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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박태건 시인-하상욱 '달나라 청소'

‘햇빛 잘 드는 툇마루에 앉아/ 신문지 펴고 손톱이나 깎는/ 오후를 좋아하고’, ‘가끔 지나가는 채소 트럭 확성기 소리를 들으며/ 시장에 장 보러 간 당신을 기다리는’ 것이 소망이었던 시인이 있(었)다. 그의 존재를 과거형으로 말하려니 갑자기 울컥해진다. 그는 이제 죽은 사람, ‘생의 적막한 오후를 견디기 위해서 아직 남아 있는 햇빛을 애인과 나눠 쬐고 싶었던’ 순정한 사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겨울의 끝자리, 전주한옥마을에서 『달나라 청소』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하상욱 시인(1967~2023)은 남원에서 태어나 원광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그가 남긴 『달나라 청소』을 윤동주 시집 이후 가장 순정한 유고시집이라 하겠다. 시인에게 ‘세상은 아름답기만 한 것도, 그렇다고 노엽기만 한’ 것도 아닌 ‘쪽문 앞 개망초 작은 꽃들을/ 쪼그리고 앉아서 보듯’ 사는 것이다. 윤동주 시인이 일제 강점기의 비루함을 고결한 영혼으로 이겨냈듯이, 하상욱은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노골적인 인간 소외를 맑고 깨끗한 눈빛으로 견디려 했다. ‘죽음이 삶을 껴안든/ 삶이 그 무엇을 껴안든’ 살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상처를 여행해야 하는 걸까. 어쩌면 사는 게 쉽지 않은 것은 ‘너무 많이 가지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수학 기호인 루트를 보면 모자를 벗기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 그만 하면 됐다고, 모두가 자본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데 열중할 때 한발 벗어난 고독한 생의 응시를 통과하느라 시인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상욱 시인은 타인의 가쁜 숨소리도 들을 줄 아는 시인이었다. “항아리가 숨을 쉰다는 얘길 들었다/ 항아리가 숨을 쉬니까 그 속에 담긴/ 된장도 고추장도 숨을 쉴 거다/ 된장도 고추장도 숨을 쉬니까/ 된장을 푼, 고추장을 풀어 끓인 찌개도 보골보골/ 숨을 쉴 거다 /(……)/ 이리저리 치이다 돌아온 당신도/ 숨을 쉬며 살아가는 거다”(‘항아리’ 일부) 시인은 이제 광란의 질주를 멈추자고 한다. 뉴스를 켜면 모두가 미쳐 돌아가는 것 같은 세상에서 하상욱의 시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무어라고 몇 줄 썼다가 지웠다/ 눈이 내리는데 계속 걸었다/ 뒤돌아보면 내가 함부로 찍어 놓은 발자국들/ 눈이 조용히 덮어 주고 있었다/ 간다고 가는데 언제나 여기였다/ 다시 몇 줄 썼다가 지웠다/ 여기에서 저기까지 가 보면 저기가 다시 여기가 되고/ 가다가 멈추면 동그란 무덤이 생겼다…”(‘눈 오는 아침’ 일부) 『달나라 청소』를 읽으며 이 좋은 시들을 더 볼 수 없다는 것이 슬퍼졌다. ‘그리워도 볼 수 없는 것’ 중에서 그의 이름도 추가되었다. 한밤중에 취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하상욱이 없는 이 세계의 ‘눈발 속을 계속 걸어갈’ 수 있을까? 그의 짧은 시를 소개하면 글을 마친다. “기차는 길다/ 괴로움의 증거다// 달려가라/ 달려가라”(‘기차’) 시인을 힘들게 했던 겨울이 지나갔다. 지난 사랑은 언제나 비극이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박태건 시인 1995 전북일보 신춘문예와 시와반시 신인상에 당선됐다. 시집 <이름을 몰랐으면 했다> 로 불꽃문학상을 받았다. <나바위성당 팔각창문 아래서> , <익산문화예술의 정신>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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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05 18:27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기명숙 작가- 임후남'나를 아껴준 당신에게'

임후남 선생님 『나를 아껴준 당신에게』 북토크에 참여했다. 책갈피처럼 가지런히 접혀있던 독자들이 시를 낭송하고 작가와의 인연과 작품에 대해 말하는 연대의 장이었다. 선생은 용인에서 ‘생각을 담는 집’이라는 시골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전주를 떠나 타향에서의 객창감이 잦아들지 않을 무렵 찾아간 곳이었다. 고요의 질감 속 책과 식물에 둘러싸인 맑고 단정한 사람, 그렇게 선생과 인연을 맺었다. 임후남 선생의 작품들은 장르를 불문 삶의 양식과 동시에 이루어진다. 느린 여백의 시간과 필요한 만큼의 적요, 자연 친화적인 공간에서의 작고 연약한 것들과의 상호 작용이 그것이다. 그녀의 처소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아니어서 위계 없이 평화롭다. 선생은 언뜻 시골 후미진 책방에서 고립된 존재처럼 보이지만 꽃나무 풀들의 뿌리가 땅속에서 엉켜있듯 수많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오랜 도시 생활에서 체득한 방식을 버리고 동안 꿈꿔왔다던 ‘나만의 방’에서 타자의 삶을 보듬는 플랫폼으로 기인한다. 책방에 들르는 사람, 꽃나무와 보리와 들깨와 낡아가는 책들에 귀를 기울인다. 『나를 아껴준 당신에게』는 그것에 대한 기록이다. 작품들에서 상실한 자의 목소리, 떠나온 자의 슬픔을 발견하곤 한다. 인간 실존에서 상실과 분리는 시 공간의 이격에서 오는 당면과제다. 그런데 이 시집은 쇠락의 운명일 게 분명한 자연과 인간을 슬픔과 상실로만 규정하지 않는다. 시 전편을 관통하는 실존방식과 무한 애정은 ‘상처와 실패’를 곱씹는 자에게 존엄성 회복에 도달하기 위한 연료 공급처로 기능한다. 누군가 “나무들이 내뿜는 기호에 민감한 사람만이 목수가 된다”라고 하였다. 자연 기호에 매혹되고 예민한, 직접 체득에서 나오는 선생의 감응 능력이 시적 언술로 그치지 않고 확장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나 또한 균열 된 세계로부터 위로를 찾아 숲속 책방을 찾아간 것이었으니 돌올한 선생의 ‘덕목’임이 분명하다. 한편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는 고통의 복판에서 죽음이 코앞에 다가온 노인과 실직자와 쇠락한 집과 희미한 유년기의 기억 등을 현학과 자의식 과잉 없이 드러낸다. 언어실험이니 한방에 녹다운시키려는 언어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지 않고 매화 꽃망울이 터지듯 툭툭, 던지는 말의 오묘함이 있다. 시집을 읽는 내내 선생의 관계망 속에 긴밀히 연결됐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취약한 존재라는 것을 들켜도 부끄럽지 않게 된다. 시인의 말에서처럼 “삶의 풍경은 저마다의 계절이 있고” 아픔은 균등 배분되지 않고 각자 몫으로 견뎌내야지만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면 다시 봄이 올 것”이니까. 북토크에서 나는 「시인」을 낭송했다. 삶의 전장에서 “김밥을 말고 소주를 마시며 그냥 아줌마로 불리는” 시를 접어버린 이와 반대 값인 “쉰에 시인이 된 그는 육십 넘은 지금 김밥집에서 김밥을 말고 있다 (중략) 김밥을 말다 시가 튀어나오면 얼른 볼펜을 집어 들었다 (중략) 사람들은 그를 시인이라고 불렀다.” 시인으로 산다는 것이 불균형적이고 도구적 측면에서 무용하대도 진정한 시인으로서의 추동 방식은 다르다. 이질적인 두 사례의 향방에서 나는 어디쯤 있는 것이냐! 힘든 사연도 말하고 나면 고통이 줄어든다. 선생은 아픔과 슬픔 견딜 수 없는 그리움까지 털어놓게 한다. 선생의 수필집 『책방 시절』과 『나는 괜찮아지고 있습니다』에서도 일관된 메시지가 있다. “나와 이웃한 삶에 자꾸 귀 기울이”는 선생이 넌지시 묻고 선생에게 위로받았던 나는 대답한다. “나는 이제 괜찮아지고 있습니다.” 기명숙 작가는 전남 목포 출신이며, 200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몸 밖의 안부를 묻다>가 있다. 현재 강의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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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26 18:51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은영 작가, 김순정'아주 특별한 발레리노 프로기'

