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6-02-05 18:17 (Thu)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청춘예찬

트위터 이제 그만 지저귐을 멈춰라

얼마 전 SNS라고는 통 관심이 없던 친구가 트위터를 시작해 보아야겠다고 했다. 갑작스레 트위터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뭔지 궁금해 물어보니 많은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어야 하는 시대에 자신만 SNS를 하지 않아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2주 후 다시 그 친구를 만나 트위터는 재미있게 하고 있는지 물었다. 친구는 멋쩍은 듯 웃으며 이제 트위터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유는 트위터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지만 각종 기업들의 광고성 글과 정치적 성격을 띠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글들만 올라와 자신이 기대했던 공간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기 위함은 SNS가 만들어진 주요한 이유 중 하나다. 트위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인 트위터는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트위터는 매일같이 문제를 일으키고 분란과 혼란을 조장한다. 모든 것이 그렇듯 트위터 자체가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트위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문제를 만드는 것이다. 트위터 내에서 팔로잉은 거래된다. 팔로워를 늘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팔로잉 해주면 상대방도 보답성으로 자신을 팔로잉 해 주기 때문이다. 이를 '맞팔'이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팔로워 수를 늘려가다 보면 자신이 팔로잉 하는 사람도, 자신을 팔로잉하는 사람도 수천 명은 쉽게 넘길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팔로워 수를 늘려 자신이 영향력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한다.생각해보자. 팔로잉하는 사람이 수천 명이면 5분이면 적어도 수십 개의 트윗이 대화창에 생성된다. 트위터리안(트위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대화하는 사람들이 올리는 트윗들을 하나하나 읽어볼까? 그럴 가능성은 매우 적다. 팔로잉 하는 사람이 천 단위가 아니라 1만 2만을 넘어선다면 더 말 할 것도 없어진다. 이러한 팔로잉 거래 방식은 애초에 대화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이다. 단지 자신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듣고 있는 것처럼 느끼기 위한 허세성 숫자일 뿐이다. 자신부터 거래 상대일 뿐인 다른 사람의 트윗에 관심을 갖지 않는데 상대방이라고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기나 하겠느냔 말이다.트위터는 더 이상 SNS 본연의 목적인 생각의 공유와 상호간 소통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이기적인 생각의 표출만 남아있을 뿐이다. 트위터리안들이 트위터 상에서 지저귀는 소리들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욕하고 폄하하는 이야기들뿐이다. 실제로 트위터에 접속해보면 보수는 진보를 욕하고 진보는 보수를 비난한다. 소식창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트윗은 광고성 트윗이 아니면 정치 성향을 드러내고 상대진영을 비난하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에게 상대방 이야기에 귀 기울일 생각 따윈 없다. 단지 자신의 손가락에서 퍼져나가는 140자의 지저귐이 중요할 뿐이다.트위터로인해 온 나라가 시끄럽다. 지난 대선 발생했던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에 이어 국방부산하 사이버사령부가 트위터를 이용해 수만 건의 친여성향 글들을 게시하고 리트윗해 대선에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 때문이다. 이로 인해 트위터는 더욱 시끄러워졌다. 트위터 대선개입과 관련해 여야, 진보, 보수 모두는 너나 할 것 없이 상대진영에 대한 흑색선전과 비방의 트윗을 끊임없이 올리고 있다. 서로 대화하기 위해서가 아닌 상대방을 비난하고 편 갈라 싸우기 위한 트위터라면 그 지저귐 이제 그만 멈춰도 좋을 듯하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3.10.30 23:02

우리의 '공간'은 어디에…

우연한 기회로 대학의 '공간비용채산제'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공간비용채산제란 한정된 대학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목적으로 대학 구성원 1인당에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배정하고, 그 이상의 공간을 사용하는 구성원에게는 추가비용을 청구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 같은 공간비용채산제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여러 대학의 공간비용채산제를 찾아보던 도중, 일부 대학의 황당한 사례를 알게 됐다. 학생들이 사용하는 학생회방·동아리방 등의 학생자치공간에 대한 공간비용까지 청구하는 대학들이 그 사례였다.오늘날 대학생들에게 주어진 '물리적 공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될까? 수강생을 수용하지 못해 일부 학생들은 책상도 없이 수업을 듣고, 시험기간 도서관은 해도 뜨기 전에 가지 않으면 앉을 자리조차 없는 것이 오늘날 대학의 풍경이다. 그런데 이제는 학생들이 학내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학생자치공간에 대한 비용까지 청구하겠다니, 이 얼마나 코미디적인 발상인가!갈 곳 없는 대학생들의 비애는 교정 밖에서도 끝나지 않는다. 최근 경기도의 한 대학교 앞에서는 대학생이 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인도와 차도가 따로 구분돼 있지 않은 대학로 인근 도로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고였다.오늘날 대학로에는 사실상 인도가 없다. 좁디좁은 도로에서는 차들과 사람들이 뒤엉켜 통행하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대학로가 노폭이 좁은 구도심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어디 대학로 뿐이겠는가. 자취방과 하숙집이 빼곡하게 들어선 대학 인근의 주택가에서 역시 학생들은 자동차들과 뒤섞여 좁은 도로를 지나다닌다. 오늘날 대학생들에게는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는 온전한 인도조차 사치인 듯하다.문제는 물리적인 공간에만 그치지 않는다. 대학생들의 젊음과 생활을 상징한다는 대학로에서는 술집과 식당 외에 다른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좀 더 쳐준다면 당구장이나 노래방 정도가 전부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소비, 소비, 소비! '대학로' 라는 표현보다는 '상권' 이라는 표현이 익숙해진 이 거리에서 '문화'를 영유할만한 창조적인 공간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대학로로부터 쫓겨난 '문화'를, 애석하게도 학교 역시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대학 내의 많은 공연동아리들은 항상 연습공간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른다. 심지어 공연을 위해 학교 앞 대학로로 나온 동아리들이 시끄럽다는 상가의 민원으로 인해 쫓겨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대학생들이, 대학로에서 쫓겨나는 것이다.최근 몇몇 정치인들은 소비위주의 대학로 및 위험한 대학인근도로를 정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정치권에서까지 논의되는 것을 보면, 분명 간과할 문제는 아닌 듯하다. 그러나 이 같은 논의가 진행된지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아무리 커도, 이를 집행하는 곳에서 "예산이 없다"는 단 한마디만 하면 그만이니 쉽사리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학교 안이라고 어디 다르겠는가? 학생들은 이러한 '비극적' 상황을 개선해 줄 것을 학교에 끊임없이 요구하지만, 공간과 예산이 한정돼 있어 어쩔 수 없다는 하릴없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은 5평 남짓한 자취방이 전부인 듯하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3.10.23 23:02

