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누구의 처, 누구누구의 딸, 후처… 죽어서도 이름을 남기지 못한 여성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영화에서 보여줘야 하는 시각적 미학과는 동떨어지더라도 이름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목소리들>을 연출한 지혜원 감독은 지난 2일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이번 영화를 연출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다큐멘터리 영화 <목소리들>은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던 제주 4‧3사건을 여성의 시각으로 영상화한 작품이다. 제주4‧3평화재단이 제작을 지원했고,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부문에 선정돼 월드프리미어로 상영된다.
영화는 제주 4‧3사건의 피해자 구술채록을 20년간 진행해온 연구자 조정희의 뒤를 따른다. 다르지만 같은 서우봉 사건과 토산리 사건을 중심에 두고 왜 젊은 여성이 한날한시에 학살당했는지를 추론해간다.
제주 4‧3사건을 여성의 목소리로 서사화하고, 여성의 기억을 기록화하는 작업을 통해 70여년간 소외되어 온 여성들의 피해와 투쟁이 마침내 드러난다.
이날 지혜원 감독은 영화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지난한 여정이었다고 회상했다.
제주 4‧3사건에 대한 역사적 왜곡과 폄훼가 큰 만큼, 사건 당사자와 가족들을 설득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 감독은 “섬에 계신 어머님들보다는 육지에서 생활하는 자식들이 어르신들의 증언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며 "어머님들께 카메라 앞에서 증언해달라고 부탁하면 전화가 뚝 끊기기도 했고, 촬영 약속을 했다가도 돌연 취소되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여전히 여성들의 침묵이 타의적·강제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작업 과정에서)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제주 4‧3사건 특별법이 지난 2000년에 제정된 후 학계에서는 진상규명을 위한 연구가 이뤄졌다.
하지만 제주 4‧3사건의 진상규명에는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사건 당시 여성에게 벌어진 성폭력과 성고문, 원치 않는 결혼 등 어떠한 것도 '피해'로 간주되지 않고 있다.
감독은 제주 4‧3사건은 지역사가 아닌 우리의 역사라고 강조하며, 이번 다큐가 여성들의 피해를 짚고 넘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어르신 중에 김용녀 어머님이 ‘판사라도 되어서 이 나라를 바로 세우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영화에 나온다. 그 말 직전에 어머님께서 '우리 제주'라는 말을 했다. 표피적으로 공동체적인 의미이지만 어쩐지 그 말이 참 외롭게 느껴졌다"며 "제주 4·3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번 영화를 보신 분들에게 큰 울림이 전해졌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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