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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문화로 경제페달 밟다 - 5. 일본 나오시마(하)

일본 나오시마 섬을 현대미술의 명소로 만든 것은 예술을 사랑하는 한 기업인의 집념과 세계적인 건축가의 철학, 지역 주민들의 이해와 협조였다. 자치단체가 기업 유치를 통한 경제 활성화에만 열을 올리는 사이 문화와 예술은 구색 맞추기 용으로 밀려나고 있으나, 나오시마는 그런 사례와는 거리가 멀었다. 베네세 그룹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과 건축가 안도 타다오는 토사와 광물 채취로 황폐된 나오시마를 '문화'라는 산소호흡기를 달아 소생시켰다. 여기에 주민들의 적극성까지 더해지면서 전 세계 애호가들의 '문화의 성지'가 됐다.△ 3명의 세계적 작가만을 위한 미술관지중미술관(혹은 지추미술관)은 클로드 모네, 월터 드 마리아, 제임스 터렐 등 세계적 작가 3명의 작품만을 위한 세계 최초의 지하 미술관이다. '땅속에 있다'(地中)는 이름처럼 능선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이 거대한 미술관을 지하에 파묻은 발상이 놀랍다. 작품은 9점에 불과하지만 또 전부는 아니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 자체가 이미 거대한 작품이기 때문이다.안도 타다오는 콘크리트 재질이 건물 바깥 면에 드러나도록 하는 '노출 콘크리트'로 공간을 재해석한 것. 자연스럽게 건물 안으로 스며든 빛에 걸린 선(線)이 곳곳에 드리워지면 인간과 자연의 일체감을 느끼게 해준다. 먼저 '빛의 마술사'라 불리는 제임스 터렐의 시대별 빛 연작을 만났다. '오픈 필드'에서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형광색 파란 스크린이 보이는 계단에 올랐다. 문득 뒤를 돌아봤을 때 나타난 건 네온 사이로 비추는 직사각형 빛이다. 그 순간 "와" 하는 탄성이 나왔다. 또 다른 작품'오픈 스카이'에서는 관람객들이 대리석 벤치에 앉아 천장의 대형 유리창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면서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한다. 모네의 수련 그림 5점이 걸려 있는 '모네의 방'은 모네에 대한 경배에 가깝다. 신발이 아닌 실내화로 갈아 신어야 들어갈 수 있는 이 방은 온통 하얀색이다. 천장을 통해 햇빛이 스며 들고 전시장 바닥에 주사위처럼 생긴 백색 대리석 70만 개가 촘촘히 박혀 있다.'카라라 비앙카'라는 이 하얀 대리석은 미켈란젤로가 조각에 사용한 것과 같은 재질이다. 조명기구 없이도 천장에 들어온 햇빛과 벽과 바닥에서 반사된 빛을 통해 모네의 수련을 감상할 수 있다. 날씨에 따라 모네의 작품이 달리 보인다는 점은 매력적이다.월터 드 마리아의 '타임, 타임리스, 노타임'에도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극장식 계단에 14t이나 되는 까만 둥근 화강암이 가운데 버티고 있고 양 옆엔 27개의 목재 조형물이 벽면을 장식한다. 천장 일부에 유리벽이 덮여 있어 햇빛에 따라 대리석 공이 전혀 다른 이미지를 연출했다. △ 기업예술가주민이 일군 '아트 하우스' 혼무라 지역의 버려진 집 7채를 미술작품으로 개조한 '이에 프로젝트'도 흥미로웠다. 주민들과 예술가들이 협업을 통해 고택을 현대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특히 '미나미데라'는 꼭 들러야 할 곳 중 하나다. 안도 타다오가 개조한 이 허름한 절에 제임스 터렐은 빛을 숨겨놓았다. 미나미데라 벽에 손을 대고 내부로 걸어가다 보면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암흑을 경험하게 된다. 앞뒷사람의 음성에 의존해 발을 옮기다가 겨우 의자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게 되더라도 캄캄한 건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눈이 암흑에 적응하는 시간은 10분 안팎. 뒤늦게 가느다란 푸른 빛이 천천히 드러났다. 각자의 내면에 자리 잡은 어둡고 캄캄한 '길'을 마주하다 희망을 발견한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에 프로젝트 1호 작품인 마야지마 타츠오의 '카도야'는 주민들의 참여로 빛을 발한 작품이다. 타스오 미야지마의 '시간의 바다 98'는 캄캄한 방에 일부 공간에 물을 채워 1부터 9까지의 디지털 숫자를 띄워 놓은 것. 5세부터 95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주민들이 띄워놓은 디지털 숫자가 깜빡거리며 불을 밝히고 있었다. 