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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산내면 문화·예술단체 '문화기획 달'] 생태적 삶 지향하는 젊은 여성들, 재활용 통해 더 의미있고 멋있게

저는 어렸을 때 바늘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요. 엄마가 이불을 꿰맬 때 가까이 다가가다 큰 바늘에 발바닥을 깊숙이 찔려 아주 혼났었거든요. 얼마 전 어떤 집에서도 엄마가 바느질에 푹 빠지다보니 아이가 바늘에 찔려 큰일난 적이 있고요. 바느질 할 때 항상 조심하시고 아이가 있을 때는 안하는 게 좋아요.우리 어렸을 때도 보면 엄마들은 뭐든 절대로 안 버리잖아요. 왜 버리나, 필요할텐데, 이러면서요. 근데 정작 필요할 때는 못 찾아! ㅎㅎ△버려지는 자투리천들을 이쁘게 꼴라쥬한다입으로는 수다 중이고 손으로는 헝겊조각들을 쪽모이하는 패치워크 감성을 키우느라 정신없다보면, 혹여 바늘끝이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지라 강사 류정희 씨가 조심스럽게 당부한다. 그 와중에도 수다는 계속된다. 수더분해 보이는 한 여성은 섬세하게 짜여진 바느질 요령 그림을 유심히 살피면서, 자투리천들을 활용한 꼴라쥬 작업에 몰두한다.화요일 오후, 여남은 여성들이 온갖 수다를 떨며 손바느질에 여념이 없는 곳은 남원시 산내면에 위치한 문화기획 달이다. 문화기획 달은 전북문화관광재단에서 주최하는 지역특성화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으로 블루밍 : 살림-바느질이 바꾸는 삶 프로그램(이하 블루밍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생태적인 삶을 지향하는 산내면의 젊은 여성들이 업사이클 작업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자아실현을 이루어 나가자는 발상으로 기획되었다.이들에 있어서 업사이클은, 업그레이드(Upgrade)와 재활용을 뜻하는 리사이클(recycle)을 합친 단어지만, 더 의미있고 더 멋있게 일상의 버려지는 것들을 재활용한다는 뜻을 담아내고 있다. 이들의 수다도 어쩌면 그 조각들의 하나다.△가정을 탈출한 해방구, 자아실현의 기회2004년 산내에서 방과후 수업을 하기 위해 대구에서 건너와 어영그영 여기 살다보니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는 김현정 씨는 블루밍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그림그리기 재주를 발견했단다. 프로그램 기획자이자 달의 활동가인 달리 씨는 업사이클 작업에서 미적 감수성을 중시하여 초반에 그림그리기 교육을 배치하였다.달의 또다른 활동가인 자정 씨가 강사로 진행하였고, 이때 김현정 씨가 그린 그림이 너무 예뻐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동네분이 가게 이미지로고로 사용하겠다며 자기한테 팔라고 했단다. 김현정 씨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자신을 재발견하고 남들로부터 인정받으니 기분이 좋고 재밌다고 한다. 마을 여성들 중심으로 꾸려진 커뮤니티 재활용공방 살림꽃을 운영하는 강사 류정희 씨의 말이다.저는 귀촌한 지 15년째라 이제는 귀촌자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선주민이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애매한데요, 더군다나 오래된 귀촌자들은 살림과 가정일에 묻혀 살아왔잖아요, 그런 분들은 가정을 탈출해 일종의 해방구를 만끽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이 프로그램 호응도가 아주 높아요. 집안일 스트레스의 해방이고 자아실현의 기회를 주거든요.△공동체에 희생되는 개인의 삶 새롭게 이슈화블루밍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산내면과 인접지역에 사는 30-60대 여성들 15명이다. 도계 넘어 경남 함양의 마천에서 오는 사람도 둘이나 된다. 자동차로 10분 거리라 소문을 듣고 찾아 왔단다. 그러고보니 프로그램 참여자들은 지리산 산자락에 모여들어 살아가고 있는 귀촌여성들이다. 자연 환경이 좋아 모여들었을 사람들일텐데, 이곳에서 이들의 삶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그런 것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산내면은 귀촌자들이 무척 많아 이러저러한 단체들도 많고 지역사회 활동량도 크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공동체라는 커다란 프레임에 갇히다보니 부지불식간에 공동의 삶으로 환원되는 공동체 담론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어 개인들의 다양성이 숨쉬기가 어렵지 않았냐는 것이 달 사람들의 판단인 듯 하다.이런 맥락에서 달의 활동가인 이리 씨는 공동체보다도 개인의 일상적 표현활동들이 아름다우며 그래서 더 중시되어야 하고 그 소통과 공감의 장이 곧 블루밍 프로그램이라고 강조한다. 달리 씨도 가족중심주의 문화, 지역기반 공동체주의 문화에 개인의 욕망과 삶이 희생되는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을 보인다. 이들이 말하고 있는 개인이란 곧 공동체주의에 묻혀버리지 않는 여성들의 일상적 삶으로 이해된다.△이런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도 되네?문화기획 달은 달리, 자정, 이리 씨, 이렇게 셋이 꾸려나간다. 4년 동안 많은 활동들을 해왔다. 지역독립잡지 계간 지글스 발간, 여성 글쓰기 포럼, 마을 빵동아리 운영, 청소년 문화예술교육, 농촌 성문화 다시보기, 공동체라디오 제작교육, 페미니즘 아트스쿨 등등이다. 스스로를 지리산 자락 마고여신의 생명력과 사랑을 창조성으로 꽃피우는 여자들의 즐거운 작당소로 정의하고 있다.공동체성과 남성성이 강한 지역사회에서 잡지 지글스는 어떤 이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무시되어 왔지만 소중하게 생각하는 소소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어찌보면 자연스럽게 억압받았던 여성들의 일상 이야기, 이름하여 페미니즘 활동이라 할 수 있을텐데, 이런 류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도 되는구나, 라는 이미지를 심어줬다는 것이다.지리산 산자락의 위엄(?)에 묻혀 생태적 삶의 모태라 할 수 있으나 정작 실종되어 온 여성성 담론, 이제 일상의 부드럽고 섬세한 화두로 말건네기를 하는 달의 이런 활동들이 지역에 사는 남성들에게는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이런 활동의 연장선인 블루밍 프로그램 참여에 대해서 남편들의 반응도 좋고 엄마들의 감성이 표현된 작품들에 대해서 대단하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반응을 통해 엄마들은 자존감을 얻는다고 한다.△여성성의 리듬, 우리 모두의 것주부여성들의 일상이 바빠요. 일주일에 한번 한나절을 투여해 여기에 오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 그 와중에 참여해 존재감과 해방감을 찾는 거죠. 평소 하고 싶었던 것들이라 이런 기회가 굉장히 소중하다고 보니까요. 초반에 미적 감각을 살리기 위해 그림그리기를 했는데 3시간씩 하다보니 사람들이 지쳐 쓰러지더라고요 처음에는 자기 그림들이 못 그렸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서로 너무 감탄하는 거예요. 자기만의 스타일을 표현한건데, 못 그렸다고 생각한거죠.블루밍 프로그램과 달의 활동은 여러 키워드들이 중첩된다. 무엇보다도 자투리천과 같은 일상의 것들을 재활용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 재활용돼 나오는 생산물은 미적 감각에 기반해 참여자 각자의 창의적 가치와 시선의 새로움을 높이고자 한다.지리산 산자락의 무수한 콘텐츠의 원천들 및 일상들과 소통하려는 여성성의 리듬이랄까, 그래서 그 여성성 리듬은 우리의 삶을 재디자인하는, 사실은 아저씨-남정네들도 즐겨야 할 우리 모두의 것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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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05 23:02

[전주 인후문화의 집] 6차선 도로가 가른 주민들 이어주는 '공감의 공간'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변하는 세상만큼이나 사람들 간에 관계 맺고 소통하는 대상과 특성 또한 달라졌다. 예전에는 마을이라는 지역적 공동체에서 서로 품앗이하며 일을 해왔고, 아이도 함께 키우며 마을에서 모든 일을 해결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마을의 문화가 만들어졌으나, 지금은 마을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는 지역적 범주를 벗어나 다양한 특성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관계 맺는다. 더러는 그 관계 속에서 갈등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그 갈등은 서로의 관계를 분리시키거나 배척시키기도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문화예술교육은 사람과 사람들의 관계를 잇고,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는 데 중요한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원주민과 이주민을 분리시킨 6차선 도로전주시 덕진구 인후동 북일초등학교가 있는 동네는 조금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6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완전 다른 두 모습의 동네가 공존하고 있다. 한 곳은 오랜 시골마을처럼 정겹다. 단독주택들이 줄지어 나지막이 앉아있고, 골목마다 다양한 모습을 뽐낸다. 6차선 도로가 무색할 정도로 골목은 조용하다. 오래전부터 그 터를 지킨 모습처럼 이곳에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60~70대의 어르신들이다. 반면에 다른 쪽의 동네는 대도시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빼곡하게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고, 상가들도 네모 반듯 줄을 맞춰 서 있다. 누가 봐도 신상처럼 보이는 아파트에는 30~40대의 젊은 세대들이 이주해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다. 6차선 도로를 기점으로 이주민과 원주민들은 의도치 않게 편을 가르듯 둘로 나뉘어 살아가고 있다. 북일초등학교로 등하교를 하는 아이들을 위한 육교가 서로 다른 환경을 이어주는 이들의 유일한 매개의 공간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서로를 이어주는 교류의 장 필요인후문화의집은 인후동에 터를 잡아 주민들의 일상 문화예술 공간을 운영하면서 인후동의 지역적 상황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원주민과 이주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기 위한 교량의 역할이 필요하고, 문화의집 답게 본인들이 잘 하는 문화적 접근으로 그 고민을 풀어나가기 위한 기획들을 시도했다.원주민과 이주민의 서로 다른 환경을 이어주는 유일한 매개공간인 육교에서 깜장이라는 장터를 연 이유도 서로의 시선이 닿고 머물러야 그들의 삶이 섞여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연장선상에서 인후문화의집의 고민은 계속되었다.△ 문화예술 매개로 사람과 사람 잇기사람들이 긴 테이블 위에 오밀조밀 앉아 휴대폰 화면에 있는 그림을 도화지에 옮겨 그린다. 휴대폰 화면에는 정겨운 마을시장 풍경이 담겨 있다. 30대부터 60대 어르신까지 세대도 다양하게 섞여있다. 그렇게 그림을 한참 그리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수다 삼매경에 빠진다. 일상에서 겪었던 이야기부터, 지금 그리고 있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 어떤 예술가에 대한 평가까지 수다의 주제는 다채롭다. 무슨 활동인지 물으니 지난 시간 동네 시장을 돌아다니며 자기 마음에 남았던 사진을 골라 본인이 바라본 시선으로 그려나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이질적인 두 집단을 이어 심리적 거리감을 조금이라도 좁히기 위해 인후문화의집 김명규 기획팀장은 일상의 재해석이라는 지역특성화 프로그램을 올 초 기획하여 진행하기 시작했다.지역주민간의 커뮤니티 형성은 공감대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서로가 알고 있는 공간을 기록하고 이야기 해보는 프로그램을 기획한 거예요함께 모여 서로가 알고 있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동네를 새롭게 바라본다. 항상 지나던 길을 사진으로 찍으며 깊게 관찰해 본다. 나의 일상을 관찰하며, 본래 있었으나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을 알아가게 된다. 평소 데면데면 하던 시장 과일가게 사장님, 야채가게 사장님과 이야기도 나눠본다. 이러한 과정 속에, 시장상인들과 주민들은 물건을 사고파는 소비적인 소극적 관계를 넘어, 서로의 스토리와 사건을 주고받는 적극적인 커뮤니티의 관계로 성장한다. 이렇듯 프로그램을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뿐 아니라, 지역의 사람들과도 더불어 관계를 맺어간다.△ 일상을 재해석 해보며 느끼는 일상의 작은 일탈사람들의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새로운 상황이 아니라,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탈들이라고 생각을 해요. 내가 살아가는 공간, 만나는 사람 등을 나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재해석 해 보는 거예요.내가 살아가는 지역이 시시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매번 지나치며 보는 것들이 색다르게 다가올 리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일상의 공간은 더 일탈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일상의 재해석 주강사로 참여하고 있는 김누리 작가는 상점을 기록하는 작품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김누리 작가는 각자 상점마다 가지고 있는 스토리들이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 스토리를 찾아내는 작가의 일상적 비일상이 작품 활동을 하게 만든 관찰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기획자는 그런 작가의 시선을 지역주민들에게 연결해 주고 싶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비일상성은 지역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을 만들어 주어 참여자들이 살아가는 지역에 대해 생각을 전환시켜 주는 환기의 역할을 할 것이다.△ 문화를 향유하는 것에서 벗어나 문화 생산자로의 성장우리가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참여했을 때 각자가 느끼는 감정이 다 달라요. 뭐라고 뚜렷하게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삶에서 이게 필요한 것이구나 하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그 감정을 느낀 사람들은 문화예술을 배우고 가져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무언가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봐요. 그게 지속의 힘이 될 것 같아요인후문화의집 일상의 재해석 프로그램은 지역특성화사업으로 진행되는 사업이다. 지역특성화 사업은 문화를 향유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기문화를 생산하는 역할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을 지향한다.결과보다는 과정과 소통을 중요시하는 사업이다. 그래서 단순히 장르를 체험하는 형식의 접근보다는 교육 과정 안에서 소통관계를 형성하는 활동이 더 중요한 사업이다. 소통은 사람들 간의 소통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이 느끼고, 변해가는 스스로와의 소통도 포함된다. 그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 질 때 문화예술은 일상 안에서 지속 될 것이고, 그 지속은 지역 안에서 또 다른 변화를 이끌어 나갈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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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6.28 23:02