스스로에게 위로와 격려를

여느 때처럼 한 해가 가고 있다. 거리는 벌써 은행냄새로 가득 차 있고 밤에는 겉옷을 입지 않으면 추워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더위에 지쳐서 그늘을 찾고 있던 나는 어느새 차가운 아침공기 사이로 스며드는 따사로운 햇빛이 반갑다. 이맘때쯤이면 자신이 연초에 세웠던 계획들을 돌아보기 마련이다. 누구나 연초는 거창하고 멋진 계획들을 세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상에 젖어들게 되면 어느새 연초의 계획들을 잊어버리고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다가 문득 오늘 같이 연초 때 세웠던 계획들을 떠올리게 되면 '나는 한 해 동안 무엇을 했나' 와 같은 자책을 하기 시작한다. 청춘들은 말한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나는 무엇인가가 되어 있을 줄 알았어.' 그러나 현실은 결코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깊은 슬픔에 빠진다. 나 역시 올 한 해 동안 일만 늘어놓고 제대로 하나 한 것 없어 보였다. 어떤 날은 올바르게 살아가고는 있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잠을 뒤척이기도 했다.그러던 중 어느 책의 한 구절을 보게 되었다. 그 구절은 이러하다. '마음이 약해지면 평소에 지나쳤던 것을 자세히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마음이 약해지면 이것저것 더 슬퍼질 일이 많아진다. 이것저것 찾아내서 슬퍼진다.' 나는 순간, 어쩌면 나 스스로가 나를 궁지에 몰아넣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옆 사람과 자신을 비교한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그러한 성향은 고급스럽고 고가인 상품이 더 잘 팔리는 소비적 풍토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타인과 비교하여 자신이 늘 앞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과정보다는 결과를, 질보다는 양을, 느림보다는 빠름이 우선시 된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내가 타인보다 이뤄낸 것이 없거나 뒤쳐진다는 생각이 들면 불안해지고 괴롭다. 그리고 이러한 슬픔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신 스스로를 절벽으로 밀어낸다. 잠시 여유를 내어 자신을 돌아보자. 나는 빠르게 가고 있지는 않아도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저자 혜민 스님은 고통과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있는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조언한다. 배고프면 배고픈 대로, 화가 나면 화가 난대로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스님처럼 꾸준하게 내면을 단련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 아직은 미숙하고 어렵다. 그러나 인정하는 것을 시도하기도 전에 애써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 자신을 자책하면서 억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명언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명언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고통스러운 것을 억지로 즐기면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즐기지도 못하는 것을 즐기라고 하는 것조차 스트레스가 된다. 차라리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현재의 순간만 바라보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오히려 성장의 시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매 순간이 경쟁으로 치닫는 이 상황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좀 더 사랑할 필요가 있다. 이 각박한 삶속에서 스스로마저도 자신을 외면하고 궁지로 몰아넣는다면 얼마나 슬프겠는가. 비록 지금은 아무 것도 아닌 나지만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나를 생각하며 자신에게 격려와 위로를 보내주자.

  • 오피니언
  • 기고
  • 2013.10.16 23:02

갈팡질팡해도 괜찮아

기숙사에 살고 있지만, 점심은 거의 사 먹는다. 점심시간은 한 시간 남짓인데 우리학교 본관과 기숙사는 꽤 멀다. 빠른 식사를 위해서는 메뉴 역시 서둘러 골라야 한다. 그런데 맙소사, 메뉴판에는 20가지가 넘는 음식 이름이 쓰여 있다. 학교 근처에서 메뉴가 단출한 가게는 보지 못했다. 이때부터 나는 헤매기 시작한다. 오므라이스를 먹을까 했다가 김치찌개와 순두부찌개 사이에서 고민하고, 주문이 들어가기 직전에 라볶이로 메뉴를 바꾼다. 메뉴가 이렇게나 많은데 여기서 하나만 골라야 한다니 사실 좀 잔인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고함20(20대 인터넷 언론 매체)에 가보니 매뉴얼을 주제로 기획기사가 여럿 올라와 있다. 20대의 매뉴얼 강박증은 스펙 쌓기 경쟁에서 비롯되었으며, 때문에 매뉴얼을 따르는 것은 개인의 의지로 보기는 어렵다는 내용이다. 취직 준비 매뉴얼을 검색하니 기업마다 차별화한 적성검사 목록이 쭉 뜬다. 또 다른 세계를 본 느낌이다. 내가 아는 매뉴얼이라고는 스타크래프트 경기 방식 몇 가지였다. 흔히 테크트리라고 불렀는데, A테크트리로 경기를 운영하면 방어율이 높아지고, B테크트리를 타면 빠른 공격을 가하고, 저글링을 좀 더 생산하고…하는 식이었다. 떠올려보면 나는 꽤 오래전부터 매뉴얼과는 아주 먼, 갈팡질팡하는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진학도 인문계, 상업계 선택지에 요리 특성화 학교까지 끼워 넣자 지친 담임선생님이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이과, 문과 선택으로 몇 주를 고민했다. 공부는 어땠느냐면, 수업 내용을 공책에 정리하다가 음악을 듣고, 창틀에 앉아 야자 시간을 보내고 몰래 나가 운동장을 뛰는 식이었다. 독서를 좋아해서 언어 성적은 괜찮았지만, 성적이 좋았을 리 없다. 대학교를 잘 다니다 돌연 취직을 해서 일 년 직장 생활 뒤에 재입학하기도 했다. 로드스쿨러들처럼 여러 학교의 강의를 경험해 보고 싶기도 하다. 요새는 어떤 일을 그만두어야 할지, 계속 해야 할지, 또다시 갈팡질팡하고 있다. 심리학 공부를 막 시작했는데 난생처음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공부와 일을 병행하기엔 내 몸이 하나라 아쉽다. 추석에 큰집에 가니까 어른들이 '슬슬 취직 걱정해야겠네'하고 말을 걸었다. 나는 '출판사나 방송사에 들어가지 않겠어요? 근데 소설가도 되고 싶고 그림이랑 디자인을 배워서 북디자이너도 하고 싶어요. 이상심리전문가도 재미있어 보이고요. 뭐 어떻게든 되겠죠?' 하고 답했다. 뜨악한 얼굴로 어느 하나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지 물어오는 분도 있었다. 구체적인 계획은, 있을 리 없다.소설 작법에서 우연은 찬밥신세다. 주인공과 기타 인물들은 늘 필연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 이야기를 맺기 위해 우연을 남발한 글이 있다면 합평 시간에 그야말로 가루가 되도록 혼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제 삶에는 나처럼 갈팡질팡하며 우연과 의지 사이를 넘나드는 사람도 있다. 소설가 이기호와 극작가 버나드 쇼가 그렇다. 언젠가는 초록색 표지에 지은이 이기호라고 쓰여 있는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를 옆구리에 끼고, 버나드 쇼의 묘를 방문하고 싶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이다.학보사에 들어오게 된 것도 대내외 활동 스펙 쌓기와 같은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친한 선배가 학보사 생활을 즐거워하기에, 그렇게 재밌나? 하며 기웃거린 게 여기까지 와 와버렸다. 덕분에 청춘예찬을 쓰는 기회도 얻었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갈팡질팡해도 괜찮겠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3.10.09 23:02

