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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찍 자고 3시쯤 일어난다. 일찍 일어나면 제일 먼저 신문을 본다. 나는 세 개의 종이신문을 본다. 지역신문 하나와 서울에서 나오는 신문 두 개를 본다. 우리 지역이슈나 각 지역 중점 사업과 지자체장들의 행동 범위를 체크한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두 개의 신문들을 사설까지 챙겨 읽는다. 칼럼이나 시론은 중요해서 거의 다 읽고 인터뷰 기사를 중요하게 챙겨 읽는다. 세 개의 신문을 다 읽고 나면 인터넷으로 들어가 중앙지들과 부산에서 발행되는 신문을 검색해서 헤드라인 기사와 칼럼, 사설을 챙기고 인터뷰 기사와 정치면을 반드시 읽는다. 연예면도 챙기고, 모 신문에 연재되는 시를 찾아 읽는다. 그리고 인터넷 신문 중에서 두 개의 신문을 읽는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한 시간이 넘게 지난다. 인터뷰 기사 중에서 나는 오래 전부터 안철수 윤여준 김종인씨의 인터뷰를 꼭 찾아 읽었다. 인터넷 신문을 찾아 읽고, 네이버에 들어가 오늘의 철학, 그림, 사진, 문학, 인물 등 연재되는 기사들을 읽는다. 이렇게 신문을 읽다 보면 두 시간은 족히 넘게 걸린다. 균형 감각이 있는 칼럼이나 인터뷰 기사들은 다운을 받아 시 한편과 함께 아들·딸에게 보낸다. 토요일이면 신문들의 섹션을 찾아 인터뷰 기사나 칼럼을 찾아 읽는다. 중국에 대한 기획기사나 인도에 대한 경제 기사들을 탐독한다. 교육에 대한 기획기사들도 꼭 챙긴다. 현실을 놓치면 갈 방향을 찾지 못하고 사람들은 헛소리를 하거나 헛짓을 한다. 시대정신은 시대속에서 태어난다. 현실에 대한 인식은 피와 살과 뼈대가 된다. 이렇게 신문과 함께 아침을 산 지가 몇 십 년이다. 나의 공부는 신문이다. 신문은 그날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종합 분석 해놓은 살아 있는 지식의 보고다. 펄펄 살아 있는 신문 속의 현실은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과 같이 싱그럽다. 그게 쌓이면 보약이 된다. 큰 힘이 되어 현실에 충실하고 땅을 굳게 딛게 된다. 흔들리지 않은 현실에 대한 인식 위에 학문이든 정치든 교육이든 예술이든 뿌리를 내려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면 폐쇄적이고, 독단적이고, 지역에 갇히게 된다. 우물 밖을 모르는 개구리가 된다. 그렇게 새벽을 보내다 보면 9시가 된다. 운동을 하고 강연을 간다. 강연일수는 학교 출근일과 거의 같다. 전국 곳곳의 지자체와 초중고, 대학, 도서관, 공무원들과 선생님들의 강연, 기업 강의를 간다. 그 곳들이 내 공부의 살벌한 현실이고 긴장된 현장이다. 세상이 다 내 책이다. 본지 편집위원
미국 어느 대학에 갔을 때였다. 우리나라 유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미국에 와서 공부 하는데, 어려운 게 뭐냐고 물었다. 영어가 어렵다고 했다. 미국학생들이 2시간 공부하면 한국 학생들은 4시간 공부해야 따라 간다고 했다. 영어가 어려운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런데 영어보다 더 어려운 게 있다고 했다. 토론에 서툴다고 했다. 많은 학과의 공부가 토론수업인데, 토론을 못해 수업이 힘들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어려운 게 에세이라고들 했다. 과제는 거의가 글쓰기 인데, 글쓰기가 힘들다고 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을 말로 하는 것이 토론이고 말을 쓰면 글이다. 왜 우리 학생들이 토론과 글쓰기에 서툴까. 우리학생들은 자기의 생각과 주장과 의견을 키우는 공부를 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 온 세상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그들이 살아 갈 세상을 스스로 창조하도록 하는 게 교육이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은 학생들에게 정답을 가르쳐 주고 정답을 외우게 해서 정답을 쓰게 하는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을 해 왔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안다는 말처럼 생각을 키우고 넓혀서 생각을 조직하고 표현하는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인간 교육이 아닌, 어른들의 생각대로 살기를 강요하는 정답이 하나 뿐인 ‘단답형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의 결과물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무섭게 폭발하고 있다. 