대한 비유다.
육신이 정신을 앞지르는 나이에 이른 시인은 젊은 날처럼 내 것인데 내 말을 잘 안 듣는 육신을 미워하기보다 앓는 몸을 보듬고 있다.
그러기에 이번 시집은 노년의 시인이 생을 반추하며 쓴 회상록이자 자기 몸을 마주하고 받아 쓴 솔직한 고백의 산물이다.
시인에게 시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그날 그 시간에 반드시 필요한 동력자였으며 일상의 정신적 빛이다.
시인은 "창 사이로 가늘게 스미는 빗살무늬 그것이 나의 시였는지 모른다"고 밝혔다.
그가 시를 버리지 못한 것은 사람과 하늘, 나무 등 자연의 모든 선물들이 시인에게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시집 말미에 수록한 산문은 긴 호흡으로 거리낌 없이 문장을 써내려간 시인의 필력이 느껴진다.
경남 거창에서 태어난 시인은 1964년 여상 여류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등단했다.
1972년에는 박목월 시인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재등단했다.
시집 <열애>, <종이>, <북촌> 등 다수가 있으며 정지용문학상, 대산문학상, 서정시문학상, 만해대상, 석정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시인은 전북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완주 문화공간 여산재에는 시인의 시비가 세워졌고 올해 지방에서 최초이자 '명예시인 6호'로 선정된 윤석정 전북일보 사장의 명예 시인 증서 전달식에도 참석해 축사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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