주택으로 이사를 하면서 옥상 텃밭을 가꾸고 있다. 사각 고무통에 흙을 채우고 처음으로 씨앗을 뿌리면서, 싱싱한 채소를 수확할 꿈에 한껏 부풀었다. 다행히 몇 번 시행착오를 겪고 난 뒤, 샐러드를 해먹을 만큼의 푸성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텃밭 농사를 지으면서 간과했던 것이 있다. 그건 어쩔 수 없이 다양한 벌레와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무통에서 자라는 상추를 하루 만에 다 먹어 치우는 배추흰나비 애벌레, 고추나무에 사는 노린재를 일일이 손으로 잡으면서 수확의 기쁨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다양한 나비가 내 텃밭에 놀러 오고, 매일 아침 나타나는 크고 뚱뚱한 호박벌과 여름 막바지에 찾아오는 고추잠자리를 기다리며, 자연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곤 했다. 김순정 작가의 그림책 『아주 특별한 발레리노 프로기』에서도 눈길을 사로잡은 건 개구리였다. 발레 신발을 신고 발끝을 세우며 춤을 추는 ‘프로기’를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태어날 때부터 뒷다리가 남달라 엄마 아빠의 기대를 한껏 높였던 프로기.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프로기는 멀리 뛰기나 파리를 잡는 데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춤추는 것에만 열심이다. 연못에서 들리는 물방울 소리, 빗소리, 새들의 노래에 맞춰 행복하게 춤추며 마냥 행복한 프로기. 그런데 그런 프로기를 연못 속 생물들은 이상하다고 수군거린다. 프로기의 이런 상황은 인간의 삶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초등학생이니까’, ‘20대니까’, ‘엄마니까’ 당연히 이러해야 한다는 통념을 가지고 있다. 그에 반하는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불편해하며 때로는 비난하기도 한다. 나와, 혹은 우리와 다른 모습을 인정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고정관념은 때로 진정한 내 모습을 찾고 개성을 키워가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주위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비웃을까 봐 시도조차 하지 않거나, 아이가 애써 찾은 꿈을 현실적인 이유를 들며 싹조차 틔울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나는 왜 춤을 추는 거지?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만 뱅글뱅글 돌던 생각을 끌어 올렸어요. 그거야, 춤을 추면 행복하기 때문이지. 고민에 빠졌던 프로기는 춤을 좋아하고 즐기는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했고, 시간이 지나자 숲속 친구들 역시 프로기가 춤추는 걸 보며 아름답다고 느낀다. 산다는 것은,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가는 일이다. 진정한 행복은 하고 싶은 일을 통해 재능을 꽃피우고 스스로 발전하고 성장하는 데 있다. 설사 그것이 하찮고 누구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라 해도, 그 순간에 몰입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장은영 동화작가는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통일 동화 공모전, 2024 남도의병 콘텐츠 공모전 스토리 부분 대상, 전북아동문학상과 불꽃문학상을 수상했다. 2022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역사와 문화로 보는 도시 이야기 전주>, <책 깎는 소년>, <으랏차차 조선 실록 수호대>, <열 살 사기열전을 만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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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19 18:11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창영 작가- 박현아'인공지능, 말을 걸다'

올 1월, 우연한 기회로 서울에서 미디어 아트 전시회에 참여했다. 텍스트를 입력하면 그림을 생성하는 '미드저니'를 활용해 만든 개인 작품들을 전시하는 행사였다. 이전 화가들이 자신의 취향이나 의지에 기반을 두고 자신만의 그림을 그렸다면 이제는 프롬프트를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만드는 시대가 도래했다. 작업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지만 최종 결과물의 완성도는 전문가도 놀랄 수준이다. AI 덕분에 언감생심 평생 동안 그림 전시회는 꿈도 못 꾸던 이들도 전시회를 하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축하 노래를 만들 수도 있게 되었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다양한 AI 프로그램도 놀랍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날이 갈수록 더 정교해지고 있다. 프롬프트 한 줄만 넣으면 동영상까지 만들어주는 시대를 살다 보니 몇 년 후에 우리는 어떤 변화를 맞이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단이나 출판을 꿈꾸면서도 망설이던 이들도 이제는 쉽게 자신의 이름을 새긴 책을 만들어낸다. 챗GPT나 Claude AI의 도움을 받으면 자신이 쓰고자 하는 책 한 권을 하루에 쓰는 일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그렇게 만든 책으로 작가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사실에 뿌듯해하는 이들이 제법 많다. 가끔 그런 사람들을 보면 그동안 긴긴밤 고뇌하면서 글을 썼던 시간이 그리워진다. 글이라는 세계를 안 후 세상과 만나는 일은 얼마나 큰 축복과 행복을 주었던가. 분노가 나를 휘감을 때, 슬픔이 몰아칠 때, 감동이 나를 사로잡을 때 그 모든 순간마다 글이 내 곁에 있었다. 돌이켜 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두 가지는 여행과 글쓰기를 만난 일이다. AI의 도움을 받아 책을 쓴 이들은 만약 AI가 없다면 제대로 된 글 한 줄 쓰기가 버거운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제목이나 키워드만 넣으면 시를 가래떡 뽑아내듯 쏟아내는 모니터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여러 생각이 든다. 저 사람들은 자기가 썼다는 시를 기억이나 할까? 만약 다른 이들의 작품과 섞어 놓는다면 자신의 작품을 구분도 못할 것이다. 가끔 그들에게 글쓰기는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까 궁금해진다. 『인공지능, 말을 걸다』라는 이 책의 기본 화두도 “가장 인간적인 기계가 던지는 질문”이다. 이 책이 나올 때만 하더라도 챗GPT와 같은 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봇이 없었다. 그래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저자의 기본적인 고민들은 오늘날에도 개발자와 사용자들에게 여전히 가치를 지닌다. 가장 좋은 가전제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말처럼 우리가 기술의 발달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나는 사람들이 AI를 외치는 시대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AI가 주는 공허함은 단순한 기술 발전만으로 채울 수 없는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AI가 업무의 효율성과 처리 속도를 높여준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렇게 해서 남는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쓰고 있는가 의문이 든다. 나는 요즘 자연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다. 자연 속에서 우리의 작은 존재를 깨달을 때, 시야는 넓어지고 사고는 깊어진다. 오늘은 잠시 매체에서 벗어나 자연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는 것은 어떨까? 그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AI시대를 슬기롭게 살아가는 생존법이리라. 장창영 작가는 전주 출신으로 2003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다. 불교신문·서울신문 신춘문예에도 당선돼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시집으로 <동백, 몸이 열릴 때> 와 문학이론서 <디지털문화와 문학교육>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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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12 14:52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경옥 작가, 켈리 양 '프런트 데스크'

2021년 영화 <미나리>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었다. 낯선 미국 땅, 아칸소로 떠나온 한국 이민자 가족의 삶을 보여준 영화였다.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미나리’는 아무리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듯 이민자들의 녹록지 않은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여전히 백인 중심 사회의 암묵적인 차별이 이민자들에게는 거대한 장벽으로 다가오면서 거칠고 불안정한 삶이 펼쳐졌다. 그러면서 가족 간의 갈등과 아이들의 불안감, 외로움이 부각 되었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프런트 데스크> 책의 저자도 여섯 살에 가족과 함께 중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다. 모텔에서 일하던 부모님을 도와 모텔 프런트 데스크 일을 하며 자랐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 <프런트 데스크>다. 1900년대 초,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을 떠나 미국에 이민을 온 ‘미아’네 가족 이야기다. 그 시절 이민자, 그것도 아시아인 이민자가 미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식당 보조나 모텔 관리인 같은 일뿐이다. 자유와 기회의 땅이라고 알고 있는 미국은 순순히 이방인에게 그들이 원하는 좋은 자리를 내주는 곳은 아니다. <미나리>에서 보듯 이민자가 다른 나라에서 정착하며 살아간다는 건 예상치 않은 어려움이 많다. 그것도 1900년대 아닌가! 주인공 ‘미아’네 가족. 성공한 이민자를 꿈꾸며 사회주의 국가를 떠났겠지만, 일자리를 구하는 것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중국에서는 엔지니어로 일했던 아빠는 미국에 와서 식당 서빙을 하고, 엄마는 주방 보조로 일하게 된다. 하지만 두 부부가 하루 종일 매달려서 받은 월급은 집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결국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모텔 관리인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숙식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모텔 주인을 찾아간다. 모텔 관리를 하게 된 ‘미아’의 부모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일을 하게 된다. 이를 조금이라도 도우려는 열 살 소녀 ‘미아’는 프런트 데스크를 맡으며 미국 사회의 모순을 마주한다. 모텔에 장기 숙박 중인 손님도 있고, 하루하루 맞이하는 다양한 손님들 틈에서 유색인종을 얕잡아 보는 미국인들의 적나라한 인식을 알아가게 된다. 부모님 역시 ‘미아’를 기회의 땅에서 자라게 하고 자유를 만끽하게 하려고 했던 생각들이 현실의 벽 앞에서 무너질 때가 많다. 학교에서도 미아는 유색인이라는 이유로 놀림의 대상이 된다. 거기에 모텔에서 장기 투숙하는 행크라는 인물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범죄자 취급당하는 걸 그대로 본다. 이민자로서, 유색인종으로서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게 희망보다는 절망의 순간들이 많다. 그럼에도 열 살 ‘미아’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이민자 아이들과 마음을 나누기도 하고, 장기 숙박을 하는 유색인종 어른과의 교류 속에서 자신만의 희망을 설계한다. 모텔 주인인 ‘야오’는 다른 도시에서도 모텔 사업을 하면서 어려움이 지속되자 ‘미아’ 가족이 관리하는 모텔을 팔아넘기려 한다. 어른들이 망연자실하며 손을 놓고 있을 때, 미아는 여러 사람에게 모텔의 지분을 갖게 하고 투자를 유도한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투자자들이 몰리고 결국 모텔을 소유하게 된다. 물론 순수한 ‘미아’네 모텔은 아니었지만 수십 명의 후원으로 얻어낸 보금자리인 셈이다. 길거리로 쫓겨날 것만 생각하고 있었을 때, ‘미아’는 거침없이 도전하면서 미국 생활에 한 발 내딛게 되고, 이민자로서 터를 다진다. ‘아시아태평양 미국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책이고, 어린이의 시점으로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정착하는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또한 어린이의 도발적 행동으로 모텔을 얻게 되는 통쾌함도 맛볼 수 있다. 물론 투자자들의 의기투합으로 얻어진 모텔의 운영이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텔의 관리인에서 경영자의 입장으로 닻을 올린 상황이 또 다른 시련의 시작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도전은 잠자고 있는 우리의 일상을 꿈틀거리게 한다. 지금 살아가는 익숙한 공간도 두드리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두려움을 걷어내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에서 길잡이로 다가온 책이었다. 새해를 맞이했다. 그동안 마음 안에서만 설계했던 일들을 주저하지 않고 펼칠 수 있는 용기를 책에서 찾아본다. 이경옥 아동문학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두번 째 짝>으로 등단했다. 이후 2019년 우수출판제작지원사업과 지난해 한국예술위원회 ‘문학나눔’에 선정됐으며, 2024년 안데르센상 창작동화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의 저서로는 <달려라, 달구!>, <집고양이 꼭지의 우연한 외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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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05 14:31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영주 작가, 박지숙 '우리들의 히든스토리'