아이들 개개인의 생각을 인정해주고 그에 걸맞는 평가를 통해 그 아이의 생각을 귀하고 소중하게 가꾸어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곳이 학교여야 한다. 학교와 가정과 사회가 아이들에게 행복의 맛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행복을 찾게 되고, 찾다가 없으면 만들어 낸다. 생각을 막고 있는 어른들에 대한 아이들의 불만이 머리 꼭대기까지 가득 차 있다. 아이들의 생각을 무시해가면서 어른들은 매를 들어야 하느니 마느니, 곪은 데 딴 데 두고 딴 소리만 하고 있다. 지식이 점수가 되는 교육이 아니라 지식이 인격이 되는 인성교육이 절실할 때다. 교육을 통해 자기를 고치고 다듬고 가꾸고 표현하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영혼을 키워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살게 해야 한다. 아이들이라고 보고 듣는 생각하고, 하고 싶은 말이 왜 없을까? 잘못된 세상에 대드는 아이들의 태도가 비뚤어졌을 뿐이라는 것을 어른들은 왜 모를까. 항변의 본질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받아들여 고쳐가야 한다. 아이들의 일상을 어떻게 제재할까만을 고민하는 어른들의 뻔뻔함이 아이들을 분노케 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다. 본지 편집위원
종편 4개사의 방송이 시작되었다. 개국하는 방송국이 4개사나 되다 보니, 채널만 이리저리 돌리다가 하루가 갔다. 잡힌 화면 속 사람들이 어쩐지 ‘구식’ 냄새가 났다.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소설가 공지영의 인순이 김연아 종편 출현 언급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트위터들을 뜨겁게 달구었다. 늘 그렇듯 트위터들은 양편으로 발 빠르게 갈라졌다. 그러나 어느 쪽도 사람들은 편안하게 하지는 못했다. 23년 전 야쿠자 모임에 참석했다는 강호동을 다룬 모방송사의 방송 태도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았다. 그 일에 대한 사람들의 왈가왈부는 사람들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했다. 한 나라에 무려 4개나 되는 새로운 방송이 개국 했는데도 그에 대한 축하와 그리고 기대와 흥분과 축제 분위기는 없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종편 개국 속에서도 안철수 교수의 강남 총선 출마설과 신당 창당에 대한 소설을 쓰던 신문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가 그 두 가지 설에 대해 일축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이런 저런 추측기사들이 아무 쓸모가 없어진 쓰레기가 돼 버렸다. 한·미 FTA 대한 판사들의 반대 발언은 신선했다. 급기야 대법원장이 나서 단속을 했지만, 그리 크게 설득력을 얻지 못한 것 같다. 매서운 겨울 바람 속에서도 한·미 FTA반대 시위는 나라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권력의 총체적인 부실함이 드러나 곳곳에서 물이 세는 느낌이다. 지난 10월26일 서울 시장 선거 때 선관위 방해 디도스 공격 실체가 드러나면서 사람들은 경악하고 있다.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 비서가 단독으로 그런 큰 일을 저질렀다는 게 한나라당측의 주장이다. 안철수 현상으로 가뜩이나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 우왕 좌왕 하던 한나라당은 불난 자기 집에 스스로 부채질을 한 꼴이 되었다. 이 와중에 나꼼수 공연 운집 인파, 개그맨 최효종 고소 사건은 수선스럽기만 하고 우울한 우리들의 마음을 녹여주는 고소한 일이었다. 염려스러운 것은 이런 저런 나라의 일들이 사람들의 격을 높이고 사람다운 권위와 위엄을 갖추게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쫄게 하고 누추하게 한다는 것이다. 분단이 만들어 놓은 낡은 이념의 틀 속에 갇힌 이 지겨운 싸움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의 비겁하고 비열하고 치졸한 싸움을 그대로 보고 자란다. 모두들 양날이 선 칼들을 쥐고 아슬아슬하게 하루를 산다. 어쩐지 찝찝한 일들이 많은 지난 주였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에 대고 밥 먹으라고 아이를 부르는 어머니의 한가로운 목소리가 들리는 해질녘이 없는 땅이다. 그래도 우리는 하루하루 잘 살아냈다. 또 살자.본지 편집위원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00 고등학교 1학년 신수정이에요. 사실 선생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책을 읽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아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이 쑥스러워요. 