각자의 처지에 따라 전혀 달리 보이는 상황으로 받아들였다. 유명 화가가 돌을 갈아 그린 전통화와 소금창고로 쓰던 곳에 아크릴로 그린 현대화를 건 '이시바시'도 인상적이다. 천정 맞닿은 곳부터 바닥까지 그려진 폭포수를 보고 있노라면 벽을 뚫고 나올 것만 같다. 요시히로 수다의 '고카이쇼'는 본래 '기원'으로 바둑을 두는 장소였다. 스다 요시히로는 뜰에는 동백나무를 심고 다다미 방 안에는 만든 동백꽃 조각 등을 두어 진짜와 가짜, 허와 실이 대칭되도록 구성했다. △ 베네세하우스이우환미술관 등도 '문화성지'안도 타다오는 평소 "지중 미술관이 닫힌 공간에서 작품과 건축이 서로 긴장관계를 형성하는 정적인 공간이라면, 베네세하우스는 자연과 건축이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소통하는 동적인 공간"이라고 했다. 호텔과 미술관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베네세 하우스'는 세토내해를 캔버스 삼아 이국적인 풍광을 선물한다. 건물 안팎에는 영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생존 작가로 꼽히는 데이비드 호크니를 비롯해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자인 브루스 나우먼과 잭슨 폴록, 백남준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베네세하우스, 지중미술관과 명소로 꼽히는 이우환미술관 역시 한국인들에게 자부심과 부끄러움이 함께 들게 하는 곳이다. 세계적인 작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우환의 미술관을 일본인이 제안했다는 점에서다. 안도 타다오의 설계로 '만남의 방', '침묵의 방', '그림자 방', '명상의 방'으로 구성된 이곳은 20여 점의 회화와 조각 등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파노라마처럼 펼쳐놓았다. "미술관이 본다는 것을 넘어선 생과 사가 결부된 우주적 공간이길 원했다"는 이우환의 평소 철학이 반영된 공간으로 해석됐다. 기자단은 외국 지인들에게 혼무라 지역을 안내하는 이우환을 만나는 행운도 누렸다. 예술이라는 긴 방랑에 심취한 작가의도전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듯 했다. (끝)※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이화정
  • 2013.11.01 23:02

도시, 문화로 경제페달 밟다 - 4. 일본 나오시마 (상)

일본 가가와현 다카마쓰항의 북쪽에 위치한 섬 나오시마(直島). 나오시마행에 몸을 실은 여객선은 관광객들로 가득 찼다. 야트막한 해안선을 배경으로 올망졸망한 섬들과 푸른 바닷길이 빚어내는 세토내해의 절경은 '아시아의 지중해'라는 평가가 과장으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50여 분 항해 끝에 도착한 나오시마 미야노우라항 부둣가에 일본의 세계적인 미술가 쿠사마 야요이의 설치미술'빨간 호박'이 눈에 띄었다. 야요이는 한때 루이비통이 데려가기 위해 대단히 공들였던 예술가이기도 하다. 나오시마 순례는 그렇게 시작됐다.△ 20년 만에 현대미술 메카로 거듭나인구 3600여 명에 불과한 나오시마는 자전거를 타고 2시간이면 돌 수 있을 만큼 아담한 섬이다. 연간 30만 명이 넘게 찾아오는 숨겨진 명소지만 20년 전만 해도 근대화 과정에서 수탈됐다가 버려진 섬에 가까웠다. 미쓰비시가 1917년 이곳에 중공업 단지를 만든 뒤 70여년 간 구리 제련소에서 나오는 연기와 폐기물 때문이다. 1960년대 8000여 명이던 인구는 현재 3200여명에 불과하다. 인구 감소세는 점차 완만해지고 있다. 나오시마의 역사를 뒤바꾼 것은 일본의 대표적인 출판교육 기업인 베네세그룹(회장 후쿠타케 소이치로)이다. 베네세그룹은 1980년대 이곳에 어린이 국제 캠프장을 계획했었으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와의 교우로 인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업이 추진됐다. 안도가 설계한 베네세하우스 미술관(1992), 지중(地中) 미술관(2004), 이우환 미술관(2010) 등이 섬에 들어앉혔고, 잭슨 폴록앤디 워홀 등 현대미술 거장의 작품들로 채워졌다. 주민들이 떠난 혼무라 지역의 전통 가옥 7채를 건축가작가 등에게 의뢰해 현대미술공간으로 바꾼 '이에 프로젝트'도 뒤따랐다. 1989년부터 시작된 '나오시마 프로젝트'는 섬 마을의 자연과 예술이 경계를 허물며 매혹적 융합을 이뤄냈다.베네세그룹이 현재까지 나오시마에 투자한 액수는 6000억 원이 넘는다. 