박지숙 작가의 작품집마다 제목은 늘 감탄스럽게 한다. 이번에는 ‘히든’이라는 말이 끌렸다. 작가의 말대로 저마다 히든스토리는 있다. 책의 주인공의 히든스토리는 아니더라도 부모님이 들려주는 자신이 몰랐던 이야기들이 누구나 있을 테다. 세 주인공의 이야기가 힘든 자기를 이겨낼 수 있게 만드는 히든스토리가 밝혀지는 이야기라 안나, 한별, 요셉은 한 뼘은 컸을 성장스토리다. 안나는 항변한다. ‘왜 다들 나를 다문화라고 하는 거야? 날 반쪽짜리 한국인 취급하지 마. 난 하프(half)가 아니라 보스(both)라고! 게다가 난 우크라이나 왕족의 혈통인데 왜 몰라주는 거지?’ 똑 부러지는 안나는 ‘한국인이면 한국이지 다문화 한국인이라 하면 마치 다른 무리로 분리’하는 기분이 든다고 반 아이들 앞에서 당당히 말한다. 이 부분을 읽는 순간 떠오르는 기억 하나가 있다. 한 학교에 동시수업을 할 때였는데, 내게 보여준 동시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다문화 아이들을 안 좋아해서 엄마가 창피했다. 엄마는 하얼빈에서 왔다. 한국말을 잘하는 엄마가 지금은 자랑스럽다.’ 나는 이 아이를 칭찬해주었다. 그 후, 마치 Coming Out 하듯 여기저기서 엄마 얘기를 소재로 써왔다. 일일이 잘 썼다 말해준 적이 있다. 가히 안나의 마음을 가늠 할 수 있겠다. 수업을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알아보는 게 있다. 다문화, 한부모 세대, 조부모 가정, 한글을 쓰지 못하는 아이 등등 수업 중에 참고할 사항들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 사항에 해당되지 않은 아이를 찾기가 더 쉽다. 수가 훨씬 늘어난 탓이다. 한별은 답답하다. 긴 상자를 산타가 놓고 갔다느니, 펠리컨이 아기 보따리를 열린 창문으로 내밀었다느니, 엄마는 한별을 헷갈리게 만든다. 자신의 출생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 가는 한별은 두려움까지 느낀다. 예전에 ‘다리 밑에서 데려왔다. 자꾸 울면 다시 다리 밑에 두고 올 거다.’ 협박했었다. 한별의 궁금증과 두려움이 느껴진다. 요셉은 독특한 취미와 다른 엄마들에 비해 나이가 많고, 요셉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엄마가 그리 반갑지 않다. 나도 아이를 늦게 낳아 요셉의 엄마의 행동이 이해가 완전 공감된다. 세 아이의 저마다 궁금한 출생의 비밀, 세 엄마는 저마다 아이들의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고달픔도 함께 나눈다, 맥주와 함께. 처음 책표지를 마주하고 무슨 아이들이 맥주 캔을 들고 행복한 세 사람이 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의문이 풀렸다. 같이 고민하고, 엄마로서 함께 고민하는 세 엄마들의 유쾌한 포즈였다. 눈을 위로 돌리면 궁금증과 불만을 가득 담은 안나, 한별, 요셉이 내려다보고 있다. 제목이 히든스토리인 만큼 Spoiler는 그만 마치겠다. 이 세 명의 히든스토리가 향한 방향과 바탕은 ‘사랑’임을 알려준다. 축복 받고 태어나지 않은 사람에 없다 알려주는 동화. 흥미롭고, 따뜻한 이야기다. 김영주 작가는 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 2018년 동양일보 동화부문 신인문학상 수상. 2020년 장편동화 『레오와 레오 신부』 출간. 2021년 청소년 소설 『가족이 되다』출간. 2023년 수필 오디오북 『구멍 난 영주 씨의 알바 보고서』 출간. 2023년『너의 여름이 되어줄게』5人앤솔러지 2023년 『쉬, 비밀이야』앤솔로지동시집. 2024년『크리스마스에 온 선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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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22 14:30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박태건 시인-송현섭 '착한 마녀의 일기'

동심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뭘까? 별, 꽃, 구름, 천진함…. 그런데 이것들은 오래전에 잃어버린 것들이 아닌가? 어렸을 적 ‘잠든 척’하며 들었던 부모님의 대화를 기억한다. 오줌이 마려워도 참았다. 뭔가 어른들 만의 비밀을 알아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음 날부터 ‘알아도 모르는 척’ 해야 했다. 송현섭의 동시집 <착한 마녀의 일기>는 어린이를 순수하고 무구한 존재로만 생각하는 어른들에게 통쾌한 똥침을 놓는다. 송현섭은 “나는 시옷 자의 풀밭에 누워 / 기름처럼 둥둥 뜬 흰 구름을 보며 / 생각하고, 고민하고, 의심하고, 추리했네. // 젠장, 나는 분명 삥 뜯기고 있는 거야.”(「착한 마녀의 일기」)처럼 세상의 변두리에서 들려옴직한 말로 동시를 쓴다. 파격적이고 발칙한 상상력이다. 송현섭 시인은 199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됐다. 오랜 시간 ‘천사의 시’를 찾았으나. 결국 그가 찾은 건 ‘마녀같은’ 동시다. '착한 마녀'라니, '착한 정치인'이라는 말처럼 아이러니하다. 그는 이 시집으로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하했다. 동시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송시인은 어린이를 미성숙한 존재로 보는 시선에 반대한다. “동심이나 순수함이란 관찰의 대상이 아니에요. 아이들은 너무 바빠서 순수할 겨를도 없어요.” 동심 천사주의와 교훈주의는 만들어진 아동문학의 안과 밖이다. 동심 천사주의는 현실의 피로와 중압감을 아이의 순수성에 기대 치유하고 구원받으려는 어른의 낭만적 충동이다. 그래서 동시에는 달님, 별빛, 이슬, 무지개 등의 상투어가 자주 등장한다. 아름다운 단어나 교훈적인 결론으로 끝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는 끊임없이 성장하는 존재이며, 구체적인 현실에 발을 딛고 사는 사회적 존재다. 마치 ‘우리 마을에 새로운 괴물이 하나 더 추가된 거지’ 같은 말은 어지러운 시국을 예견하는 것 같다. 감정도 거래되는 요즘 시대에는 송현섭의 동시를 읽어야 한다. 복잡하고 난해하게 사는 현대인에게 시인의 엉뚱한 따뜻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처단’, ‘검열’, ‘통제’처럼 어리석고 무서운 단어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거리의 언어는 타락하고 태극기는 오염되고 있다. 어린이에게 무얼 보고 성장하라는 말인가?. 기존의 동시가 세속적인 세계에서 아이들의 귀를 막는 것이었다면 송현섭의 동시는 뻔뻔하고 추악하게 사는 ‘괴물’ 같은 어른들의 세상에서 부대끼는 ‘작은 인간’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솔직해서 차라리 가슴을 뛰게 하는 아이들의 생각을 읽으며 정작 유치한 것은 어른들임을 생각한다. 새해다. 산에 올라 일출 사진을 공유하고, 한해의 계획을 세우고… 생각해보니 작년에도 그랬잖아! 점집도 바빠지는 시기. 신문은 무속에 빠져 자신과 나라를 위기에 몰아넣은 이들을 비판하는 한편 '오늘의 운세'를 게재한다. 환상을 믿는 것은 어른들이 더 하다. 송현섭의 동시집 <착한 마녀의 일기>를 나라를 혼란에 빠트려 구치소에 수감될 이들에게 읽히고 싶다. 너희들의 못된 심보는 다 들통났으니 순순히 투항하라. 박태건 시인은 1995 전북일보 신춘문예와 시와반시 신인상에 당선됐다. 시집 『이름을 몰랐으면 했다』로 불꽃문학상을 수상했다. 『나바위성당 팔각창문 아래서』 , 『익산문화예술의 정신』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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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15 15:37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문신 시인-숀 탠 '이너 시티 이야기'