그렇지만 용기를 내어 써 봅니다. 한 달 전 선생님께서 우리 학교로 강연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의 책을 읽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서 말씀 하신 부분에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침 7시부터 저녁 12시까지 토요일도 일요일도 없이 공부를 하는 제 일상에 많은 회의를 느껴서 일까요. 우리 학교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어서 나는 이 학교를 오게 되었지만 그러나 우리 학교도 인문계 고등학교여서 한 달에 두세 번 시험을 쳐 줄 세우기 하는 현실이 너무 싫어요. 선생님들도 우리들에게 공부를 시키시면서 너희들이 불쌍하다고 하십니다. 지난번 시험에서 제가 1등을 하였습니다. 밤을 새워 바득바득 공부를 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왜일까요. 1등만 하면 세상에 바랄 것이 없겠다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부끄럽게도 저는 1등이 가장 힘든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 떨어질 것 만 같은 위기감이 덮쳐왔지요.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두가 괴로운 이런 공부를 왜 해야 할까?’ 1등은 1등대로 꼴찌는 꼴찌대로 서러운, 이런 공부를 왜 해야 할까요. 선생님, 설마 선생님께서도 “그야 당연하지 좋은 대학, 명문대학 가기위해서잖아.”라고 하시지는 않겠지요. 저는 이 말을 수 백 번도 더 들은 것 같아요. 선생님 저는 자유롭게 공부하고 싶어요. 저는 공부하는 자체는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특히 영어와 한국사 공부할 때는 누가 불러도 모를 만큼 열심히 해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공부를 자유롭게 더 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 받고 나중에 우리나라 교육을 이끌어 나갈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저처럼 자유로운 공부에 굶주린 학생들을 돕고 선생님 같이 생각하시는 전국의 많은 선생님들도 돕고 싶어요. 선생님의 글에는 진심이 묻어납니다. 정말 아이들을 사랑하시는 것이 느껴져요. 우리들의 획일화된 교육이 염증을 느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선생님을 만난다는 것이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두근거려요. (정말이어요.) 저도 선생님처럼 아이들을 아끼고 위하는 진정한 교육자가 꼭 될 거예요. 내일 아니, 오늘 조금 있다 뵈요.’(2011년 11월9일 고요한 새벽 2시 수정 올림)이글은 지난 토요일 충북 문경의 어느 고등학교 강연을 갔을 때 강연이 끝나고 여러 학생들이 내게 건네 준 편지 중에서 한 여학생의 편지를 옮겼다. 1학년인데 똑똑도 하다. /본지 편집위원
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평생 초등학교 선생을 하며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 꿈에도 선생을 상상해 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내가 졸업한 모교의 초등학교 선생이 되었다. 교사가 한 학교에서 5년 이상을 근무하지 못하기 때문에 덕치초등학교에서 5년 있다가 우리 집에서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이웃 초등학교에 가서 1년을 있다가 얼른 덕치 초등학교로 다시 와서 5년을 있다가 5년이 되면 이웃에 있는 다른 학교에 가서 1년을 있다가 얼른 덕치초등학교로 와서 5년을 지냈다.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며 선생을 하다가 여섯 번째로 덕치초등학교로 와서 선생을 그만두었다.나는 선생이 되어서야 책을 보기 시작했다. 내 인생의 시작은 스물 둘이었다. 나는 헌책을 지게로 사다가 읽었다. 홀로 문학 공부를 한지 13년 만에 시인이 되었다. 나는 시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책을 사서 읽다보니 생각이 너무 많아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내가 시를 쓰고 있어서 나도 놀랐다. 나는 정말로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일찍 선생이 되었기 때문에 선생 이외의 것이 되겠다는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다. ‘무엇이 되어 어디서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늘 중요했다. 