[고창 문화재야행 추진단] '고창 밤 나들이'…지역경제 꽃 피우길 비나이다

△겨울 당산제를 지내던 사람들이 한여름 다시 모인 까닭밤새 쉴새없이 양수기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판을 난무한다. 전국에 가뭄도 이런 가뭄이 없다는 가문 날이다. 한 방울 물기라도 모아 아직 가느다란 어린 모에, 이제 뿌리를 뻗고 이파리를 펼쳐가기 시작한 고구마에, 벌써 손가락만한 열매를 매단 고추에 끌어대어 한 모금이라도 목을 축이게 하기 위해서다. 실낱같은 생명 부지하기 위해서다. 물과 사투하는 이 염천(炎天)에 땀과 사투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창문화재야행을 준비하는 고창오거리당산제보존회(회장 설태종) 사람들이다. 한겨울, 대보름 전야 올해 삿된 기운 물리치고 마을을 평화롭고 풍요롭게 하소서 당산제를 정성으로 치르는 사람들이, 한여름 땅을 태우는 열기 속에 팔 걷고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여덟가지 밤놀이로 수놓는 문화재 야행문화재 야행부터다. 야행(夜行), 밤놀이다. 기실 문화재란 지역마다 고유한 빛깔로 오래 사람들이 이야기를 다져온 것에 재(財)의 지위를 부여해, 잘 가꾸고 다듬어 다음 세대에 물려주자는 것이다. 꼭꼭 감추어 고스란히 보존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 한 결이 문화재 야행이다. 유형 무형으로 문화재에 깃든 이야기를 펼쳐 향유하게 하고, 나아가 지역경제도 활성화하자는 취지다. 그런데 밤이다. 도시로 사람이며 물산이 집중되면서 지역은 더 지역으로 갈수록 밤은 칠흑이다. 찾아오는 사람은 물론 거기 사는 사람들까지 두문불출로 활기를 잃어간다. 그 활기를 문화재로 되찾자는 뜻이다. 문화재 야행은 문화재를 밤과 만나게 하는 여덟 개의 키워드로 완성된다. 팔야(八夜)다. 팔야는 밤에 비춰보는 문화재(야경, 夜景), 밤에 걷는 거리(야로, 夜路), 밤에 듣는 역사이야기(야사, 夜史)로부터 먹고 자는 야식(夜食)과 야숙(夜宿)에 이르는 여덟 가지 밤 테마다. 부제 슬로건도 역사를 품고 밤을 누비다다.밤을 누비는 사람들을 그러모으는 장렬한 프로젝트는 2016년 10개 도시에서 시작되어 올해는 열여덟으로 확대되었다. 서울, 인천, 수원, 청주, 공주, 부여, 강릉, 안동, 대구, 경주, 김해, 부산, 광주, 순천을 거쳐, 우리 전북에는 전주와 군산, 그리고 마침내 고창이다. 굳이 수식을 붙일 까닭이 없을 이름짜한 곳들이다. 고대로부터 도시화되어 그야말로 문화재 투성이인 곳이다. 마찬가지다. 굳이 따지지 않아도 열세가운데 열세, 고창이다.△고창 야행 주체, 오거리당산제보존회이 물적 열세를 질적 보완으로 만회하려는 고창 야행 추진주체는 고창오거리당산제보존회다. 이제 오거리당산과 제, 보존회이야기다. 여느 지역의 사람들처럼 고창사람들도 공동체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공동체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키려는 노력이 시작되었을 터다. 홍수로부터 가뭄, 지진 같은 자연의 극한 위협이 훨씬 더 두려울 것이었다. 자연의 힘을 거스르지 않고 고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위기를 극복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 그 한 형태가 오거리당산이다. 고창읍에는 동서남북, 중앙 다섯 군데 당산돌과 당산나무가 쌍으로 조성되어 있다. 조선 후기, 현재의 형태로 자리 잡게 된 것을 지난 1969년 중요 민속자료 14호로 지정했다. 한편으로 이렇게 형체를 빚어 거스를 수 없는 힘과 균형을 꾀했다면 그 형체를 둘러싸고 보이지는 않으나 거대한 기운을 모으는 것은 사람들의 몫이었다.한해를 시작하는 대보름 전야, 사람들이 모여 재해(災害)는 달래어 쫓고, 풍성한 수확과 안녕을 부르는 의례를 이어간다. 무형 유형의 격식을 차려 온전히 보전하고 있는 전국 유일 오거리당산제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37호이며, 올해 36회째에 이르고 있다. 제47회 한국민속예술축제 출전하여 최우수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정월 초 당산 동제를 이어가다, 정월대보름 전야에 중거리당산으로 향한다. 고창읍 시가지를 횡으로 종으로 가로지르는 줄행, 길꼬내기부터 시작한다. 참여자들은 중거리당산 앞에 정성으로 차린 제물(祭物)을 모으고 당산제를 올린다. 오거리당산제는 동부 서부 편을 갈라 연등 간대의 초롱불을 서로 먼저 끄려는 연등놀이(영등놀이), 줄 놀이(줄 시위굿, 줄 예맞이, 줄합궁, 줄다리기), 당산 옷 입히기, 달짚(달집)태우기, 쥐불놀이에서 절정에 이른다.△9월 하순 이틀 밤을 이어지는 장쾌한 드라마한겨울 오거리당산제를 마치고 그렇게 기원하던 안녕과 풍요를 위해 일터에서 전전해야할 사람들이 이 불 붙은 하늘아래 모인 까닭이, 문화재 야행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고창야행 추진단은 고창읍성 앞 관광안내소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9월 22일(금) 저녁 고창야행 개막공연 <고창읍성 축성 재현 오페레타>를 시작으로 고창야행 길꼬내기, 야밤 백중싸움, 고창읍성 달빛 답성놀이,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월하기원, 고창판소리마당, 길거리 만담놀이, 풍물 버스킹, 원님행차재현, 용줄꼬기에서 용줄드리우기로 이어진다. 고창의 담백알싸한 맛의 향연도, 한옥스테이 꿀잠도 곁들인다. 고창읍성 광장에서 전통시장으로 이어지는 야시(夜市)도 밤을 밝힌다. 9월 이틀 밤, 장쾌한 드라마가 펼쳐진다.고창오거리당산제보존회 300여 회원가운데, 소품팀을 맡은 회원들이 그 축성재현오페레타에 쓸 굵직굵직한 성돌 만들기에 한창이다. 알이 조밀해 단단한 짙은 회색 스티로폼을 다 다른 크기로 잘라내고 불로 그을려 자연미를 살려내고 있다. 그냥 이벤트업체에 맡겨 편하게 제작하면 될 일, 이 뙤약볕에 일을 어렵게 하시는지, 원.그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아요. 우리나라 대개 축제들이 지역사람들의 역량을 키우는 일과는 멀게 진행돼요. 외부 전문 업체에 통짜로 맡기기 때문이에요. 야행을 계기로 회원가운데 관련 업을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노하우를 쌓고 지역 안에서 예산이 배분되는 효과도 누리는 것이라는 심길수 총감독의 말이다.△마른 땅에 단비를 부르는 기우제, 간절한 호소수백 년 이어온 오거리당산제를 고을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서 정성을 다해 준비하던 방식 그대로다. 고창야행은 하루 이틀 반짝 열리고 끝나는 축제가 아니다. 수백 년 고창읍성과 오거리당산을 쌓고 다듬어온 사람들, 그 위에 야행이 놓인다. 그 뒤는? 고창 야행이 내건, 뿌리깊은 역사문화의 향을 되살려 살만한 고창, 명품 지역재생의 방향이 있다.문화재 야행을 진행하는 18개 시군구 가운데 군 단위는 우리와 부여입니다. 당산제를 통해 고을민이 한마음으로 힘을 모아 고을에 닥친 어려움을 이겨낸 것처럼, 군민 전체가 힘을 모아 고창 야행이 고창의 저력을 보여주고, 지역 경제를 꽃피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고창 야행이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함께해야지요. 박우정 고창군수의 말에서, 뜨거운 땀으로 가문 하늘을 향해 시위하는 오거리당산제보존회원들의 모습에서, 300년 전 이 땅에 당산 돌을 쌓아 올린 앞선 사람들의 결기를 떠올린다. 마른 땅에 단비를 부르는 기우제, 제문의 간절한 호소(呼訴)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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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6.21 23:02

[옛날과 현재의 노둣돌 고군산군도] 자연이 빚은 보물창고…문화·관광 가치 '풍성'

노둣돌이란 솟을대문 앞에 놓인 돌로 말에서 내리기 쉽게 하기 위해 놓여진 돌이다. 고군산군도 역시 옛날과 현재 나아가 미래를 연결해 주는 시간박물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세계화 시대에 지역의 역사문화는 문화상품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교통통신의 발달로 인해 원하는 상품을 쉽게 얻을 수 있어 희소성이 떨어지고 가치가 하락이 된다. 그러나 그 지역에 가야만 경험할 수 있는 자연환경과 그로 인해 생겨지는 독특한 역사문화는 문화관광상품으로서 희소성에 의해 가치가 있다.그런 의미에서 군산시에 속하는 고군산군도는 가치가 높다. 동북아 해양물류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이 좋고, 역사적 기록과 전설, 설화 등이 풍부하다. 새만금 일대에 속하는 장소성이 갖는 콘텐츠도 좋다.△ 고군산군도란고군산군도는 위치적으로보면 군산을 기준으로 볼 때 서남쪽, 변산의 서북쪽으로 63개의 작은 섬들이 오밀조밀하게 펼쳐진 곳이다. 그 가운데 신선이 노니는 섬이라 불리우는 선유도가 있다. 선유도 옆으로는 춤추는 무녀 의 형상이라고 불리는 무녀도가 있다. 새만금 방조제의 버팀목이 되는 신시도는 고군산군도에서 가장 넓은 섬이다. 그 섬 위에는 최치원이 가야금을 켜면서 놀았고 그 소리가 중국까지 들렸다는 월영봉이 있다. 월영봉의 가을은 단풍으로 활활 타오르는 듯 그 색깔이 푸른 바다와 어울려 숨이 막힐 듯한 장관을 자아낸다.△ 뛰어난 경치 선유팔경바다에 떠있는 섬들의 선들이 아름다운 고군산군도는 뛰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선유팔경이 있다.고군산군도는 곧 연륙교가 완성돼 차로 돌아다니거나 걸어서도 섬 전체를 돌아다닐 수 있게 된다. 지금도 무녀도 앞까지 차로 이동한 후 셔틀버스를 이용해서 섬 전체를 돌아볼 수 있다. 이미 육지가 되어버린 야미도를 지나 새만금 방조제를 따라 신시도를 향하다 보면 방조제를 사이에 두고 바다 색깔이 다르다. 오른쪽은 바다가 출렁이면서 검푸르고 햇빛이 반짝이는 파랑이 생기가 생기가 넘친다. 그러나 방조제로 갇힌 왼쪽 바다는 움직임이 없어서 숨이 막힐 것 같이 고요하고 어두운 색깔이다.선유팔경도 감상할 수 있다. 신시도 월영봉을 가을빛으로 피어오르게하는 월영단풍, 해질녘 바다 위를 붉은 금빛으로 물들인 선유도에서 볼 수 있는 지는 해의 빛나는 모습인 선유낙조, 선유도 해변에 고운 모래 빛이 띠를 두른 듯 십리나 펼쳐지는 명사십리, 망주봉 앞 바다에 기러기 날개 편 듯한 모래톱 평사낙안, 여름철 비가오면 살아나는 7개의 물줄기 망주폭포, 저녁녘이면 몰려드는 조기의 퍼덕이는 몸짓이 꽃과 같은 장자어화, 병풍처럼 펼쳐지는 열 두 봉우리 무산십이봉, 세 개의 섬이 마치 만선으로 집에 돌아오는 듯 푸근한 정경인 삼도귀범을 일컫는다.△ 과거부터 동북아 해양물류의 중심지두 번째 가치는 동북아 해양물류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는 지리적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무궁무진한 에너지의 원천이 바다라는 것을 아는 시대에서 바다의 중요성이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고군산군도의 앞바다는 예전부터도 그랬지만 미래에도 동북아 해양물류 유통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는 거점이 될 수 있다.고군산군도에 관한 역사적 기록도 가치를 높인다. 고고학에서는 강과 바다를 옛날 고속도로라고 부른다. 새만금 지역은 바다로 갇혀있지 않고, 바다로 열려있다. 선사시대부터 중국 또는 일본과는 새만금을 통과하는 바닷길로 해양 문물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고려시대에 이르러 고려와 송은 친선관계를 유지해왔다. 예종이 죽고 인종이 등극하니 애도와 축하를 동시에 하려고 송의 휘종은 국신 서긍을 보낸다. 서긍은 신주호를 타고 500명의 부하들을 데리고 고려에 온다. 중국 명주에서 출발한 서긍 일행은 흑산도를 거쳐 고군산군도에 이른다. 머물면서 여행기록문인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이라는 책자를 쓴다. 이책에 선유도에 대해서 자세히 묘사했다. 잔치 중에 행해졌던 풍습과 먹거리 그리고 사용되었던 기구들을 상세히 적어놓아 고려시대를 알 수 있는 귀한 자료로 남아있다. 기록을 통해 고군산군도를 통한 우리나라의 국제관계를 살펴볼 수 있고, 그 사료는 대한민국과 중국을 관광자원화 측면에서 노둣돌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스토리텔링의 보고이야기로 엮을 수 있는 전설과 설화가 풍부하다. 선유도에는 커다란 바위 봉우리가 두 개 있다. 멀리서 보면 코끼리가 엎드려 있는 모습과도 같다. 두 부부가 섬으로 유배를 와서 임금이 불러주길 애타게 기다리다가 돌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망주봉은 시방도 저 물길 넘어 어딘가에 오실 고운님을 바라듯이 성군을 기다기고 서 있다.또 하나는 장자할매 설화이이다. 장자도에는 장자할매 바위가 있다. 장자교를 걸어가다 멀리 바라보면 대장도와 장자도가 보인다. 작은 몽돌이 깨알처럼 펼쳐있는 해변을 따라 걷다 길위로 올라서면 갑자기 눈에 확 들어오는 바위가 있다. 신비스런 모습으로 산 중턱에 서 있는 바위는 먼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장자할매는 남편이 공부를 좋아해서 자신을 희생하며 뒷바라지를 많이 해줬다. 한양에 갔던 남편이 과거에 급제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고 밥상을 차려들고 맞이하려 갔는데 남편의 뒤를 따라오는 여자가 있어 속상한 나머지 순간 돌이 되어버렸다. 마주오던 남편과 남편을 따라오던 식솔들도 졸지에 돌이 되어버렸다. 돌이 되어서 지금도 제자리에 서있다. 장자할매 바위와 장자할배 바위 전설이 바닷바람에 실려 오고가는 뱃사람과 섬사람들 마음에 돌처럼 박혀졌고 지금껏 전해져 오고있다.고군산군도는 군산시민들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전라북도를 위해서 나아가 우리나라의 문화관광산업 활성화 차원에서도 콘텐츠 차원에서 기획돼야 한다. 그래서 세계인들이 와도 손색이 없는 공간으로 거듭나야한다. 중국에는 주산군도가 있다. 그곳은 관음성지다. 한 해동안 150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간다고 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고군산군도는 자연풍광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스토리텔링이 되는 설화를 살펴보더라도 주산군도 못지않게 관광자원화 될 가능성이 높다.뿐만 아니라 훌륭한 은유를 띠고 있다. 섬이 산처럼 무리지어있는 곳 군산, 각각의 섬과 각각의 산 사이에는 거리가 있어야 섬이고 산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아름다움으로 어우러지는 자연의 모습을 고군산군도를 통해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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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6.14 23:02

[고창 신림면 입전마을]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같이' 주민들 한마음으로 쌓는 행복

