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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잠깐 쉬면 불안”…시간도 관계도 유예하는 취준생의 오늘

경력쌓기 중시하는 2026년 취업 준비시장
시간 쪼개기식 취준에 “취미나 휴식은 사치”
준비 환경 없어 강제 상경 고민하는 이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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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한국 경제가 빠르게 회복 중”이라는 뉴스가 이어지지만, 대학가 자취방과 스터디 카페 안에서 취준생들이 체감하는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구직자들이 채용게시대에서 구인업체를 살펴보고 있다. /전북일보 DB

“잠깐 쉴 때가 생겨도 금방 불안해서 스터디 카페 갈 생각만 하는 것 같아요.”

“시간하고 체력 아끼는 게 (공부할 때)필요한 걸 아니까 연애나 취미는 시작할 생각을 못하죠.”

언젠가를 위해 오늘을 갈아 넣는 이들이 있다. 코스피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한국 경제가 빠르게 회복 중”이라는 뉴스가 이어지지만, 대학가 자취방과 스터디 카페 안에서 취준생들이 체감하는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기업은 이들에게 다양한 경력을 요구하고 AI를 통한 업무 능력을 기본값처럼 기대한다. 불확실한 미래 아래에서 준비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은 이들을 위축시키거나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취업 시장에서 서로 다른 경로로 취업을 준비 중인 이들을 만나 우리 사회의 청년들이 마주한 고민을 들어봤다.

◇ AI와 경력자들을 이겨야 하는 2026년 취업 시장

올해 대학교 4학년이 되면서 3월부터 취업 준비를 시작한 A씨는 수업이 끝나면 학교 앞 카페에서 노트북과의 씨름을 시작한다.

하반기에 예정된 시험 준비와 기업 지원 시 제출할 포트폴리오 만들기에 바쁘다. 인터넷 강의를 듣다가 개인 포트폴리오를 위한 게임 개발에 집중하면 어느새 시침은 자정을 향해 있고, 자취방에 도착해 침대에 누워 하루가 마무리되는 시간은 새벽 1시다.

그는 게임 개발업계에 취업하기 위해 업계에서 통상 요구하는 TOPCIT(소프트웨어역량검정)시험과 개인이 개발한 게임 등의 경력을 보여줄 수 있는 포트폴리오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취준을 갓 시작한 A씨의 하루는 학업과 취준의 반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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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경력직을 요구하는 비중은 과거보다 증가하고 있다. /채용 플랫폼 사람인 캡쳐

경력에 대한 고민도 크다. A씨가 목표로 하는 업계가 경력직을 요구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실제 최근 대기업을 중심으로 정년퇴직한 근로자를 다시 채용하는 ‘정년 후 재고용’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기업은 숙련된 근로자를 신입사원의 초임 수준으로 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LG 전자는 노조와의 합의를 거쳐 내년부터 정년 이후 재고용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며,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 등은 이미 재고용 제도를 시행 중이다.

그러나 신입 채용 공고는 AI 도입 확산 추세와 맞물려 감소했다. 채용 플랫폼 진학사캐치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대기업·중견기업의 신입 채용 공고 건수는 지난해(1438건)보다 647건이 감소한 791건에 그쳤다. 

AI가 자료 조사와 서류 작성 등의 기초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면서 반대로 신입 인력의 필요성은 낮아졌기 때문이다.

A씨는 “요즘에 채용사이트를 들어가면 아예 ‘저희는 신입을 뽑지 않습니다’라고 명시하는 회사가 많다. 4~5년 경력을 요구하거나 업계에 발을 담갔던 시니어 개발자들을 재고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며 한숨 지었다.

◇ “연애·취미는 나중의 이야기” 내일을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이들

전문직 준비 등을 위해 취업 전선이 아닌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도 많다. 법조인을 희망하는 4학년 B씨는 복학 이후 학업과 병행하며 올해 7월 치러질 LEET(법학적성시험)를 준비하고 있다.

시험 준비와 학업을 병행하다 보니 B씨의 시간은 항상 빠듯하다. 오전 일찍 기상 후 학교 수업을 듣고 독서실로 향해 모의고사를 푸는 행동의 반복이다. 