그럼에도 30년 동안 더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베네세그룹 의지는 오지에 가까웠던 나오시마를 가가와현 35개 지자체 중 소득 1위로 올라서게 만들었다. 20년 전만 해도 잠잘 곳이 한두 군데에 그쳤으나 최근엔 민박집과 음식점이 30여 곳 정도까지 늘어났다. 하마다 타카오 나오시마 촌장은 "그러나 예술 프로젝트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던 주민들도 이제는 나오시마 주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점이 가장 값진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12개 섬 손잡고 3년마다 국제예술제나오시마의 효과는 인근 섬으로도 확산됐다. 한센병 환자들의 요양섬으로 쓰였던 오시마, 일본 최악의 산업폐기물 투기 사건이 발생했던 데시마, 제련소가 폐쇄되며 쇠락한 이누지마 등에서도 '이에 프로젝트'와 비슷한 시도가 진행되거나 미술관으로 바꾸는 작업 등이 의욕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베네세그룹이 2010년 처음 시작한 세토우치 국제예술제는 세토내해에 있는 여러 섬의 자연과 예술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예술제다. 올해는 나오시마를 중심으로 데시마오시마 등 12개 섬에서 봄여름가을 세 차례로 나눠 열리고 있다. 첫 회였던 2010년 관람객이 무려 94만 명이 다녀가면서 예술제는 올해 더 확장됐다. 영구 설치를 목적으로 2010년부터 집적된 작품을 비롯해 지중미술관, 베네세하우스 미술관, 이우환 미술관, 테시마 미술관, 안도 타다오 미술관 등이 어우러져 이젠 섬 전체가 일종의 순례지화 됐다. 올해 축제 주제는 '깃발'. 여름 시즌엔 다카마쓰 항에서는 방글라데시 프로젝트, 건축가 단게 겐조 탄생 100주년 프로젝트가 이어졌다. 특히 방글라데시 프로젝트는 '방글라데시 특별전'으로 불릴 만큼 다양한 행사로 주목을 모았다. 쇼도지마에서 만나는 '후쿠타케 하우스 아시아 아트 플랫폼'에서는 한국을 비롯해 홍콩, 싱가포르, 호주 등 각국이 운영하는 예술기관과 그들이 후원하는 예술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가 리모델링해 '아시아 국가들은 세계화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를 주제로 전시, 심포지엄, 워크숍 등 5개의 행사로 구성됐다. 일본 국제교류기금 등의 후원으로 24개국 210팀의 예술가가 참여한 올해 축제의 방문객은 130만~14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바다와 섬의 가치를 복원하며 지역 재생을 목표로 한 세토이치 트리엔날레는 치유와 휴식을 안겨주는 예술 순례의 성지같았다.● 가타가와 프람 '세토이치 국제예술제' 디렉터 "유명인도 공모 통해 참여 각국 4500여명 봉사활동"나오시마 곳곳에는 파란 깃발이 펄럭이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세토이치 국제예술제 2013'가 테마로 삼은 '깃발'을 하늘과 바다로 투영시킨 것. 예술제로 인해 활기차게 도약하는 나오시마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듯 했다. 가타가와 프람 세토이치 국제예술제 종합 디렉터는 "세토이치 국제예술제는 젊은 사람들 혹은 외지 사람들이 세토내해와 바다의 매력을 알고 여기서 사는 주민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축제"라고 설명했다. 가타가와 프람 디렉터는 "지역의 전통문화와 접목한 주민 참여형 공연"을 경쟁력으로 꼽았다. 프로그램의 20%가 전 세계에서 공모한다는 것. 미나미 카오 등과 같이 유명인들도 공모를 통해 참여할 수 있을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그는 "4500여 명의 다국적 자원봉사자들도 축제의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면서 "나오시마의 성공이 다른 섬에도 알려져 주민의 참여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그는 "제1회 예술제의 예산은 7억엔(약 79억원), 행사를 마친 뒤 지역 은행이 추정한 경제 효과는 11억엔(약 124억원)이었다. 올해 봄여름가을 세 시즌으로 나눠 열리는 행사를 보면 지난 축제 때 방문객을 웃도는 이들이 다녀갔다"면서 '예술의 힘'으로 바꿔진 섬의 매력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다. 나오시마가 일본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섬이라는 그의 의견에도 수긍이 갔다.

