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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인물] 황석영, 600년 팽나무에 ‘한국 근대사’를 새기다

2020년 철도원 삼대 이후 5년 만에 신작 <할매> 출간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 영감…작품 쓰기 위해 1년간 자료 조사 
“자연을 묘사하면서 굉장한 즐거움과 기쁨 느껴"

황석영 소설가를 지난 12일 군산 영화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하루에 담배를 2갑씩 태운다는 그는 “마크 트웨인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 담배를 끊는 일이라고 했는데, 결국 못끊는다는 얘기"라며 농을 던졌다. 그러면서 “나도 한 30번 정도 담배를 끊었었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 사진=박은 기자

마주 앉은 그는 쾌활한 이야기꾼의 모습이었다. 어떤 질문엔 거침없는 대답이 이어졌고, 어떤 물음엔 냉소적인 태도가 비치기도 했다. 감정을 가다듬고 다스려 눈빛마저 잔잔했던 기존 언론 속 모습과는 딴판이라 긴장감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을 건네자 그는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환하게 웃으며 “예. 그럽시다”라고 했다.

황석영(82) 소설가를 지난 12일 군산 영화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2026년 KAALA(칼라) Festival 시범 개최를 앞두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최근 5년 만에 신작 <할매>(창비)를 출간하기도 했다. 수차례 요청한 인터뷰가 여러 시의적 의미와 맞물려 이뤄졌다.

소설은 군산 하제마을의 600년 된 팽나무를 중심축으로 조선 초기부터 근현대까지의 역사를 생명‧생태 관점에서 엮어낸 작품이다. 이야기는 시베리아에서 남하한 개똥지빠귀 한 마리의 죽음에서 출발한다. 새의 뱃속에 있던 씨앗이 서해 갯벌에 내려앉았고, 그 씨앗이 600년을 버틴 팽나무 ‘할매’로 자라난다.

<할매>는 문학적일 듯하지만 학구적이다.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는 미군부대 건설 예정지에 홀로 남겨져 있다. 소설에는 동아시아 최대 자연습지였으나 간척으로 파괴된 새만금 갯벌 문제와 환경 파괴의 참상이 고스란히 스며있다. 그는 이야기에 역사성과 진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꼬박 1년을 자료 수집에 매달렸다. 한국문학사 정점에 서 있는, 한 빛나는 소설가가 인간과 자연에게 보내는 희망 섞인 위로인 셈이다.

이 인터뷰를 통해 소설로는 알 수 없던 황석영을 만나고 싶었다. 한국전쟁, 베트남 참전,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을 겪으며 격동의 세월을 통과한 역사의 산 증인이자, 이야기로 말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소설가. 하루에 2갑씩 담배를 태우는 애연가이자 스스로 “죽을 때까지 글을 쓰겠다”고 약속한 작가. 세상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지만 인간과 세상에 누구보다 호기심이 가득한 사람. 그래서 더욱 특별했던 황석영 작가와 신작 <할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황석영 소설가 /사진=박은 기자

-신작 <할매>의 중심 소재인 600년 된 팽나무가 글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작가님에게 이 나무의 첫인상은 어떠했나요?

“제가 군산에 온 지 3년이 됐습니다. 오자마자 팽나무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어요. 왜냐하면 문정현‧문규현 신부와 오래전 인연을 맺어왔거든요. 박정희 유신 때 시위하는 현장에서 문정현 신부를 알게 됐으니까요. 그때 정의구현사제단이 처음 시작돼서 문정현 신부가 끌고 가던 시기였어요.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왔는데, 그분이 군산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죠. 그래서 제가 “한번 만납시다”라고 요청을 했고, 자연스럽게 만남이 이뤄졌어요. 그즈음에 팽나무에 대한 이야기와 ‘팽팽문화제’를 알게 됐어요. 그래서 함께 행사에 참석했고 자세한 이야기들을 듣게 됐어요. (팽나무와)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군산에서 말년을 보낼 생각으로 막걸리 4병을 사서 나무에 부었죠. 그때 서원문을 하나 읽었거든요. 제가 “이 나무(팽나무)를 주인공으로 소설 한편 쓰겠다” 라고 약속했어요. 그래서 그 약속을 지키려고 소설을 쓰게 됐어요. 약속을 지키는 데 3년이 걸린 셈이네요"

-팽나무의 시선으로 조선 초기부터 근현대까지의 역사가 전개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인간이 등장하기 전까지의 긴 자연 묘사가 특징적이라는 평이 많습니다.

“자연 묘사를 원고지 2~300매씩 길게 쓴 건 평생에 처음이에요. 누군가는 글을 보고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보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처음 써봤는데 의외로 자연을 묘사하면서 굉장한 즐거움을 느꼈어요. 오랜만에 문장을 다듬어가면서 글을 쓰니, 언어를 다루는 예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 쓰는 기쁨을 느낀 것 같아요. 긴 묘사를 위해서 공부도 많이 했어요. 조류·기후·별자리까지 생태학과 관련한 책이란 책은 다 뒤져봤죠”

-특별히 기억에 남는 책이 있으신가요?