불안한 스캔들

지난달 26일 다이나믹듀오의 멤버 최자와 설리의 열애설 발표되고 이어서 오종혁과 티아라 소연의 열애설이 함께 터졌다. 하루 만에 유명 연예인의 열예설이 2 건이나 발표된 것이다. 각종 검색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의 상위를 열애설 당사자들의 이름이 차지했고 SNS도 이들의 데이트 사진과 동영상 등으로 도배됐다.평소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관심을 갖지 않는 편이라 인터넷 페이지를 넘기려고 했지만 SNS게시물에 달려있는 댓글 몇 개가 마우스를 움직이는 손을 멈추게 했다. "정치에 뭔일이 일어나고 있는게 틀림없어"라는 글이었다. 이 외에도 정치적 문제로 인해 정부에서 연예인의 열애설을 의도적으로 퍼트리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 혹은 확신을 담은 글들이 난무하고 있었다.2011년 4월이 떠올랐다. 당시 일명 서태지·이지아 사건은 국민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이 열애설과 함께 대두되는 주장이 있었다. 서태지와 이지아의 재산 분할 청구 소송에 대한 기사가 처음 나가기 1시간 전 "BBK 수사 도중 검찰이 김경준에게 '이명박에게 유리한 진술을 하면 형량을 낮춰주겠다'고 보도한 시사인 보도가 허위가 아니다"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BBK 보도를 묻기 위해 서태지-이지아 보도를 낸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연예인들의 열애설을 일부러 퍼뜨린다는 등의 음모론이 아니다. 이런 음모론의 사실 유무와 관계 없이 왜 연예인들의 이야기가 이슈화 될 때마다 국민들 사이에서 정부가 무엇인가 숨기려고 언론을 이용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언론에 대한 불신이 국민들 사이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일부 국민들은 대한민국 언론을 국민의 눈을 가리기 위한 정부의 도구정도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미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떨어질 만큼 떨어져 있다. 매년 각국의 신뢰도를 조사하는 에델만은 '2012에델만 신뢰도 지표조사'를 통해 우리나라의 미디어 신뢰도가 2011년에 비해 16%포인트 하락한 44%라고 발표했다. 이에 더해 우리나라를 일본, 러시아와 함께 믿지 못하는 나라(DISTRUSTER)로 분류하기도 했다.언론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신문이나 방송이 국민에게 전할 수 있는 내용은 한정적이다. 신문은 지면이 한정돼 있고 방송은 방송시간이 제한돼 있다. 언론은 우리나라 그리고 세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한정된 지면과 시간에 할애해야 한다. 국민은 언론이 전해 주는 정보를 통해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를 이해하고 우리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잘못된 부분 혹은 수정되어야 할 부분은 없는지 생각하고 판단한다. 국민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이 언론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보도되지 않는다면 국민은 부족한 정보로 결국 잘못된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이때 국민은 자신의 선택 혹은 판단이 잘못되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이것이 언론이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하는 이유다. 언론은 지금부터라도 다시 국민의 신뢰를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국민의 신뢰를 받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간단하다. 바로 국민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반드시 알아야 할 소식을 진실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때 비로소 국민들은 연예계 스캔들에 더 이상 불안해 하지 않을 수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3.10.02 23:02

생각 잘하는 사람 되기

오늘도 취재에 지친 대학신문 기자들은 종종 기사보다 칼럼이 더 쉽고 재밌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번거로운 취재를 적게 해도 되고 기사보다는 마음가는대로 써도 되는 것이 칼럼이기 때문이란다.그러나 필자는 요즘 들어 칼럼을 쓰기가 참 어렵다. 좀 더 정확히는 쓰기 무섭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칼럼은 기사에 비해 취재는 적게 해도 되는 반면, '생각'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관적인 견해를 배제하자는 언론관을 가진 필자의 입장에서, 기사는 타인의 말을 잘 취재해 이것을 깔끔하게 정리하기만 하면 돼 생각을 비교적 적게 해도 되지만 칼럼은 내 생각을 원고에 담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는 점에서 부담스러운 것이다.칼럼에 대한 이 같은 부담은, 생각을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에서 기인한다. 사실, 필자는 요즘 생각을 하는 것이 어렵다. 생각을 잘 안하기 때문이다. 필자뿐만 아니라 생각에 대한 부담을 가지는 사람들은 내 주위에도 부쩍 늘고 있다.최근 들어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어려워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본다. 먼저 생각에 대한 책임이 과거보다 커진 점이 하나의 이유이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하면서 생각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도 많아졌고, 이에 따라 그 생각을 열람할 수 있는 사람도 늘었다. 아울러 생각에 대한 코멘트를 달기도 용이해져 다양한 이견들과 비판이 난립하게 됐다. 본디 사람이란 타인에게 비판받기를 두려워하는지라 이 같은 환경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기는 다소 조심스러워진다.또 다른 이유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정보화 물결에 의해 언제든 타인의 생각과 견해를 차용할 수 있게 됐다. 생각을 잘 하는 사람들의 견해와 주장을 스마트폰 검색 정도로도 얼마든지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구지 내 에너지를 소비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나보다 생각을 잘하고 또 전문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견해를 마치 내 생각인 것처럼 말하고 다니기 훨씬 용이해 졌다. 생각하지 않아도 무식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칼럼을 쓰는 필자의 마음이 바로 그렇다. 내가 쓰는 이 생각이 누군가에게 '까이지는'않을지, 이미 웬만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나보다 더 유식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언급했을 터인데 진부하지는 않을지 걱정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생각에 대한 어려움을 겪고 있겠지만, 특히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정립해 가는 과정인 20대들에게는 더더욱 고민되는 문제일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꾸준히 생각해야 한다. 나보다 생각을 잘하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생각에 대한 권리를 위임하기만 한다면, 생각에 있어서도 기득권 논리가 작용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각에 유능한 몇몇 사람들만이 생각을 담당하고 대다수 사람들이 이를 차용하기만 한다면, 마치 돈을 가진 자가 돈을 벌 듯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만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아울러 능동적인 인재가 되기 위해서도 생각은 필요하다. 생산력이 능력에 대한 주요 기준이 되던 시대는 끝났다. 우수한 기획력과 사고력이 당신을 성공시키는 더 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생각은 어렵다. 내 생각을 타인에게 인정받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러나 글 잘쓰는 작가들이 꾸준히 습작을 만들어 내듯이, 우리도 꾸준히 생각하는 연습을 하며 '생각 잘하는' 사람이 되어보도록 하자.

