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6-05-09 12:38 (토)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문화일반

[안성덕 시인의 ‘풍경’] 강낭콩과 빨강 신호등

Second alt text
안성덕 作

겨울엔 무명 여름엔 모시였습니다. 석유에서 뽑아낸 합성섬유 나이롱이 나오기 전까지는요. 모시풀의 속껍질을 벗겨내 태모시를 만들었지요. 손톱과 이로 째고 한 올 한 올 침을 발라 허벅지에 비벼 이어 붙였지요. 광주리의 모시실, 꾸리를 감을 때면 자주 엉켜 난감했었지요.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붉은 강낭콩 한 줌 더 뿌렸고요. 언제 엉켰었냐는 듯이 꾸리 꾸리 잘도 감겼고요. 날기와 바디 촘촘 실을 끼워 풀을 먹이는 매기를 거쳐 베틀에 올렸습니다. 북통에 넣은 꾸리가 씨줄이 되었지요.

실오리 같은 고샅을 빠져나온 지 어언 반백 년입니다. 사통팔달 넓고 빨라진 길을 달립니다. 경기장 사거리 빨강 신호등에 걸린 사이 아련한 옛날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네요. 씨줄 날줄, 엉키지 않고 자동차가 오갑니다. 저 빨강 금세 파랑으로 바뀌겠지요. 행여 뒤처질세라 나는 또 차고 나갈 테고요. 서두르는 길이 꼬이기도 했습니다만, 그 옛날 어머니가 이골이 나게 쪼개고 이어 붙인 모시실 위에 뿌린 붉은 강낭콩 덕에, 내 앞길 크게 엉키지 않았습니다. 잠시 이정표도 살펴라, 신호등이 붉게 붙잡습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