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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42) <오통절목> <향약장정> <향약안> <제천향약절목>

이 잡듯이 동학농민군을 단속하라

 

동학농민혁명을 일본군과 연합하여 철저히 무력으로 진압한 정부는 해산한 동학농민군을 철저히 단속하고 사회 기강과 질서를 통제할 목적으로 오가작통법과 향약을 재정비하고 전면적으로 시행하였다. 그 실상을 잘 보여주는 기록물들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이번에 다루는 <오통절목>, <향약장정>, <제천향약절목>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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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통절목(五統節目)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오통절목>은 1894년 12월 완산(完山) 초안국(招安局)에서 목판 인쇄한 것이다. 작성자는 관찰사 겸 위무사로 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이 기록물은 전라관찰사가 전주에서 인쇄, 전라도 각지에 배포한 것으로 보인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소장되어 있다.

<오통절목>을 통해 동학농민군을 색출하도록 한 전라도관찰사는 바로 이도재이다. 전라도관찰사 이도재가 추진한 오각작통법 시행 목적은 비적, 즉, 동학농민군을 토벌해서 양민들을 편안케 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해산한 동학농민군이 귀가하거나 마을로 잠입하였을 경우 일일이 색출하여 처형하기 위해 시행한 것이다.

그를 위해 5가구마다 통수(統首)를 두고 25가구마다 연장(連長)을 두어 서로 검속(檢束)하여 살피도록 하였다. 만약 한 마을의 가구수가 25가구가 안될 경우, 10가구 이하는 합하여 1리로 만들고 10가구 이상은 1연으로 만들도록 하였다. 연장은 해당 마을에서 관아에 보고하여 임명하고, 통수는 연장이 선정하였다. 

5가작통은 모든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되, 만약 작통에 들어가지 않으면 비적의 무리로 간주하여 논죄하도록 하였다. 심지어 빈집 역시 통에 넣되, 집주인이 3개월 동안 돌아오지 않는 집은 연장이 관아에 보고하여 가난하여 집이 없는 주민에게 주도록 하였다. 또한 통을 편제할 때,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주민은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 기존에 살던 집 주인은 어디로 이사를 갔는지 모두 기록하도록 하였다. 심지어 산의 움막 토굴 사찰 등과 같은 곳도 가까운 마을에 소속시키고 똑같이 규찰하도록 하였다.

오가작통을 통해 단속할 대상은 정황과 행적이 의심스러운 자, 비적(동학농민군)의 부적과 주술을 지니거나 외우는 자, 무기나 풍물・깃발 등을 감추거나 버리는 자, 그것을 알고서도 보고하지 않는 자, 수상한 자를 숨겨주는 자, 비적의 우두머리가 숨어 있는 곳을 알고도 보고하지 않는 자, 관아의 명령없이 사적으로 서로 모이는 자, 사적으로 통문을 돌리는 자, 하룻밤 이상을 출타할 때 통수에게 보고하지 않고 출입하는 자 등 매우 광범위하였다. 

오가작통을 통해 해산한 동학농민군을 이 잡듯이 단속함은 물론 다시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촘촘히 마을을 통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통 내에서 한 집이 법을 어기면 나머지 네 집이 똑같이 연대책임을 지도록 하여 상호 감시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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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약장정(鄕約章程)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향약장정>은 <오가절목>과 마찬가지로 1894년 12월에 완산 초안국에서 목판 인쇄한 것이다. 관찰사 겸 위무사 명의로 간행된 것으로 보아, 이것 역시 오가작통법과 함께 향약 시행을 통해 동학농민군을 단속하고 사회를 통제하기 위할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규장각,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향약장정> 내용은 향약 시행 규칙으로, 향약사목을 제시한 뒤 향약 덕목을 나열해 놓았다. 향약 시행 규칙은 모두 13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1읍에는 연장자로 덕망이 있는 자로 도약정(都約正)을 뽑고, 1면에는 약정과 직월 각 1명을 두고 평민 가운데 한 사람을 면장(面掌)을 삼도록 하였다. 면장 외에는 모두 관에 보고하여 지방관이 임명하도록 하여, 사실상 향약이 자치규약으로서의 본래 성격에서 벗어나 관의 향촌 지배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읍과 면에는 각각 회원명부를 두되, 반상을 구분하도록 하였다. 신분 차별을 둔 것이다. 향약 운영은 매년 춘추로 향교에 모여 강약(講約)하였고, 향약 덕목은 전통 그대로 덕업상권, 과실상규, 예속상교, 환난상휼 네 덕목으로 기존의 전통적인 덕목 내용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과실상규 내용을 보면, 최근 동학과 불학(佛學)의 무리들이 기도를 하고 주문을 외우는 등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으니 철저히 규찰하도록 하면서, 만약 어기는 자가 있으면 향약 모임에서 벌을 주도록 하였다. 벌은 엄중한 경우 관에 보고하여 엄히 징계하고, 경미한 경우 5에서 20대의 태형을 가하도록 하였다.