가만히 서 있으면 머리에 까치 앉어. 이놈의 것, 징허게 말을 안들어.초여름 따까운 햇볕이 내리쬐는 마을 골목길, 예닐곱 사람들이 돌담을 쌓고 있다. 누구는 돌을 헐고, 누구는 돌을 나르고, 누구는 담장 뽐새를 갸늠해보고, 누구는 돌을 쌓는다. 누구 하나 게으름피우지 않고 각자 제 할 일들을 한다. 그래도 칠순을 훌쩍 넘긴 고광필 씨는 불만인 모양으로 다그친다. 다그치는 말 뽐새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내뱉는 농담 섞인 추임새인지라 마을 사람들은 웃어 듣기도 하고 무시해버리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일하는 맛도 나고 흥겹다.△몇몇이 의기투합해 시작요새 참 보기 드물게 신바람 나 울력하는 사람들은 고창군 신림면 입전마을 사람들이다. 마을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불과 1년 전부터다. 뒤로 방장산과 용추폭포가 있으며 경관이 아름다운 농촌마을인데 옥의 티랄까, 안타깝게도 고압선 송전탑이 마을을 가로질러 간다. 그것도 선로가 두 개씩이나 된다. 하나는 영광 원자력발전소에서 뻗쳐나와 대전으로 가는 마을 앞 송전탑이고, 다른 하나는 마을 뒷산 중턱으로 이어지는 KTX 송전탑이다.마을 어르신들이 왜 그대로 수용했는지 모르겠어요. 원래 흥덕 쪽으로 지나게끔 계획되었다는데 이쪽으로 삥 돌아가고 있거든요. KTX 철탑은 녹색으로 칠해놔서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아 그나마 나은데.이 마을 출신으로 1년 전에 귀향한 이장 이종만 씨의 말이다. 약속이라도 했듯이 이장보다 보름 일찍 귀향한 이도 있었으니 그이는 마을 총무를 맡고 있는 허예실 씨다. 이들이 동시에 귀향함으로써 마을에 일이 나기 시작했다.토박이로 살아오는 고광필 씨에게는 마을의 변화를 위해 어떻게 좀 움직였으면 하는 마음이 늘상 있었는데 나이도 먹고 하니 추진 동력이 없던 차에 쌍피로 들어온 이 두 사람이야말로 천군만마인 셈이다.△자발적으로 움직이는 마을 사람들마을은 참 좋은 데 철탑 때문에.예전에는 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꼭 이런 말을 내뱉곤 했다. 그러나 이따금씩 고향을 방문하는 출향민들은 1년 동안의 변화에 놀라곤 한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고광필, 이종만, 허예실 씨 등 동네사람들이 마을의 변화를 고민하면서 문화사업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곧바로 색깔있는 마을 만들기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홍수미, 신용운, 진교돈, 정향숙, 신용엽 씨 등도 입전마을 추진위원들이다. 50대의 젊은 사람들이 주축이다.이들은 무엇보다도 땅만 파면 나오는 마을의 돌 자산을 이용해 마을 담장 전체를 돌담으로 쌓기로 했다. 오래 전부터 마을은 돌담 투성이였고, 1970년대 새마을운동 때 안길을 넓힐 때도 브로크담을 쌓지 않고 돌담의 전통을 이었다. 그러던 것이 돌담이 점차 사라지게 되자 마을의 키워드로 돌담문화를 생각한 것이다. 돌담 자체도 중요하지만 돌담을 쌓을 수 있는 기술의 전수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나중에라도 더 쌓거나 보수할 일이 있으면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쌓을 수 있단다. 돌담 쌓기의 노하우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고광필 씨다.잘 모르는 젊은 사람들은 돌담을 쌓아가면서 면 맞추는 데에만 신경을 쓰는데 각을 맞춰야 혀, 각을. 45도로 마주치게 각을 맞추면서 쌓아야 돌들이 서로 맞물리면서 무너지지 않지.△돌담문화는 갓밭등의 얼굴돌담에 속삭이는 햇살같이. 마을회관에 걸려 있는 현수막 글귀다. 올해 농어촌희망재단에서 주관하는 농촌지원사업을 추진하면서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표현하였다.돌담문화는 이제 입전마을의 얼굴이고 상징이 될 것이다. 이 마을의 돌담문화는 마을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만들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올해에 계속 돌담을 쌓아갈 작정이다. 마을 사람들은 한창 농사일에 바쁜 농번기인데도 마다 않고 나와서 함께 울력을 한다. 자기일이 있어서 못 나오거나 늦으만치 나오면 서로 불편할 정도로 군시렁대는 게 마을 풍경의 한 모습이기도 한데, 입전마을 사람들은 그러지 않고 서로 편하게 대하며 협력하는 마음 씀씀이가 인상적이다.이 날도 진교돈 씨는 마을 앞 모내기 논일을 도와주다 뒤늦게 참여했다. 반갑게 맞이한다.이들의 마음은 돌담을 따라 마을 전체의 일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뒷산에서 구절초를 뽑아다 심고, 어떤 어르신은 자기네 집의 작약을 옮겨주고, 또 어떤 사람들은 집에 있는 채송화나 봉선화 씨들을 심어주니 그야말로 마을정원이 이쁘게 조성되고 있다.△다채로운 사람들 모여한 300미터되는 마을 진입로가 지금은 넓잖아요. 옛날에 넓혔지요.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땅주인들이 야금야금 파먹으며 좁아졌어요. 안되겠다 싶어 4명이서 땅 주인들을 설득하여 어렵게 어렵게 넒은 길로 다시 복구시켜놨지요. 한 5년 전쯤의 일이에요.이장의 말이다. 설득은 마을공동체의 필수적인 과정이다. 애로사항도 많고 마을 사람들이 다 내맘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는 와중에 마을 경관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도 변해간다. 입전마을 사람들의 돌담문화는 상부상조의 미덕으로 쌓아가고 있다. 사소한 것이라도 누구네집에 도와줘야 할 일이 있으면 당장 함께 해결해준다. 각자도생으로 자기일 하느라 허덕이는 게 농촌의 또다른 풍경인데도, 이 마을 사람들은 상생의 미담으로 서로 끈끈하게 연결하고 있다.1970년대에 30여 가구 되던 마을이 지금은 16가구다. 그나마 토박이집은 다섯집에 불과하다. 외지에 나갔다 들어온 집이 네집이고, 연고없는 귀촌귀농자 집이 일곱집이다. 귀농귀촌자가 비중이 높다. 그리고 대부분 논농사를 하지만 사람들이 다채롭다. 도공, 그래픽디자이너, 곤충사업자, 경찰, 특수작물 농가, 포크레인 기사, 그리고 책이 있는 풍경의 집주인 문학평론가 등, 그럼에도 이들은 잘 뭉친다. 대보름날 행사에는 출향민들이 내려와 함께 논다.△너무 행복하고 좋아요돌담을 쌓으면서도 마을 사람들은 내년에 5억 원짜리 창조적 마을만들기 사업을 따오려고 주민 역량강화를 위해 현장포럼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방장산 자락에 자리잡은 마을은 돌 외에도 용추폭포, 전통우물, 열녀비 등 마을자원이 풍부하다. 산간에는 절도 있고 용하다는 무당집도 있다. 장성으로 넘어가는 파릿재의 전설도 마을의 콘텐츠다. 옛날에 우시장 가는 산길에 도적들에게 많이 털리고 전쟁 통에는 민간인들이 학살당해 소나무가 빨갛게 자란다는 썰도 전해진다.입전(笠田)은 토박이말로 갓밭등이다. 갓밭등에 동네 보배가 있다. 이장이 자랑스러워 하는 별칭이다. 허예실 씨를 두고 하는 말이다. 허 씨는 동네 사람들을 다 오빠라고 부르는 것 같다. 심지어는 스무살 정도 나이차가 나는 고광필 씨에게도 거침없이 오빠라 한다. 친구 오빠이기 때문이란다. 붙임성 있고 마을일을 잘 하는지라 오빠들도 좋아한다. 컴퓨터 그래픽 기능을 가지고 있는 허 씨는 타일도 전문가여서 회관 담장에 타일벽화를 할 계획이다. 이게 다 돌담문화의 씨줄날줄이다.마을이 너무 변했어요. 돌담 쌓는 게 행복하고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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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6.07 23:02

[전주 '문화파출소 덕진'] 유휴 '동네 치안센터', 생활밀착형 문화예술 공간으로

문화파출소 덕진이라는 생소한 간판이 걸려있다. 분명 독수리 간판을 한 파출소 건물인데, 드로잉이며, 플라워데코며, 소설 쓰기 등 문화예술 강좌를 진행한다고 한다. 뭐하는 곳이지? 혹시 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파출소로 들어온다. 그렇게 들어온 10명 중 9명은 동그래진 눈으로 여기 파출소 맞아요? 질문을 던진다. 파출소라는 단어에 시간이 쌓아올린 편견 때문일까?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 여럿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 함께 읽을 수 있는 책과 따뜻한 조명이 존재하는 파출소 공간을 사람들은 낯설게만 느끼는 듯하다.△ 온기를 잃어버린 유휴 공간, 파출소치안기능 유지를 위해, 주민들의 접근성이 높은 생활밀착 공간에 파출소는 자리한다. 그만큼 파출소는 주민들의 발길이 가 닿는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주민들에게 더 가까이 가겠다며 꽤 오래전엔 담장도 허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출소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낯선 공간이었고, 가까이 하기에 어려운 공간이었다.그래서였을까? 2004년 파출소 효율화 정책의 시행으로 2~3개의 파출소가 지구대로 통합하게 된다. 이 때 남은 건물을 개조하여 치안센터를 만들게 되는데, 치안센터는 24시간 근무가 아닌 주간 근무 위주의 민원상담 전용공간으로 기능하면서 사람들의 들고 남이 없는 유휴공간에 가까운 시설이 되었다. 제 기능을 상실한 공간은 점점 사람의 온기를 잃기 시작한다.△ 경찰청과 문체부, 전혀 다른 존재들의 이유 있는 상상사람의 온기를 잃어버린 파출소는 국가 재산관리 주체인 기획재정부에 인계되어 공개매각을 거치는 작업이 진행됐다. 얼마 전까지 우리의 치안을 담당했던 파출소는 철거되거나 개인 소유의 공간이 되기 시작했다. 전주의 경우도 송천동에서 동물원으로 들어가는 오르막길에 위치했던 파출소가 지금은 카페로, 관통로 대로변에 있던 파출소가 악기점과 법률사무소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유휴 파출소의 공익적 활용 방안을 마련하는 문제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고,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경찰청.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부처가 만나 이유 있는 상상을 시작했다. 생활밀착형 문화예술교육의 운영을 통해 주민들의 자발적 예술 활동 공간으로 파출소를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경찰청은 공간의 활용 등 하드웨어 부분을, 문체부는 인력, 프로그램, 공간조성 등 소프트웨어의 협력을 통해 그 간의 치안기능에서 지역 문화예술 커뮤니티로 파출소의 기능을 확장하겠다는 내용으로 문화파출소 조성 및 운영사업을 시작하게 된다.큰 그림을 경찰청과 문체부가 그렸다면, 밑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해나가는 것은 이제 지역의 역할이다. 문체부와 경찰청이 함께 2016년 3월, 전국 경찰서를 대상으로 한 수요조사를 통해 치안센터 10개소를 문화파출소로 선정하였다.전북의 경우 최근까지 범죄피해자종합지원센터로 활용되던 (구)금암파출소도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할 주관처를 찾고 있었고 전라북도 문화관광재단이 3년간 운영권을 갖게 되면서 2016년 10월, 본격적으로 지역 내 문화파출소 조성을 시작하게 된다.혼자여도 즐겁고, 여럿이와도 즐거운 공간. 더불어 주민들의 이야기가 쌓여 힘이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관점으로 고민하고 설계했다. 만들어진 공간에 힘이 생기려면 사람들의 드나듦과 그들의 향기가 존재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지금의 문화파출소 덕진은 그 향기를 묻히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공간마다 진행되고 있다.△ 문화파출소 덕진서 즐기는 다양한 프로그램1층 때론더불어의 공간에서는 꽃꽂이가 한창이다. 잔잔한 음악이 사람들의 감성을 깨운다. 다들 싱글벙글 꽃향기에 취한 듯 미소가 입가에 가득하다. 강사님이 알려주는 대로 꽃을 배치 하며, 자기만의 방법을 만들어낸다. 2층 볕드는 방에서는 도화지에 꽃을 그리고 있다. 도화지 옆에는 신발이 하나씩 놓여있다. 도화지에 그린 그림을 신발에 옮겨 그려 나만의 작품 신발을 만든다. 처음 잡아보는 붓이 어색하기만 하다. 선생님의 붓놀림을 따라 열심히 꽃그림을 그린다. 이외에도 문화파출소 덕진에서는 프랑스자수, 손바느질, 시 쓰기 등 요일마다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처음 파출소 공간을 낯설어 하던 주민들도 이제는 익숙한 듯 파출소를 드나들고, 다양한 강좌의 구성에 다음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기대하고 기다린다.△ 일상과 연결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 설계 운영대중의 삶에서 예술은, 미술관이나 극장 등 차려입고 가야만 경험할 수 있는 것처럼 삶에서 분리된 소비적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그러나 요즘은 이러한 패러다임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삶과 분리된 예술이 아닌, 일상적 삶 안에서 주체자로 경험하고 향유하는 문화예술로 생활문화라는 개념이 만들어 지고 확산되고 있다. 문화파출소는 지역주민들의 생활권 안에 존재하는 공간이다. 지역주민 누구나 쉽게 와서 배울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문화파출소는 일상 속 문화예술이 실천될 수 있는 매개이자 거점으로 역할을 하기 위해 그림을 그려 나가고 있다. 그래서 거창한 예술 활동이 아닌, 바느질, 플라워데코, 소설쓰기 등 누구나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의식주와 연결되는 일상 속 문화예술 활동부터 시작해 주민들의 삶속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문화파출소 덕진, 다른 공간으로 온기 나눌 수 있기를전주 덕진경찰서가 가지고 있는 파출소라는 공간과 전북문화관광재단(문화예술교육팀)이 다년간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하며 축적한 노하우들이 만나 시너지를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가치 있는 사건이다. 이 사건은, 주민들의 치안을 위해 접근성이 좋은 곳에 만들어진 파출소 본래 의미와 역할을 퇴색시키지 않고, 즐거운 방식으로 사람의 온기를 쌓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발휘 할 것으로 기대한다. 지역에 활용가능하고 잠재력이 높은 유휴공간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 사업을 시작으로 온기가 없었던 파출소 공간에 사람의 온기가 가득 채워지고, 그 온기의 전도로 지역에 많은 유휴 공간이 발굴되고 활용되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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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5.31 23:02

