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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벽 누비던 야생마, 완주서 제2 산악인생

▲ 부상 후 대둔산에 둥지를 틀고 제2 산악인생을 살고 있는 전문 산악인 이기열씨.
전문 산악인으로서 세계 곳곳을 누비던 이기열씨(45)가 완주군 운주면 대둔산 자락에 둥지를 틀었다.

 

이기열씨가 이곳에 자리잡은 계기는 뼈가 부스러지는 아픔에서 비롯되었다. 2003년 강원도 원주에서 빙벽훈련을 하던 중 추락해 복합골절이란 부상을 입은 이씨는 뼈를 깎아내 이식하는 여덟 차례에 걸친 대수술을 견뎌야 했다. 천방지축 날뛰던 야생마가 무려 3년이란 세월을 목발에 기대서 살아야 했다.

 

인고의 세월 속에 안긴 대둔산 자락은 이씨를 쓰다듬고 치유한 어머니였다. "신기하게도, 대둔산에 삶터를 잡은지 얼마 되지 않아 다리의 염증이 멈췄고, 통증이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대학교 산악부 시절부터 자주 드나들었던 대둔산. 이곳에 생활의 짐을 내려놓고 눌러앉은 이씨는 사고 3년만에 부러진 다리 여기저기에 꽂은 쇠를 제거하고 재활에 나섰다. 장딴지 근육 세가닥 가운데 한가닥은 제기능을 잃었지만, 이 정도 장애는 제2의 인생을 넘는 장벽은 아니었다.

 

대학 시절 백두대간 종주등반으로 시작된 본격적인 산사나이 인생은 국내외를 넘나들며 거침이 없었다. 일본 오가야마와 조가사끼 암장을 순례했고, 유럽 알프스 아이거 북벽과 그랑드조라스와 마터호른 동계 등반을 소화했다.

 

산악인들을 손짓하는 히말라야도 물론 빼놓을 수 없었다. 네팔 캉첸중가(8586m) 원정대에 두차례나 참여했고, 인도 가르왈히말라야 케데르나스돔 동벽 등반 원정 때에도 주요 멤버였다. 세계 첫 등정이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다. 2002년 티벳 히말라야 시모캉리(7211m) 세계 초등정에 성공했다.

 

산악인으로서 맘껏 꽃 피우기 시작한 시점에 맞닥뜨린 부상을 대둔산에서 서서히 털어버린 이씨는 다시 산을 향해 걸었다.티벳 히말라야 야오메이 남벽, 파키스탄 히말라야 k2 원정대에서 등반대장을 맡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의지만으로 해결되진 않는 법. "부상으로 몸 상태도 정상이 아니었고, 이제 나이도 40을 훌쩍 넘기니 체력적인 한계를 조금씩 느끼기 시작하면서 산에 대한 열정과 경험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게 됐습니다."

 

대둔산 자락에 조그만 펜션을 마련한 이씨는 완주지역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재능기부에 나섰다. 산악을 주제로 구성한 '완주산내들산악캠프'에서 사무국장을 맡으며 연중 산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저소득층 자녀와 장애우 학생들에겐 회원들과 함께 사비를 털어 무료로 아웃도어 프로그램을 진행, 나눔문화 확산에도 열정을 쏟고 있다. 사회부적응 학생들에겐 산에서 함께 땀을 흘리며 삶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농촌교육 바로세우기도 역점 현안이다. 이기열씨는 완주 운주교육공동체 사무국장과 운주초 운영위원장을 맡으며 쓰러지는 농촌교육의 기둥 보수작업에 나서고 있다.

 

"제 삶의 지향점은 함께 사는 공동체를 살맛나게 복원하자는데 모아집니다. 이를 이루는 노정에 산을 통해 얻은 경험과 지식이 녹아있는 거죠."산악인 이기열씨는 지역사회에서 에너지 넘치는 일꾼으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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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모 kimkm@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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