  • 기획
  • 이화정
  • 2013.10.25 23:02

도시, 문화로 경제페달 밟다 - 3. 日 가나자와

일본 혼슈의 중심부에 잇닿은 가나자와시. 인구 46만 명의 작은 도시지만 예술의 힘을 빌려 일본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명성이 높은 이 도시는 유네스코 문화예술교육 부문 창조도시다. 가나자와의 성공은 역발상의 모델이다. 에도 시대 마에다 가문의 중심지로 400년 간 번성을 누렸으나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화에서 소외된 마을로 후퇴하는 듯 했다. 하지만 가나자와시는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전통산업을 도시의 경제기반으로 삼아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했다. 전통문화중심도시로 자리매김한 전주시가 가나자와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시민예술촌 조성의 성공 사례를 참고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과정일 것이다.△ 전통 산업 육성 통한 유네스코 창조도시 비결 =전주시와 가나자와시의 공통점은 '전통과 현대, 오래된 것과 새로움이 잘 공존하는 도시'다. 두 도시의 첫 출발은 문화의 '보존'이었다. 가나자와는 운이 좋게도 근대화가 비켜간 데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 공습을 받지 않고 450여 년간 지진 피해도 입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나자와시를 성공적인 창조도시 모델로 이끈 것은 1990년부터 20년 간 재임한 야마데 다모쓰 전 시장의 선견지명(先見之明)에 있었다. 그는 "문화에 투자하지 않는 도시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 외부의 자본에 기대기 보다는 지역이 가진 제조, 유통 등과 같은 전통산업을 보존하면 거기에서 창출되는 경제효과가 지역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본 것. 기모노 염색법인 가가유젠, 금박 등의 지역 전통산업이 활성화 된 것도 그의 공로다. 시는 또 전통 기술을 이어 갈 다음 세대를 육성하기 위해 시립 미술공예대학과 현립 기술고등학교를 세웠고, 일부 공예공방에서는 전통 장인들을 배출하고 있다. 본래 가나자와시는 일본 전체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금박공예를 비롯해 가가유젠, 칠기 등이 고루 발달한 도시다. 공예 전문 인력 양성소인 우타쓰야마 공예공방은 가나자와시를 뒷받침하는 힘이다. 1989년 개관한 우타쓰야마 공예공방은 도예, 칠예, 염색, 금속공예, 유리공예의 5개 분야에서 31명의 연수생들이 3년간 공부하는 소수 정예 교육기관이다. 대개 35세 이하의 미술 관련 전공자들이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올 정도다. 가나자와시는 전통적인 도시경관 보존에도 힘을 쏟고 있다. 1968년 일본 최초로 역사경관 관련 조례를 제정한 곳이 가나자와시다. 에도 시대의 게이샤 거리를 정비한 히가시차야 거리, 옛 무사들의 집이 보존된 나가마치 거리 등은 이런 노력의 결과물이다. 가나자와시는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2009년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창의도시'가 됐다. △ 시민 디렉터 제도로 안착시킨 시민예술촌 =가나자와시가 다음 단계로 추진한 것은 '문화의 생활화'다. 시는 과시적인 문화시설을 만드는 대신 문화가 '일상'이 되도록 시민들이 각종 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는 지원정책을 펼쳤다. 1996년 문을 연 가나자와 시민예술촌은 문화 활동의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려는 시민들이 구심점이다.가나자와 시민 3명 중 1명은 '아마추어 문화 예술가'로 분류된다. 상당수 시민들이 음악, 미술, 공연 동호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예술촌은 당초 1910년에 세워진 95,700㎡ 규모의 오래된 방직공장이었다. 호쇼 유타카 촌장은 "100년 이상 건재했던 방직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시민들이 시가 이 부지를 사들여서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면서 "시와 시민들이 거의 3년의 기간을 거쳐 시민예술촌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유타카 촌장은 "벽돌과 기둥 하나 손대지 않았고 공사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했다"면서 "공간 활용도가 높아진 것은 시민 의견을 반영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공장 뼈대를 살리면서 현대적 감각으로 덧칠된 4동의 창고 건물은 드라마뮤직에코라이프아트 공방으로 구성돼 있다. 