2025년 벽두에 그림책 한 권을 소개해야겠다. 몽환적인 그림과 시적인 문장으로 일상의 비밀을 파고드는 작가 ‘숀 탠’의 책이다. 일단 그의 이름을 기억해 두길 바란다. 호주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그의 글은 생태학적 상상력으로 충만하다. <도착>, <빨간 나무>, <잃어버린 것>, <매미> 같은 작품으로 자기 세계를 완성했다고 평가받지만, 특별히 펼쳐 보이고 싶은 책은 <이너 시티 이야기>이다. 2020년에 ‘케이트 그린어웨이’상을 받은 작품으로, 같은 해에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케이트 그린 어웨이’상이 낯설지 모르겠다. 찾아보니 영국아동문학계의 노벨문학상이라고 한다. 이 정도면 숀 탠의 책을 믿어도 되지 않을까? 이 책에는 스물다섯 종의 동물이 등장한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동물은 악어. 악어들은 이 도시의 “팔십칠 층에 산다.” 하지만 “우리 털 없는 원숭이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아니, 사실은 “아무도 이 도시 전체가 늪 위에 건설되었음을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이 정도만 읽어도 이 책이 무얼 다루고 있는지 감 잡았을 것이다. 그렇다. 작가는 우리 ‘털 없는 원숭이들’이 건설한 도시에 사실은 인간보다 많은 동물들이 도처에 다양하게 살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한다. 인간이 인간의 쾌적한 삶을 위해 건설한 도시가 인간의 독점 공간이 될 수 없다는 것. 왜냐하면 이 도시는 애초에 늪이었고 들이었고 비탈이었으니까. 늪과 들과 비탈에는 인간보다 먼저 숱한 동물들이 살고 있었으니까. 이 책은 도시 안에 살고 있는 동물들을 차례대로 불러낸다. 당신도 여기에 참여하고 싶다면 마음으로 한 번 동물들을 떠올려보라. 강아지와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을 상상했다면 적잖이 실망이다. 그 또한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다. 작가의 상상력은 인간이 건축한 도시에 있지 않다. 이 책에서 말하는 도시는 사실 야생의 숲과 바다와 창공의 다른 모습이다. 당연히 작가가 불러낸 동물들도 ‘야생’의 습성과 야생의 서식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코뿔소가 다시 고속도로에 있”고, “호랑이는 오랫동안 당신을 따라다닐 거다.” 그렇게 동물들을 이야기한 끝에 이 책은 마지막으로 털 없는 원숭이인 우리 인간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왜 우리는 그토록 많이 싸웠을까?” “우리는 왜 그토록 잔인하고, 냉담하고, 이기적이고, 분리되고, 외로웠을까?” 그렇다. 다른 동물에 비해 인간은 유독 외로워하는 존재다. 진화 과정에서 우리가 외로움을 선택한 것이다. 숀 탠의 <이너 시티 이야기>는 말 그대로 우리가 사는 도시 안쪽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 안쪽은 너무 깊고 캄캄해 아무도 들여다볼 수 없는 그런 곳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도시의 심연을 채우고 있는 건 탐욕 가득한 인간의 욕망이다. 그러니 지금 당신 곁을 한 번 둘러보시라. 누가 남아 있는가? 달팽이와 상어와 독수리와 곰이 보인다면, 당신은 이제 인간이 아니라 털 없는 원숭이로 돌아간 거다. “올빼미, 돼지, 폐어, 달물고기, 앵무새, 비둘기, 나비, 벌” 같은 “그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주었”던 순수했던 인간으로. 외롭지 않은 인간으로. 그림책 한 권을 읽고 나면 저절로 그렇게 될 것이다. 그게 버겁다면 서로의 상상 속에서, 서로의 그림자 속에서, 우리가 서로 얽혀 있다는 것만이라도 발견하는 새해가 되면 좋겠다. 문신 시인은 2004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시집 죄를 짓고 싶은 저녁 등을 냈다. 동시, 동화, 문학평론 등 다양한 글을 쓰고 있으며, 우석대 문예창작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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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8 16:43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영종 시인 –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강의 서랍에 넣어놓은 저녁이 궁금합니다. 꼬마전구 같은 요정들 몇이 모여 달그락달그락 저녁을 먹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 서랍을 열 수 없어,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열어 봅니다. 말들이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눈빛으로 하는 말이 흘러옵니다. 거기 그렇게 있어 주기만 해도 고맙습니다. 그런데 무언가를 묻고 또 묻습니다. “봄빛과/ 번지는 어둠/ 틈으로/ 반쯤 죽은 넋/ 얼비쳐/ 나는 입술을 다문다/ ……/ 기다려봐야지/ 틈이 닫히면 입술을 열어야지/ 혀가 녹으면/ 입술을 열어야지”(‘새벽에 들은 노래’ 중). 넋은 산 사람 안에 있어요. 마음의 머릴 빗어주고 몸의 신발끈을 묶어주죠. 우리가 죽어도 살아 있는 초험적인 것이라 하죠. “반쯤 죽은 넋”은 무엇일까요. 슬픔 마르기 전에 비탄에 젖거나, 희망이 잘려나가 살고픈 뿌리를 잃는 것이겠죠. 죽어 이승으로 가지 못하고 거대한 학살터를 떠돌고 있는 것이겠죠. “혼은 자기 몸 곁에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을까요. 그게 무슨 날개같이 파닥이기도 할까요. 촛불의 가장자릴 흔들리게 할까요.”(소설 ‘소년이 온다’ 중) 혀는 “가슴과 가슴을 연결하는 금실인 언어”를 내죠. 먹고 노래를 불러요. 내밀어 장난을 치거나, 키스를 합니다. 폭력 속에 아름다움을 굴리기도 해요. 이렇게 혀를 쓰고 쓰다 보면 녹아 없어지겠죠. 이제 입술을 열면 침묵의 동굴 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거기 햇볕 가득한 곳에서 침묵이 시간을 낳아 기르고 있을 겁니다.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난 죽어 있었는데/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 ……// 거기 있었네/ 파르스름해 더 고요하던/ 그 돌// 나도 모르게 팔 뻗어 줍고 싶었지/ 그때 알았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파란 돌’ 중). “눈동자처럼 고요”한 파란 돌은 영혼이겠죠. 그걸 주우려면 “다시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날 수 있을까요. 작가의 말처럼 “질문의 마지막 겹에 사랑”을 놓아야겠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을까요.” “죽은 자는 눈이고 산 자는 사람이라 오늘의 눈사람이 반짝였다”라는 게 제 시에 있어요. 죽은 자는 눈으로 이 세상에 오죠. 산 자는 눈이 좋아 우두커니 서 있어요. 오늘의 눈사람이 반짝이죠.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어느 늦은 저녁 나는’ 전문). 낮인지 밤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어스름입니다. 번져가는 그 먹물 속에 서있는 걸 좋아합니다. 죽어가는 낮을 태어나는 밤이 놓아주지 않아서죠. 밥과 김은 무슨 이야기를 하며 사별할까요. 지나가버린 혼은 우주 어느 의자에 앉아 있을까요. 밥을 먹는 나에게서 김이 나가는 걸 느끼는 존재가 있겠지요. 그래도 밥을 먹고, “당신의 마른 어깨와 내 마른 어깨가 부딪친 순간. 외로운 흰 뼈들이 달그랑, 먼 풍경소리를 내는 순간”(소설 ‘내 여자의 열매’ 중)을 껴안겠습니다. 이영종 시인은 2012년에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에 선정되어 2023년에 첫 시집 〈오늘의 눈사람이 반짝였다〉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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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25 14:18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기우 극작가-윤흥길 '완장'