  • 오피니언
  • 기고
  • 2013.09.25 23:02

의심하는 눈초리

로버트 카파 사진 전시회에 다녀왔다. 그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다양한 전쟁을 사진 기록으로 남기고 전쟁 현장에서 죽은 종군기자다. 한 군인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순간을 찍은 사진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은 유명하다. 그의 사진은 이제 저널리즘을 벗어나 작품으로써 전시된다. 전쟁 사진들을 본 사람들은 공포, 연민, 분노 등의 감정을 생생하게 느낀다. 이는 프란시스코 고야나 파블로 피카소의 전쟁 그림을 볼 때 상상력이 불러일으키는 감정보다 농도가 짙다. 사진은 지금 보는 것이 가공하지 않은 진실이라고 착각하게 한다. 단순히 생각할 때, 그림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이미지이고 사진은 기계로 '찍어서' 인쇄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림은 전쟁의 고통과 폐허를 재배치하고 종합한다. 예를 들어 고야의 그림 속 프랑스군은 스페인 사람의 시신을 나무에 걸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반면 사진은 카메라 렌즈 앞의 피사체를 그대로 가져온다. 그러므로 사진은 이미지의 내용을 환기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라고 간주한다. 사진이 그림과 달리 무엇을 증명해 준다고 여기는 이유다. 전시회 액자에 걸려 있어도 여전히 사람들은 사진 역시 창조자가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사진을 손보지 않았다면 사진 자체가 말하는 무엇, 또 사진을 보는 사람이 느끼는 무엇은 사실이다. 그러나 진실은 아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구도를 잡아야 하며 피사체를 정해야 한다. 구도를 잡고 무엇을 찍을까 고려할 때 그 밖의 것들은 배제되는 것이다. 그림과 같이 사진에는 찍는 사람의 의도가 포함된다. 피사체가 어떤 포즈를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찍었다는 사진이 평범해 보이지 않을 경우, 사진은 보는 사람들을 자극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느끼라고 강요하는 모양이 된다. 특히 사진이 보는 사람의 행동과 가치관을 조작할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사람들은 신문의 글자보다 사진에 먼저 집중하며, 때때로 사진을 통해 현실을 훨씬 더 잘 보게 된다고 느낀다. 실제로 보통보다 사물을 더 잘 보이게 해주는 것은 사진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사람들의 도덕적 판단을 흐리게 한다. 죄를 지었을지도 모르는 사람의 사진 중 좀 더 추악한 것을 선별해 싣는 일은 불손하다. 죄와 상관없는 부분을 드러내고 선입견을 이용해 낙인찍기 때문이다. 지난 8월 30일, 다양한 신문들의 1면 사진이 그러하다. 1면을 장식한 인물은 한 사람이었으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각 신문의 이석기 의원은 웃고 있었고, 삿대질하고 있었고, 입술을 깨물고 있었고, 곁눈질하고 있었다. 내란죄 혐의를 받고 증거로 대화록이 공개된 상황에 지을 표정은 아니었다. 웃는 사진의 경우, 그의 말대로 내란죄 혐의가 음모이든 국정원이 주장하는 대로 실제 내란을 꾸몄든 어느 쪽으로 보아도 괴이했다. 언론이 특정 인물과 단체의 이미지를 몰아가고, 거대한 흐름의 중심을 취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사회의 변화와 함께 매체와 도구를 바꾸어가며 존재했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이미지 노출, 사생활 침해,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위해 이용하는 경우 등의 윤리적 문제점들 역시 과거는 물론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제는 비판 없이 수용하고 의도를 의심치 않던 태도를 돌아봐야 할 때이다. 사진은 결코 현실의 객관적 반영이 될 수 없다. 의도적으로 사진이 표현하지 않은 부분을 탐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3.09.11 23:02

당신은 꿈이 공무원입니까?

얼마 전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서울소재 모 대학에 재학 중인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 친구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휴학했다고 말했다. 평소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관심이 없던 친구라 갑자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니 취업할 시기가 되기는 했는데 하고 싶은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해 함께 자리에 있던 친구들로부터 애정 섞인 비난을 받기도 했다.우리나라의 공무원 열풍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고등학생 장래희망 1위를 공무원이 차지하고 있고 학원가에는 이미 많은 대학생들과 취업준비생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책상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2013년 공무원 시험 응시자 수가 45만 3301명이라고 한다. 군산시의 인구가 28만 명, 전라북도 전체의 인구가 180만 명이라는 것을 고려해 보면 45만 이라는 숫자가 적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매년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면서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단순히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을 꿈꾸고 공무원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유가 문제라는 것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고 싶어 공무원을 꿈꾸는 사람도 있겠지만 안정적인 미래를 바라고 혹은 부모님이 하라고 하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이 특별히 없기 때문에 등의 이유로 공무원이 되기 원하는 사람이 대다수인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그렇다면 공무원을 목표로 공부하는 사람들 모두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안정적인 삶을 누리며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을까?2011년 지인 한 명이 2년간 공무원 준비를 한 끝에 8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공무원 시험을 보게 된 계기가 안정적이고 편안한 미래를 원했기 때문이기는 했지만 합격할 당시에는 주변 사람들의 축하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순탄할 것만 같던 그의 공무원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일을 시작한지 1년이 안돼서 사직서를 제출한 것이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가 간과했던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공무원은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가 사직서를 제출한 이유도 자신이 상상했던 편안한 공무원 생활이 아니라 밀려드는 민원과 수많은 업무로 인해 힘든 생활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유엔 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비야씨가 공무원이 꿈이라는 20대 청년에게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무엇인가를 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 될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어떻게 꿈이 될 수 있냐고 꾸중한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 속에 직업이 있는 것이지 직업 자체가 한 사람의 삶 전체는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만약 지금 자신이 공무원 시험을 보기 위해 준비하고 있거나 공무원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진정으로 공무원이 되어 그것을 통해 자신이 희망하는 무엇인가를 이루고 싶은 것인지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인생을 살면서 궁극적으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꿈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직업을 찾아보는 것이 앞으로 다가올 자신의 삶에 더 바람직할 것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3.09.04 23:02