대학교 시험기간이나, 발표 일정이 겹치면 LEET 공부 비중도 줄어드니 시간을 다른 곳에 할애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모임을 거절하는 게 늘어났고, 취미 시간도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 시간에 시험 공부를 하는게 더 이득이라고 느끼다 보니 시간을 더 단조롭게 쓰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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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데이터처의 ‘청년 삶의 질 2025’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번아웃을 경험한 청년은 32.2%에 달했다. 번아웃의 가장 큰 원인은 ‘진로 불안’이었다. /전북일보 자료사진

누구보다 영화를 좋아하는 B씨지만 2시간 정도에 달하는 영화는 사치로 느껴진다. 그는 “이제는 설거지할 때나 짧게 짧게 보는 것 같은데요?”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포기하는 것이 늘고 취준에 매달릴수록, 청년들은 고립되며 번아웃과 같은 증상을 경험하기도 한다. 

국가데이터처의 ‘청년 삶의 질 2025’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번아웃을 경험한 청년은 32.2%에 달했다. 번아웃의 가장 큰 원인은 ‘진로 불안’이었다.

연애 여부를 묻는 말에 B씨는 상상도 못 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어휴 지금 연애는 생각도 없죠. 이미 하고 있는 친구들도 몇 있지만 지금 연애하면 그만큼 저의 시간이나 체력이 사라지게 되니까 어려울 것 같네요.”

◇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전북을 떠나는 청년들

“본가는 여수지만, 졸업하고 작년 6월부터 서울 신림 고시촌으로 올라와 혼자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북에서의 취업 준비에 한계를 느껴 다른 지역으로 향하는 이들도 있다. 외교관을 목표로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을 준비 중인 C씨는 어쩔 수 없는 서울살이를 택했다. 

C씨는 “서울에 연고는 없지만, 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학원 등의 환경이 전북에는 아예 없고 정보 격차도 너무 심하다 보니 상경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고 설명했다.

A씨도 당장은 학업 병행으로 전주에 있지만, 졸업 이후에는 전북을 떠나는 선택지를 고려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이 수도권에 있고, 전북에는 A씨가 취업 준비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준비하는 업계에서)포트폴리오를 가장 비중 있게 봐서 역량 강화를 위한 부트캠프에 많이 들어가는 추세인데 보통 수도권과 광역권에 몰려 있어 졸업 이후에는 수도권 등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부트캠프에 들어가면 희망직군에 종사 중인 현직자들과의 만남이나 커뮤니티를 형성해 개발 포트폴리오를 만들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전북 청년층의 주된 이탈 요인은 ‘더 나은 일자리’와 ‘더 나은 문화’가 차지했다. / 한국은행 전북본부 제공

지난 2015년부터 2024년까지 10년간 전북에서 수도권과 중부권으로 빠져나간 청년 인구는 8만 7000명에 달해, 8개 도 가운데 세 번째로 큰 규모를 기록했다.

한국은행 전북본부가 발표한 ‘지방소멸의 특징 및 시사점’에 따르면 청년층의 주된 유출 원인은 ‘더 나은 일자리와 기회 또는 구직을 위해서’와 ‘더 나은 문화를 누리기 위해서’였다.

전북의 제조업 비중도 8개 도 평균보다 낮아 청년을 흡수할 만한 양질의 제조업 일자리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기업 중 전북을 본사로 둔 곳은 익산의 ‘하림’이 유일하고, 70%에 달하는 21곳이 서울에 몰려있다. 중견·중소기업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24년 매출액 기준 국내 1000대 기업 중 750여 곳이 수도권 등에 집중됐다.

취업 시장에서 다양한 선택지를 바라본다면 수도권으로의 움직임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는 것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지만, 세 사람이 입을 모아 꺼낸 말들은 ‘불안’이나 ‘불확실’ 같은 단어였다. 

수준 이상의 경력을 요구하는 기업들, 더 나은 기회를 찾아 수도권행을 택하거나 그 문턱에서 망설이는 이들이 지금의 취업 준비 시장을 이루고 있다. 

오늘도 A씨는 노트북을 들고 스터디 카페로 향하고, B씨는 모의고사 문제집을 들고 독서실로 들어간다. C씨는 고시촌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 다가올 시험들을 묵묵히 준비하고 있다.

문준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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