‘완장’을 얻어 차고 설쳐 대는 이들은 언제나 있다. 소설 「완장」의 종술도 완장을 차게 해준다는 말에 번쩍 귀가 뜨였다. 일제강점기·한국전쟁·자유당·유신 등을 거치며 위세를 떨쳤던 완장의 힘과 권력을 듣고 봐왔으며, 어려서부터 객지를 떠돌며 쌈질로 잔뼈가 굵은 자기 삶에서 완장의 위력을 학습해 왔기 때문이다. ‘감시원 완장 차고 물 가상이로 왔다리갔다리 허면서’ 막강한 권력자처럼 권위를 내세우던 동네 건달 종술. 술집 종업원 부월은 완장을 ‘하빠리 권력’이라며 핀잔하지만, 종술은 눈을 부라리며 “너는 몰라. 차고 댕겨 본 적도 없으니께, 요, 완장에는…”하며 왼쪽 어깨 쪽으로 완장을 바싹 추어올린다. 독재 정권의 검열을 피하기 어려운 1982년 3월부터 1년 동안 『현대문학』에 연재된 「완장」은 전라도 사투리와 우리 민족 특유의 해학·풍자를 잘 살려낸 윤흥길의 장편이다. 이 작품은 한국전쟁 이후 정치권력의 폭력성과 보통 사람들의 암울한 삶을 ‘완장’이라는 상징적 소재로 풀어내며 우리 사회에 내재한 권력욕을 첨예하게 드러냈다. 「완장」은 익산시에 공업단지가 들어서던 시절, 김제시 두악산 아래 백산면 하정리 백산저수지를 배경으로 한다. 종술이 완장 찬 팔을 휘저으며 갈지자걸음으로 순찰하던 ‘판금저수지’다. 작가는 백산저수지 근처에서 과수원을 하던 친구에게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후 작품을 떠올렸고, 저수지 이름을 판금저수지로 바꿨다. 또한, 종술의 욕망을 희화화하기 위해 1966년 호남야산개발 때 축조한 이 저수지를 실제보다 훨씬 큰 규모로 묘사한다. “독재, 전쟁 위협, 빈부 갈등 등 한민족이 겪는 불행과 비극은 모두 6·25 전쟁과 직결돼 있어요. 독재 정권은 전쟁으로 인한 분단을 권력 유지 핑계로 사용했어요. 자유는 유보됐죠. 더 이상 분단을 빌미로 국민을 억압하는 일은 없어야 해요.”(윤흥길·본보 2018년 1월 6일 자) 얼마 전, 우리는 잘못된 권력의 포악과 폐해로 점철된 시대의 불완전한 징후를 봤고, 완장의 역사가 반복되는 현실에 개탄했다. 망설임 없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완장을 차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자가 누구인지, 그 권력을 휘두르도록 외면하는 자들이 누구인지를 찾아내 눈 부릅뜨며 호통을 쳤다. 그 결과 지난 14일 국회에서 국민을 저버린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대한민국의 자존감을 지키려는 시민의 올곧음이 끌어낸 성과다. “눈에 뵈는 완장은 기중 벨 볼 일 없는 하빠리들이나 차는 게여. 진짜배기 완장은 눈에 뵈지도 않어. 자기는 지서장이나 면장 군수가 완장 차는 꼴 봤어? 완장 차고 댕기는 사장님이나 교수님 봤어? 아무 실속 없이 넘들이 흘린 뿌시레기나 주워 먹는 핫질이 완장이여. 진수성찬은 말짱 다 뒷전에 숨어서 눈에 뵈지도 않는 완장들 차지란 말여.”(전주시립극단 연극 <완장> 중 부월의 대사)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완장과 ‘완장질’이 흔전만전한 ‘완장의 나라’. 출간 40주년을 기념해 문장과 표현을 다듬어 나온 『완장』(현대문학·2024)을 펼쳐 그 정체를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완장의 악몽은 쉽게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최기우 극작가는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했다. 희곡집 <상봉>,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은행나무꽃>, <달릉개>, <이름을 부르는 시간>, 어린이희곡 <뽕뽕뽕 방귀쟁이 뽕 함마니>,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 <쿵푸 아니고 똥푸>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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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18 17:11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근혜 작가-어윤정 '리보와 앤'

코로나로 세상이 암흑에 휩싸일 때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 지를 생각하게 하는 동화를 만났다. 도서관 로봇 리보는 오늘도' 안녕하세요. 즐거움과 안전을 책임지는 여러분의 친구, 리보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로 하루를 시작한다. 리보는 아이들이 읽은 좋을 도서를 추천하고, 어린이들에게 다정한 친구이다. 2층에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로봇 앤이 있다. 그러다 플루비아라는 이상한 단어가 도서관 확성기를 통해 들려온다. 사람들이 도서관을 빠져나가고 도서관은 폐쇄된다. 완벽하게 고립된 리보와 앤. 둘은 서로 의지하며 지루한 일상을 보낸다. 리보는 왜 아이들이 도서관에 안 오는지 알아보지만 한계가 있다. 앤은 리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이들이 올 날을 기다린다. 그렇지만 고립은 점점 길어지고 배터리는 점점 약해진다. 사서가 도서관에 와서 입구에 종이 한 장을 붙이고 바람같이 사라진다. 며칠 뒤, 유도현 어린이가 도서관 입구로 찾아와 리보를 구하려하지만 문이 잠겨 있어서 실패한다. 하지만 도현이는 포기하지 않고 리보에게 메신저를 보낸다. 도현이는 리보를 위해 일상을 공유하고 감정을 나눈다. 리보는 자기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어 비슷한 느낌의 책 제목을 답장으로 보낸다. 리보는 앤과 공조해 건물 밖으로 나가려 시도한다. 하지만 앤이 다친다. 앤은 이상 증상을 보이다가 완전히 방전된다. "그리움은 걷잡을 수 없는 재난, 만날 사람은 만나야 한다" 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리보의 외로움. 그건 리보만의 외로움이 아니었다.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느낀 외로움이었다. 사람이라서 당연하게 느끼는 감정이라고? 로봇에게는 그런 감정이 없지 않나? 아니다. 리보는 비록 로봇이지만 아무도 없는 도서관의 분위기가 어떤지 알 수 있다. 아이들이 없는 공간이 그걸 느끼게 해준다. 처음에는 고립감을 느끼다가 점점 버려지는 건 아닌가 하는 공포를 느낀다. 어른에게 로봇은 그저 물건일 뿐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친구이자 동생, 보고 싶은 이로 다가간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아이들이 소통의 부재, 외로움의 공포를 느꼈다.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재난이었다. 이 작품은 로봇인 리보와 앤을 통해 인간다움이 무엇이고 만남, 교류, 사랑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이 동화의 명장면은 리보가 도서관을 탈출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기 위한 노력. 언젠가 내게도 올 그 순간을 생각하면 리보와 앤의 분투가 가슴을 저민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따라야할 조건이지 싶다. 작은 관심, 소통이 한 사람을 인간답게 만든다. 그리움을 안다면, 타인을 더 사랑하는 내가 되고 싶다면 오늘 『리보와 앤』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싶다. 김근혜 작가는 201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동화 <다짜고짜 맹탐정>과 <봉주르 요리 교실 실종 사건>, <유령이 된 소년>, <나는 나야!>, <제롬랜드의 비밀>, <베프 떼어내기 프로젝트>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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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16 13:33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아현 소설가 – 박지현 '산책의 곁'

오래전에는 산책하는 일이 무용하다고 생각했다. 뜻 없이 걸으며 기운과 시간을 낭비하고, 생각만을 늘어뜨리다 오는 투정같은 것이라고. 땀 흘려 운동하는 것도 아니고, 복잡한 생각들을 진득하게 정리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시간이나 때우는 한가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마도 무언가 대단하게 얻고자 했던 욕심 때문이었을 테다. 머지않아 산책에 관한 오해는 풀리게 되었는데, 우연히 미륵사지에 머문 덕이었다. 전후 사정은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았지만, 홀린 듯 발을 옮겨 미륵사지에 다녀온 것은 강렬하고 시원한 경험으로 남았다. 터가 널리 보이는 벤치에 앉아서 연못에 고인 물을 바라보다가, 빈터를 구경하며 거대했을 미륵사를 상상해 보기도 하면서 아주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그러다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었는지도 완전히 잊어버려서 집에 오는 발걸음이 제법 가벼웠다. 그 뒤로도 여러 번, 털어낼 것이 있으면 미륵사지를 찾았다. 그 이후로 나에게 산책은 그런 것이 되었다. 잠시 모든 것을 멈출 수 있는 시간. 하천의 흐르는 물에 집중하고, 떼 지어 시간을 보내는 오리 가족을 구경하며 그들을 응원하는 것으로 충분한 시간. 『산책의 곁』은 작가가 떠올린 생각의 편린들을 살뜰하게 모은 책이다. 산책하며 곁에 둔 감상과 심상, 혹은 상상들을 하나씩 꺼내어 보여준다. 망종부터 소한까지, 흐르는 시간을 염두에 두면 계절감도 흠뻑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작가와 함께 걷다 보면 종종 반가운 공간들을 만나게 된다. “망종(芒種)에 가까워지면 나는 꼭 경기전에 가서 와룡매의 그림자를 쓰다듬는다. 누워서도 녹음을 반듯이 빗어 넘긴 고목의 지조. 그것을 흠앙하며 그 곁을 지킨다. 호젓한 즐거움으로 그 풍경의 가장자리를 지키다 보면, 단단한 녹빛으로 흐드러진 매실들이 나의 시선을 이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길 바라며 나는 계속해서 그 곁에서 느긋하게 자리한다. (26쪽)” “산의 모서리에 있기도, 강기슭의 꼭대기에 있기도 한 요월대(邀月臺)는 한벽당(寒碧堂)에 가리어 있으나 내 속에서는 앞서 있는 곳이다. 나는 줄곧 한벽당을 지나쳐 요월대에 머물러 왔다. 요월대에서 나는 흩어져 있는 침묵의 피륙과 피륙 사이에 나를 자수한다. 암벽 끝에서 기개를 잃지 않는 요월대의 모습은 언제나 나를 숙연케 한다. (56쪽.)” 계절과 공간 이외에도 작가가 꺼내는 책과 그림을 잔뜩 만날 수 있다. 그의 산책에는 전주가 있고, 고건물이 있고, 카뮈가 있고, 혜원이 있다. 산책하는 이의 글을 두고 보는 기쁨은 이런 것이다. 함께 걸어본 적 없는 이와 공간을, 생각을, 그가 본 것을 공유하며 대화를 나누는 듯한 즐거움 말이다. 최아현 소설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아침대화>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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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16 13:33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기명숙 작가- 경종호 '탈무드 동시 컬러링북'