나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대학 갈 생각을 안했다. 대학을 가면 초등학교 선생 외에 다른 욕심이 생길 것 같아서였다. 나는 지금이 좋다. 이따금 사람들이 “아이들이 그립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한다. “아니요. 나는 지금이 좋아요.” 나는 지금 강연하고, 글을 쓰고, 책도 읽고, 그림을 보며, 영화랑 놀면서 내 맘대로 산다. 강연도, 글을 쓰는 것도 내가 하기 싫으면 절대 안한다. 나는 지금도 무엇이 되고 싶은 게 없다. 사람들이 나를 ‘섬진강 지킴이’라고 한다. 나는 펄펄 뛴다. 내가 무엇을 지킬수 있단 말인가. 어떤 이는 나더러 환경운동을 한다고 한다. 나는 또 펄펄 뛴다. 나는 근본주의자도, 생태주의자도 아니다. 나는 나를 고집하거나 절대 무엇을 주장하거나 그 누구의 삶도 강요하거나 강제하지 않는다. 누가 누구에게 그럴 힘을 주었는가. 누가 저들더러 그러라고 했는가. 나는 내 삶을 내가 산다. 수능이 끝났다. 냉정하라. 이제 선택하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골라라. 좋아 해야 열심히 하게 되고 열심히 하면 잘한다. 그러면 사회에 나가 내 몫이 생긴다. 늦고 더디고 지금 당장 힘들더라도 자기가 좋아 하는 일을 찾아라. 자기가 좋아 하는 일을 평생하며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사느냐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덫’이 될 수도 있다. /본지 편집위원
농촌에 가을비 오면 정말 할 일이 없다. 봄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모종 할일이 많다. 여름비를 맞으면서도 모내기를 한다. 소꼴을 벤다. 그러나 가을비 오면 할 일이 없다. 이렇게 가을비가 오다 말다 하는 날 할 일은 딱 두 가지, 마을에 있는 샘물을 품어 미꾸라지를 잡는 일과 산골 다랑이 빈 논으로 가제를 잡으러 가는 일이었다. 마을마다 공동 우물이 두서 너 개씩 있었다. 먹는 우물도 있고, 허드레 물로 쓰는 우물도 있었다. 세수를 하거나, 체소를 씻거나 하는 공동 우물이 우리 동네에는 두 군데 있었다. 가을이 되면 텃논에 살던 미꾸라지들이 겨울을 지내기 위해 이 샘으로 모여들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가을 비 부슬거리는 날을 잡아 미꾸라지를 잡았다. 우물물을 품어 미꾸라지도 잡고 그동안 우물물을 사용하며 이렇게 저렇게 쌓인 우물속의 돌멩이나 쓰레기들을 치웠다. 도랑치고 가제 잡는 식이었다. 우물속의 미꾸라지는 크기도 했고, 또 많기도 해서 새로 나온 시래기를 넣고 추어탕을 끊이면 동네잔치가 되었다. 가을 비 오는 날 딱 안성맞춤인 동네 작은 잔치요 축제였다. 커다란 샘 물 물구멍 속에서 물을 따라 누런 미꾸라지들은 꾸물꾸물 기어 나오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어른들이 그렇게 샘을 품어 미꾸라지를 잡는 동안 우리들은 주전자를 들고 깊은 산골 빈 논으로 가제를 잡으러 갔다. 아니 주우러 갔다. 비가 오면 산골 빈 논다랑이에 물이 고이기 마련이다. 산골 다랑이 논들은 뒷 논두렁에 작은 도랑들을 만들어 놓았다. 도랑 물 속에는 바위들도 많고 가제들이 살만한 작은 물구멍들이 많았다. 비가 오면 가제들이 자기들이 살던 구멍을 나와 논바닥으로 기어다녔다. 정말 많기도 했다. 빈 논으로 나온 가제들을 다슬기를 줍듯 그냥 주워 담으면 되었다. 잠깐이면 금새 주전자가 그득하였다. 어쩔 때는 커다란 남생이들이 엉금엄금 기어 다니기도 했다. 가제를 잡아다가 애호박을 넣고 지져 놓으면, 푸른색 애호박과 붉게 익은 가제는 정말 색깔이 기막히게 어울렸다. 먹지 않고 보기만 해도 그 빛깔의 조화에 탄성이 절로 났다.가제와 미꾸라지는 샘이나 논에서 없어서는 안 될 생태계의 주인공들이다. 작은 우물 속에도 반듯이 가제들이 살았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샘에서 사는 가제를 잡으면 안 된다고 했다. 가제가 샘의 물구멍이 막히지 않게 늘 뚫어 주기 때문이었다. 자연의 생태와 순환을 돕던 것들이 사라지고 깊숙이 숨어버렸다. 마을이 심심하다. 본지 편집위원
[트민기] "우리 같이 장볼래요?"⋯실속 소비 '소분 모임'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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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강한 우리 마을] ⑥천왕봉 품은 정겨움과 치유의 마을 '솔바람'
전통정원의 재해석 - 11. 싱가포르 (하) 보타닉 가든
[글Pic] 6월 민주항쟁, 30년 전 그날은…
[전북의 기후천사] 지속가능한 에너지전환으로 1.5도씩 상승하는 지구 온도 낮춘다
[전북의 기후천사] 기후 위기와 생태 이슈에 다가서는 예술적 실험들
[우리 땅에 새겨 있는 역사의 흔적]화암사에 피어난 꽃
“가치관 안에서 이념상 추구…사회적 책무 지켜나갈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