[문화&공감] 고창 심원면 사등마을 - 하늘과 땅, 사람 향해 1500년 갚아온 은혜, 자염

뭍이면서 물이고 물이면서 뭍인, 겹침 공간 염전. 겹쳐 있다는 것은 이편이기도 저편이기도, 혹은 아무 편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 폐(閉)는 진즉 예정된 것인가. 뭍에서 물로 염전의 물거울 표면을 파르르 흔들며 부는 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려, 뙤약볕 아래 늙은 염부들이 은빛 거울 속으로 첨벙 들어가고 있다. 그들은 다시 뭍의 세계로 나올 수 있을까? 폐염전 한 귀퉁이에서 훅훅 거친 숨을 터뜨리는, 아직은 살(殺)이 아닌 산 풍경을 그린 책이다.(책읽는 경향, 2010년 3월, 〈소금이 일어나는 물거울, 염전〉)△새로운 소금밭 이야기, 자염(煮鹽)꽤 오래 전 어느 신문에 서평으로 낸 글이다. 유종인 작가가 글을 쓰고 사진 찍고 눌와에서 펴낸 책, 〈소금이 일어나는 물거울 염전〉에 대한 짧디 짧은 서평이다. 그 많은 책 가운데 뭍도 아니고 물도 아닌 갯벌, 염전에 대한 책이라니, 세계적인 갯벌을 가진 고창, 바닷가 해리에서 태어난 탓이다.고창은 염전의 고장이다. 1900년 이후 대규모 간척 사업이 일본인들의 손으로, 우리 손으로 벌어진 흔적이다. 바다로부터 땅을 얻기 위한 쟁투(爭鬪)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었다. 깊이를 모르는 바다에 등짐으로 한짐 한짐 산을 허물고 들을 파내어 들이 붓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 끝없는 싸움의 결과는 세 갈래다. 삼대가 망하든, 들이 되든, 염전이 되든이다. 들이든 염전이든 땅이 되는 그 갈래야말로 삼대가 흥청거리고도 남을 일. 염전에 대한 소리소문은 어렸던 나에게도 장대한 드라마로 들렸을 것이다. 그 천일염전만 알고 살았다. 다시 고향에 돌아와 어른의 눈으로 본 새로운 소금밭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자염(煮鹽)이다.△은혜갚은 소금, 보은염 이운행렬로 이어져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규모로 형성된 천일염전과 달리, 자염은 우리나라 서해안 너른 갯벌에서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는 소금이다. 고창군 심원면 사등마을 검당포에는 독특한 자염짓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무려 1500년이다. 호남을 대표하는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선사에 얽힌 이야기다. 577년 백제 위덕왕 시절, 검단스님은 당시 민중들에게는 아주 낯선 불교라는 새로운 믿음체계를 어떻게 전해줄까, 고민했다. 종교 안에 삶의 방편, 곤궁한 생활을 타개할 새로운 신기술 전수를 끼워 넣는다. 그 한 가지가 바로 소금 굽는 방법의 전수다. 소금이야말로 대사작용의 기본일 뿐 아니라 모든 음식의 기본이다.물론 이 땅에서 검단스님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소금은 만들어왔겠지만, 그가 전한 자염의 제염방식은 획기적인 것이었으리라. 호구를 해결해준 스님의 덕망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을 터, 오늘날 대 가람 선운사가 이렇게 자리 잡을 수 있게 된 묘책이었을 것이다.그 흔적이 해마다 봄 가을이면 자염으로 소금을 짓는 사등마을 사람들이 산 넘어 선운사에 농사지은 자염을 공양하는 보은염 이운행사로 남아있다. 검당포라는 지명 또한 말없이 선운사 검단스님과 뿌리깊은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벌막에서 갯벌과 바람과 함께 한올 한올 엉겨낸 소금 알갱이모래가 많아 붙여진 이름 모랫등, 사등마을에서 한창 소금을 구워내던 때에는 제법 큰 지역에 300여 호가 넘었다고 한다. 동학의 거대한 불길이 온 고창 땅을 휩쓸고 그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서 말없이 흥건하던 무술년(1896년)이었다. 거대한 해일이 밀려와 마을은 통째 사라지고, 겨우겨우 남은 사람들이 지금 이 모랫등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사등마을에는 자염박물관이 있다. 마을 집집마다 간직하던 자염도구들을 내어놓고 소금이 태어나는 과정을 종이인형으로, 그림으로 쉽게 풀어 내어놓았다. 박물관 앞마당에는 이미 사라지고 만 벌막도 재현해놓았다. 선운사에 이르는 길다란 만(灣)을 따라 수십 수백에 달라던 벌막은 이제 대문안벌, 막벌, 새벌, 안벌 같이 지명으로 흔적만 남았다. 작은 집 한 채만한 그 벌막에서 염부들은, 소금기 머금은 갯벌흙을 걷어내 섯구덩이에 맑게 거르고 그 거른 염도 높은 물을 길러 커다란 무쇠솥(지금은 네모난 철판 솥이다)에 넣고 불땀 좋은 불길로 끓여내, 한올 한올 소금을 엉겨냈을 것이다.△체험관광으로 날개 다는 슬로푸드 사등마을그 소금 짓는 풍경이 다시 살아났다. 그야말로 산풍경(살풍경이 아닌)은 사등에서도 고스란하다. 전라북도가 지역의 이야기와 전통이 깃든 음식으로 마을을 되살리자는 전북형 슬로푸드마을에 2015년 선정되면서부터 급물살을 탄다. 체험 관광형이라는 수식이 붙은 이 마을재생사업은 그동안 마을 자원을 잘 꾸며 박물관은 물론 사라진 벌막까지 재현해놓은 그 바탕 위에서 시작되었다. 그동안 마을 사람들이 잘 다듬어온 자염이라는 마을 자원에, 이제 체험과 관광이라는 날개를 달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슬로푸드마을에 선정되고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80대 어르신부터 바다 일에 틈이라고는 하나 없는 장년층 주민까지, 그동안 마을이 정체된 아쉬움을 단번에 풀어내려 내놓는 의견이 끝이 없었어요. 그 의견 하나하나 서로 귀 기울여 듣고 중요한, 가장 시급한 것들부터 차례를 정해나갔죠. 무급 마을사무장으로 마을이 정한 방향을 지켜가는 정정선(56) 씨의 말이다.△자염, 인류에 내린 하늘의 선물보따리를 풀며서로 듣고 말하며 사등마을 사람들의 고민이 하나하나 실현되고 있다. 지난해 완공한 자염체험관은 전통방식으로 자염만들기, 오색 자염 만들기부터 미니어처 작은 벌막 만들기, 조개 공예 등 마을 자원을 체험으로 연계한 노는 듯 공부하는 체계를 잡았다. 더불어 마을에서 운영하는 검당팬션에서 편안한 하루를 묵어갈 수도 있다. 자염이 밑간이 되고 해풍이 들녘에 내린 풍요로운 산물을 마을 아짐들의 솜씨로 다듬어 올린 자연밥상을 기대한다. 복분자에 장어 일품요리라면 두말할 것 없으리.사등마을의 다음 차례는 브랜딩한 자염의 홍보 마케팅이다. 하늘염 상품으로 자염 선물세트를 구성했고, 국제 슬로푸르 좋은 먹거리 맛의 방주에 등재한 사등마을 특산 칠게젓갈이 상품화 채비를 마쳤다. 더불어 자염체험관과 자염박물관, 검당팬션의 활성화다. 그러고 나서 본격적인 체험 휴양체험마을로 자리잡는 것이다. 자염으로 지어낸 자연음식 밥상으로 편안한 쉼으로 세상과 만나려는 것이다. 근디, 자염이 왜 좋은지 아요? 정 사무장은 사등의 자염은 염도가 낮고 무기질이 많아, 피를 맑게 하고 피부를 건강하게 한다, 염증치료에도 효험이 크다고 한다.자염에 얽힌 역사며, 스토리텔링이며, 상품화며, 체험이며, 소득과 마을의 풍요에 앞선 가치, 자염만의 가치를 놓칠 수 없다. 자염이 좋은 것이다. 인류에 내린 하늘의 선물이니.이대건 책마을해리 촌장※시민기자가 참여하는 문화&공감은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이대건 책마을해리 촌장, 문성희 문화파출소 문화보안관, 고길섶 문화비평가, 문정현 역사문화연구가가 차례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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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5.24 23:02

[문화&공감] 극단 무주풍경과 앞섬마을 사람들

무주는 산골 중의 산골이다. 첩첩산중에 섬이 있다. 무주읍 향로봉 아래에 사행천의 금강 물줄기가 휘감는 내도리 마을. 사람들은 앞섬(전도)이라 불러왔다. 무주읍에서 터널을 지나면, 무릉도원의 전경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땅이다. 천혜의 청정지역이다. 무주 구천동을 배경으로 하여 여러 작품을 낸 영화감독 최하원 씨가 1981년에 쓴 한 일간지 기고문에서는 앞섬마을을 예찬했을 정도다. 수줍은 촌색시처럼 숨어 있다 돌연 나타나는 듯한 향토색 짙은 이 신비로운 마을이라 썼다. 올해에는 앞섬마을에 극단 무주풍경 사람들이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일까.극단 무주풍경은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표창을 받는 등 예술감독으로서 활동 경력이 화려한 박광태(53) 씨가 2013년 12월에 창단했다. 그 해에 무주반딧불축제 총감독을 맡으면서 무주에 반했던 모양이다. 무주군민예술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무주풍경은 단원들이 전문 연극배우가 아니다. 박 감독과, 서울에 있을 때 연극배우 활동을 했다는 귀촌인 백수정(36) 씨 한 사람 빼고는 모두 연극과는 무관하게 생활해왔던 무주의 보통사람들이다.△연극은 생활예술이다농부이자 관광해설사이면서 이장인 조명제(59) 씨, 공무원인 김정미(58) 씨, 사회복지사이자 관광길잡이인 송미헌(52) 씨, 농부이며 화가이자 무속인인 양상모(49) 씨, 교사인 정현선(36) 씨, 사회복지사인 김상은(28) 씨, 그리고 결혼이주여성이자 앞섬체험센터 사무장인 김조이(29) 씨 등 8명이 단원이다. 단원 공개모집에 놀랍게도 49명이 응시를 했으며 그 중 30명이 선정되었고, 현재의 이 8명은 발성과 워킹 등 강도 높은 기본기 연습과정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박 감독의 철학은 뚜렷해보인다.무주 산골에서 극단을 창단하게 된 것은 연극을 특별한 사람들의 행위가 아니라 생활예술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누구나 삶 속에서 즐길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삶을 돌아보고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해요. 배려하고 향기나는 삶이 되도록 말입니다. 단원들이 밤 늦게까지 연습하곤 하는데 시골에서 연극한답시고 생활을 제멋대로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지지를 받도록 행동해야 하고요. 좁은 지역사회에서 단원들에 대한 평도 좋아야 사람들이 연극을 보러 올테니까요. 생활윤리랄까, 나는 이걸 단원들에게 아주 강조합니다.△극단 무주풍경, 무주의 보통 사람들실제로 박 감독은 단원들의 가족을 다 만나보았다. 신뢰를 주기 위해서였다. 그 덕분인지 창단 1년만인 2014년 12월에 무주읍내의 예체문화관에서 등신과 머저리로 창단공연을 할 때 단원 가족들의 도움이 컸다. 200석 공간이 꽉 찼고 반응도 좋았다. 창단 3년이 된 오늘, 그동안 모두 네 작품을 공연해 올해 12월이면 연극협회에 등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감개무량한 일이다. 산골 무주에서 문화 기반이 취약해 연극 활동에 목말라 했던 사람들이다. 어떤 이는 오디션 때 벅찬 감동으로 눈물까지 흘렸단다. 단원들 모두는 자기를 위해서 극단이 생겨났다고 자부할 정도다.양상모 씨는 앞섬마을 사람이다. 연극 활동은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초등학생들 연극을 지도한다. 송미헌 씨는 사회복지사 일에 지쳐 있었으나 연극 활동한 이후 사람들이 옛날보다 표정이 좋아졌다고 말한단다. 한국생활 9년차인 이주여성 김조이 씨는 모국 필리핀에 있을 때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연극이 꿈이었다. 뜻하지 않게 한국에 와서 꿈을 이루게 되다니 멋진 일이다. 한국말도 많이 배울 수 있어 좋단다. 아이가 셋이다보니 연습할 때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경우도 있다. 박 감독은 조이 씨가 한국말은 서툰데, 감정이나 느낌의 표현들이 좋고 연기를 잘 해요 라고 말한다.△앞섬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 속으로무주풍경 사람들은 자신들의 연극 활동에만 몰입하는 게 아니라 앞섬마을에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언제 어떻게 개발의 광풍이 불어닥칠지도 모르나 그나마 다행인 건 생태적 서식환경이 까다로운 반딧불이 앞섬마을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통해 문화예술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며 자연생태 환경을 지켜내겠다는 생각이다. 이들이 환경 활동가들인 것은 아니지만 주민들과 함께 하는 문화예술적 소통과 공감 활동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80가구에 주민수 100여 명의 앞섬마을. 강에는 배가사리, 쏘가리, 빠가, 메기 류의 물고기들이 많이 산다. 마을 입구에 어죽, 매운탕, 회를 파는 식당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대개 복숭아 농사를 짓는다. 농경생활에 각자 먹고 살기 바쁘다. 사행천을 닮았을까, 오래된 삶의 굽이쳐 온 이야기들이 그들에게 있다.△1976년의 트라우마무엇보다도 마을 사람들에게 치유해야 할 깊은 트라우마가 있다. 올해 40주년이 된 참사가 마을에 있었다. 1976년 6월 8일 금강을 건너 귀가하던 학생과 주민 18명이 급류에 휘말려 나룻배가 전복되는 바람에 어린 학생 15명을 포함하여 18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당시엔 112가구에 652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한 세대가 흘러간 오래 전의 일이지만 주민들은 이 일만큼은 잊지 않고 있다. 당시 목숨을 잃은 13살의 한 소녀는 사고 전 일기장에 이렇게 써놓았다.오늘은 비가 와서 마음이 우울하다. 선생님은 비가 오니까 우리들을 일찍 돌아가라고 하시겠지. 나는 내 친구들처럼 읍내에 살면 그러지 않을텐데...(4월 28일), 오늘도 학교에 가면서 발을 걷고 물을 건넸다. 매일 신을 벗어야 하고 다시 말려서 신고 가고 하니 때때로 지각을 하게 된다.(4월 30일)△가르치기보다 끄집어내무주풍경 사람들은 앞섬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주민들이 참여하는 연극판을 벌여보려 한다. 농사짓기 바쁜 주민들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림, 노래, 춤, 벽화 등 주민들 서로가 친화력을 가질 수 있도록 마음을 털어놓는 프로그램 활동들을 해왔다. 박 감독은 천천히 마을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고자 한다. 주민들의 삶 속의 이야기나 일상대화들을 대사로,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들을 하게 해서 대사로 엮어내려고 합니다. 가르치기보다 끄집어내서... 전북문화관광재단의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으로 올해에 앞섬마을 사람들과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내년에는 뭔가 가시적인 성과가 있기를 기대해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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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1.29 23:02

[문화&공감] 청년작가 김선미·박정경 씨

서늘한 늦가을 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초겨울의 냄새가 바람에 실려 온다. 늦가을 빛 감도는 군산의 내항과 고즈넉한 월명동 돌담길을 거닐며 걸어본다. 혼자여도 외롭지 않았던 원도심의 명량한 추억도 동행하며 청년작가 김선미, 박정경을 만나 순수한 열정을 함께 얻는다.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예술의 언어로 배운다.온몸을 간질이는 바람과 티 없이 맑고 높은 하늘이 늦가을 넘어 초겨울 문턱에 선 군산의 모습과 그녀들의 미소들은 무언가를 상상하게 만든다.김선미(34)작가는 군산에서 태어나 군산에서 중학교까지 마치고 서울로 대학에 갈 때까지 그녀의 추억은 또 다른 상상의 공간으로 군산을 해석하고, 박정경(35)작가는 전주에서 자라나서 서울에서의 대학시절, 독일의 유학시절 함께했던 사람들과의 이야기, 그리고 그에 대한 답장은 이내 대화를 나누듯 줄줄이 이어지고 마침내 하나의 소통으로 창조된다.그녀들의 무수한 이야기 속에는 전북의 그리움이 있고, 고향을 향한 사랑이 있고, 자연의 아름다움이 있고, 안타까운 사회가 있고, 소통의 고뇌가 있다.청춘남여의 애틋한 사랑을 닮았으면서도 일상부터 사회문제, 자연의 변화까지 가슴으로 나눌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가지에 매달려 각기 다른 속도로 물들어 가는 나뭇잎을 바라보듯이 한 걸은 한 걸음마다 열정이 달라진다.김선미 작가는 군산에서의 작업을 통해 무엇을 찾았다기 보다는 무엇을 발견 했다고 하는 것이 저한테는 어울릴 것 같습니다. 저는 군산태생으로 19살 때 까지 여기서 살았고, 19살 이후부터는 서울에서 쭉 살았는데요. 올해 군산에서의 작업 활동을 통해 20살 이전엔 보지 못한 군산의 모습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지역의 모습과 성인이 된 후의 지역의 모습은 많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 다름이 처음엔 많이 어색했지만, 어색함을 다시 익숙함으로 바꾸는 동안 군산에서의 작업이 시작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라고 전한다또한 박정경 작가는 오래된 도심을 소재로 회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군산은 전주에 이어 두 번째로 찾은 도시인데요. 운 좋게도 제가 원래 가지고 있던 관심사와 통하는 부분이 있어 군산에 오게 되었고요. 군산에서 지역을 이해해 볼 수 있는지에 대해 배웠어요. 그와 동시에 작업을 어떻게 이어 나갈 수 있는 방향성에 대해서 찾았고요 라며 군산에서의 작업에 감사해했다.이렇듯 지역의 역사와 오랫동안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향기를 공존하고 느껴지며 그녀들만의 독특한 예술적 방식으로 해석하는 모습을 공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들의 작업과정(情)에서 도시 공동체와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다양한 방식으로 도시의 과거와 오늘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연계돼 있는 다양한 예술적 언어의 구조도 들춰볼 수 있다.30대라 말하기 어렵게 동안인 그녀들의 어투는 논리적이고 단호했다. 그러나 그녀들의 감성 혼은 시간이 뒷걸음치는 군산 골목길을 닮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골목길에는 당대의 문화가 이야기로 녹아있기 마련이고, 거기에는 남다른 의미가 부여될 것이다. 버려지고 사멸하는 물건들 혹은 사라지는 이야기들, 이러한 소소한 것들로 가득한 우리만의 문화를 청년이라는 문화적 언어로 그녀들은 변신에 변신을 반복한다.이처럼 김선미,박정경 작가는 군산이라는 무관심이 만연한 도시에서 예술의 열정을 공유하며, 그곳에선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며 번잡하고 거창하지 않은 소소한 군산의 삶과 청춘의 기억들 확장과 공존하여 소통의 창조를 이어간다.특히 그녀들은 군산에서 작업 중 지역 매칭 및 타 장르 매칭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전한다. 김선미 작가는 보통 작업을 할 때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작업을 하는 편이라 서요. 그리고 이번에 협업프로그램 같은 경우는 시작 할 때부터 저 스스로도 기대가 많았습니다. 평소 영상 작업을 하면서 음악에 대한 부족함을 느꼈었는데. 군산에서 음악을 작업하는 션만을 소개받아서 5월부터 음악레슨도 받으면서 8월 협업전시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마지막 전시 때 영상에서는 한곡정도는 제가 작곡을 해보려고 준비 중입니다 라고 전한다.더불어 박정경 작가는 군산에서 사는 내내 소통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일상생활이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하루하루 길을 걸으면서 사물을 관찰하면서, 혼자 작업을 하는 것이 위주인 저로서는 새로움 경험이었고 타 장르에 대해 이해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또 자신의 작업을 다양하게 넓혀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라면서 군산의 추억을 이야기 한다.오늘도 김선미 박경정 청년작가들은 허름한 작업실 모퉁이에 앉아 예술이라는 소통과 고뇌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들은 누군가와의 소통을 훑어보면서 열정의 생각들을 쌓아 갈수 있을 것이다. 매일 같이 누런 이면지 종이에다 자신만의 언어를 그리고 또 그리고 새로운 소통에 늘 동고동락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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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1.22 23:02