커다란 은행나무 아래 비 오듯 쏟아지는 은행잎을 맞으며 아이들이 깔깔거린다. 그들 머리며 등허리, 책가방이 온통 노랑으로 물들어 있다. 어린 시절 내 감각이 되살아나 가을 햇살과 아이들 웃음소리에 쪼그라들었던 마음이 쫙 펴진다. 문득 천진한 아이들, 저 아름다운 밑그림에 알록달록 채색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한편 겨울이 오면 어쩌나, 세상은 이미 북풍이 불고 살얼음 끼고 무차별 폭력이 난무하고 있지 않은가! 지혜를 모아 싸움을 멈추고 평화를 모색해야 할 이때 서재 귀퉁이에 있던 경종호 시인의 『탈무드 동시 컬러링북』을 꺼내 읽는다. 황금빛 은행이파리가 살랑살랑 날아와 내 가슴팍을 물들인다. 경종호 시인 덕분이다. 요즘 문학이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다각적으로 보인다. 디카시가 그렇고 독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 컬러링북도 마찬가지다. 한편 기성 시인의 동시로의 유입은 동심 회귀와 함께 아동문학 황금기가 시작되었다. 경시인 또한 시로 등단, 현재 아동문학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새싹 하나가 나기까지는」을 읽다 보면 경종호 선생의 성품과 문학적 결을 느낄 수 있다. 새싹 하나가 나기에도 수많은 인연이 있어야지만 가장 중요한 지점은 무심결에 새싹을 짓밟지 않고 사람인 “네가 ‘팔딱’ 뛰었던 것” 즉 생명 탄생 비화에는 사랑과 우정, 생명 존중 사상이 관통하는 것이다. 이번 컬러링북도 일관된 경향으로 탈무드 경전經典의 무거움을 해소하는 위트와 유머가 더해져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동료 교사와 작가들의 평을 빌자면 “동시 종합 놀이터를 방불케 하는 즐거움이 있고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생각거리와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며 탈무드에 기반한 이야기에 자신의 경험을 입혀 색칠하면 ‘교실은 즐겁고 행복한 놀이공간”이 될 것이다. ‘즐거운 생각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밝게 한다. 생각을 조금만 바꾼다면 이렇게 재밌는 상상이 된다’라는 탈무드의 말을 “지금까지 상어가 하늘에서 죽었다는 말을 들어 본 적 없어!/그러니까 상어가 하늘에 산다면 그래! 영원히 살 수 있을지도 몰라”-「말의 차이」 경시인의 탈무드 동시 버전을 두고 이안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탈무드는 동시와 가까운 사이가 되고 동시는 탈무드의 지혜에 가닿게 된다” 동시와 탈무드는 많이 닮았다. 억지로 누군가를 이해시키려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 이번 컬러링북 27편은 시와 그림의 접목을 통해 관습과 종교적 편향을 초월 삶의 지혜를 스스로 찾게 한다. 다소 상투성이 개입될 여지가 있는 경전을 바탕으로 하였지만 현장에서 어린이들을 교육하는 교사로서 눈매는 역시 날카롭다. 오랜 기간 교육현장에서 밴 현실감 넘치는 창의적 표현들이 그것이다. 바라건대 독자들이 동시에 응축돼있는 감동의 파문, 출렁이는 빛살을 색칠하면서 즐겁고 신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말은 본디 추상적이어서 세상을 완벽하게 그려낼 수 없다. 그런데 컬러링북은 상상력으로 말의 빈 공간을 채우고 그림으로 구체화하니 언어의 약점을 보완한 셈이다. 산다는 것은 꽤 쓸쓸한 일,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있음을 직감한다. 부디 여백을 채우듯 테마가 있는 동시(풍경)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기를 바란다. 독자가 만날 탈무드 컬러링북은 아날로그적 놀이 형태로 집중력과 안정감을 줄 것이다. 지혜로운 삶의 방식을 터득하고 응축된 언어의 확장력을 손수 실현해 보인다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시간이 쓸쓸하지만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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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27 18:58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은영 동화작가-김근혜'베프 떼어 내기 프로젝트'

중학교 다닐 때 나는 사랑에 빠졌다. 학교 가는 게 설렜고 내 눈엔 그 애만 보였다. 수업이 끝나면 한 시간 동안 걸어서 그 애 집까지 바래다주곤 했다. 집에 오면 어두워질 때도 있어서 늦게 다닌다고 혼났지만, 그 애와 함께하는 시간은 마냥 행복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애를 좋아하는 게 나만이 아니라는 거였다. 깔끔한 외모에 중성적인 그 애의 걸크러쉬 매력에 매료된 아이들이 많았다. 나는 내 곁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아이를 보며 한동안 심한 속앓이를 했다. 『베프 떼어내기 프로젝트』의 재현이도 그렇다. 하늘이 껌딱지인 재현이는 하늘이와 놀고 싶다. 그런데 하늘이는 온갖 핑계를 대며 재현이를 밀어낸다. 친구와의 갈등은 아이들에게 심각한 일이다. 문제가 크고 작고를 떠나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크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혼자 고민에 빠진다. 그러다 문제를 더 키우기도 한다. 재현이가 속상해하는 걸 본 지원이가 최악의 친구 하늘이 떼어내기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세 번의 작전은 모두 실패였지만 재현이는 그 과정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 하늘이와의 관계도 회복해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고 더 깊어지는 계기가 된다. 아이들은 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 자신과 다른 성향의 친구에게 매료되기도 하고 선을 넘고 무례하게 구는 친구에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고민하며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내가 좋아하는 친구, 나와 맞는 친구를 찾는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도 발견한다. 좋은 친구는 봄날 햇볕처럼 따뜻하다. 속내를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불끈 솟는다. 하지만 그런 친구를 갖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아, 그걸 뭘 굳이 말하냐? 친구끼리.” 하늘이가 멋쩍어했어. “친구라고 해도 말은 해야지. 그래야 알지.” “맞다. 친할수록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는 게 필요해.” 하늘이와 재현이가 그동안의 오해를 풀고 속내를 털어놓으며 나누는 대화이다. 우리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다 알 것으로 생각해서,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친구를 오해하고 서운해한다.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갈등이 해결될 것이다. 또 하나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좋은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물론 주인공 재현이는 베프였던 하늘이를 떼어내려는 엉뚱한 방법을 썼다. 그래도 그 과정에서 하늘이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어떻게 베프가 되었는지 깨달았다. 좋은 친구를 갖고 싶고 친구와의 갈등에 힘들어하는 어린이에게 『베프 떼어내기 프로젝트』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장은영 동화작가는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통일 동화 공모전과 이다 생명문화 출판 콘텐츠 공모전(공동수상), 전북아동문학상, 불꽃문학상을 수상했고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책 깎는 소년』, 『으랏차차 조선 실록 수호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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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20 18:48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창영 작가-김민철 '문학 속에 핀 꽃들'