'나약한' 20대를 위한 변명

20대의 자살문제가 심각한 모양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고, 특히 10대와 20대의 자살률이 급증하는 추세란다. 2011년 통계청 발표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24.3명의 20대가 자살했고, 이는 20대 사망 원인 중 1위에 해당하는 것이다.때때로 젊은이들이 자살했다는 TV 뉴스 소식을 접한 기성세대들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끈기가 없다"시며 혀를 끌끌 차시곤 한다. 당신들이 젊을 당시에는 이보다 더한 환경에 처해 계셨음에도 꿋꿋이 버텨 나가셨기 때문이란다.실제로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참으로 유능하다. 황무지나 다름없는 이 땅을 개척해 우리에게 지금의 풍족한 환경을 준 점은 감사하기까지 하다. 그토록 척박한 환경 속에서 지금의 사회를 만들어준 그들은 분명 강인하다.그러나 지금의 젊은이들이 좌절하는 것은, 그들이 진정 나약해서만은 아니다. 지난 21일, 소설 '은교'의 저자 박범신 작가가 전북대학교를 방문해 특강을 열었는데, 이날 특강에서 그는 "지금 세대의 젊은이들에게는 절대적인 주문이 없다"고 말했다. 과거의 젊은 세대들은 절대적인 빈곤을 겪는 상황에서 그러한 빈곤을 극복하라는 강력한 사회의 명령을 받고 있었지만, 지금의 젊은이들은 그러한 시대적인 주문을 받지 못하고 있는, '길이 끝나버린 상태'라는 것이다.즉 젊은이들이 좌절하는 이유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이다. 기성세대들은 비록 너무나도 척박하고 빈곤한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당장 내가 없으면 내 가족, 멀리는 다음세대 사람들이 굶거나 계속해서 빈곤을 이어가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가 이 사회에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당장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금보다 쉬이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이에 반해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유능한 기성세대들이 이미 풍족하게 만들어 놓은 사회 속에서 '당장 내가 없어도 사회는 잘 돌아가겠지'라는 절망에 빠져 산다. 그리고 자기보다 잘난 경쟁자들을 보며 자기 자신의 존재 가치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여기에다 과한 등록금과 실업난 속에, 스스로가 주변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있을 것이라는 해서는 안 될 생각까지 하게 될 지도 모른다.따라서 젊은이들의 좌절과 자살문제를 단순히 그들의 '나약함의 문제'로만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한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며 시대적인 딜레마라 보는 것이 더욱 적합하다. 젊은이들에게 지금보다 강해지라며 비난하고 채찍질하기 보다는, 공감과 이해로 사회 전체가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의지를 보여야 한다.한편으로 젊은 세대들은 행복을 배워야 한다. 시대적 요구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해도 상관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 좌절감이 들 때는 그게 무엇이든, 뭐라도 해보면 되는 것이다.박범신 작가는 이날 특강에서, "불행하다고 느끼는 젊은이조차 늙은 내가 보기엔 얼굴이 환히 빛나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들 하나하나는 그저 존재만으로도 환히 빛나는 20대이다. 깊은 고민과 좌절을 하는 그 시간조차도, 우리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일 것이다. 지금의 20대는, 보다 행복해 질 필요가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3.08.28 23:02

여름방학 그리고 두 아이의 하루

오늘은 두 명의 아이들의 일과를 비교해 보려고 한다. 우선 사립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가윤'(가명)이의 일과를 살펴보도록 하자. 가윤이가 배우는 영어 책은 일반 교과서와는 많이 다르다. 우리나라 교육법상 초등학교 3학년은 영어를 교과로 처음 배우는 시기이지만 가윤이는 이미 그 수준을 넘어서서 미국 교과서를 읽고 있다. 심지어는 띄엄띄엄 해석을 하기도 한다. 수학도 일반 교과서 내용과 다르다. 요즘 뜨고 있는 '창의력 수학'이라고 해서 아이의 기본적인 독해력이 있지 않으면 문제를 이해할 수도 없는 문장제 유형을 매일 푼다. 하지만 가윤이는 나와의 수업이 끝났다고 해서 하루 일과가 끝난 것이 아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어린이 도서관에 가서 두 시간 정도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다. 그리고 곧 있을 교내 피아노 콩쿠르 연습과 수영대회 때문에 피아노 학원과 수영장을 오가며 연습한다.그렇다면 공립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민구'(가명)는 어떨까? 민구는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면 아동센터에 간다. 그곳에서 자발적으로 문제집을 풀고 영어 수업을 받지만 선생님이 다수를 상대하다보니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기 십상이다. 민구는 특히 수학에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반복되는 계산이 싫을뿐더러 학교에서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지 문제집을 많이 틀리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봉사 선생님들이 다른 아이들도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여서 민구 혼자만 데리고 수학을 이해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게 민구는 센터에서 하루치 분량의 문제집을 풀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켠다. 민구는 학원을 가지 않기 때문에 센터나 방과 후 수업이 끝나고 나면 형과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거나 텔레비전 시청을 한다.예전에 어느 한 통계자료를 본적이 있다. 그 자료는 소위 잘 산다는 상위 계층이 많은 학교를 순위를 매겨 분석한 것이었는데 놀랍게도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대학들과 이화여대, 포항공대, 서울교대 등이 전국 10위에 올랐다. 이 자료는 한 동안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이 자료가 나오기 전까지 공부는 본인의 노력이고 능력이라 생각하며 부모의 재력이나 집안 환경은 외면해 왔다. 그러나 통계결과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실상 돈과 환경은 학생이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영향을 주는 또 하나의 요인이라는 냉정한 현실을 마주 할 수밖에 없었다.내가 앞서 '가윤'이와 '민구'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국 교육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다. 나는 이 두 학생들을 방학동안 만나고 함께 공부했다. 물론 모든 아이들의 수준을 환경을 기준으로 나눈다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일반화 일수 있겠지만 어쩌면 이 두 아이들이 내가 앞으로 투입될 교실의 현장이고 교육의 현실일 수 있겠다는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해주었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결정할 수 없는 것들로 인해 출발선상에서조차도 교육에서의 빈부 격차가 생기는 이 사실이 나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학력 그리고 할아버지의 경제력'이 아이가 공부를 잘할 수 있도록 만드는 요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하지만 그 속엔 불편한 진실이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를 농담으로만 생각하지 못 한다. 그래서 어쩌면 대부분의 중산층 대한민국 부모님들이 자신의 노후 자금도 마련하지 못한 채 너도나도 가릴 거 없이 사교육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3.08.21 23:02