[문화&공감] 고창 학교-마을 진로교육박람회

온 마을사람이 아이 하나를 함께 키운다 고 한다. 아니, 했다가 맞다. 마을의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마을에서 키울 아이들의 흔적을 찾기 어려워진 세태에, 마을사람들이 어울려 아이를 키운다니, 요즘 세태에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다.배움을 매개로 학교와 마을공동체가 하나로 어울리던 시절이 아스라하다. 마을 사람 모두가 하나로 뛰어놀던 학교 운동회의 왁자지껄한 풍경, 마을 행사였던 학교 입학식이며 졸업식 풍경. 이제는 모두 옛 이야기 속에 남았다.△야단법석에서 세상을 배웠던 그 많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 그림책으로도 동화책으로도 꽤 이름이 알려진 독일 옛 이야기이다. 어떤 마을에 쥐가 들끓어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대책을 찾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때 마을에 찾아온 남루한 차림의 사나이, 피리부는 사나이가 제안한다. 금화 천냥! 마을사람들은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이의 피리소리를 따라 쥐떼가 모두 사라진다. 간단히 문제가 해결되자 마을사람들은 약속을 뒷전으로 물리고 되레 사나이를 쫓아내고 만다. 그런데, 그이가 부는 피리소리를 따라 마을 아이들까지 모두 사라진다. 종적을 감춘 그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우리에게 하멜른의 피리소리는 수도권 집중, 경제적 불균형이 낳은 인문불평등, 교육불평등이다. 사라진 아이들, 점점 더 사라지는 아이들을 되찾아오는 길은 영영 없는 것일까.△마을과 학교가 어울려 부르는 화음, 방과후마을학교부터마을에서 학교에서 천천히 들려오는 피리소리. 다시 아이들을 불러 모으는 건강한 야단법석이 피어나고 있다. 학교와 마을이 함께 아이들을 키우는 그 방식이다. 전라북도교육청(교육감 김승환)에서 몇 해 전부터 진행하는 마을학교프로그램이, 대표적인 학교와 마을 협력사례다. 특히 초등학교에서 방과후마을학교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학교의 정규 교과시간이 끝나면, 그 뒤 방과후 프로그램을 마을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책임지는 방식이다. 교사들은 교과 수업을 준비하거나 점검하는데 더 집중하고, 그 예산과 역할을 마을주체로 확장하는 것이다. 학교 교육의 일부를 마을이 나눠 갖는 방식, 그야말로 마을이 아이를 키우는 것이다. 이 추세는 마을이 교육의 한 주체로 자리잡아가는 만큼 확산하는 추세다. 마을에 누가 있어, 교육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이 간단치 않은 문제를 해결해가는 사건이 고창에서 벌어지고 있다. 고창교육지원청(교육장 김국재)과 고창공동체협의회가 함께 준비해, 지난 11월 11일과 12일 이틀 동안 진행한 〈학교-마을진로교육박람회〉이다.△마을과 학교, 지역의 기관이 함께 여는 마을-학교진로교육박람회군단위 작은 커뮤니티에서 교육박람회를 진행하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진로와 연계한 교육박람회는 더욱 드물다. 중심이 되는 교육기관(지역교육지원청)만이 아니라 지역의 크고 작은 공동체들이 함께 준비하는 진로교육박람회는 더더욱 드물다. 학교 교육주체와 마을사람들이 함께 준비해, 지역 어린이청소년들에게 진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진로교육박람회는 작년에 이어 두 번째다. 공간으로는 고창실내체육관이 군립체육관으로 대폭 넓어졌고, 기간도 하루가 더 늘어난 이틀이다. 참여 기관과 공동체가 차린 부스공간도 25개에서 50개로 배가 되었다. 그야말로 괄목상대(刮目相對)다.고창 학교-마을 진로교육박람회는 올 봄 기획을 시작했다. 기획의 시작은 학생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바탕으로 꿈이 실현되도록 돕는 학교 밖 학교 역할(교육장 김국재)로 부터다. 학교 밖 학교란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옛말의 2016년 버전이다.△마을체험과 진로교육이 만나 무한 변신하는 현장스물여덟 개 크고 작은 지역공동체는 마을과 문화, 마을과 음식, 마을과 산업, 마을과 예술로 나뉘어, 각자 공동체가 가진 이야기와 체험거리를 진로와 연계해 배치되었다. 진로와 맥이 닿는 지역의 학교(항공, 원예 등 특성화 고교)와 기관(고창경찰서, 고창소방서, 고창문화원, 35보병사단고창대대, 국제티클럽, 고창청소년복지센터 등)이 함께 자리했다.지난 9월 27일 고창지역 초중고 교사들을 초대해 미니 박람회를 먼저 열었다. 40여학교 60여 교사들이 참여해 고창지역 생산, 가공, 유통, 문화, 예술, 교육 공동체들이 어떤 체험으로 진로와 만나는지 현장에 참여해 열띤 이야기꽃을 피웠다.11월 11일과 12일은 사전신청자 600여명과 현장신청 400여명의 학생, 모두 1000여명의 학생들에 학부모, 교사들이 참여해 대규모 진로체험의 장이 되었다. 고창의 어린이청소년들은 이 자리에서 색깔 있는 농부로, 유기농 우유로 만드는 치즈메이커로, 건강한 보리빵을 만드는 쉐프로, 흙과 물, 불의 감성을 배우는 도자기예술가로, 커피향 전하는 바리스타로, 식용부터 애완까지 다양한 빛깔 곤충연구가로,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천연 화장품을 만드는 아트메이커로, 지역의 소식을 세상에 알리는 기자로, 염색부터 목공까지 생활예술가로 무한 변신해보았다. 하멜른의 피리소리와 함께 사라질지도 모르는 1000명의 아이들이 그 무한변신을 체험하며 무엇을 보았을까? 무엇을 느꼈을까?△지역에서 자란 아이가 지역 일꾼이 되는 건강한 연쇄작용자유학기제 진로체험이 차차 정착되어가고 있다, 학교교육에서 체험교육의 비중이 커져가고 있다 할 때 그 체험교육 공간은 지역이 아니라 대도시 직업체험센터가 전부였다. 지역에서 자라는 어린이청소년들이, 우리에게는 없고 대도시에는 있는 것에 익숙해지는 첫 단추다. 결핍을 먼저 배우는 것이다. 우리 곁에도 이렇게 좋은 삶의 현장이 엄연히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우치는 계기가, 마을사람들과 마을의 기관이 학교와 함께 마련한 진로교육 공간으로부터다. 우리 어버이의 삶이 대한민국 전체를 고루 건강하게 하는 중요한 고리라는 사실을 깨우치는 자리다. 지역에서 나고 자라고 삶의 가치를 배운 아이가 제가 태어난 지역에서 튼실하게 자리잡고 살아가는 건강한 연쇄작용이 시작되는 자리다.마을이 아이를 키운다고? 아직은 아련한 추억 속 이야기다. 그 아스라한 안개가 천천히 걷히고 있다. 방과후마을학교, 어울림학교, 학교-마을진로교육박람회 같은 작은 힘들이 절대로 깨지지 않을 철옹성을 조금씩 허물어뜨리고 있다. 저 가까이에서 하멜른의 피리소리가 다시 들리고, 운동회 왁자지껄 사람들 사이로 아이들 웃음소리가 번지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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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1.15 23:02

[문화&공감] 완주 고산 '뮤직콘테이너'

일종의 대안예술학교이자 음악창작소입니다. 주체적인 음악인들이 맘껏 창작하고, 사람들과 함께 만나고, 하지만, 예술의 테크닉이 전부가 아니고, 음악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함께 느끼고, 성장하는. 이 컨테이너는 그것의 하나의 과정이라 할 수 있죠. 다시 한 번 그 길을 묵묵히 가는 정상현(44)대표의 말이 고산미소시장의 여유로운 휴일 날, 추운바람 가운데서 잠시 비치는 따뜻한 기운처럼 바람 속으로 스쳐갔다.전북지역의 음악인기획자로 지역밴드 음악인들에게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정 대표. 열악한 지역 인디음악시장의 한계 속에서, 스스로 밴드음악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음악인들의 주체적 활동을 통한 지역음악산업 선순환을 위해 노력해온 정 대표는 Made in Jeon-ju, Stayfoolish등으로 자신만의 음악 기획브랜드를 참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묵직하게 만들어왔다. 서울, 부산 등 인디밴드들과의 오랜 교류 속에서 다양한 연대활동을 해왔고, 아이엠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지역인디밴드 앨범제작 및 공연후원을 도와주고 있다.최근까지 전주 구도심에서 악기사를 하던 그는 작년에 완주 고산면으로 집을 옮겼다. 매번 그렇듯이 음악만 할 수 있게 해준다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누구든 만나러가는 그에게 2015년 희소식이 들렸던 것. 완주군에서 폐 컨테이너를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완주 군청 앞에서 컨테이너 미술관으로 쓰던 것을 내어준 것이라 했다. 음악인들 공간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정 대표는 단숨에 고산면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결국 전주의 악기사를 정리하고 집까지 옮겼다.지금 컨테이너를 가장 활발하게 이용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완주군 아이들이다. 정대표가 청소년, 완주를 노래하다라는 프로그램을 완주군청에 신청하면서 전주에서 하고 있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프로그램 Creative Project 전주를 그대로 완주에서도 진행하게 되었다. Creative Project 완주. 2015년 10명 정도였던 아이들은 2016년에는 18명, 4팀으로 늘었고, 누구보다 열심히 컨테이너를 들락날락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지역의 인디밴드들이 1:1 멘토로 청소년밴드를 육성하고 실제 가수들처럼 앨범 제작과 음원 등록까지 해주는 프로그램으로 참여한 중고등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날 정도로 만족도가 아주 높은 프로그램이다.여느 프로그램이나 음악 학원처럼 한 달에 몇 번, 얼마씩의 돈으로 계산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음악을 좋아하는 또래들의 고민이나 꿈도 충분히 나눌 수 있고, 실제 진로까지 지역의 음악선배들이 진정성 있는 멘토링을 통해 음악은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을 함께 한다. 1기들이 다시 2기들을 끌어주는 선순환 속에서 멘토로 참여하는 인디음악인들 또한 스스로 문화예술교육에 참가하고, 지역음악의 토대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주체적인 인디음악인으로서의 자부심도 매우 높다.완주 고산면 컨테이너에는 정대표가 몸담고 있는 고산의 주민협동조합의 조합원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최근 주민들과 함께 진행한 타악 퍼포먼스 타키는 일요일마다 20명이 넘는 주민들이 참여해 발표회 날은 성황을 이루었다.현재 뮤직컨테이너는 5개의 컨테이너로 이루어져 있고, 2개의 악기 연습실과 주민 만화방, LP, CD등이 보관되어 있는 보관실, 악기와 앰프 창고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주민 만화방은, 주민들이 가져다 놓은 만화책뿐 아니라, 연습하다가 쉬는 쉼터이자 휴식공간으로 쓰이고 있다.고산미소시장에는 문화관광형시장사업의 일환으로 청소년문화공간 담벼락이 운영되고 있고, 시장 내의 다양한 프로그램들 또한 연결되어 진행되고 있다. 고산의 주민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커피숍에서는 다양한 공연들이 이루어지고, 매일매일 뮤지션들과 아이들과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만나면서, 뮤직컨테이너와 다양한 활동가들이 고산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11월말이면 나온다는 완주아이들의 음반은 아이들의 창작곡이 담겨져 있다. 엊그제 끝난 완주 타악 퍼포먼스 타키에서도 주민들 하나하나의 두드림이 시장에 가득 퍼졌을 것이다. 사람 하나하나의 마음이 담긴 예술은 그래서 특별하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것이기에. 음악을 통해 자유로운 창작과 삶의 의미를 함께 누리고 싶은 정대표의 마음은 현재진행형이다. 그가 말하는 음악창작소와 대안예술학교의 꿈도 그렇게 한 발짝씩 가까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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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1.08 23:02

[문화&공감] 군산 '아리아 해금연주단'

늦더위 기승에 여름이 길게 느껴지더니 어느새 겨울에 성큼 다가선 계절이다.사색이며 고독이며 수식어가 많이 붙는 계절. 가을에는 유독 많은 풍경이 느리게 흐르는 듯하다.이쯤이면, 추억을 끄집어 낼 수 있는 음악이나 노래 한 두 곡은 찾게 되지 않을까 싶다.이 가을에 정말 잘 어울리는 악기소리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 악기 해금 소리가 제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거친 듯 부드러운 듯 흥에 겨웠다 애절했다가 또 깊어지기도 하고 간지러웠다가 또 깊은 한숨에 서러움 털고 활기찬 희망을 노래하기도 하는 악기 해금의 소리는 가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 하다.한때 유행처럼 해금이 많은 사람들에게 연주되던 시절이 있었다. 일반인에게 다가가기에 다소 어려움이 느껴지지만 우리 음악에 관심을 끌기도 쉬운게 해금이다.연주하는 모습을 한 번만 봐도 그 매력에 푸욱 빠져드는 악기가 해금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아쟁과 해금을 구별하기 어려워한다.소리를 들어보면 구별하는데 도움이 된다. 저음이 잘나는 아쟁에 비해 소리가 높은 편이며, 해학적이며 다양한 음색을 띈 악기이다. 깽깽이, 깡깽이 등 해금에는 별칭이 유독히 많다. 그만큼 사랑을 받는 악기임에 틀림없다.거지깡깽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보통은 일이 잘 안 풀리거나 기분이 좋은 쪽보다는 그 반대의 경우에 많이 쓰인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거지가 밥빌기도 바쁠텐데 깡깽이까지 들고다니면서 연주할 시간이나 여유가 진짜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양에는 길거리의 전문악사(버스커)들이야 이해가 되지만. 여튼 해금(깡깽이)이라는 악기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정서 한 켠에 자리를 잡은 악기임에 틀림없다.군산에 여러 악기의 합주모임이 아닌 오직 해금으로만 승부를 거는 연주단이 있다.아리아 해금연주단이다. 아리아 라는 말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데 아리아의 뜻은 두 가지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첫 번째는 Artists RIsing above Ages(시대를 초월하는 예술가들) 의 약칭이며, 두 번째는 소리의 순 우리말인 아리와 한자 아리따울 아의 결합이다. 아리아 해금연주단은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고자 결성되었으며 사라져가는 우리의 것을 현대식에 맞춰 재해석하고 보존하며 한글과 한자의 결합처럼 옛 문화와 현대문화의 통합을 추구하며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음악을 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고 연주단 대표는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2015년 10월에 창단했으며, 대표인 해금연주자 이정민(원광대 초빙교수-40세)과 이진(21원광대 재학), 이혜정(19전북대 재학), 최새솔(19원광대 재학), 이승미(18원광예고 재학), 김다슬(18원광예고 재학), 홍서영(16군산영광중 재학)로 구성되어 있다.군산에 거주하거나 군산 출신들로 구성, 해금이라는 악기를 일반시민들에게 알리고, 근대문화도시로 이미지를 굳혀나가고 있는 군산의 문화예술의 중심이 되고자 활동을 시작했다.아리아 해금연주단은 2015 원광대학교 해금콘서트 공연, 2016 군산시 청소년 전통문화예술제 공연, 2016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소담소리아트 공연, 2016 익산 차 없는 날 공연 등 각종 공연을 통해 아직 국악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보다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창작곡들을 시작으로 해금의 매력을 전하려 노력하고 있다.구성원들은 말한다.△이진=처음 국악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자연스럽게 판소리 가야금이 떠오르시지 않나요? 저는 아리아해금연주단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국악하면 해금을 떠올릴 수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이혜=해금이라는 악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연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낍니다.△최새솔=무대경험을 통해 연주자로써의 모든 면에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아서 하게 되었습니다.△이승미=해금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해금의 매력적인 소리를 들려주고 또한 무대에서 즐기는 연주자가 되고 싶습니다.△김다슬=해금의 아름다운소리를 많은 사람들한테 들려주고 해금에 대해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홍서영=해금의 숨겨진 매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보여주고 싶습니다.아리아 해금연주단은 아리아의 뜻처럼 우리 음악을 보존하고 발전시켜, 옛 문화와 현대문화의 통합을 추구하려 노력하고 있다.또한 정악, 민속음악, 창작음악 등 전 부문에 걸쳐 시민들의 문화예술 향유 및 발전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각종 크고 작은 공연들을 통해 시민들과의 교류에 힘쓰고 국악의 저변확대 및 대중과 같이 호흡하는 연주단이 되고자 열과 성을 다하고자 한다.아직은 우리의 음악이 국악이라는 특별한 장르로 불리고 있다. 거기다가 우리 음악은 지루하고 대중성 없는 음악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많다. 때로는 그런 편견과 인식이 전문연주자들을 힘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하지만 그럴수록 아리아 해금연주단은 우리의 것, 보다 한국다움을 대중들에게 더욱 내밀 것이고, 서서히 옷깃에 빗물이 스며들 듯 우리의 음악도 그렇게 그들에게 스며들도록 노력할 것이다. 또 아직은 비록 작은 시작이지만 이 작음이 후엔 새로운 국악의 열림의 시작점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갖고 있다.젊은 연주자들답게도 연주단의 이름이 영어와 우리말의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영어로 된 뜻은 아무리 봐도 어려우니 그저 우아함 정도로만 받아주고, 우리말의 의미로만 기억하고 이 가을 해금연주곡 한 번 찾아 들으면서 유독 더웠던 여름만큼이나 추울 것 같은 겨울을 기다려보자.△해금은해금(奚琴)은 당나라때 요하 상류 북쪽에 살던 호족들 중 해(奚) 부족에 속하는 유목민들이 즐기던 악기였다. 해금의 해(奚) 자는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것이 고려 예종 9년(1114)에 중국 송나라에서 들어온 이래 개량제작돼 지금은 우리나라의 전통 악기로 자리 잡았다.아쟁과 더불어 줄을 문질러 소리내는 찰현악기(擦絃樂器)에 속한다. 동양 문화권의 현악기 대부분이 줄을 뜯어 연주하는 발현악기(撥弦樂器)인 관계로 소리의 장시간 지속이 어려운 데 비하여, 해금은 그 소리를 길게 끌어 연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악기와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호흡의 한계성을 지니고 있는 관악기들의 합주에 함께 섞여 숨쉬는 부분의 음향적 공백을 메워 줄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인해 관악 합주에 반드시 편성되는 악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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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1.01 23:02