이제 곧 눈이 내리면 세상에는 눈에 파묻힌 동백꽃 사진이 넘쳐날 것이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도 동백나무가 나온다. 이 소설에 나오는 동백나무는 우리가 아는 붉은 동백이 아니라 강원도에서 ‘생강나무’를 부르는 이름이다. 동백나무가 자라지 않는 중부 이북 지방에서는 생강나무 열매로 머릿기름을 만들어 사용했기에 ‘동백나무’라 불렀다고 한다. 나 역시 식물공부를 하기 전에는 생강나무와 산수유가 헷갈렸다. 멀리서 보면 두 식물이 거의 비슷하여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생강나무 잎을 비비거나 자르면 생강 냄새가 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가장 큰 차이는 생강나무는 산에서 자생하고 산수유는 마을이나 공원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나뭇잎 모양도 다르다. 『문학 속에 핀 꽃들』은 저자가 야생화에 빠져 산과 들을 다니며 생겼던 궁금증을 공부한 결과물이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식물을 다루고 있는 책은 이미 많다. 사전 형태의 책들은 식물을 구별하는 데 유용하지만 내용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소설 속 장면을 기반으로 식물을 설명하기 때문에 독자들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식물에 관한 소소한 지식이나 사진을 보는 또 다른 즐거움도 있다. 이 책에서는 33개의 소설과 100개의 꽃을 다룬다. 독자들에게 익숙한 소설이 많아 더 친근하게 다가올 것이다. 특히 이 책은 꽃을 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독자가 자연스럽게 꽃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돕는다. 나의 경우, 생소한 꽃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책 내용이 더 궁금해졌다. 게다가 이 책에서는 소설과 꽃의 주변 이야기를 함께 소개함으로써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자신이 읽은 소설에 이런 식물이 등장하는지 모르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도 있지만 보기 힘든 식물도 다루고 있다. 그만큼 이 책에는 다양한 식물이 나온다. 이미 아는 독자라면 식물과의 추억이 자연스레 떠오를 수 있다. 만약 낯선 식물이라면 다음에 만날 기회를 미리 약속하는 셈이다.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소소한 상식 얻는 것도 쏠쏠하다. 예를 들면, 백합과 나리가 같은 꽃이라는 사실이나 평소 헷갈리는 갈대나 억새를 구분할 수 있는 지혜도 얻는다. 이런 잔잔한 재미는 책을 읽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별개의 즐거움이다. 만약 식물에 대한 관심이 없는 이라면 이 책에 눈길을 주어도 좋다. 아마 책을 덮고 나면 책 속의 식물들을 직접 보고 싶어질 것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이 책과 친해져 보는 것은 어떨까? 내년에 자연에서 만날 꽃이 더 기다려지지 않을까 싶다. 장창영 작가는 전주 출신으로 2003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다. 불교신문·서울신문 신춘문예에도 당선돼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시집으로 <동백, 몸이 열릴 때> 와 문학이론서 <디지털문화와 문학교육>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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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13 18:10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경옥 아동문학가-'벨루가의 바다, 전은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제주도에 가족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곳곳을 찾아다니며 육지와는 다른 풍경과 먹거리를 접했던 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중에서 아이들이 가장 환호성을 지르며 제주도를 떠나 집으로 돌아와서도 이야기한 건, 단연 돌고래쇼였다. 조련사의 신호에 따라 공중에 떠 있는 링으로 수십 번씩 넘나들고, 조련사와 입을 맞추기도 하고, 공중제비를 열심히 도는 모습에 관중들이 열광하며 박수를 보냈다.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른들도 돌고래쇼에 넋을 잃고 공연이 끝나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돌고래쇼를 보고 나오자 수조에는 수많은 물고기가 떠다니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아이들은 돌고래쇼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더 신비한 세계를 접한 것처럼 수조 앞 유리에 매달려 오랫동안 서 있었다. 수조 안에는 잠수복을 입은 조련사가 열대어들 사이를 유영하며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사진 찍는 사람들에게 브이자를 보였다. 또 다른 수조에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좁은 수조 내부가 불만이듯 몸부림치는 상어도 있었다. 그때는 아이들과 함께 물속의 생물들을 신기해하며 바닷속에서 하나가 된 듯 감탄만 했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지만 문제라는 의식을 갖지 못했다. 최근 위와 같은 생태계를 거스르는 일들에 대해 서슴없이 지적하는 책이 나왔다. 바로 《벨루가의 바다》이다. 벨루가는 태생적으로 쉽게 눈에 띄는 운명을 지녔다. 다른 고래와는 달리 온몸이 하얀색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얀 색깔 때문에 인간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벨루가는 생명이라는 존재를 넘어서서 상업적 도구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결국 인간은 벨루가를 무차별적으로 잡아서 수조에 가둬 두기도 하고, 은밀하게 거래되기도 하고, 고래 쇼를 하기 위한 훈련의 도구가 되었다. 인간은 같은 동종이 아닌 생명에 대해 타자화시키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그들의 생명에 대해 커다란 의미를 두지 않는다. 물론 모두 그런 건 아니다. 일찍이 모든 생명에 대해 감각적으로 느끼고 타자성을 주체화시킨 이들도 있다. 그래서 그나마 지금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벨루가의 바다》의 작가처럼 상처받은 생명체들의 감각을 그대로 받아들여 세상을 향해 외치기도 한다. 모든 생명체를 주체화하자고. 《벨루가의 바다》에서 주인공 벨루가 ‘루하’는 인간의 손에 잡혀 온다. 영문도 모른 채 고래의 감옥인 수조 속에 갇혀 친구들의 죽음을 보기도 하고, 고래 쇼를 위해 훈련하기도 한다. 하지만 본래 고래가 머물러야 하는 바다를 그리워하고, 결국 바다로의 탈출을 시도한다. 과연 벨루가 ‘루하’는 인간을 벗어나 먼바다를 향한 그리움과 좌절과 아픔을 넘어서 인간의 욕망을 건너갈 수 있을지는 독자들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가도 그것을 원했을 것이다. 작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책을 읽으며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는 스스로 사유해야 한다고. 생명에 대해 감각적으로 인식하는 순간이 아쉬운 시절이다. 이경옥 아동문학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두번 째 짝>으로 등단했다. 이후 2019년 우수출판제작지원사업과 지난해 한국예술위원회 ‘문학나눔’에 선정됐으며, 2024년 안데르센상 창작동화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의 저서로는 <달려라, 달구!>, <집고양이 꼭지의 우연한 외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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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06 18:3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황지호 소설가-'초승달과 밤배, 정채봉'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사람, 사건, 책이 있습니다. 대학생 때 세를 살았던 서완산동 언덕집은 오가는 골목길이 퍽 좁았습니다. 새마을 사업 때 길을 낸, 리어카 한 대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은 실골목이었으나 제법 많은 행인이 오갔습니다. 효자동과 중화산동을 연결하는 지름길인지라 이른 새벽에는 막노동하시는 분들이, 다음에는 학생들이, 밤중에는 막걸리에 취한 행인들이 흥얼거리며 왕래했었습니다. 한번은 그 골목길에 할머니 한 분이 쓰러져 계셨습니다. 쓰러진 사람을 뛰어넘어 등교할 수는 없고 곁에 앉아 이유를 물으니 ‘너무 어지러워 걷지를 못하겠다’는 겁니다. 언덕 너머에 있는 인력사무소를 통해 조적‘메지’일을 다니시는데 오늘은 갈 수가 없겠다고 하십니다. 당신 인생 같은 좁은 골목길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고 서러운 말씀을 하십니다. 사시는 곳은 삼천동. 소주병과 담배꽁초가 너저분한 자취방에 모실 수 없어 부축해 큰길로 나왔습니다. 주머니를 뒤지니 학생 식당 식권 몇 장과 현금 4.000원이 전부였습니다. 택시 잡아 뒷자리에 모시고 기사님께 현금 전부를 드리며 댁까지 모셔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여유가 있으시면 들어가시는 모습을 지켜달라 말씀드렸습니다. 기사님이 염려 말라고 그러겠노라고 눈을, 고개를, 곰처럼 끄덕였습니다. 출발하기 직전 할머니께서 창문 너머의 저를 지긋이 바라보셨습니다. 그 찰나에 참 많은 말들이 오고 갔습니다. 압니다. 제가 지금 이렇게 고기반찬을 먹고, 자가용을 타고, 두 아이를 키우고, 따뜻한 방에 누워 시집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때의 그 공덕 때문임을 압니다. 할머니의 눈빛, 그 간절한 축원으로 저와 우리 식구들이 살아올 수 있었음을 압니다. 「초승달과 밤배」란 책도 그랬습니다. 예민한 사람으로 태어나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술주정을 겪는 사춘기 소년을 위로해 준 책. 자칫 더 그르칠 뻔했던 심성과 인생을 바로잡아 준 책이 초승달과 밤배입니다. 저를 글 쓰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책 한 권을 고르라면 저는 또「초승달과 밤배」를 고르겠습니다. 훗날, 아내가 ‘이제 마지막 책을 써야지’라고 권하면 저는 그때야 비로소「초승달과 밤배」를 쓰겠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은 삼신할매인지도 모를 그 할머니의 시간을 초월한, 미리 준 선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책을 통해 정채봉 선생님을 알았고 그래서 읽었던‘숨 쉬는 돌’, ‘오세암’ 등은 제 안에 글을 쓰게 하는 슬픔 같은 것, 그리움 같은 것을 심어주었습니다. 나머지 서평은 그 정채봉 선생님의 서문으로 갈음하겠습니다. ‘(사춘기) 떡잎을 제치고 나타난 본잎에는 악성이 깃드는 것일까. 부단한 외부와 내면의 충동은 자신을 혼란케 한다. 작은 것을 원하던 꿈이 거대한 것으로 바뀌기도 하고, 목적지 없는 방황에 흐르기도 하며, 심지어 까닭 없는 분노에 시달리기도 하는 것이 이때이다. 난나의 방황과 반항은 청춘의 영원한 명세서이기도 하다. 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비로소 인생 여정을 다스려 나갈 힘을 얻게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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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30 18:55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기우 작가-이정환, ‘이정환 문학전집’

뜻한 대로 되는 일은 드물고, 일을 그르치는 때는 숱하다. 그러나 실패는 얼룩진 삶의 실제 무늬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오늘의 명백한 실패와 좌절이 새로운 시도와 내일의 성공에 결정적인 공헌을 할 수도 있다. 전주 출신 소설가 이정환(1930∼1984)의 삶과 문학이 그렇다. 1976년 단편집 『까치방』으로 작가의 입지를 굳히고, 1978년 『창작과 비평』에 장편소설 「샛강」을 연재하며 인기 작가가 된 이정환은 이문구(1941∼2003)에 의해 실명(實名) 소설이 쓰일 정도로 문단 안팎의 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당뇨로 인한 실명과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고 독자들에게 잊혔다. 그러나 작가정신이 무엇인가를 묻는 말에 그의 굴곡진 삶과 문학은 통째로 답을 들려준다. 이정환은 평생 책더미에서 살며 책 읽기와 소설 습작에 몰두했다. 부친이 전주에서 서점을 했고, 자신도 1959년 전주남부시장에 <덕원서점>을 열어 9년 동안 운영하다 전동으로 옮겨 1년 동안 <르네상스서점>을 했다. 1970년 서울로 옮긴 그는 『신동아』 논픽션 공모 당선 상금으로 가판서점을 냈고, 4년 뒤 <대영서점>을 열었다. 워낙 책 읽기를 좋아해 군대에서도 호주머니 빽빽하게 책을 넣고 다녔는데, 한국전쟁 당시 어느 전투에서 따발총 총알이 책이 든 호주머니를 맞혀 목숨을 구한 일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그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그의 20대는 1년의 군 생활과 7년의 수감생활로 가탈이 많았다. 전주농업학교 재학 중에 터진 한국전쟁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학도병으로 참가해 포로가 되었으나 탈출했고, 육군에 입대했다가 휴가 중 모친의 숙환으로 귀대날짜를 넘겨 탈영병이 되었다.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몇 차례 감형으로 7년 만에 석방됐다. 이정환은 1970년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안인진 탈출」이 당선돼 문단에 나온 뒤 도시 빈민과 수감자들의 삶을 사회 구조적 시각으로 고발하는 7편의 장편과 67편의 단편을 쓰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그러나 10년 넘게 고생하던 병마는 1980년 그의 눈을 뺏고 만다. 그래도 창작 열정은 여전해 자를 대고 써내는 원고를 아내가 해독했고, 손가락이 부어 볼펜을 제대로 쥘 수 없을 때는 아내와 딸이 그의 구술을 받아 적었다. 가난도, 병마도 막을 수 없는 글쓰기. 소설은 곧 그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이정환은 수인 생활과 빈곤으로 굴곡 많은 삶을 살았지만, 이때의 삶이 훗날 소설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직접적인 바탕이 되었다. 자신이 겪은 사형수와 무기수라는 극한의 상황과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과 상처를 소설로 치유한 것이다. 오랫동안 잊혔던 그의 작품도 여러 사람의 힘으로 세상에 다시 나왔다. 열권으로 묶인 『이정환 문학전집』(국학자료원·2020)이다. 전집에는 전북일보에 연재한 「부부」를 비롯한 소설들과 미발표 유작들, 전집 준비 과정에서 발견된 유고 시(詩), 육필 원고 등 그의 모든 자료를 담았다. 책을 펼치면 곡절을 알고, 책을 덮으면 곡절이 풀린다. 최기우 극작가는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했다. 희곡집 <상봉>,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은행나무꽃>, <달릉개>, <이름을 부르는 시간>, 어린이희곡 <뽕뽕뽕 방귀쟁이 뽕 함마니>,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 <쿵푸 아니고 똥푸>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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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23 18:42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정숙인 작가-전희식,김정임 '똥꽃'