청춘을 돌볼 줄 아는 이가 진정한 어른

여수에 갔다 왔다. 엑스포 없이도 여수는 여행하기에 충분한 도시여서 여행 목적이 아님에도 설레였다. 나는 오동도에 들를 생각으로 여수역 앞에서 무인자전거를 빌리고 있었다. 때마침 여러 무리의 학생들이 역을 빠져나왔다. 편한 신발과 볼록한 배낭으로 보아 '내일러'(내일로 티켓을 이용해 전국을 여행하는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어울려 사진을 찍고 웃고 떠들며 지나갔다. 내 친구들은 아르바이트와 취직 준비, 공무원 시험 때문에 각자 집에 있었다.내 친구 중 한 명인 A는 우스갯소리로 "알바로 300만 원을 벌었는데 떼인 돈이 100만 원은 되는 것 같아"라면서도 학기 중에도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았다. 친구가 오래 일한 패스트푸드 가게의 점장은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자주 임금을 주지 않았다. 아르바이트와 성적 사이를 늘 위태하게 줄타기하는 그 친구는 제대로 된 경험도, 공부도 열심히 하지 못했다고 후회했다. 그러나 빚 없이 학교에 다니는 것에는 사뭇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학자금 대출 역시 취직하면 갚아나가야 하는 짐이라는 이야기다.90년대에 태어난 지금 20대, 우리 세대는 어린 시절 IMF를 겪었다. 많은 수가 가세가 기우는 모습을, 부모님의 한숨과 눈물을 보고 자랐다. 돈이 삶을 휘두르고 가치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가슴에 멍 하나씩을 가지고 성인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불행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낡은 불행을 현재 삶과 비교하며 자수성가의 증표로 쓰지 않는다. 대신 일찍 철이 들었다. 청년이 어른이 되는 기존의 과정은 열정이 꺼진 자리에 안정이 들어오는 것이다. 우리는 열정을 미뤄두고 빠른 안정을 택했다. 술잔을 기울이며 일탈은 하지만 도전은 하지 못하고 무기력을 쉽게 학습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 세대의 유행, 공무원 시험 응시율이 높아지는 현상이 이를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안정은 경제적 안정에 쏠려 있다. 합리를 추구하고 실속을 따지는 일에 능숙하나 쉽게 속물근성에 물들었다. 우리는 안정을 바라기 때문에 때때로 착취, 이용당한다. 대학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거마 대학생 사건 같이 굵직한 일은 물론 꾸준히 발생하는 대출 사기와 아르바이트 임금 문제도 있다. 코 묻은 돈을 받고 값싼 위로를 파는 데에 청춘은 아플 때나 쓸모 있다. 지식인이라는 말은 사라지고 대학 졸업장은 사회인으로서 최소한의 구실을 위한 마지노선이다. 성적은 기본이고 자격증, 외국어 능력, 나아가 독창적인 개인 스토리텔링까지 원하는 회사가 늘어간다. 어디 하나 안 힘든 일이 없다.A는 지금 조기 취업을 했다. 회사는 안정적이고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순탄하고 괜찮은 삶이라는 주변의 평가와 부러움의 시선을 받았다. 처음에는 그 친구 역시 일이 즐겁고 스스로 많은 돈을 번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월급으로 적금을 넣고 물건을 사는 일에 금세 염증을 느꼈다. 어느 날은 불쑥 인생이 재미없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안정은 단조롭기 마련이다.얼마 전 트위터에서 많은 수의 공감을 받은 글이 있다. 즉흥적으로 떠날 수 있는 건 청춘이 아니라 부모님의 재력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무기력하게 불행을 현재진행형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 스스로이다. '내일러'들 역시 같은 시대를 통과해 온 20대다. 나는 청춘을 돌볼 줄 아는 그들이 더 좋은 어른이 될 거라 믿는다.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배낭 대신 시급을 택하는 한 청춘은 유예되거나 돌이킬 수 없게 낭비된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3.08.14 23:02

당신의 아버지를 알고 있나요?

아버지는 등산을 좋아하신다. 주말 아침이면 어김없이 배낭을 매고 산으로 향하시는 분이다. 등산을 가실 때마다 나에게도 함께 하자고 말을 하곤 하셨지만 아버지와 산행을 한 적은 몇 번 없었다.얼마 전 주말 아침, 그날따라 일찍 잠에서 깬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다섯 시쯤 됐을까? 아버지가 일찍 평소처럼 산행 준비를 하고 계셨다. 아버지는 내게 산행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고 왠지 그날은 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아버지를 따라 산으로 향하게 되었다. 아버지와 함께 등산을 하게 된 것은 약 3년만의 일이었다.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등산로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한적한 산길을 걸어가며 아버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됐다. 세 시간 정도 산행을 하면서 여기저기 피어있는 야생화의 이름이 무엇인지, 최근 이슈가 되는 뉴스는 무엇인지와 같은 간단한 이야기부터 얼마 전 정년퇴임하신 아버지의 직장은 어땠는지, 아버지가 등산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등 개인적인 이야기 까지 많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아버지와 단 둘이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해 본 것이 얼마만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부터 대학에 진학하고 군대를 다녀올 때까지, 아버지와 이야기를 한 기억이 많지 않았다. 대화를 하더라도 아버지가 물어보는 말에 대답하는 것이 다였을 뿐이다.아버지가 등산을 즐기신지 12년이 지났지만 왜 산행을 즐기시는지 언제부터 등산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여쭈어 본 것은 처음이었다. 또 직장을 다니신지 30년이 훌쩍 넘어 정년퇴임을 하실 때까지 '아버지는 이런 이름의 직장에 다니시는 구나', '아버지는 등산을 좋아하시나 보다'라고 생각했을 뿐 아버지의 직장생활은 어떤지, 일이 힘들지는 않은지 등에 대해 여쭈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와 단 둘만의 시간을 가져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그날 한 걸음 한 걸음 산길을 걸으며 아버지로부터 그동안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내가 생각하던 것 고민하던 것을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우연히 가게 된 이번 산행을 통해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굉장히 단편적인 모습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몰랐던 아버지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과거 젊은 시절 이야기, 아버지가 기억하는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해 아버지와 대화하며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많은 20대 아들·딸들은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정말 바빠서 시간이 나지 않을 수도 있을 테지만 아버지와 시간을 갖는 것이 어색하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조금만 마음을 열고 용기를 내서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을 갖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아버지와 시간을 갖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나누다보면 자신이 모르는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3.08.07 23:02