[문화&공감] 익산 솜리골 작은미술관에 가다

몇 해 전 프랑스 여행 중에 봤던 광경 중 하나를 잊을 수가 없다.철도역을 개조해 미술관으로 만들어 유명한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긴 줄을 기다린 끝에 들어선 미술관 이곳저곳을 기울거리고 있을 때다.북적거리는 인파들 사이로 작은 무리의 어린아이들이 보였다. 알렉상드르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 그림 앞에 교복을 입은 채로 바닥에 주저앉아 각자의 노트에 열심히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그림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그걸 노트에 적고 아이들의 모습이 귀여워 한참을 지켜봤다. 한 시간 가량을 바닥에서 그림을 감상하던 아이들은 가방을 챙겨 다음 그림으로 가는 듯했다. 아이들의 표정은 전문 갤러리 못지않은 진지함이 묻어 있었다.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유명 화가의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그들에게 미술관은 놀이터처럼 보였다.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다. 시립 미술관이 없는 도시들이 수두룩하고 평생 전시회를 가보지 못한 주민들도 많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 미술관, 음악관, 박물관 등 문화예술 시설을 쉽게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지난 21일 익산에 문턱을 낮춘 작은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대도시에 비해 문화예술의 기회가 적은 익산의 평화동(구도심)에 SomRiGol 작은 미술관이 생겼다.SomRiGol 작은 미술관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작은 미술관 조성 운영사업에 전북에서 유일하게 선정돼 유휴공간인 창고 건물을 문화 공간인 작은 미술관으로 조성했다.작은 미술관 사업은 등록미술관이 없거나 미술문화 확산이 절실한 지역 내 주민 접근성이 높은 생활문화공간을 활용해 조성하여 운영하는 시각예술 공간이며, 전시와 부대 프로그램 등 콘텐츠 확보와 실행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특히 국민의 문화격차 해소 위해 생활문화공간, 주민자치센터 등을 작은 미술관으로 설치운영 유도해 미술관 없는 지역의 생활문화공간을 활용한 작은 미술관을 시범 조성해 생활 속 시각예술 체험 확대하는 것이 사업의 취지이자 목표다.SomRiGol 작은 미술관 큐레이터 김은미(41)씨는 5살 꼬마부터 80대 어르신까지 친근하게 찾아올 수 있는 미술관으로 운영하겠다. 미술관은 어려운 공간이 아닌 언제 어느 때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친근한 공간으로 만들겠다 고 운영계획을 밝혔다.미술관으로 개조된 공간은 1930년 지어진 일본식 건물로 옛 익옥수리조합의 창고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등록문화재 181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적벽돌을 쌓아 만든 조적식 슬레이트 건축물로 일제 강점기 역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공간이다. 문화재 지정 이후 보존 상태가 양호해 지역민을 위한 생활 문화공간으로 조성해 다양한 시각 예술 체험을 확대하고자 이번에 작은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하게 된 것이다.설계를 맡은 강미현 건축사는 등록문화재의 건축 양식을 존중하고 작은 공간이 가지는 한계를 넘는 확장을 시도했다고 한다.현재 SomRiGol 작은 미술관 개관전으로 그땐 그랬지 사진전이 10월 21일부터 11월 6일까지 개최되고 있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37점이 전시되고 있다. 주민들이 추억의 앨범에서 꺼내 준 옛날 사진을 보며 과거 우리 부모 세대의 젊은 시절을 잠시 엿보는 것도 좋은 추억 여행이 될 것이다. SomRiGol 작은 미술관은 지역 어르신들이 자원봉사자로 돌아가며 도슨트 역할을 자처하며 관람객을 맞고 있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작은 미술관은 개관 이후 하루 150여명의 관람객이 꾸준히 찾고 있다.우리 동네 미술관 SomRiGol 작은 미술관은 문화예술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문턱은 낮추고 지역민들의 눈높이에 맞춘 누구나 가고 찾고 싶은 우리 동네 미술관으로 만들어가기를 바란다.어려운 문화공간이 아닌 예술 활동을 통한 지역민들과 함께 할 수 있고, 누구나 마음껏 찾아올 수 있는 우리 동네 미술관 SomRiGol 작은 미술관.우리 동네 미술관으로 발길을 옮겨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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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0.25 23:02

[문화&공감] 순창 '책놀이 네 자매'

군대에서 편지가 와도 읽기만 하고 답장을 못해서 한이 되어 이제라도 씁니다. 희출이 낳아 업고 있을 때 보고 싶어도 어른들 무서워 제대로 보지 못한 당신의 모습이 생각납니다.부부인데도 어른들이 보고 있어 신발도 나란히 못 벗어놓고 저녁에 잘 때쯤 이야기 하는 게 전부였죠. 조금만 더 살았으면 우리 부부 여행도 다니고 얼마나 좋았을까요. 좋은 옷 한번 못 입어보고 그렇게 가신 것이 내 생전에 한이 됩니다.우리 천국에서 다시 만나 그때는 오래오래 함께 살아요. 다음 생에서도 당신과 부부의 연을 맺고 싶습니다.순창 인계의 세룡마을에 사는 조분님 할머니의 사연이다. 사별한 남편을 그리워 하는 애틋한 사랑의 편지다. 특별난 사연이 적힌 편지는 아니다. 그러나 조분님 할머니에게는 편지를 이렇게 쓸 수 있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음 짠하게 한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남편 살아 있을 때 자신의 마음을 담아 남편에게 편지 한 장 써보는 게 간절한 소망이었다. 그러나 글을 몰라 남편 생전에 그리하지 못하다가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오래 된 뒤에야 비로소 남편에게 편지를 쓸 수 있었다. 어쩌면 평생 맺힌 한을 풀지 못할 뻔 했다. 살다보니 어쩌다, 아니 행운의 기회가 불쑥 찾아 온 것이다. 그 역할을 해준 이들이 바로 순창의 책놀이 네 자매다.△의기투합, 책놀이 2급 자격증 따내책놀이 네 자매는 굳이 나이순으로 호명해보자면, 왕언니 황호숙(52) 씨, 둘째 김원옥(45) 씨, 셋째 이영화(43) 씨, 그리고 막내 박인순(40) 씨, 이렇게 넷이다. 황호숙 씨는 농사꾼이자 초등 독서논술 교사다. 열린순창 기자 일을 잠시 하기도 했다. 김원옥 씨는 구연동화와 전래놀이 지도사이며 독거노인 돌보미 일을 한다. 이영화 씨는 마트를 운영하다 접고 다른 일을 계획하고 있으며 과거에 유치원 교사를 한 경력이 있다. 박인순 씨는 순창문화원에 근무하고 있다.이들은 지역아동센터 등지에서 각자 활동하다 의기투합해 3년 전 문화지원사업 활동을 위해 책놀이 2급강사 자격증을 따내는 열성을 보이며 책놀이 네 자매로 뭉쳤다. 그렇게 해서 순창지역 몇몇 마을의 할머니들과 만나며 책놀이 여행을 해오고 있는데, 조분님 할머니의 편지 쓰기도 그 과정에서 나온 결실이다.△온갖 재능과 끼로 열정소통책놀이 네 자매는 순창문화원의 이름으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전북문화관광재단에서 주관하는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을 3년째 수행해오고 있다. 그 핵심 프로그램이 책놀이와 그림책 읽기다. 이들은 한 마을의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1년 동안 매주 1회 총 30회 정도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교육은 단순히 참여자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마는 텍스트 읽어주기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니다.무엇보다도 이들은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놀이 교육활동에 대해 자긍심도 강하고 매우 열정적이며 프로그램 내용에 따라 역할 분담이 잘되어 있으면서도 넘칠 정도로 소통을 많이 하며 상호협동적이다.네 자매 중에서 주강사 역할을 하는 황호숙 씨는 할머니들 한 분 한 분 다 박물관이죠. 그이들의 삶을 기록하고 싶어 책놀이 여행을 함께 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이 할머니들의 끼를 살려내는 데 구연동화와 전래놀이에 능한 김원옥 씨나 게임, 미술, 노래, 율동에 능한 이영화 씨가 한몫들을 단단히 한다. 기획하며 실무적인 일들을 처리하는 역할을 하는 박인순 씨도 교육 진행에 몸을 아끼지 않는다.△덜덜덜, 쿵쾅쿵쾅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 관찰해보면, 그림책 읽기를 하더라도 마을의 생활세계와 연관시키고 전래 민담 따위들과 결부시켜 삶 속의 이야기로 재창조하면서 즉흥적인 상황극으로 나아가게 유도한다. 참여하는 할머니들의 숨겨진 재치와 재능이 발현되게끔 한바탕 신나는 문화 감수성(말, 글, 액션, 그림 따위들)으로 표현하고 소통하도록 한다. 한글 배우기나 시 쓰기, 이야기하기, 노래하기, 손 유희나 율동 따위들을 통합적으로 배치하는 것은 그저 재미지게 하기 위해서라기보다 할머니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오랫동안 억눌린 삶의 감정들을 드러내며 자신을 자발적으로 표현하길 바라서다.그 결과 무지렁이였던 할머니들은 자기 이야기를 써나가고 어느새 시인이 되어 무한한 감동을 준다.나는 이름을 쓸 줄 몰랐다 / 이름을 쓰려고 / 연필을 잡으면 / 손은 덜덜덜 / 가슴이 쿵쾅 쿵쾅 / 이름을 못 쓰니 창피했다 / 한글 공부를 하고 / 이제는 이름을 쓸 수 있다 / 박 순 자 / 내 이름 석 자만 봐도 / 기분이 좋다△할머니들, 자기 이야기를 써 나가다구림에서 책놀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박순자 할머니가 쓴 시다. 할머니는 문학적 감수성으로 충만한 자아를 발견하였고 자기 이름을 되찾았으며 잃어버린 굴레에서 벗어나 삶의 주체로서 자기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기회가 비록 짧은 시간일지언정, 평생을 통해서 오리라고 상상도 못했던 일들을 경험해본다는 점에서, 할머니들에겐 소중하고 값진 일이다.이렇게 책놀이 네 자매는 순창의 마을들을 돌고 있다. 재작년에는 구림의 몇몇 마을에서, 작년에는 인계의 세룡마을에서, 그리고 올해에는 유등의 유촌마을에서 20명 가량의 할머니들을 밤마다 모아놓고 이렇게 충동질을 해왔다. 구림에서의 활동은 당시 군수에게도 감동을 크게 주어 할머니들의 작품을 군청에 전시할 정도였다.△한, 열공, 그리고 감동할머니들의 못배운 것에 대한 한이 늙어서나마 열공으로 보여주는 것은 어딜 가나 다 같은 모양이다. 낮에 일하느라 고단한 몸이 되었어도 밤이 되면 공부하러 회관으로 모여든다. 유촌마을 할머니들은 더 열성적이다. 교육시간이 되어가는 해질 무렵부터 들일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하나둘씩 마을회관으로 모여든다.그 무덥던 8월의 어느 날은 영화 〈수상한 그녀〉를 함께 보고 할머니들이 청춘사진관에 들어가게 된다면 언제 적으로 돌아가고 싶은지 물었다. 강의숙 할머니는 5살로 돌아가 공부를 하고 싶다. 젊은 시절로 돌아가 기술도 배우고 공부를 많이 하고 싶다고 했다. 서야실 할머니는 공부가 원이 돼서 꿈에서도 공부를 한다. 7살로 돌아가고 싶다. 왜냐하면 그래야 학교를 가기 때문에라고 했다. 최봉순 할머니는 3살 때부터 부모님의 사랑받고 어린이집, 초등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했다.책놀이 네 자매의 작은 노력들에 반하여 할머니들은 어느새 마음 짠한 감동을 선사해준다. 이름 석 자 쓰기 위해 너무 오래 세월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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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0.18 23:02

[문화&공감] 문화예술교육단체 '띄움'