중간에는 야외 콘서트와 전시회 등을 할 수 있는 '오픈 스페이스'도 마련됐다. 365일 하루 24시간 개방되는 이곳에서 시민들은 연극, 음악, 그림, 춤 등을 연습한다. 평일에도 오후 6시만 지나면 일을 마친 시민들로 연습실이 채워진다. 방음설비가 돼 있는 연습실에서 직장인들이 피아노를 치고 색소폰을 부는 모습을 찾는 건 예삿일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시민 디렉터 제도다. 음악, 미술, 연극 공방 별로 2명씩 일반인들이 디렉터를 맡아 각종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등 운영을 주도해오고 있다. 시설 이용료는 6시간을 기준으로 1000엔(약 1만 4000원)에 불과하다. 그 결과 개관 후 6개월간 10만 명의 시민들이 참여했고,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간 240만 명이 이용했다.● 日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 전시품보다 건물 더 유명유리로 된 외벽 '열린 공간' 추구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은 미술관이 도시는 바꾸는 '빌바오 효과'의 사례로 꼽을 만하다. 스페인의 항구도시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21세기 미술관은 전시품보다 건물이 더 유명한 미술관이다. 수족관처럼 투명하고 공원처럼 개방적인 이 모던한 건축은 2004년 개관 이래 쇠락하던 도시의 이미지를 단숨에 바꾸고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가나자와 시청사 옆에 자리한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의 유명세는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의 설계에 힘입은 바 크다. 이들이 2010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하게 된 것도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때문에 이 미술관의 최고 경쟁력은 건축 디자인에 있다. 두 건축가가 이끄는 건축회사 SANAA(사나아Sejima and Nishizawa and Associates) 건축의 특징은 '투명성'과 '개방성'이다. 이들은 "항상 공원과 같은 건축을 하고 싶다"고 말해왔다. "거리에 열린 건축, 거리와 관계하는 건축, 들어가기 쉽고 나오기 쉬운 건축"이다. 그래서 이 건물엔 앞뒤가 없다. 또 동서남북에 출입구가 있어 언제 어디로든 출입이 가능하다. 그러면서도 외벽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 안밖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천장의 자연광, 빛의 뜰 등을 접목시켜 공간을 탐구하는 즐거움을, 곳곳에 설치된 세련된 조형물은 생동감을 더해준다. 또 다른 즐거움은 애니시 카푸어, 제임스 터렐, 올라푸르 엘리아손, 얀 파브르 등 세계적인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는 데 있다. 21세기 미술관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품 중 하나가 아르헨티나 출신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수영장'(2004)이다. 강화유리에 물을 채운 실내수영장을 사이로 지상과 지하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신기하게 바라본다. 21세기 미술관이 성장동력에는 지역 주민과 소통을 중시한 지역밀착형 공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오치아이 히로아키 홍보실장은 "이곳은 현대미술관인 동시에 학생들의 작품 발표의 장이 되기도 한다"면서 "초등학생 4학년 때에는 누구나 필수적으로 미술관 체험을 하도록 교육과정이 구성 돼 있다"고 말했다. 매년 4~5회 열리는 상설 기획전 외에 시민들이 현대미술과 친숙해질 수 있도록 돕는 장기 미술 프로젝트도 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구 46만 명 남짓한 작은 도시의 미술관에 연간 150만 명의 관람객이 찾아드는 까닭일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 기획
  • 이화정
  • 2013.10.18 23:02

