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설날 일출은 쌍용 벽골제, 낙조는 망해사에서
2024년 갑진(甲辰)년 푸른 용의 해가 밝았다. 김제는 드넓은 평야와 새파란 하늘이 지평선을 이루고 있는 지평선의 고장이다. 탁트인 평야에서 파란 하늘 위로 형형색색의 연을 날리는 체험은 아이들에게 우리 전통놀이에 대해 배우고 경험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농경문화의 중심지인 벽골제 드넓은 광장에는 웅장하게 서 있는 쌍용을 볼 수 있다. 연말과 연초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으며 쌍용 조형물은 푸른 용의 해 갑진(甲辰)년 일출의 명소가 되고 있다. 또 김제의 숨은 명소인 메타세콰이어 드라이브 길을 지나 진봉면 심포항은 바다와 수평선과 광활한 지평선을 볼 수 있고 서해 낙조의 장관을 볼 수 있다. 이번 설 벽골제의 쌍용을 찾아 푸른 용의 기운을 얻고 서해 낙조를 바라보며 2024년 새로운 마음의 설계와 새로운 희망을 찾아보자.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평선의 근원 벽골제
김제시 부량면 용성리에 있는 벽골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 저수지다.
공원 안쪽으로 들어가면 넓은 녹색 잔디와 쌍용 그리고 파란 하늘빛이 선명한 잔디공원이 나온다. 멋진 쌍용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누구나 사진작가가 될 수 있는 곳이다. 주변에는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을 위한 전통놀이 체험인 그네 타기를 할 수 있고 농경문화를 배울 수 있는 연자맷간, 디딜방앗간 등이 있다.
벽골제를 지키는 쌍용은 최평곤 작가의 작품으로 높이가 15m, 길이 54m, 직경 2m이고 재질은 철골과 대나무로 만들어졌다.
벽골제와 생명인 물, 신화와 삶을 연결하는 상징적 고리로 쌍용을 선택해서 만들었다고 하며, 크기도 크지만 꼭 살아있는 듯 꿈틀대는 쌍용의 힘찬 몸짓이 느껴지는 곳이다.
백룡과 청룡이 살아 숨쉬는 쌍용놀이 전설
쌍용놀이는 ‘벽골제’에 얽힌 전설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신라 원성왕 때, 벽골제를 쌓은 지가 오래 되어 붕괴 직전에 놓이게 되자, 나라에서는 ‘원덕랑(元德郞)’을 보내어 보수공사를 하도록 했다.
이에 덕랑과 김제태수 ‘유품(由品)’은 백성들에게 부역을 시키며 밤낮없이 공사를 진행시키고 있었는데,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일면서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쳤다.
겁에 질린 백성들은 “이러한 공사를 하려면 예로부터 처녀를 용추에 넣어 주고 청룡을 달래야 하는데, 원덕랑이 우리말을 듣지 않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원망했다.
벽골제 아래 원평천 용추에는 착한 백룡이 살고 있었고, 연포천 용추에는 심술 사나운 청룡이 살고 있었다. 화가 난 청룡이 사람들을 해치고 벽골제를 무너뜨리려 하자 백룡이 나타나 청룡을 가로 막았고, 두 용 간에 피나는 싸움이 벌어졌다.
백룡이 패해 어디론가 물러나 버리자 청룡의 기세는 한층 더 높아졌다. 마침내 유품과 백성들은 원덕랑의 약혼녀 ‘월내’를 몰래 용추에 넣기로 했다. 그런데 원덕랑을 짝사랑하던 유품의 딸 ‘단야’는 이 사실을 알고 고민 끝에 자신이 대신 희생하기로 결심한다.
월내 방에 대신 누워 있던 단야는 보쌈을 당해 결국 청룡에게 먹히고, 그와 동시에 비가 그치며 청룡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 후 보수공사는 완전하게 준공을 보게 되었다. 이후 김제 고을 백성들은 단야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소복을 한 아낙네들이 연포천 용추에 수없이 모여 들어 진혼제를 올렸다고 한다.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즐거운 벽골제 민속놀이 체험
벽골제 관광지에는 벽골제와 농경문화를 주제로 전시 중인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 소설 아리랑의 자료를 전시하는 이리랑 문학관, 전북미술계의 거목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친 나상목선생의 벽천미술관, 어린이 관람객을 대상으로 하는 농경사주제관 및 체험관으로 구성돼 있다.