투입 대비 산출 얻기

한동안 카카오톡으로 날아오던 '하트'를 보며, 문뜩 이것이 사람과의 관계와 조금 유사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상대방에게 하트를 준다고 해서 상대방도 내게 하트를 보낼 것이라 확신할 수는 없듯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상대방에게 애정을 준다고 하여 상대방도 내게 그대로 애정을 준다고 확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사랑' 이나 '애정' 같은 감정을 물리적으로 계산할 수는 없다는 사실은 이것들이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거스른다는 점에서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상대방에게 애정을 100만큼 투입한다 해도 상대방은 내게 60이나 40, 어쩌면 0만큼의 애정만을 산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피드백 받지 못한 나머지 사랑은 어디로 가는 것인지 의아하기도 할 따름이다. 어쩌면 투입한 만큼 산출되는 수학이나 물리보다, 그렇지 않은 인간관계가 더 어려운 문제일지도 모르겠다.한편 나는 개라는 동물을 참 좋아하는데, 왜냐하면 개는 내가 애정을 주는 만큼 내게도 애정을 주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개들도 그들마다 성격이 각양각색이고 몇몇 개들은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데 긴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대체로 많은 개들은 내가 맛있는 먹이를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만으로도 내게 꼬리를 흔들며 나를 사랑해 주곤 한다.한번 생각해보자. 왜 개는 내가 사랑을 투입하는 만큼 내게 사랑을 산출해 주는 것일까? 그것은, 내가 그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개는 사랑스럽게 그들을 쓰다듬어주거나 맛있는 개 간식을 주는 것을 좋아한다. 따라서 그 정도의 애정 투입만으로 쉽게 개와 친해질 수 있는 것이다. 개와 사람을 완전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때에도 이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상대방에게 무조건적인 투입을 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투입한다면, 투입한 만큼의 애정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친해지기는 개와 친해지기보다 어렵다. 왜냐하면 사람은 맛있는 음식이나 스킨십보다 훨씬 고차원적이고 복잡한 것을 원하며 사람마다 원하는 것들의 종류가 원채 다양해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찾아내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또, 내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알아냈다 하더라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해 관계를 좁힐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때때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너무나도 사소해 오히려 그것을 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 어쩌면 상대방은, 작은 배려나 기분 좋은 말 한마디를 원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찾기 어려운 만큼, 그것에 성공했을 때의 효과는 더욱 확실하다. 덕담 한마디의 투입만으로 상대방과 더욱 친해지고 가까워질 수 있다면 그보다 수지맞는 장사가 또 어디 있겠는가. 따라서 내가 사랑하는 내 주변사람들에게 내가 투입하는 만큼의 애정을 얻기 위해서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항상 생각해 보는 세세한 관심이 필요하다. 더불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이해해 줄 수 있는 배려심도 갖추고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좋은 인간관계는 나의 감성을 살찌우고 더불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내 가족, 친구, 연인에게 항상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늘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세를 가져보자.

  • 오피니언
  • 기고
  • 2013.07.31 23:02

쿠키 같은 수업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선생님 소개를 하자면……"엊그저께에 첫 멘토링 봉사를 한 것 같은데 어느새 시간이 흘러 마지막 멘토링 수업만이 남아 있다. 나의 멘티들은 초등학생 3학년 여학생 한 명과 4학년 남학생 두 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에는 학년도 다르고 성별도 다른 세 명의 아이들을 두고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에 대해 늘 고민했다. 그래서 어느 날은 만들기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평소 일과가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혹시 따로 사교육을 받지 않는 아이들이라면 내가 그 부분에 대해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아이들은 바늘에 찔린 풍선마냥 나에게 "선생님, 저는 이 멘토링 끝나고 또 다른 멘토링 가야해요. 거기서는 문제집 풀어요.", "저는 오늘이 제일 싫어요. 왜냐하면 영어 학원 가야해요.", "이거 말고 있다가 일층 가서 수학 방과 후 수업 들어야 해요."와 같은 답변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물론 요즘 아이들이 공부하느라 바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바였지만 실제로 멘티들을 통해서 직접 듣는 현실에 적지 않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정작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에 대한 해결책도 찾지 못하였다.그러다가 인터넷을 돌아다니던 중 '공부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쿠키와 무를 이용한 미국의 한 실험을 소개하였다. 우선 한 장소에 쿠키와 무를 두고 A집단에게 쿠키를, B집단에게 무를 주고 먹게 하였다. 그러자 B집단은 A집단들이 쿠키를 먹는 모습을 엄청 부러워했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두 집단이 동시에 수학 문제를 풀게 하였을 때 B집단은 A집단보다 수학문제를 느리게 풀었다고 한다. 과연 이러한 결과는 우연이었을까? 결론은 아니다. B집단은 이미 쿠키를 먹지 말아야 한다는 자제력을 미리 써버렸기 때문에 A집단보다 수학문제를 늦게 풀 수밖에 없었다.때로는 어른들이 학생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공부는 엉덩이 싸움이야", "공부는 의지의 문제이다."라는 조언을 해주신다. 아예 근거 없는 말씀은 아니다. 하지만 보통의 자제력과 의지력을 가지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쿠키 없이 수학문제를 풀기란 너무 어렵고 힘든 과정이다. 이것은 성인인 나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고 또 아직 너무나 어린 초등학생들에게도 예외는 없을 것이다.그래서 나는 애초에 세웠던 학업계획서와는 다르게 모든 수업을 다시 짰다. 아이들이 만들기 수업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찰흙이나 신문지, 색종이 등을 이용한 표현 수업을 하고 때로는 밖에 나가서 시장 구경을 하거나 땅따먹기 게임을 하였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수업이 어려운 날에는 교실 바닥에 앉아서 공기놀이도 하고 같이 책도 읽으면서 공부에 지친 아이들에게 잠시나마 휴식이 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늘 즐겁게만 수업은 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어려서 그런지 몰라도 이러한 놀이 형태도 또 하나의 수업이라는 개념이 잘 형성되지 않은 까닭에 갑자기 수업시간에 휴대폰을 사용하거나 리코더를 연주하는 등 골치 아픈 일도 종종 발생하였다. 그러나 내 꾸중에도 불구하고 땡땡이 치지 않고 늘 교실을 찾아와주던 아이들이 참 고맙고 대견스럽다.다음 주면 초등학생들의 방학이 시작되면서 이 아이들과의 멘토링 수업도 끝이 난다. 내가 의도한 대로 '쿠키'같은 수업은 되었을련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한 학기동안 좋은 추억을 안고 끝냈다면 내 의도의 50프로는 성공한 것은 아닐까?△ 신 편집장은 2011년 전주교육대 실과교육화에 입학한후 작년 3월부터 전주교육대 신문사 로 활동하고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3.07.24 23:02

