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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정치낭인과 수능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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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학년도 수능 지원자는 55만4174명이다. 총 응시자수로는 2019학년도 이후 7년 만에 가장 많은 규모다. 출산율이 이례적으로 높았던 ‘황금돼지띠’해인 2007년생이 고3으로 수능을 보는데다,  ‘n수생’ 응시자도 많아 대입 경쟁률이 더욱 치열하다. 삶의 긴 여정에서 보면 대입은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고, AI 시대에는 구태여 대학을 꼭 졸업해야 하는가 의문이 들만큼 세상이 급변하고 있지만, 어쨋든 수능은 삶의 커다란 변곡점임엔 틀림이 없다. 유달리 성공과 출세를 중시하는 우리 풍토를 너무나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2004년 초대형 부정 수능이 있었다. 이후 수능에서는 모든 전자기기 반입이 금지되고 개인 필기구가 아닌 획일적인 ‘수능 샤프’가 지급됐다. 전국적으로 부정행위자 363명이 적발됐다. 당시 1심 법원은 “우리 사회에 팽배한 학력 지상주의가 어린 학생들을 범행으로 내몰았다”고 판시해 눈길을 끌었다. 조사를 거쳐 무효 처리된 수험생은 모두 314명이었으며 무더기로 입학 취소 처분을 받았다. 전국적인 화두가 됐던 일대 사건이었으나 사실 시험에서의 부정행위 역사는 엄청나게 깊다. 특히 조선시대 한 집안의 성패가 달린 과거시험에 등장한 부정행위 수법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정된 관직을 둘러싼 과열 경쟁은 결국 목숨을 건 당파 싸움의 가장 근본적 원인이다. 흥미로운 것은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인 1593년 왕세자였던 광해가 분조하여 전주에서 과거를 실시한 적이 있다. 숱한 부정행위가 있었으나 과거는 전쟁때도 치러야할 만큼 국정의 중대사였다. 그해  문과에서 9인, 무과에서 1000 여 인을 뽑았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전한다. 전주시는 이를 기념해 지난 2017년부터 ‘1593 전주별시(別試)’ 재현행사를 열고 있다. 조선후기로 넘어가면서 과거에 합격하고도 관직을 받지 못하는 낭인들은 수없이 넘쳐났다. 세도가의 집안이거나 그 뒷배경을 등에 업지 못하면 평생 한량으로 처량한 신세를 보내야 했다. 사정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낭인(浪人)은 모시던 주군이 죽거나 영주로부터 쫓겨나서 영지나 봉록이 없어 방랑하며 일정한 수입이 없게 된 사무라이를 말한다. 뚜렷한 수입이 없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던 낭인들의 욕구가 분출하면서 메이지 덴노를 정점으로 결국 전범국가 일제를 만들었다는 분석은 일리가 있다. 내년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정가에서도 숱한 정치 낭인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다. 저마다 그럴듯한 명분과 비전을 내세우고 있으나 결국 철저히 이해관계에 따라 캠프를 전전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음지에서 냉대받던 이들은 화려했던 과거를 꿈꾸고, 양지에서 놀던 이들은 혹여 음지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해서 캠프를 기웃거리고 있다. 수능날 아침 떠올려보는 정치낭인들의 모습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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