이와 같은 <향약장정>은 전라도관찰사가 전주에서 목판 인쇄하여 전라도 각 지역에 일괄 배포한 것으로 보아, 전라도 전 지역에서 시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전주 북일면에서 시행된 동종의 <향약절목>이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좌목(座目)>에 들어 있음). 향약이 철저히 관 주도로 이루어졌고, 동학농민혁명을 수습하고 동학농민군을 단속하기 위한 사회통제책으로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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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약안(鄕約案)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향약안>은 향약안서, 방수안서(防守案序), 단자, 능주 유생등 상서, 서간문 등이 필사되어 있다. 1895년 초에 능주에 사는 어느 유생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소장되어 있다.

‘향약안서’는 일반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으나, 전라도관찰사가 시행하도록 한 향약이 능주에서도 시행되면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방수안서’ 역시 위정척사를 위해 적당을 방수하겠다는 글이나,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다만, 을미년에 작성된 단자와 능주 유생들의 상서 등은 초토사 앞으로 보낸 것으로, 능주 방수장(防守將) 전 우후 박종규(朴鐘圭)가 수성군을 조직해 장흥 동학농민군 수백명과 광주 동학농민군 50여명을 격퇴하였을 뿐 아니라, 나주에서 패한 동학농민군이 능주에 들어오자 접주 등을 체포해 나주에 압송시킨 공이 있다고 하면서, 포상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또 다른 단자는 향약 시행과정에서 임원 관련 내용이다. 기타 서간문이 필사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향약안>은 실제 능주에서 1895년초 향약 시행과정을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동학농민군이 진압된 이후 향촌사회의 움직임을 엿볼 수 있는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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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향약절목(堤川鄕約節目)  / 서울대 규장각 제공

<제천향약절목>은 충북 제천에서 시행하였던 향약절목이다. 작성시기는 1894년 6월이며 제천현감 관인이 찍혀 있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1905년 3월 제천향약 임원도 메모되어 있다.

내용은 일반 향약절목처럼 향약서, 향약범례가 나열되어 있으며 제천 8개면을 대상으로 시행되었다. 임원은 도약장, 면약장, 동약장, 통수 등으로 구성하며 관의 통제를 받도록 하였다. 

특이한 점은 향약과 오각작통법이 결합되어 있는 점이다. 오각작통을 통해 향촌사회를 촘촘히 감시하도록 하였다. 만약 향약을 준수하지 않으면 마을이나 면약장이 다스리되, 중한 경우에는 관에 보고하여 처벌하도록 하였다. 수상한 자는 절대로 마을에 들이지 말고 그 성명을 관에 보고하도록 하였다. 특히 각 통마다 밀통군(密通軍) 5명씩을 뽑아 윤번으로 마을을 단속하도록 한 점이다. 단속 대상 가운데는 적당(賊黨)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당시 정황을 놓고 볼 때 사실상 동학농민군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학농민군 예방 차원에서 제천향약이 시행된 것으로 보이나, 그 즉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제천지역은 6월경부터 들고일어난 동학농민군이 7-9월 거의 장악한 상태였으나, 일본군이 충주지역으로 진입한 10월부터는 상황이 역전되었다. 제천 민보군도 조직되어 동학농민군의 근거지를 초토화하는 한편, 전봉준과 함께 재판장에서 사형을 받은 성두한의 아버지, 아내, 아들을 차례로 체포하여 제천관아에 수감시키기도 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제천향약은 비록 즉시 효과를 보지 못하였을지라도 제천 민보군 활동의 기반이 되었을 뿐 아니라, 동학농민군을 진압한 이후 제천 향촌사회를 통제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작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김양식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동학농민혁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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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식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동학농민혁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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