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한 지방자치단체장과 만난 자리에서 지역의 현안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는 대화 도중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지역에 좋은 대학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지역의 미래가 더 밝아지고 있다는 느낌은 크게 들지 않습니다.”
나는 무슨 뜻인지를 물었고,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대학이 인재를 길러내도 상당수는 졸업과 동시에 수도권 등으로 떠난다는 것이다. 수도권 집중의 구조적 현실에 대한 푸념이었다. 그러나 지역 대학 총장인 내게는 ‘대학이 지역 안에 있으면서도 지역과 함께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라는 뼈아픈 지적으로 들렸다. 그 말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동안 우리는 대학의 성과를 지나치게 좁은 기준으로 평가해 왔다. 취업률이 높으면 좋은 대학, 수도권 소재 대기업 취업자가 많으면 경쟁력 있는 대학, 유명 대학원 진학 실적이 좋으면 잘 가르치는 대학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런 기준만으로는 지역대학의 역할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대학의 성과는 쌓이는데 지역은 인재를 잃는 현실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대학이 얼마나 많은 인재를 밖으로 내보냈는지가 아니라 청년이 지역에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발판을 얼마나 마련했는지를 물어야 한다.
대학은 캠퍼스 안에만 머무는 기관이 아니다. 지역사회와 연결될 때 비로소 제 역할을 다하는 공적 자산이 된다. 학생이 배운 지식을 지역산업 현장에서 써보고 지역문제 해결에 참여하며 시민의 삶을 바꾸는 데 힘을 보탤 때 대학의 존재 이유도 또렷해진다. 졸업장 수와 취업 통계만으로 대학의 성과를 말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 배움이 지역에 무엇을 남겼는지, 지역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함께 따져야 한다.
올해 3월 대전 도심의 대형 전광판에 대전의 매력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3차원(3D) 실감형 콘텐츠가 등장했다. 목원대 RISE사업단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꿀잼콘텐츠 크리에이팅 프로젝트’의 결과물이었다. 목원대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배운 기술로 구현한 프로젝트 과제는 도시의 풍경이 됐고, 시민이 즐기는 문화콘텐츠가 됐다. 대학 교육이 캠퍼스 안에 갇히지 않고 지역의 일상으로 들어갈 때 배움은 개인의 이력을 넘어 도시의 자산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대학의 역할은 인재를 길러 내보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인재가 지역 안에서 배우고 경험하며 일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길을 놓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 저학년 때부터 지역기업을 알고 현장을 경험하며 관계를 맺게 해야 한다. 그래야 학생도 지역을 스쳐 가는 곳이 아니라 살아갈 곳으로 보기 시작한다. 목원대가 RISE사업을 통해 현장인재 양성, 얼리버드 취업지원, 지역창업 촉진 등을 추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동시에 대학은 시민의 삶과 더 넓게 연결돼야 한다. 평생교육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학은 더 이상 20대만의 공간이어서는 안 된다. 다시 배우고 싶은 시민, 새로운 기술을 익혀야 하는 재직자,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중장년에게도 열려 있어야 한다. 대학이 지역 청년뿐 아니라 주민 전체의 성장 기반이 될 때 비로소 지역과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지역혁신은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학생 한 사람이 대학에 다니는 동안 지역과 연결되고, 지역 안에서 경험을 쌓으며 지역에서 일할 가능성을 넓혀가는 데서 출발한다. 지자체는 대학을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미래를 함께 설계할 파트너로 봐야 한다. 기업은 지역대학 학생을 잠시 쓰는 인력이 아니라 함께 성장할 인재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역과 함께 숨 쉬지 못하면 대학은 성장할 수 없으며, 지역 역시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 대학은 지역의 바깥에서 성과를 계산하는 기관이 아니라 지역의 한가운데서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기관이어야 한다. 청년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지역, 배움이 삶으로 이어지는 지역을 만드는 일. 그것이 오늘 대학에 주어진 가장 무거운 책임이며 물러설 수 없는 존재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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