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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초남이성지의 뜻밖 선물, 완주 국가유산 정책 전환의 출발점

이종훈 완주군수 대행

 역사는 때로 예상치 못한 곳에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난 2021년 3월, 이서면 남계리(초남이성지) 바우배기에서 발견된 ‘백자사발 지석’과 순교자들의 유해는 완주를 넘어 한국 천주교회사와 근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일대 사건이었다. 230여 년간 어둠 속에 묻혀있던 진실이 세상에 드러나며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는 명확했다. 바로 완주가 한국 신앙공동체의 기원이자, 인간 존엄의 가치를 실천한 근대 사상의 발상지라는 사실이다.

 남계리 유적은 한국 천주교 첫 순교자인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 그리고 윤지헌(프란치스코)의 숨결이 깃든 곳이다. 이들은 신해·신유박해라는 거친 풍랑 속에서도 평등과 사랑이라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던졌다. 특히 유해와 함께 발견된 ‘백자사발 지석’은 이들의 신원을 실증적으로 증명한 결정적 근거로, 완주 유산이 지닌 고고학적·역사적 신뢰도를 국가적 수준으로 격상시켰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특정 종교의 테두리를 넘어 조선 후기 사회의 역동적인 변화를 증명하는 ‘시대 변화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호남의 사도 유항검은 자신의 재력과 지위를 내려놓고 초남이 신앙공동체를 일구었다. 서슬 퍼런 박해 속에서도 순교자들의 유해를 이곳에 안치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음의 공포를 넘어선 강력한 연대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는 유교적 신분 질서가 공고하던 시대에 완주를 중심으로 ‘모든 이는 평등하다’는 보편적 인류애가 실천되었음을 보여주는 소중한 증거이다.

 현재 완주 남계리 유적은 국가 사적 지정의 막바지 절차를 밟고 있다. 아울러 신앙공동체의 확산을 보여주는 수청공소 또한 도 등록유산 지정을 준비 중이다. 이는 완주가 축적해 온 역사적 가치가 이제 공적인 정책 관리 체계로 편입되는 중요한 전환점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이제 완주군의 정책 초점은 개별 유산의 보존을 넘어, 이를 하나의 유기적인 체계로 연결하는 ‘점-선-면’의 확장에 두어야 한다. 개별 유적을 점 단위로 인식하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역사적 서사가 흐르는 권역 단위의 관리 체계로 나아가는 위함이다. 이러한 전략적 접근은 향후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기반 마련은 물론, 정부의 국가유산 정책 방향과도 궤를 같이한다.

특히 다가오는 2027년은 완주 역사에 기록될 전환기가 될 것이다. ‘서울 세계청년대회(WYD)’와 연계하여 개최되는 지역대회에는 전 세계 젊은이들이 우리 완주를 찾을 예정이며, 남계리 유적은 그 중심에서 보편적 가치를 전파하는 세계적 성지로 거듭날 것이다.  다만 이를 단기적 행사로 접근하기보다는, 기존 정책과 연계하여 유산 활용의 폭을 확장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프로그램 운영과 콘텐츠 개발, 주민 참여 기반을 단계적으로 고도화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문화유산 정책에서 지정은 출발점이다. 앞으로는 보존을 기반으로 하되, 활용과 연계를 통해 유산의 가치를 확장해 가야 하며, 과거 완주군의 초기 신앙공동체가 보여준 연대와 헌신의 가치를 오늘날 지역사회 발전과 공동체 통합의 자산으로 재해석하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나아가 완주군은 축적된 정책 경험을 토대로, 지역 내 불교·기독교·원불교 등 각 종교에 속하는 개별 역사 자원을 상호 연계된 역사 문화 자산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완주군 전체가 지닌 다층적 종교문화의 가치를 지역 정체성과 결합된 대표 역사 브랜드로 발전시켜 나가고자 한다. 이를 통해 유산 간 균형 있는 보존과 활용을 도모하는 한편,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지속 가능한 문화유산 정책을 구현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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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남이성지 #윤지충 #천주교회사 #서울 세계청년대회 #국가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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