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이 나온 16세기 말은 르네상스 후기이며 배경이 된 베네치아는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 크게 번성한 곳이었다. 이곳에서 박해받던 유대인은 그들만의 구역 ‘게토(Ghetto)’에서 살았다. 일몰 후에는 출입마저 통제되었고, 낮 동안 게토를 떠나는 사람은 유대인임을 표시하는 붉은 모자를 써야 했다. 현지인과 같은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기에 고리대금 업(業)을하게 되었는데, 이는 기독교 법을 어기는 행위였다.
베니스의 상인이자 기독교인 ‘안토니오’는 친구 ‘바사니오’로부터 벨몬트에 사는 ‘포샤’에게 구혼하기 위해 경비를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안토니오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삼천 다카트를 빌린다. 샤일록은 돈을 빌려주며 조건을 제시한다. ‘기한 내 갚지 못할 경우, 고운 살 정량 일 파운드를 몸 어디서든 잘라낸 뒤 가지겠다.’ 안토니오는 주저 없이 서명한다.
이야기는 기한 내 빚을 못 갚는 안토니오와 샤일록 간 긴박한 송사(訟事)에 초점이 맞춰진다. 바사니오는 결혼에 성공했고, 부인이 된 포샤는 이 재판의 위촉 판관으로 참여한다.
영화를 볼 때 이야기 전개에 집중해야 하지만, 이 영화의 경우는 인물의 감정선에 치중할 필요가 있다. 안토니오를 보자. 시작부에서 친구들에게 볼멘소리한다. “왜 이리 울적(책은 슬픔으로 표기)한지 모르겠네. 정말 이상해. 자네들도 그랬댔지?” 모두 의아한 눈길을 보낸다. 한 친구가 반문한다. “상품? 사랑?” 고개를 젓는 안토니오에게 친구는 “그러면 기쁘지 않아서 울적한 거라 해두세.”라며 상황을 정리한다.
다음은 유대인이자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다. 평소 기독교인들이 수염에 침을 뱉고 노골적으로 무시해도 참고 사는 사람이다. 애지중지 기른 외동딸이 기독교인 남자를 따라 가출하면서 거금과 보화를 빼돌렸다. 간간이 들리는 소식은 재물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 “불행이란 불행은 다 짊어졌는데, 대체 무슨 낙으로 살아간단 말인가. 가슴에서 피눈물이 흘러넘치네.”라며 치욕과 통한으로 몸부림친다.
안토니오는 영화 내내 조금도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데, 재판 과정에서 본색을 드러낸다. “부탁이네, 논쟁 상대가 유대인임을 염두에 두게.” 갑절로 돈을 갚겠다는데도 기어코 살 1파운드를 떼어내겠다며 고집을 부리는 샤일록 뒤에서 좌중에 대고 하는 말이다.
포샤의 판결로 재판은 끝난다. ‘살을 떼되 피 한 방울도 흘리면 안 된다. 더도 덜도 아닌 1파운드만 취하라. 타민족이 시민의 생명을 노렸으니 원고의 재산은 국고에 귀속된다.’
안토니오의 울적함 그 실체를 찾을 수 없다. 샤일록은 철퇴를 맞는다. 희곡이 유대인을 악마화했다는 평이 쏟아졌다.
영화는 집단 백일몽이란 말을 이 영화를 통해 실감한다. 영화와 관객이 함께 공상하는 장. 여기서 한가지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브레히트’의 소격효과는 ‘낯설게 관찰하기’를 강조한다. 이 작품에서 어느 한 편에 함몰되어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쩌면 지금 진행 중인 전쟁도 위정자들이 꾸는 백일몽 아닐지 모르겠다. 관객은 낯설게 관찰해야 하리라.
판관 포샤는 샤일록에게 자비를 간청했다. ‘자비는 권위 중에서도 가장 큰 권위이며 신의 속성 중 하나’라며. 샤일록은 자비를 버렸고, 안토니오는 유대인을 버렸다. ‘기쁘지 않아서 울적한 거라 해두자.’라는 표현이 정곡을 찌른다. 이들 사는 모습이 기쁠 게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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