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고향이 자랑스러운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 경제 규모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수치만으로 지역의 품격을 가늠할 수는 없다. 2024년 기준 전북 지역내총생산(GRDP)은 약 50조 원으로 전국 최하위권이다. 그러나 전북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또 다른 자산이 있다. 바로 정의와 인권, 민주화 투쟁의 오랜 전통이다.
우리나라 ‘법조 3성’으로 불리는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 ‘검찰의 양심’으로 끝까지 이승만 대통령과 맞섰던 최대교 전 서울고검장, ‘청빈 판사’의 대명사 김홍섭 판사가 모두 전북 출신이다. 여기에 평생을 인권과 민주주의, 약자 보호에 헌신한 한승헌 변호사까지 더해 ‘법조 4성’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는 전북이 우리 나라 법치와 양심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준다.
이런 사실은 지난 달 20일 고 한승헌 변호사 4주기 추모식에서 ‘제2회 산민상’을 수상한 전북인권협의회(인권협)의 활동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1977년 전북지역 목사, 장로, 집사들이 만든 인권협은 군사독재 시절 고문 추방, 양심수 석방, 유신 철폐 운동을 이끌며 민주화 최전선에 섰다. 이들의 정의로운 목소리는 민주화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사회적 약자 보호, 환경 기후위기 대응 등 시대적 과제에 지속적으로 대응하며 활동 영역을 넓히고 시대정신을 구현해왔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인권협이 이끌어낸 실질적 성과다. 전주시내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도입을 제안했던 온누리상품권이 전국으로 확산됐고, 대형마트 월 2회 휴무제도 이들의 문제 의식으로로터 출발했다. 여성 성폭력 인권센터 설립, 지역 노동문제 해결 등 생활과 맞닿은 변화도 이끌어냈다. 심지어는 무주 태권도공원처럼 인권협과 관련이 멀 것 같은 문제에도 힘을 보탰으며, 산하에 ‘새만금완공 추진협의회’를 두고 있다. 현재도 전주시 해고 청소노동자 복직을 위한 목요기도회를 계속하고 있다.
57년 동안 한결 같았던 인권 정신, 정의와 인간 존엄 강조, 피어린 민주화와 반독재 투쟁의 한승헌 변호사의 유지를 기리는 산민상 수상은 반세기에 걸친 이러한 활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라 할 수 있다. 인권협 관계자들도 “지난 50년의 가시밭길의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감동받았다”며 “이 상이 마중물이 되어 협회의 오늘을 더 굳게 다지고 내일을 설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전북의 큰 어른이었던 한승헌 변호사를 기리는 상은 창립 50년에 받는 최고의 선물”이라고도 했다.
한국 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소속 단체인 인권협은 NCCK 산하에 있던 전국 8개 인권위원회 중 유일하게 현재진행형으로 활동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에도 인권의 사각지대는 존재하며, 헌정질서와 시민의 권리를 지키는 일은 끝나지 않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전북은 경제 지표만 보면 ‘못사는 동네’일지 모른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인권의 역사에서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고 오히려 그 중심에 서 있었다. 인권협 50년의 궤적은 이를 증명한다. 인권협 활동에서 돋보이는 점은 뛰어난 공공성과 실효성이다. 지역의 진정한 자랑은 숫자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지키고 실천해왔는가에 달려 있다. 그런 점에서 전북을 전국에서 민주화운동을 가장 가열차게 해온 지역으로 만들었으며, 당당하게 “전북이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심장”이라고 말하는 인권협이 있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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