군산 원도심 골목골목을 불쑥 파고든 초가을바람,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 바람을 와락 품에 안은 군산 원도심. 죽은 듯 고요한 군산 원도심은 지난밤 거친 바람에도 흐트러짐이 없다. 초가을바람에 바짝 몸을 붙이고 걸어본다. 햇살에 반짝이는 내항 물빛에 취하고, 그 길 끝에 움직임 교육을 중심으로 타 예술장르와 융합된 형태의 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문화예술교육단체 띄움을 만나 진정한 쉼도 얻는다.△ 소소한 이야기로 예술꽃 피다초가을 하늘 빛 빼닮은 지붕아래 군산 원도심 골목에는 오가던 사람들의 반백 년 이야기가 담겨있다. 할머니의 추억, 어머니의 추억, 그리고 놀이의 추억까지. 번잡하고 거창하지 않은 소소한 우리의 삶 기억들이 무언가를 상상하게 만든다. 이렇듯 문화예술교육단체 띄움(대표 이주연, 군산시 월명1길3 클래시움 상가 302호 ARTPLAY)은 문화예술이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향유하고 있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공감한다. 그리고 아직 우리에게 어럽게 느껴지는 문화 또는 예술을 친숙한 감성적 언어로 전달하고 있다.띄움은 2012년 설립되어 무용이라는 장르 중심으로 출발했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육이 아닌 감수성의 회복이다. 이는 올해 프로그램에서 더 잘 드러난다. 2016년은 부처간협력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주최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을 상상과 놀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전남북 22개의 지역아동센터를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전북문화관광재단이 함께하는 지역특성화 교육지원사업(골목시장의 다시찾은 봄)과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위풍당당 놀이터)를 통해 시장 상인과 중고등학생, 그 가족과 함께 군산지역에서 신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공연예술, 무용교육, 기획과 프로그램 연구를 통하여 더 많고 풍성한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몸을 이용해 지역 이미지 가꾸기공간 운영과 기획 등 전반적인 방향을 잡는 것은 이주연 대표다. 오랫동안 공간 운영을 꿈꿨던 그는 군산 원도심 영화동 본가를 오가던 중, 월명동에 무용하기 좋은 넓은 건물이 비어 임대한다는 광고를 발견하고 덜컥 공간을 매입하여 공간운영까지 하고 있다. 근대역사속의 기념비적 건물은 아니지만 월명산이 보이는 널찍하게 트인 데다 천장이 높고 밖이 훤이 보이는 큰 창문으로 공연 워크숍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월명동이 근대역사의 다양성과 함께 호흡하는 골목길 동네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월명동 이곳에서 진행된 공연, 전시 이벤트에 참여한 관객 중에는 관심사가 비슷한 지역주민들이 많았지만, 이주연 대표는 지역 주민에게 월명동에 전문적인 교육의 장소로 또는 대중과 예술가 모두에게 쉼표가 될 공간으로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이 대표는 공간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장르 실험을 좋아하지만 꼭 그렇게만 가진 않으려고 해요. 올 2016년 지역의 이야기와 함께 내가 때어난 곳 군산, 그리고 내가 뛰어 놀았던 곳 영화동을 중심으로 청소년 들과 함께 몸을 이용하여 지역 이미지를 창작해볼까 생각도 합니다. 그리고 주민들이 편하게 와서 보거나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함께 구성하고 꾸려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평범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꿈이 만날 때이처럼 띄움은 무관심이 만연한 도시에서 정(情)을 공유하는 곳이며, 그곳에선 누구나 공동체가 주인이고, 곧 예술가이기도 하다. 목수가 만드는 작품의 결처럼, 여문 손끝에 머무는 사진가의 감성처럼, 그들의 손끝에는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하다.5년째 이어지는 띄움의 방향이 꾸준히 유지되며 느슨하지만 단단한 관계를 운영진 내부에서 그리고 참여자들과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거창한 목적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통과 상생을 찾는다는 것 답을 구하지 못할 일인지 모르지만 여기 띄움은 꾸준히 서식지를 만들고 누군가 잃어버린 상생을 찾도록 함께할 것이다.이주연 대표는 무언가를 배워야하며, 공부해야 하며,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한다. 무언가와 함께 더불어야 또 다른 예술의 법도 배운다고 알고 있다. 사는 내내 소통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일상생활이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하루하루 길을 걸으면서 사물을 관찰하면서, 열정과 사뿐히 걷게 되면 내가 희망하고 서로서로 상생의 길을 모색한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훗날 아이들의 기억 속에 띄움이라는 곳이 단순히 교육하는 곳이 아니라 문화로 소통과 공감이 확산이 돼 소소한 추억으로 떠올리길 바랍니다. 지역성에 기반한 지역 사회와의 교류 프로그램 때문에 이제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주민들도 군산에 문화예술교육 혜택을 주민들이 이제 알아채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화예술교육의 핵심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저변을 넓히고, 단순히 문화교육을 즐기는 것이 아닌 직접 참여하고, 창작하는 과정적 요소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있고, 그 모습을 띄움에서 확인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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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0.11 23:02

[문화&공감] 고창 심원면 담바우마을

△인류에게 첫 안식처 숲, 다시 문명의 대안으로계절이 변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내 삶은 행복하다. 고향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던 미국 현대 사상가 데이비드 소로우의 말이다. 지켜보는 것만으로 행복한 이 계절의 변화가, 순간순간 저미듯 밀려오는 곳. 더없는 숲이다.숲은 인류에게 첫 안식처였다. 숲에서 걸어 나오는 순간, 인류는 비로소 홀로 설 수 있었다. 대신 벌거숭이로 자연과 마주해 온갖 시련을 헤쳐가야 했다. 땅을 일구는 모습으로부터 현재의 사무용 전자기기에 이르기까지, 눈코 뜰 새 없는 노동에 겨워 삶을 영위해야 했다. 그 고단한 삶에 지쳤을 때, 숲은 다시 우리에게 위안이 되었다. 위로의 숲이, 이제 이 문명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자본주의의 대안을 모색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숲, 이른바 산촌자본주의(〈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동아시아)〉)이다. 인류가 그동안 믿어온 성장제일이라는 상식을 깨고 느림, 자급과 자족을 바탕에 둔 삶의 전환을 통해서다. 산촌자본주의의 시작은 숲을 통해 얻는 에너지의 자립으로부터이다. 최근에는 바다에서 자본주의 대안을 찾다를 부제로 한 〈어촌자본주의(동아시아)〉가 번역 출간되었다. 잊고 살았던 생명의 근원 숲과 화해하는 것처럼 욕망의 최종 목적지였던 바다와 속속들이 화해하며 생명의 순환 원칙을 바로잡고 그 안에서 이 문명의 대안과 마주하자는 것이다.△마을공방으로 다시 주목받는 숲과 바다, 갯벌과 너른 청정한 들녘그래서 우리에게 다시, 숲이고 바다다. 고창군 심원면 담바우가 그런 곳이다. 도솔산, 선운산의 뒤꼍 담바우는 첩첩첩 산이다. 그 첩첩첩을 한거풀씩 서편으로 구비지면, 머지않아 바다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고창의 청정 갯벌이다. 우리 문명의 대안으로 다시 호명하는 숲과 바다, 담바우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지역재생의 키워드이다.담바우마을(이장 유행오)은 최근 고창군 민생경제과(팀장 이남례)와 심원면(면장 김형순)과 함께 마을재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추진하는 마을공방사업이다.담바우마을은 총 40세대 8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그 가운데 원 거주민이 25세대 58명, 비율로는 65%이고 귀농인은 15세대 31명, 비율로는 35%에 이른다. 귀농귀촌일번지라는 고창군 다른 마을들도, 귀농인 비율이 15%인 것을 보면 담바우마을 귀농인 비중이 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숲과 바다가 천혜의 배경이라면 그 안에 깃들어 문제를 풀어가는 사람의 편에서 이 현상은 주목할 점이다.숲의 복판에서 나무를 매개로 한 담바우마을 공방은 목공예품 생산과 판매를 키워드로 한다. 공방사업의 핵심은 마을 주민들이 공방에서 만들어내는 목공예품을 지속적으로 기술이전 관리하고 판매로 연계하는 지역기업의 존재다. 마을에는 귀농인이 운영하며 연매출 1억원을 올리는 기업, 담바우목공예(대표 공성일)가 있다. 거기 더불어 귀농인들이 운영하는 크고작은 농원과 팬션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매출을 높이고 일자리를 만들어, 다시 마을활성화로담바우마을공방의 구조는, 기존 주민들과 귀농인들의 협업으로 짜여진다. 연계기업인(담바우목공예)이 기존주민과 귀농인에게 목공예품 제작 기술을 전수해 제작기반을 다지고, 그 위에 외부 방문객을 대상으로 의자, 책상, 화분걸이, 선반, 침대와 서랍장 같은 목공예품 만드는 체험과 복분자 블루베리 같은 농산물 체험, 숙박, 농특산물 전시판매가 자리한다. 더불어 가까운 만돌갯벌체험장의 인프라를 활용해 바지락캐기, 어망체험을 진행하는 것이다.담바우마을공방은 가까운 미래에 어떤 결과를 빚을까, 귀추가 주목된다. 예상한대로라면 마을공방을 차리고 2년 뒤부터는 공방운영과 제품 판매를 통해 2억여 원 가까운 매출이 생긴다. 매출과 더불어 더 중요한 결과, 일자리다. 목공예품 생산과 판매, 지역 특산품 판매와 관리에 약 26명(상시 6명 시간제 20명)의 일자리가 생겨난다. 이렇게 만들어낸 연간 3000만 원의 순수익으로 한편으로 취약계층 일자리를 만드는 데, 한편으로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기금으로 활용하려 한다.△돈보다 관계의 힘! 마을공방의 바탕이 되는 사람들담바우마을공방은 숲과 바다(갯벌), 농업 농촌의 다양한 색깔이 총체적으로 만나는 차분한 용광로이다. 그 용광로 한복판에 3년차 귀농인으로 공성일(54세) 대표 가족이 있다. 인천 송도에서 나고 자란 공 대표가 이곳 담바우에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3년이다. 대학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가구공장에서 일한 것이 기회가 되어 평생 가구장인의 길에 들어선 그가 서울에서 전주에서 이웃 중국의 청도에서, 인도네시아에서 거센 세계화의 파고를 악전고투로 넘나들다 문득, 몸과 마음에 심한 병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와 가족이 수소문 끝에 만난 치유의 공간이 바로 고창, 심원면 담바우(담암)마을이다.2013년부터 마을을 오가며 살집과 소일할 공방을 지어내고 마을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쌓아가기 시작한다. 몸과 마음은 담바우 숲의 기운으로, 그 풍요로운 흙과 가까운 만돌의 바다, 갯벌에서 철마다 길어올린 건강한 먹을거리로 이내 회복되었다. 마을사람들의 부서진 장롱문짝이며 손때 묻어 버릴 수 없는 가구를 손봐주는 일부터, 소일거리로 시작한 목공예 일이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혼자서 연매출 1억 원을 올리는 작은 기업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고창에 자리 잡으면서 돈의 문제는 둘째가 되었어요. 더 중요한 것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더 중요한 것은 관계다. 조부모와 지내는 아이들, 형편이 좀체 나아지지 않는 가정의 아이들에게 멋진 원목책상을 선물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지역 교육청과는 교육기부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공방과 마을, 사람들을 건강하게 연결시키고 있다.△문명의 대전환 속에서 우리가 찾은 대안은?세계는 바야흐로 문명의 대안찾기에 골몰하는 중이다. 이웃 일본에서는 사토미(里海, 어촌, SATOUMI)라는 개념을 세계가 통용하는 어휘로 자리잡게 했다. 사토미는 우리의 정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개념이다. 바다를 정복의 대상, 단순히 무언가를 획득하는 공간이 아니라, 생명을 나누는 어떤 힘으로 여겨왔던 우리 정서가 그렇다. 이러한 접근이 문명의 힘을 회복하자는 대안체계로 세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나아가 세계 언어로 확장하고 있다. 더불어 숲과 바다(연해)를 통해 한계가 드러난 자본주의 체계의 질적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일본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담바우마을에서 숲과 바다, 그 안에 깃든 사람들(선주민과 이주민의 협업) 사이 조화로운 한권의 대안교과서가 태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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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0.04 23:02

[문화&공감] 공간 '우리다'

일단 네 남자가 떠오른다. 절대 젊지만은 않다. 이제는 다들 가정이 있는 마흔 중년들이다. 폭풍같은 30대를 지나고 세상이 원하는 대로 맞춰 줄 40대일 것 같지만, 이들은 여전히 세상이 아직 다 하지 못한 일들을 하고 있다. 언제나 사람들 옆에서, 그리고 현장에서, 그리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너무 당연히 공동체를 만드는 일 따위는 특별하지 않았으면 이라고, 너무도 당연하게 마을 축제가, 마을 회의가, 사람과 사람이 기대고 사는 동네와 마을의 일상으로 대한민국이 채워지기를, 그리고 그렇게 자기들도 따뜻한 마을 속에서 평범히 살고 싶어 한다. 그런 도시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산다. 이들이 움직이는 공간 우리다는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도시재생 화두로 모여요즘 도시의 화두는 재생이다. 그동안 도시가 무분별하게 개발해왔던 과거를 반성하고, 도시와 사람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도처의 노력이 눈물겹다. 때로는 정치적으로, 정책적으로, 아니면 누군가의 설계도면이 되어 사람을 위한 도시라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도 아직도 사람을 위한 도시를 만드는 길은 쉽지가 않다. 도시는 살아있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과정은 문화를 만든다. 그 살아있는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바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이 매일매일의 일상을 채우는 사람들의 생활 속의 도시를 봐야하는 이유인 것이다.공간 우리다는 2015년 10월 현재 건물주인 권대환(42)소장(마을발전소맥 지역재생연구소 소장)이 건물을 매입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건축공학을 전공한 권소장은 전북대 도시환경연구센터, 전주시정발전연구소 등 전주 도시정책 쪽 일을 해오며 특히 공동체 활성화 일을 주도해왔고, 전국의 마을 만들기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네트워킹을 꾸준히 해왔다. 공간 우리다는 전북지역의 마을 만들기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민간 네트워킹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 만들어졌고, 꾸준히 함께 활동을 해오던 협동조합 마을발전소 맥(대표 고남수), 전북 주거복지센터(전 사무국장 김영찬), 사단법인 마을 향(대표 김하생)의 대표들이 의기투합하여 만들어졌다.△ 전국 마을만들기 네트워크로 확장이 공간에는 마을과 사람, 도시와 공간에 대해 관심 있는 마을대표와 협의체 등 민간에서부터 시의원, 기관들까지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사업들을 구상한다. 공간 우리다는 건물 지하에 위치하고 있지만, 건물 2층에 있는 카프카 까페에서도 때때로 마을 만들기 전국 대화 모임 같은 모임들도 간간히 이루어지며, 전국의 마을 만들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네트워크 플랫폼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 건물 1층의 노송화랑 사장님의 아침인사에서 착안하여 오늘도 또 좋은 하루 되세요라는 현수막도 골목 입구에 붙여놓았다.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하나 놓치지 않고 공간과 사람을 연결하는 섬세함도 느낄 수 있다.△ 전주 구도심 거점 프로젝트 진행최근 이들은 정읍 담양 경남 보령 진안 익산 등 각자의 마을사업을 꾸준히 진행하면서도, 전주 구도심의 공간 다시 바라보기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지역주민들과 직접 진행한 우리마을 미소당구왕 선발대회를 비롯 네트워킹 단체인 화요쌀롱과 함께 진행한 전주 북극곰 프로젝트, 그리고 남부시장 양키골목 주민들과 함께 한 게릴라 가드닝등이다.△ 사람이 주인인 공간 가꾸기공간 우리다라는 명칭은 나와 너, 결국 우리가 만들어 가야할 도시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무엇보다 네트워킹이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었으면하고, 또한 민간의 자립적 활동들이 확대되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공간 우리다가 위치한 지역은 전라감영복원지의 앞쪽에 위치하고 있다. 전주 구도심에서의 바람이 하나 더 있다면, 최근의 도시재생에서의 문제점이라 할 수 있는 둥지 내몰림 현상(젠트리피케이션)을 주민 스스로 풀어보고자 하는 부분이다. 전라감영복원으로 벌써 들썩이고 있는 전주 구도심의 착한 건물주 모임으로 건물주와 임대자,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전주구도심의 정체성을 간직한 동네로 함께 만들어 가보고 싶어 한다.결국 깨어있는 시민이 도시의 주인이다 라는 말을 남기고 싶다는 권대환소장과 고남수대표는 마을마다 현장마다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도시의 미래를 오늘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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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9.20 23:02