도시, 문화로 경제페달 밟다 - 2. 인천아트플랫폼

누가 인천을 문화의 불모지라 했나. '인천아트플랫폼'은 인천이 문화적 전초지기였음을 방증하는 사례다. 본래 인천항은 1883년 개항 이후 근대문물이 유입되는 통로였다. 대한민국 근현대 문화사의 출발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자유공원 일대가 일본과 청나라, 서구의 조계지였다. 그러다 보니 19세기 후반부터 이곳에 부두창고와 무역해운업체 사옥이 속속 들어섰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산업화의 성장기를 거쳐 시간의 더깨가 더해졌다. 그러나 탈산업화 바람이 불면서 인천항 주변의 구도심이 쇠락해갔다. 흉물스런 폐공장들을 탈바꿈해준 것은 인천아트플랫폼을 통한 도심 재생 프로젝트 덕분이다.△ 옛 것과 새 것의 공존 인천아트플랫폼은 1999년부터 시작된 장기 프로젝트였다. 당시 레지던스 개념조차 생소할 무렵 예술가들이 시에 문화공간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행정을 끈질기게 설득한 주역은 건축가 황순우였다. 그는 1999년 지역 보존과 활성화를 위한 정책 제안을 받아 지구 단위 계획, 문화공간 건립 등 설계 이전부터 프로젝트 전반을 주도했다. 지역 문화계가 "그에게 빚진 것이 많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할 정도로 그느 건물을 최대한 보존해 각각의 연륜으로 예술가들을 맞도록 신경썼다. 인천아트플랫폼의 첫 단추는 인천시가 2003년 근대 건축물 복원에 착수하면서부터다. 1886년에 세워진 일본우선회사 사옥을 비롯해 대한통운 창고대진상사삼우인쇄소 등 모두 13채의 적벽돌 건물을 복원리모델링증축 등을 해 옛 모습을 최대한 살린 것. 총 223억원을 들인 면적 5600㎡엔 다양한 형태의 전시장공연장예술교육관이 마련됐다.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2050㎡ 스튜디오공방 20곳과 해외작가큐레이터를 위한 게스트 하우스 9곳도 꾸몄다. 외벽을 유지한 채 내부 공간을 현대적으로 개조하거나 옛 벽돌벽에 대비되는 유리 건물의 건축, 건물 간 동선 유도를 위한 브릿지 설치 등은 옛 것과 새 것의 겸허한 공존이다. 그럼에도 아트플랫폼에는 19세기 말 인천에 진출했던 일본은행 지점 건물 세 채가 남아 있어 인천의 위용을 상징하고 있다. 이 일대를 천천히 돌아보면서 19세기 말 우리나라 근대문물의 유입 창구였던 인천의 영화를 되새겨 봄직하다. △ 미술공연문학 등 다방면 레지던스 두각인천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인천아트플랫폼은 레지던스를 중심으로 중심으로 미술공연문학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와 연구자들이 창작활동에 전념하도록 지원하는 '문화 인큐베이터'다. 초창기 국제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국내에 정착하지 못할 때 인천시가 동아시아 문화허브도시를 주창하며 해외 아티스트들을 적극 끌어들였다. 군수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중국 베이징 '798 예술구'의 축소판 같다.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이곳 작업실에서 생활하며 작업을 하기 때문에 1년 내내 전시와 공연이 이어진다. 현재 40여 명의 국내외 입주 작가들이 3개월~1년 단위로 레지던스가 치러진다. 입주작가와 지역 어린이, 청소년이 함께하는 예술교육 프로그램도 수반된다. 이승미 인천아트플랫폼 관장은 "앞으로 이곳을 중심으로 거대한 스트리트 뮤지엄으로 확대할 예정"이라면서 "과거의 역사를 보존하되 현재를 재해석하는 작업의 연장선"이라고 했다. △ 차이나타운 묶은 관광 벨트 활기 아트플랫폼과 인근에 위치한 차이나타운을 묶은 관광벨트가 인기다. 일단 아트플랫폼 옆에 위치한 한중문화관은 두 나라의 역사와 문화, 사회상 등을 전시물과 영상물로 비교해 볼 수 있는 문화전시관, 칭다오항저우다롄 등 인천시와 우호교류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 8개 도시의 특산품 등을 볼 수 있는 우호도시홍보관, 중국 유명 작가의 작품을 보여주는 기획전시실 등을 갖추고 있다.여기서 자유공원 쪽으로 더 올라가면 차이나타운이 있다. 100년 이상 역사를 자랑하는 맛집으로 소문난 중국음식점 '공화춘'(共和春)'은 관광객들로 바글바글하다. 인천중구청이 65억원을 들여 인천시 등록문화재인 건물을 변신시킨 '짜장면 박물관'도 있다. 이곳에서는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를 거쳐 이어져 오고 있는 짜장면 이야기, 그와 얽힌 여러 사회문화상을 유물과 모형 등으로 보여준다. 1960년대 공화춘 주방 모습도 재현해 놓았다. 결국 아트플랫폼은 근대 건축물이 잘 보존된 특성을 살려 인근 구도심까지 재탄생시킨 성공적인 도심 재생 프로젝트라 할 수 있겠다.