이번 설에는 쌀 체험장에서 떡메치기, 가래떡 뽑기, 강정만들기 등 쌀 관련 체험과 한지 열쇠고리 만들기, 한지인형 만들기 등 한지관련 공예품제작, 전통한복입기 체험, 짚풀을 이용한 다양한 공예품 만들기(빗자루, 미니액자 만들기 등)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단, 위탁체험은 설날 당일(10일) 제외 운영되며 직영체험장은 휴관일(12)로 운영되지 않는다. 체험장 사정에 따라 일정이 달라질 수 있어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그 어느 곳 보다 좋은 메타세콰이어길
김제 메타세콰이어길은 죽산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소설 아리랑의 배경이된 장소로 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한 곳이다. 길가를 지키는 커다란 나무군락과 바람 때문에 파도처럼 일렁이는 보리밭을 보며 힐링 할 수 있다.
이 길은 1970년대 초에 조성됐으며 당시에는 가로수로 심어진 메타세콰이어가 지금은 높이 20m가 넘는 거목으로 자라나 아름다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나무와 나무 사이로 하늘과 맞닿아 있는 김제평야를 만나볼 수 있어 한적하게 즐기는 드라이브도 좋지만 잠시 내려 이 일대를 유유자적 거닐어 보는 것도 권한다.
드넓은 들판은 날아다니는 새들부터 사계절 다른 정취를 선보이는 논밭까지 농촌마을의 매력과 지평선의 역사를 느끼기에 제격이다.
메타세콰이어 길은 봄이면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물들어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 할 수 있다. 길 양쪽으로 평야지대여서 일출과 일몰 모두 가능한 곳이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바라보는 방향과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풍경이 변한다는 점이다. 노을로 붉게 물들어 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일몰시간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명승지 지정이 필요한 낙조의 명소 망해사
망해사는 미륵사상의 성지이자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로 금산사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고대사회에 세워진 오랜 사찰인 만큼 창건과 관련된 이야기는 671년 신라 문무왕 때 지어진 고찰이라고도 하며, 642년 부설거사가 창건한 사찰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데, 642년 백제 의자왕 때 부설거사가 세운 것을 당나라 승려 중도법사가 중창하고 이후 조선 선조 때의 이름난 선승 진묵대사가 이곳에서 수행하며 낙서전을 세웠다는 것이 통설이다.
망해사가 위치한 진봉면 심포리는 해발 72m의 진봉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데 현재는 지평선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너른 들판을 자랑하는 만경평야가 펼쳐져 있지만 진봉산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뻘이 펼쳐졌던 섬이었다.
망해사는 부설거사가 창건했지만 안타깝게도 땅이 꺼져서 바다 속으로 잠겨버렸다고 한다. 이후 ‘중도화상’이 중국에서 만경강 하류를 통해 한국으로 오던 중 이곳에 들러 100일간의 기도를 하기 위해 방 두 칸 정도의 조그만 암자를 짓고 망해사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그 후 만경 출신의 진묵대사가 낙서전을 새로 지으며 망해사의 명맥을 다시 이었다고 한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새만금 간척 사업지와 인접한 까닭에 지역의 자연환경과 주민들의 생업에 큰 변화를 겪기도 했다. 그래도 지역 주민들은 정신적 지주였던 망해사를 바라보며 미래의 희망을 꿈꾸고 있다. ‘바다를 바라보는 절’ 망해사는 그 이름 그대로 주민들의 바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바다를 잃은 지역민들은 논일, 밭일을 하면서도 갯벌과 바다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들에게 망해사는 그 기억의 상징이며,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희망이다.
예로부터 관광지로 인식되었던 망해사가 명승지가 되어 예전처럼 외지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활기를 되찾기를 염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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