[문화&공감] 고창인문학강의

고창군립도서관 1층 세미나실. 여름내내 퍼부어댄 폭염 공습을 조롱이라도 하듯 청강생 4050명 정도의 고창 사람들은 금요일 저녁마다 열공했다. 때론 그 무더위에도 토요일이면 야외현장을 답사하는 일도 마다 하지 않았다. 고창 생활문화에서 인류의 삶을 엿보다라는, 마치 지역적으로 행동하고 지구적으로 상상하라는 말을 떠올리기라도 한 듯한, 강좌 대주제는 사람들을 그렇게 빨아들였다. 길 위의 인문학 강좌다.올해 길 위의 인문학은 조선시대 송사나 서간의 각종 고문서들, 이재 황윤석(17291791)의 저서 『이재만록』, 그리고 막사발, 판소리, 반닫이 등 고창에서 생성되어 온 문화와 문명의 흔적들을 통해 잊혀져 가는 고창의 생활사를 더듬어보자는 것이었다. 이 주제를 제안했던 이상훈 씨는 갈무리 강의를 통해 옛 고창의 생활사를 차지했던 것들의 깊이있는 세계를 알고 그 문화적 향유에서 삶의 질을 높여보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청강생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를 한 기획이었으나 기우였다.△왜, 고창에서?왜, 고창에서, 인문학 강의를 시작했을까. 처음 시작은 2011년 여름이었다. 강좌를 안내하는 초대의 글은 이렇게 적고 있다.고창에서 사는 것이 더 자랑스러웠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사람과 어울리고, 소외되어 고통 받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서로의 관계로 하루하루가 즐겁고, 그리하여 삶의 수준도 더 높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지연이나 학연보다 합리적인 것이 더 존중받고, 사소한 차이로 차별받지 않으며, 오늘의 삶이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서로 격려하는 지역사회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바른 생명들의 우렁찬 함성이 어우러진 살기 좋은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작은 실천을 위한 작은 만남을 제안합니다. 여기엔 손님이나 또 다른 주인은 필요 없습니다. 누구나 주인됨을 연습하고 함께 머리 맞대며 희노애락을 공유하는 아름다운 만남이었으면 좋겠습니다.△인문학적 탐구와 비판적 성찰군 단위의 자그마한 지역은 공론장이 형성되기 어렵다. 지역신문이 공론장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를 포기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지역사회에서 정당하고 합리적인 비판적 발언이나 심지어는 양심적 발언마저 튄다, 싸가지 없다, 뭘 모른다는 식으로 폄하하는 처세술 분위기가 대세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나마 비판적 인사들마저 양심적 가치를 저버리고 권력의 성채로 들어가거나 이해관계에 얽혀 특정발언 자체의 회자를 금기시할 때는 공론장 자체가 무력화된다. 신문에서건, 공식 테이블에서건, 술자리에서건, 일상대화에서건 공론장이 위협받으면 민주주의의 기초가 무너진다.고창도 그런 때가 있었다. 충격에 휩싸인 몇몇의 사람들은 성찰했다. 그들은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 알고, 소통하고, 공감하며 대안을 이야기하는 공론장이 고창사회에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인문학적 탐구와 성찰을 매개로 작은 공론장이라도 형성시켜야 지역사회가 숨쉬며 산다는 결론으로 그들이 탄생시킨 것이 바로 고창인문학강의다. 그들은 고창의 인문학 강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나섰다.△일하는 사람들이 의기투합4050대의 젊은 고창 사람들이고 하는 일들도 제각각이다. 김동환(농민), 문병무(자영업), 유성기(한의원장), 윤종호(출판편집인), 이상훈(농민), 정일(교사) 씨가 처음 의기투합했고, 해를 거듭하면서 안후상(교사), 이호근(도의원), 박종훈(목사), 박기전(목사), 최재일(자영업), 이대건(출판인) 씨 등이 합류했다. 이들은 여름과 겨울 강좌를 시작하기 전에 모여 기획하고 준비한다.대표는 없다. 총무인 김동환 씨가 사실상 대표일을 한다. 거의 대부분의 실무적인 일들을 도맡아 한다. 윤종호 씨가 일을 나누고는 있지만 전체 구성원들 사이의 역할 배분이 취약한 상태다. 각자의 일이 바빠서다. 그나마 몇몇이라도 모여서 논의하는 느슨한 구조에 치열한 문제의식이 이들을 지탱시키온 힘이다.고창군립도서관과 함께 하는 길 위의 인문학으로 강좌가 나가면서부터는 한국도서관협회의 예산 지원이 있어 넉넉해졌지만 그 이전 독립강좌일 때는 회원 회비와 청강생 참가비로 강사비를 충당했다. 길 위의 인문학이 정부 돈에 의존해 강좌가 이루어지다보니 아무래도 강좌 주제 선정에서 자기검열(?)되는 측면이 없지 않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이상훈씨는 말한다. 고창인문학강의는 할 말을 제대로 하자는 것이 초심이기 때문이다.△실천과 연결고창인문학강의의 초심은 실천과 연결되지 않는 인문학은 의미가 없다는 데서 시작한다. 그러다보니 지역의 환경이나 농업, 교육 문제부터 화두로 삼았다. 첫해 강좌에서는 먹거리의 패러다임을 바꾸자, 후쿠시마 핵사고와 한국의 핵발전 정책, 시골살이의 인문학, 지역자치와 풀뿌리민주주의, 조선후기 실학과 근대사상 등의 이슈로 고창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고등학생들의 꾸준한 참여도 돋보였다. 인생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 아이도 있었다.지역경제와 협동조합, 진정한 연대는 생명연대다, 역사와 정치외교, 지역과 지방, 종자까지 빼앗긴 한국-우루과이라운드에서 FTA까지, 지방자치와 지역정치, 마을의 민주주의, 통일을 보는 새로운 시각, 세월호 이후 우리의 삶, 실업, 불안정노동, 빈곤과 기본소득, 위기의 국가, 좋은 삶은 가능한가, 고창과 동학농민혁명 등이 지금까지의 강좌 주제들이다.△시대정신과 생활사의 대화김동환 씨는 인문학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설명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는 주로 해당주제의 전국적 명사(?)들이나 전문적 활동가들이 강사로 초빙되었다. 정일 씨의 말이다. 지역 안에서만 매몰되어 시야가 좁혀져 있는데, 다른 지역이나 중앙 담론을 직접 접할 수 있어서 시야를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되었지요. 온라인이나 책으로만 접하는 것과는 질감이 다르고 생생하니까요.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거대담론의 지식과 고창이라는 지역학적인 미시담론의 생활사와 대화를 나누는 공론장의 역할이 앞으로의 과제로 등장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강좌의 주제 고창 생활문화에서 인류의 삶을 엿보다는 그 시도로 보인다. 고창이라는 생생한 지역학적 맥락과 문화에 근거한 삶-지식들의 생산과 소통은 결국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생업에 바쁜 사람들의 인문학적 말걸기 고창인문학강의의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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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9.06 23:02

[문화&공감]이희정 밴드 - 밴드 악기·판소리 결합…'생활형 소리'를 꿈꾸다

밴드는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다. 음악적 용어는 각종 악기로 음악을 합주하는 단체. 주로 경음악을 연주한다라고 나온다. 전주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희정밴드는 조금 색다르다. 일반적인 밴드 악기 구성에 판소리 소리꾼이 보컬로 참여하고 있다. 소리꾼의 이름을 내걸고 밴드를 만든 경우는 전주에서나 가능한 특색있는 구성이 아닐까.밴드와 소리꾼의 만남이희정밴드의 이희정(28)은 판소리꾼이다. 전주 출신으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판소리를 시작해서 익산에서 중학교에 다니면서 임화영 명창에게 소리를 배웠다. 남원국악예술고등학교와 전북대학교 한국음악학과를 졸업해서 현재는 전북대학교 대학원에서 판소리를 공부하고 있다. 대학졸업 후 사회적기업 문화포럼 나니레에 입사하면서부터 한옥마을에서 계속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판소리 공연을 주로 했던 이희정은 타악연희원 아퀴의 공연에 객원으로 초청받아 참여한 자리에서 작곡가 김휘상씨를 만나 의기투합해 밴드를 만들었다. 이희정밴드의 탄생이다.밴드에는 작곡과 프로듀서, 기타를 맡은 김휘상, 드럼과 음향을 맡은 윤태일, 베이스를 맡은 이영화, 건반을 맡은 최고은과 소리를 맡은 이희정 이렇게 5명이 참여하고 있다.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밴드처럼 국악기는 하나 없이 밴드로만 구성되어 있고, 보컬인 이희정만이 판소리 소리꾼이다.공연하는데 불편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소리꾼은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답한다. 대신에 반주를 해주는 밴드가 불편할 것이라고 말한다. 작곡가이자 밴드의 음악을 책임지고 있는 김휘상씨는 구성원들과 수시로 음악에 대해서 논의하며, 음악에 대한 고민을 항상 하고 있다고 한다.밴드는 2014년 11월 창단했다. 당시에는 밴드에 소리꾼이나 국악성악 전공자가 참여하는 비슷한 구성의 다른 단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음악적으로 명맥을 유지한 단체는 드물다.밴드는 작사 작곡 연출 등 음악적 활동에도 힘을 기울이지만 홍보와 마케팅에도 열심이다. 창단 때부터 지금까지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전통 캐릭터의 색다른 해석 이희정밴드는 처음에는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음악 하는 이들이 모두 그러하듯, 광고 음악처럼 한번 들으면 입가에서 흥얼거릴 수 있는 선율을 만들어 오래 기억에 남는 인상 깊은 음악을 하고 싶어 한다.밴드는 지난 6월 1집 앨범 만좌맹인이 눈을 뜨다를 정식으로 발매했다. 앨범을 내고 밴드는 음악에 대한 방향성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이희정이 말하는 밴드의 특색은 공감이 많이 간다.판소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은 고정되어 있다. 유파별로 대사나 음의 높고 낮음으로 약간의 변별성은 있으나, 캐릭터의 고정은 현대를 사는 젊은 세대에게 공감을 얻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밴드는 박색에 성격이 못된 뺑파를 관능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로 노래하기도 했다. 이 씨는 캐릭터에게서 읽을 수 있는 표출 되지 않은 내면의 모습을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어렸을 적 읽었던 흥부놀부전에서 흥부는 마냥 착하기만 하고 놀부는 그저 못되기만 했을까 하는 해석을 자주 접했기 때문이다.심청의 인간적인 고뇌, 춘향이의 현실적인 판단 등 경제적으로나 인문학적인 해석이 아닌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해석이 가능한 노래를 하고 있다.이희정은 시골 장터부터 큰 무대까지의 경험을 통해 판소리를 매개로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을 익혔다. 다양한 공연경험은 대중들이 좋아하는 단어나 아니리(멘트)를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작사하는데도 참고하고 있다. 1집 앨범 발매 이후 활동 방향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지만, 무언가를 조금 알아갈 때의 두려움이 더욱 맞는 표현이 아닐까 한다.판소리를 오래 한 선생들은 소리가 여물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게 아니냐며 소리 공부에 더욱 매진하라는 말을 해준다고. 그러나 그는 여러 활동을 통해 정통 판소리의 중요성도 다시 깨우치며,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적인 고민도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쉽고 편한 생활형 음악 지향 이희정밴드 공연을 관람한 이들은 국악기가 빠진 밴드에 대한 생소함과 소리꾼과의 음정에 맞춰 진행되는 코드 진행, 장단을 풀어 연주하는 리듬감이 익숙하지 않아 어색하다는 평도 한다. 우리의 음악처럼 맛깔스러운 맛을 내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밴드로 판소리를 반주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틀에서 자유롭고 다양하게 표출되는 음악적 느낌이 신선한 것은 사실이다.밴드는 자체 공연활동 외에도 다양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음악의 판의 구성을 직접 익히며, 대중들과 함께하는 판소리에 대한 이해를 직접 습득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전주에 또 다른 자랑거리인 한옥마을은 연간 수백만의 관광객이 찾는 성공한 공간으로 꼽힌다. 장소를 채우는 콘텐츠의 지속적인 개발이 필요한 시점에 이희정밴드는 예향에 걸맞은 콘텐츠의 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공연자로서 제작자로서 다양한 시도와 활동을 하는 소리꾼의 밴드 이희정밴드는 생활형 한옥이 문화의 중심지에 만나 빛을 발한 전주한옥마을처럼 우리의 판소리도 쉽고 편하게 입가에 맴돌 수 있는 생활형 소리가 되어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김정준 전북도립국악원 공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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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30 23:02

[문화&공감] 익산 낭산 '간판 없는 자장면집'

소박하다. 꾸미거나 더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를 내는 가게. 그래서 더욱 정이 간다. 다른 자장면집처럼 메뉴가 다양하고 인테리어가 화려하진 않지만,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정겨움이 있다. 추억이 있다. 역사가 있다. 함열과 낭산, 용동을 잇는 고창삼거리 한편에 자리한 그곳 익산 낭산면. 자장면을 먹으러 왔다가 추억을 먹고 간다는 어느 손님의 말처럼 오늘도 주인장 김세경 씨는 한결같은 맛과 함께 추억을 판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비벼주신 자장면의 맛이 바로 여기 있다.△시끌벅적 사람이 끊이지 않아 시거리익산에는 간판도 메뉴판도 없이 배짱 장사를 하는 김세경(47, 경력 22년) 달인의 자장면집이 있다. 메뉴는 오로지 자장면과 우동뿐!어머니에게서 아들로, 35년간 굳건히 한 자리를 지켜온 간판 없는 자장면집. 지금이야 간판이 없는 자장면집으로 더욱 유명해졌지만, 처음부터 이 간판 없는 자장면집에 이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원 가게 이름은 시거리 식당이었어요. 가게 앞에 함열로 이어지는 삼거리가 있잖아요? 그래서 옛날엔 어르신들이 여기서 막걸리도 드시고 그랬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모이면 시끄럽잖아요. 그래서 붙은 이름이 시거리. 그 지명에서 가게 이름을 따온 거죠.시거리라는 지명의 유래가 제법 재미있다. 그 옛날 함열을 오가던 어르신들에게 이곳은 지친 몸을 풀어주는 쉼터였을 터. 오래 걸어 아픈 다리를 쭉 펴고 앉아 어이구, 여서(여기서) 또 보네하며 능청스레 농을 던지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어렵지 않게 그려진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차를 타고 손쉽게 이곳저곳을 오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이곳을 찾아주는 손님들이 있어 시거리 식당은 여전히 시끌벅적하다. 10년 전 큰 태풍이 불 때 간판을 내리고 그 이후 미처 다시 간판을 달지 못했고 그런 우연한 사연으로 현재까지 간판 없는 자장면집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그러나 수 십년 단골들에게는 이곳은 여전히 사람들로 복작거리는 시거리 식당으로 불리기도 한다.△35년을 한결같이 짜장 외길이 집의 맛의 비법은 다른 자장면집과 달리 자장면에 고기를 넣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파와 감자, 춘장만으로 맛을 내고, 대신 자장면 위에 송송 채 썬 파와 빨간 고춧가루를 듬뿍 뿌려 약간 매콤하면서도 담백한 맛을 낸다. 이것은 다른 메뉴인 우동도 마찬가지. 덕분에 이곳 자장면과 우동은 아무리 먹어도 느끼하거나 질리지 않는다.푸짐한 양에도 젓가락질 포기할 수 없는 손님들이 직접 곱빼기를 써서 붙일 정도로 그 인기가 대단하다고. 볶지 않고 끓여 내는 이곳만의 특별한 비법.우리 집 자장면은 35년 전 맛 그대로예요. 35년 전이면 정말 못 먹고 못 살 때인데, 그때 우리 집 자장면을 맛보신 분들은 지금도 그때 맛을 못 잊고 찾아오세요. 그 힘든 시절 먹은 자장면 맛이 평생 잊히지 않는 거예요.김세경 씨의 말처럼 어린 시절 먹었던 자장면의 맛은 평생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법이다. 누군가에겐 그것이 졸업식 날 먹은 자장면이고, 다른 누군가에겐 장을 보러나갔다가 시장에서 먹었던 자장면일 수 있다. 주변 어르신들에겐 시거리의 자장면이 그랬다.김세경 씨가 35년 전의 맛을 한결같이 고집하는 것도 그 추억의 맛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런 뚝심을 인정받아 유명 방송에서 달인으로 소개된 적이 있는 분이다. 자장면을 향한 그의 고집과 정성은 이미 장인이라 칭해도 부족하지 않다. 비록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젊은이 입맛엔 김세경 씨의 담백한 자장면이 입에 안 맞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는 괜찮단다. 힘들었던 그 시절을 추억하며 자신의 자장면을 계속 먹으러 와주시는 손님들이 있는 이상 가게를 그만둘 생각은 없다고.예전에 우리 가게에 무척 자주 와주시던 단골손님이 계셨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안 오시더라고요. 그래서 왜 그러실까, 하고 며칠 동안 궁금해 했는데, 갑자기 아들 내외를 데리고 가게를 찾아오시더라고요. 알고 보니 그분이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으셨대요. 죽기 전에 우리 집 자장면이 드시고 싶으셔서 찾아왔다는데, 그때 기분이 참.가게를 운영해온 35년간 숱한 손님들이 이 간판 없는 자장면집을 거쳐 갔다. 무수한 사연을 품고 가게를 찾아주는 손님들이 있기에 그는 오늘도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자장면에 추억을 담아 판다.간판 없는 자장면집. 그 곳에서 파는 맛과 추억이 오래도록 우리 곁을 지켜주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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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2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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