  • 기획
  • 이화정
  • 2013.10.11 23:02

작가와 시민간의 소통 도심재생 성공 뒷받침

이승미 인천아트플랫폼 관장(52)은 "도심재생 프로젝트의 성공 사례로 축포를 터뜨리기엔 이른 감이 있다"고 했다. 작가들과 시민들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모델 구축이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천은 개항장을 배경으로 한 문화적 토양이 잘 갖춰진 편. 그는 "인천아트플랫폼이 도시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최대한 살려 문화적으로 재활용하자는 시민들의 뜻과 인천시의 의지가 합쳐진 것처럼 지역 공동체의 활성화를 전제로 해야 한다"고 했다. "시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공간은 의미가 없습니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예술가들을 주축으로 골격을 짜고, 근대 건물을 최대한 보존하는 과정을 고민하면서 시민들 스스로가 이 공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는 계기를 갖게 한 경우입니다. 가시적인 성과 보다도 그런 공감대를 가졌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죠." 이 관장은 "자치단체가 로드맵과 목적의식 없이 섣불리 시작하면 실패하기 십상"이라면서도 "전문가에게 조직을 맡겨 책임있게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인천아트플랫폼이 국제 레지던스로 거듭나려면 지역 이기주의연고주의는 극복해야 할 과제. 이 관장은 "레지던스가 국내외 작가와 교류가 원활히 이뤄지려면 지역에 갇혀서는 안 된다"면서 "아트플랫폼의 '지역 할당제'에도 불구하고 지역 문화계는 여전히 갈증을 느끼고 있어 접점을 찾는 게 쉽지 않다"고도 했다.

  • 기획
  • 기고
  • 2013.10.11 23:02

도시, 문화로 경제페달 밟다 - 1. 서울 문래예술촌

전국 자치단체가 예술촌 건립에 팔소매를 걷어 붙이고 있다. 전국의 도시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공공디자인 열풍이 주춤하면서 예술촌이 도시재생(구도심 활성화)의 새로운 '카드'로 제시되는 분위기다. 자치단체가 너도나도 도시에 예술을 입히는 이유는 시민들이 그 지역의 활기를 되찾도록 하는 촉매제라는 인식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지역신문발전위원회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문화예술교육을 통한 지자체 경제 활성화'를 주제로 한 공동기획취재 일환으로 본보는 앞으로 5차례에 걸쳐 국내외 사례를 통해 도시 재생의 돌파구로 지목되는 시민예술촌을 살펴본다. 편집자주△낮엔 철공소, 밤엔 작업실서울 문래동은 '두 얼굴'을 지녔다. 이제는 쇠락한 철공소 등이 밀집한 이곳은 낮엔 용접공의 불꽃이 튀고 쇠 두드리는 소음으로 뜨겁지만, 저녁엔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야행성 예술가들이 창작 열기로 채워진다. 기껏해야 3층 정도인 상가 건물 곳곳엔 철강, 스테인리스강, 용접, 파이프 등의 간판을 단 소규모 가게들이 즐비하다. 그래서 낯선 관광객들이 이곳에 들어와 예술을 만난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다. 예술촌이 시작되는 광명수산 삼거리 입구부터 철재상가 거리를 거닐다 보면 곳곳에 2~3층에 수줍게 얼굴을 내민 간판이 만날 수 있다.문래동은 과거 '대한민국 철강재 판매 1번지'였다. 1960년대 산업화 영향으로 영등포 일대에 공장들이 몰리면서 철강단지 등이 형성됐다가 1990년대부터 공장들이 빠져나가 사양길을 걷고 있다. 녹물로 벌겋게 물든 골목에 듬성듬성 공간이 생기자 예술가들이 이곳에 눈독을 들였다. 저렴한 임대료와 편리한 교통은 소음을 참는 이유가 됐다. 서울시는 자연스레 몰려든 예술가 집단을 지원하기 위해 2010년 '문래예술공장'을 열었다. 철재공장 부지를 매입해 지하 1층~지상 4층, 연면적 2820㎡ 에 대형작업실, 다목적 발표장, 카페형 갤러리, 세미나실, 레지던스 공간 등을 마련한 것. 다른 서울시창작공간들이 시각예술에 집중하는 반면, 문래예술공장은 소리나 미디어, 퍼포먼스 등 낯선 장르에도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 시멘트 블록으로 된 낡은 골목의 벽에 그려진 벽화, 공장을 실험적 예술공간으로 변신시키려는 움직임, 문래동의 공장과 예술가의 작업실을 탐방하는 '문래동 투어' 등은 문래동의 변신이 안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시민과 소통하는 축제로젊은 예술가들로 인해 침체 일로를 걷던 이 지역 분위기가 활기를 되찾았다. 처음 눈인사만 나눴던 철공소 직원들이 이곳에서 공연과 전시를 관람하고, 행사 후에는 예술가들과 함께 삼겹살 파티를 열기도 했다. 