인류는 이런저런 이유로, 지구 곳곳에서 다른 목소리와 생태로 살며 갈등과 경쟁을 하면서도 서로를 그리워하고, 의지하고, 돌본다. 혼자이든 둘이든 여럿이든, 사회 공동체라는 스펙트럼에 고였다 사라진다. 『똥꽃』은 원시적인 모자간의 이야기이고 둘의 이야기이다. 그 모자(母子)의 일상을 따스한 시선으로 쫓을 때 독자는 그들의 삶이 아닌 내 삶의 사다리를 조금은 더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똥꽃』 의 저자 전희식은 ‘가족을 돌보고, 요양원을 지키고, 누군가를 챙기느라 수고하는 분들께 위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15년의 시간차를 두고 개정판’을 냈다 한다. 초판에서 개정판으로 재구성되기까지의 십몇 년의 시간 사이에는 전희식, 김정임 두 저자의 생(生)과 사(死)가 있다. 멀찌감치 파도가 밀려간 해변을 걷다, 이미 사라진 물결의 각인을 발견했을 때의 가슴 아린 그리움처럼 어머니와 아들의 시간이 부려놓는 삶의 깊이에 저절로 숙연해지고 만다. 어머니와 2년 가까운 날의 일상을 초판으로 읽었던 독자라면 어머니와 함께한 6년여의 세월 이후 추모의 시간까지, 숨은 그림처럼 덧붙여진 이야기를 찾는 재미도 있다. 어머니를 돌보던 아들의 깨달음은 수없이 많은 아포리즘으로 완성되어 마치 소설 같기도 한, 두 저자의 이야기는 독자의 가슴에 생생하게 부딪혀온다. 전 권에 흐르는 모자의 에피소드는 큰형님 집에 사시는 어머니를 찾아뵌 어느 날로부터 시작된다. 어머니의 환각 증상을 접했을 때의 충격은 아들의 말을 거둘 만큼 컸다. 당신 삶의 여정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무시당한다고 느꼈을 어머니의 좌절감을 생각해 본다. 치매란 가족 모두에게 있어 당황스럽고 난처한 일임은 분명하다. 어머니가 그린 똥꽃을 생각하면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고통이나 아픈 감정으로 바로 연결 지어 돌봄이 힘들다는 것으로 귀결시키는 것은 신중해야 할 일이다. 아들은 어머니의 치매를 ‘포기한 삶의 틈새로 끼어든 이물질들’이라고 결론 냄으로써 진정, 어머니의 망각을 ‘잠재된 고의’였다고 이해한다. 필자는 이런 생각이 든다. 노쇠한 몸을 더 이상 통제하지 못하기에 느끼는 참담함에 이어 자신을 수용하는 대신 자신의 기억을 거세시킴으로써 일탈에 성공하는 것이 치매가 아닌가 하고. 사회적 존재로서 살아온 당신의 존엄을 침해당하지 않기 위한 거스를 수 없는 손실, 꼬리 밟힌 도마뱀이 몸의 일부분을 포기하듯 무의식적 자아가 자신의 기억을 내치는 건 아닐까 하고. 우리가 즐겨하는 ‘알아서’의 코드를 작동시켜, 통제되지 않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세포들이라서 그랬을 거라고. 인간의 육체에 담긴 가늠할 수 없는 수의 우주의 작업 방식이라고. 모자의 관계는 선택할 수 없는 일이라 해도 무엇보다 자신의 존엄을 위해서 식물적 삶을 산다고. 두 저자인, 어머니와 아들의 일상을 보면 현재를 재조합하는 설계자가 되는 어머니와 그 세계의 파동으로 같이 순항해 가는 아들의 극적인 돌봄의 경지에서 독자도 덩달아 환희를 경험하게 된다. 치매를 겪는 어머니의 세계를 아들이 사는 평행 세계 어디쯤이라고 상상한다면 놀랍게도, 분명 우리가 유레카라고 할 수 있는 존엄의 키워드를 찾아낼 수 있다. 독자는 어머니 자신과 어머니가 아닌 그 누구의 세계로 각기 존재한다고 믿고 싶어진다. 정숙인 작가는 2017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백팩'으로 등단했다. 작품으로는 몇 편의 단편소설과 채록집 <아무도 오지 않을 곳이라는, 개복동에서>(2017)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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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16 18:17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근혜 작가-이정주 '카카오톡이 공짜가 아니라고?'

아침에 눈을 뜨며 곧장 카카오톡부터 확인한다. 자는 사이 왔을 카톡과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언제부턴가 버릇이 됐다. 일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도 습관적으로 카카오톡을 본다. 하루에 적게는 서너 개, 많게는 수백 개의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고, 실시간 뉴스와 쇼핑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송금까지 되니 만물백화점이 따로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제 카카오톡은 없어서는 안 될 삶의 일부다. 아마도 나 같은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대체 카카오톡에는 어떤 영업비밀이 있기에 쏠림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왜 다른 플랫폼은 카카오톡만큼의 영향력이 없을까? 카카오톡이 나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 다들 한 번쯤 생각했으리라. 이런 의문에 답을 주는 책 한 권을 최근 알게 됐다. 작가는 이정주. 출판사는 개암나무. 작가는 중앙대 문창과를 졸업하고 20년간 대기업 홍보실에서 일한 경험을 녹여 어린이를 위한 경제 서적을 출간했다. 이름하여 『카카오톡이 공짜가 아니라고?』(이정주/개암나무)이다. 작가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경제의 흐름을 알면 선택이 필요한 상황에서 훨씬 유리하리란 생각에 이 글을 썼다고 밝혔다. 내가 여태 그걸 몰라서 불리한 경제 활동을 했던 걸까? 더불어 어린이들이 생활 속에서 경제를 파악하는 눈을 지니고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지식과 지혜를 얻기를 바라면 좋겠다는 출간의 뜻을 밝혔다. 분명 어린이의 경제 관념을 키워주기 위해 쓴 책일 텐데 마치 경제에 미숙한 어른이인 나를 위해 쓴 것 같아 마음이 쏠린다. 서둘러 목차를 보았다. 유튜브부터 무인 점포까지 어린이들이 가장 관심 있고 좋아하는 소재로 구성되었다. 질문 형식의 제목들은 책을 읽기 전에 어린이 스스로가 이런저런 답을 생각해 보게 했다. 내용은 두말해서 무엇하리. 20년 동안 대기업에서 듣고 묻고 실천했을 경제 논리를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친절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모든 주제의 출발은 짧은 동화다. 딱딱하고 지루한 경제 상식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포문을 열어 정보글로 수월하게 진입하도록 돕는다. 동화를 읽고 나면 <생각해 봅시다>라는 코너가 나오는데 앞선 이야기에서 토론 거리를 가져와 주제를 심도 있게 살피게 한다. 다음 장에서는 관련 정보를 세분화하여 읽는데 지루함이 없도록 했다. 등골브레이커라는 신조어가 있다.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지우는 사람이나 제품 따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인데 한 벌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유행템을 사달라는 아이의 요구로 부모의 등골이 휘어진다는 웃지 못할 사회 현상이 씁쓸하기만 하다. 무분별한 묻지마식 소비를 막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올바른 경제 개념을 키우는 노력을 해야하지 않을까? 그 시작이 독서면 어떨까? 백 마디 말보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경제 서적을 읽으면서 대화하고 계획을 세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경제를 이해하고 올바른 소비 습관을 키울 것이라 믿는다. 그 작고도 큰 습관은 어른이 되었을 때 거대기업의 상술에 휘둘리는 호구가 아닌 현명하고 주체적인 소비자로 이어질 것이다. 김근혜 작가는 201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동화 『다짜고짜 맹탐정』과 『봉주르 요리 교실 실종 사건』, 『유령이 된 소년』, 『나는 나야!』, 『제롬랜드의 비밀』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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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09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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