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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전주 ‘파랑새관’ 명칭 재고해야

최기우 (극작가)

전주 완산칠봉 자락에 ‘동학농민혁명 파랑새관’이 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관과 민이 화해한 전주화약의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하겠다는 취지로, 혁명 130주년을 맞은 2024년에 건립됐다. 전주화약은 단순한 종전을 넘어 민이 행정의 주체로 참여하는 집강소 설치의 발판이 된, 당시로서는 매우 선구적인 민중 자치와 민관 협치의 기록이다. 

동학농민혁명의 핵심 무대인 전주에 뜻깊은 공간이 마련된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정작 ‘파랑새관’이라는 이름을 마주하면 깊은 아쉬움이 남는다. 농민군의 희생과 기억이 깃든 공간의 이름으로 ‘파랑새’를 내세운 것은 역사적 맥락과 어긋나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수 울고 간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이 민요에서 ‘녹두’는 전봉준 장군과 농민군을, ‘청포장수’는 고통받는 민중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파랑새’는 누구일까?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이 민요의 ‘파랑새’를 일본군이나 외세 침략 세력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푸른색 계통의 군복을 입고 조선에 진주했던 일본군을 민중들이 파랑새에 빗대어 불렀다는 것이다. 즉, 이 노래는 일본군(파랑새)이 농민군(녹두밭)을 짓밟지 말기를 바라는 간절한 경계와 혁명이 실패할 때 민중(청포장수)이 겪게 될 절망을 담은 비극적인 참요(讖謠)다. 

현대인들에게 파랑새는 벨기에 극작가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동화 덕분에 ‘희망’과 ‘행복’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물론 ‘파랑새관’이라는 이름에는 희망과 평화의 이미지를 담으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에서 이 상징을 단순한 희망의 이미지로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당시 민중에게 파랑새는 동경이 아닌 경계와 두려움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적 공간에서 상징을 차용할 때는 대중적인 친숙함보다 그 시대가 품었던 본질적인 정서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

건립 과정에서 이 명칭이 지닌 역사적 함의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배우러 온 아이들이 “파랑새가 일본군을 뜻한다는데, 왜 기념관 이름이 파랑새관이에요?”라고 묻는다면 전주시는 무엇이라 답할 것인가. 혁명의 정체성보다 대중적이고 익숙한 이미지를 우선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잘못 채워진 첫 단추를 그대로 둔다면, 후대에 전해야 할 혁명의 서사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

기념관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그 시대를 향한 우리 사회의 기억 방식이자 선열에 대한 예우를 담은 공간이다. 공공기념물의 이름 하나에도 어떤 역사를 기억하고 어떤 가치를 후대에 남길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판단이 담긴다. 혁명의 정신을 담아내지 못하는 명칭 대신 혁명의 주체와 민중의 삶을 담아낸 이름으로 조속히 변경해야 한다. 대안은 얼마든지 있다. 혁명의 좌절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민중을 상징하는 ‘청포관’, 전주화약의 핵심 가치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관민상화기념관’ 등이 하나의 예다.

이름은 공간의 역사 인식을 드러내는 중요한 상징이다. 1894년, 보국안민의 기치를 내걸고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이름 없이 스러져간 농민군들을 기억한다면, 전주시는 이제라도 결자해지의 자세로 명칭 변경에 나서야 한다. 이름을 바로잡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그날의 외침에 응답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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