대문이나 옥상에 그럴듯한 그림을 그려 달라는 민원도 생기고, 덕분에 예술가들은 철재 등 재료를 공짜로 제공받곤 한다. 예술가들은 정기적인 반상회도 갖고, 공동 블로그도 운영하고, 예술 프로젝트도 함께 준비한다.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작가들은 2007년 6월에 거리축제인 '경계 없는 예술프로젝트 : 문래동'을 열었고, 10월 연합축제인 '물레아트페스티벌'로 시민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축제로 판을 키웠다. 매년 10월에 열던 페스티벌은 올해 8월로 옮겨 간객(間客)을 주제로 한 기획전, 물레페스티벌의 판을 처음 연 '춤추는 공장'의 융합 공연, 국내외 예술가들을 초청한 워크숍 등으로 속을 꽉 채웠다. 해를 거듭할수록 페스티벌에 관한 주변의 관심과 기대가 높다. 그래서 문래동은 여전히 젊은 작가들이 선호하는 동네다. 지난 3월 입주한 30대 커플이 운영 중인 '재미공작소'는 음료를 주문하면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빌려주는 대안 문화공간이다. 예술가들의 입소문으로 출판기념회, 개인전, 공연, 창작워크숍까지 자유롭게 진행되는 것. 인디 공연과 유화 강좌, 시 창작 강좌 등으로 달력이 꽉꽉 채워지고 있다.후발주자에 가까운 갤러리 카페 '솜씨'(Cotton Seed)도 문래동 작가들의 사랑방이다. 비영리 갤러리인 이곳은 판매금액을 100% 회원들 뜻에 따라 기부한다.△ 재개발로 예술촌 사라질까 걱정 하지만 문래동 예술촌의 미래는 아직 불투명하다. 지난해 시내 준공업지역에 최대 80%까지 아파트를 건립할 수 있도록 서울시 조례가 개정됐고, 인근 주민들과 개발업자들은 고층 주상복합 건물을 희망하고 있다. 철거가 시작되면 영세 공장은 물론 예술가들 역시 문래동을 떠나게 된다. 문래동 예술촌을 터전으로 하는 공연과 전시가 일시적 퍼포먼스가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다행스럽게도 서울시는 재개발을 앞둔 문래동에 대해 현 모습을 보존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진행하면서 옛 모습 일부를 의무적으로 보존하는 '흔적 남기기' 프로젝트 일환이다. 예술가들은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겨난 이곳을 창조지구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면서 "문래동은 군수공장에서 예술촌으로 변신한 중국 베이징의 다산쯔처럼 서울의 새로운 문화명소로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 문래동의 실험은 현재 진행형이다.● 신동호 커뮤니타스 대표 "지역 이야기 담는 마을 만들기 돼야"전국 자치단체가 추진하는 마을 만들기 사업의 성적표는 몇 점이나 될까.한국언론진흥재단지역신문발전위원회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문화예술교육을 통한 지자체 경제 활성화'를 주제로 한 공동기획취재에 초청된 신동호 커뮤니타스 대표는 "개발을 우선하는 행정이 개성을 잃은 마을만 찍어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걸림돌은 행정 편의주의다. 다양한 연령과 배경을 가진 주민들의 역량을 강화해 실행주체로 성장시키기 위한 기회비용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보고 제가 얻은 깨달음은 딱 하나였습니다. 지역적 서사를 구축하는 힘이 바로 정의라는 겁니다. 하지만 현재의 도시 계획은 개발 이익을 둘러싼 주민 간 갈등을 무마시키고 지역의 서사를 배제하는 손쉬운 방법을 선택하고 있습니다."그는 대구 수성구 만촌12동 마을 특성화 사업이 모범 사례로 제시했다. "무엇보다도 마을의 정체성, 지역성, 특수성을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본래 만촌동은 여유롭고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마을이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네이밍 공모전을 했죠. 그 결과 '해피타운 만촌'으로 결정됐습니다. 만촌의 지향과 의미를 토대로 여유와 전통에 기반한 행복한 삶을 의미하는 것으로요."이후 이미지텔링을 통한 마을의 특성화 사업이 시작됐다. 공공디자인 전문가와 주민들이 합심해 마을 팻말가구조형물 등을 만들고 마을을 디자인하게 된 것. 그는 "결국 주민들의 참여가 없는 화려한 이벤트와 프로그램 대신 삐걱거리더라도 주민들에게 의사결정권을 돌려주고 충분히 논의해야 마을 만들기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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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화정
  • 2013.10.0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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