“곤충학자 파브르 알죠? 다들 파브르 곤충기는 알고 있을 텐데 그 사람이 식물에 대해서도 연구를 엄청 했더라고요. 단순히 곤충에만 관심을 두고 연구했다고 생각했었는데 ‘파브르 식물기’라는 책도 번역돼서 나와 있어요. 책을 읽었는데 과학적 현상 안에 서사가 들어 있어서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뿌리와 잎의 작용을 나열하는 전개 방식이 아니라, 이야기로 풀어나가요. 생물학자가 아니라 대단한 문장가구나 싶었어요. 이런 결의 책을 1년 동안 읽었어요.”

-8월, 군산에서 출범한 칼라(KAALA)문화재단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나요?

 "앞에 K자가 붙었지만, 원래는 AALA(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작가회의가 있어요. 문학적 탈식민주의, 제3세계 체제의 역사와 문화를 부정하는 제국주의적 허위 개념에 대항하여 역사적 현실과 도덕적 가치를 복원하는 데 목표를 두고 활동해온 회의죠. 1960년대 이런 목표에 문학을 지지하고 장려한다는 취지로 ‘로터스(LOTUS)’ 상이 제정됐고 매년 작가 3인을 선정해서 수상했어요. 문학뿐 아니라 문화의 모든 장르에까지 범위를 넓혀갔고 민중 차원의 문화 교류와 새로운 창조를 공동의 과제로 삼았죠. 제3세계 문학의 고유한 상상력과 민중적 현실을 세계에 알리고자 한거죠. AALA를 모티브로 KAALA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면 돼요. 군산에서는 과거 수탈의 흔적이자 군사적 패권과 전쟁을 반대하는 민주주의와 평화 연대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KAALA는 그 기억을 전시와 서사, 예술적 상상력으로 전환해 재해석하고 새로운 문화적 남남협력(South-South Solidarity)을 제안하고자 해요"

-군산에서 도모하려는 ‘연대’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식민지까지 되었다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해냈어요. 내부에서 민중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희생했지만, 대단한 일이라고 봐요. 그렇기 때문에 UN(유엔)에서 우리에게 선진국이라고 말하지. 우리는 그 길을 통과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아직 허덕이는 이들도 많아요. 그들을 위해서 우리가 형 노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국주의와는 다른 문명을 지구상에서 만들어나가자는 이야기죠. 미중 패권경쟁으로 나가고 있는데 우리 살길만 찾아서 나가겠다고 하는 것보다는 다각외교를 통해서 정신·문화적으로 교류하고 협조하는 비동맹운동이 필요하죠. 과거에 있었던 ‘AALA’와의 연대를 새롭게 재편성해서 시작하는 거라고 보면 돼요. 그래서 ‘가디언 트리 프라이즈’라는 상을 신설해 문학·미술·영화 그리고 환경평화 부문까지 시상할 예정이에요. 글로벌 사우스(비서구권·개발도상국 통칭) 나라들의 작가들을 군산에 초청해 행사를 개최할 계획이죠. 격년으로 열어 비엔날레로 정착시키려고 해요.”

-재단을 ‘민간 주도’로 시작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관이 주도를 하게 되면 사람이 자주 바뀐다는 흠이 있어요. 사람이 바뀌면 본래 취지와 목적이 훼손될 위험성이 크죠. 한국에서 하는 일들이 대개 관을 주도로 움직이고 나중에 민간에서 운영 위탁을 맡는데, 저는 선후가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시민’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좋은 사례가 부산국제영화제죠. 지방자치의 가장 큰 약점이 시민들이 지방정부에 관심이 없다는 거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과 관련한 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시의원과 도의원들이 권력자마냥 행동하죠. 시민들의 의사와는 거리가 먼 정책방향이 수두룩한데도 말이죠 

-최근에 문화예술 분야 정부포상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을 받으셨습니다. 정말 축하드려요. 사실 두 차례나 상을 거절했다고 알려졌는데 이번에 수락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이제 나이도 들었고요. 두 번이나 거절해서 이번에 또 안 받으면 오해할 것 같아서 받았어요. 작가가 된 지 64년이 됐어요. 줄 사람들 다 주고 나니까 이제 제 차례가 온 거라고 생각해요. 후배들도 ‘왜 안 받으세요’라고 원망 섞인 말들을 해서(웃음)…. 계속 수상을 거부하면 주위 사람들이 난처해질 것 같아서 이번에는 고사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죽을 때까지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는 의지를 밝히셨습니다. 구상하고 있는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의식이 있을 때까지는 글을 쓰고 싶어요. 하루 일과가 글을 읽고 쓰는 일 외에는 특별할 게 없어요. 쓰고 싶은 이야깃거리도 너무 많죠. 제가 겪은 게 많으니까 할 이야기가 많죠. 그래서 항상 ‘이 이야기를 써볼까?’, ‘이런 이야기는 어떨까?’ 궁리해요. 죽기 전에 다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불가능할 정도로 구상하고 있는 이야기가 많아요"

- 전북일보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제 (저도) 전북사람이 됐습니다. 말년을 군산에서 보낼 생각입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언제든 불러주시고 오다가 다 만나면 따뜻하게 인사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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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군산 #소설가 #할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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