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의 2차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 14일 전주에 사는 이지영(25) 씨는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마음 하나로 주말을 반납하고 일찍이 국회로 향했다. 원래 전주 탄핵 집회에 참가할 계획이었으나 국회로 가야 더 큰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어 서울행을 결심했다.
이 씨와 친구 3명은 가방에 평소 좋아하는 아이돌인 NCT와 더보이즈의 응원봉을 먼저 챙겼다. 전날 탄핵을 염원하며 직접 '탄핵'이라는 글자를 오려 응원봉에 붙이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이들을 비롯해 응원봉을 챙겨 온 팬들은 각자 응원봉에 의미를 담고 응꾸(응원봉 꾸미기)에 나섰다.
원래 네모난 NCT 응원봉에는 반사 스티커를 활용해 가장 좋아하는 멤버의 이름을 붙이지만 집회 때만큼은 다 떼고 '탄핵'을 붙였다. 확성기 모양의 더보이즈 응원봉은 탄핵을 염원하는 본인들의 뜻을 널리 널리 알린다는 뜻으로 여겼다.
이 씨는 "1030 여성이라고 하면 정치에 대한 관심이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그 여성들이 주로 관심 갖는 덕질 문화에는 부정적인 시선이 있다. 일단 그런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면서 "탄핵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전날부터 준비해서 서울로 갔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렇듯 같은 마음으로 국회에 모인 이 씨와 친구들을 비롯한 다수의 국민은 형형색색의 응원봉을 흔들며 "윤석열 탄핵"을 외쳤다. 손으로는 응원봉을 흔들고 입으로는 소녀시대의 '다시만난세계', 로제·브루노마스의 'APT' 등 케이팝을 부르면서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를 만들며 '응원봉 민심'을 보여 줬다.
8년 전인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 때 '촛불'이 민주주의를 밝혔다면 이번에는 '응원봉'이 밝힌 것이다.
그동안 정치 집회 하면 엄숙한 분위기가 먼저 떠올랐지만 요즘 집회 분위기는 콘서트장에 가깝게 변화했다. 과거와 비교해 1030 젊은 세대가 몰리면서 집회도 점점 변화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자유와 민주주의가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다.
외신도 이러한 집회 문화 변화에 주목했다.
AP통신은 "케이팝 응원봉이 한국 대통령 탄핵을 촉발한 시위를 장악했다"면서 "전통적으로 콘서트에서 사용하던 응원봉을 들고 거리에 나와 탄핵 찬성 의견을 표명하고 정치 집회의 새로운 흐름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시민들이 시위에 들고나온 응원봉이 기존의 시위 아이템인 촛불을 대체하면서 비폭력과 연대의 상징이 됐다", 블룸버그 통신은 "응원봉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염원하는 집회에서 새 생명을 얻었다. 시위 현장에 흘러나오는 케이팝이 가볍지만은 않다"고 보도했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중반을 지나면서 대학 총학생회도 탈 운동권이 되고 집회 문화나 참가자의 연령대가 바뀌면서 전통적인 민중 가요나 투쟁가가 케이팝으로 대체된 것 같다"면서 "집회 참가자 가운데 20∼30대 여성 비율이 높은데 이들을 공감시키는 데 케이팝만 한 것이 없다. 자극적인 빠른 템포와 비트, 귀를 사로잡는 후렴구가 집회 열기를 끌어올려 현장의 동력을 공급해 주는 측면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응원봉 민심'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전망이다. 집회에 모인 국민들의 1차 목표인 탄핵은 달성된 만큼 2차 목표인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을 위한 집회에서도 응원봉 물결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원봉이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제한적이었을 뿐 과거에도 있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집회가 한창이던 때 김진태 의원(현 강원도지사)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발언을 해 국민들의 원성을 산 바 있다. 당시 '촛불'로 광장을 메운 국민들은 김 의원의 말에 분노해 꺼지지 않는 LED 촛불, 응원봉 등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