하늘과 맞닿은 곳이 없네

'꽃보다 할배'에서 개선문에 오른 신구 할아버지는 파리 거리를 보며 "우리는 (건물을) 높이 올리느라고 열을 올리고 개발을 했는데 여기 올라와 보니 스카이라인(지평선)이 한 군데도 걸리는 데가 없다"며 감탄했다. 뒤이어 카메라가 비춘, 보존된 옛 건물들은 멋진 풍경으로 손색없었다. 키 작은 건물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모습은 신구 할아버지의 말을 빌려 "죽어갈 때도 잔상으로 남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할 만큼 아름다웠다.옛사람들의 삶과 추억이 담긴 건물들이 시대를 넘어 또 다른 누군가의 추억이 된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도 추억할 풍경이 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울적했다.잠자리가 떼 지어 나는, 매년 한여름이 되면 해남 이모네 집 생각이 난다. 그곳에서 지낸 초등학교 고학년 여름방학의 기억 때문이다. 이모네 집은 해남에서도 진도와 가까운, 공룡발자국 유적지가 있는 마을에 있다. 마을은 탁 트인 밭과 가늘게 뻗은 길 덕분에 멀리서도 잘 보였다. 가끔 바다 냄새가 마을까지 날아왔다. 야트막한 뒷산에는 선 자리에서 둘레가 다 보이는 호수가 있었다. 호수에는 자라가 많이 살았다. 이모네 집 마당은 온통 꽃잔디여서 초록색보다는 분홍색에 가까웠다. 비 온 다음날 해가 뜨면 꽃잔디는 빗방울을 머금어서 반짝였다. 꽃잔디 위에 앉아있는 잠자리들은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 않았다. 잠자리는 날개가 젖으면 마를 때까지 날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날개를 펴고 앉은 잠자리를 쓰다듬은 일은 내 어린 시절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그 집과 마을 전체에 여러 공장이 들어섰다는 얘기를 들었다. 공장에 가려 눈으로 봐서는 마을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바다 냄새도 더는 불어오지 않았다. 자라가 살던 호수와 산은 사라졌고 밭과 집 대신 보상금을 받은 마을 사람들은 떠났다. 꽃잔디 위에는 이슬이 앉기 전에 먼지가 쌓였다. 아름다운 그 집과 마을은 이제 내 기억 속에만 있다. 잠깐 눈을 감은 사이에 아주 소중한 것을 빼앗긴 느낌이다. 이 상실감은 처음이 아니다. 내가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살았던 마을이 도로 개발로 헐리고, 하천 복개 공사를 한 것이 5년 전이다. 포크레인에 허물어진 빨간 벽돌담은 숨바꼭질하다가 앞니를 깨트린 곳이고, 시멘트로 편평하게 매워 놓은 언덕은 두발자전거 연습을 하던 곳이다. 주차장이 된 놀이터는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 미끄럼틀, 그네 등을 사다 만든 곳으로 나와 친구들의 아지트였다. 그러나 이제 그 마을을 지나며 예전 집 자리를 가늠하기도 어려워졌다. 올해 마을은 공원 조성 때문에 통째로 사라질 예정이다. 나는 그나마 남은 마을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남기려 사진기를 들었다. 집을 나서는 나에게 엄마는 젊은 애가 뭘 벌써부터 새로운 걸 싫어하느냐고 말했다. 70, 80년대의 촌스러운 특징 같았던 개발 욕심은 사그라지지 않았고, 시골 마을까지 무분별하게 들이쳤다. 나는 내 환경의 소중함을 깨달을 시간이 없는 이 빠른 변화가 야속하다. 무엇이 언제 내 동의 없이 사라질까 전전긍긍해야 하는 것이 싫다. 굽이쳐 흐르던 강들과 강정처럼 내가 손 쓸 수 없이 망가지는 풍경들이 늘어갈 때 무력하다. 그것들이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추억과 맞바꿀 만큼 가치가 있는지 궁금하다. 마음 아픈 풍경이 늘어나고 있다.△ 박 부장은 2011년 우석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한후 2012년부터 우석대 신문 로 활동하고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3.07.17 23:02

섣불리 포기하기 전에…

지난 달 전국 대학생 신문·방송국 기자모임이 있어 신안군 비금면에 있는 이세돌 기념관에서 하룻밤을 보낼 기회가 있었다. 숙소를 배정받았을 때 안내 해주시는 분이 근처에 해수욕장이 있다는 말을 전해줬다. 오랜만에 만나는 바다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혼자 해변을 보기위해 발걸음을 옮겼다.그런데 경쾌하게 움직이던 나의 발걸음은 서서히 느려지고 있었다. 아무리 걸어도 해변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눈앞에 보이는 것이라곤 정글같이 무성한 수풀로 둘러싸인 좁은 통로뿐 이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머릿속은 "내가 가는 이 길이 바다로 가는 길이 맞는 걸까?. 지금이라도 발걸음을 돌리는 것이 현명할까?"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다. 결국 포기하고 숙소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리기로 결정했다.숙소 방향으로 몸을 돌렸을 때 수풀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낡은 이정표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정표는 내가 가는 길이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미 의구심으로 가득 찬 나는 이정표가 잘못됐을 것이라는 생각도 잠시 하긴 했지만 해변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이정표를 믿고 조금만 더 나아가 보기로 결심했다. 10분 쯤 걸었을 까? 풀이 무성한 숲이 끝나자 어느새 내 눈 앞에는 맑고 깨끗한 바다가 파도소리를 내며 나를 반기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해변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우거진 수풀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다음 날 다시 아름다운 해변이 보고 싶어 새벽같이 일어나 전날 갔던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른 시간이라 전날보다 더 녹음이 우거지고 날도 다소 어두웠지만 바다로 향하는 발걸음은 더 경쾌했다. 머릿속에도 더 이상 의구심은 들지 않았다. 아무리 지금 당장은 해변이 눈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조금만 더 가면 곧 내가 원하는 그것이 저 너머에 있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들의 삶도 우거진 숲을 헤치고 해변을 찾아가는 발걸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걸어가고는 있지만 지금 이 길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길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고 마땅히 믿을만한 이정표도 없기 때문이다.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에 의구심을 갖고 불안한 마음을 갖기 시작하면 쉽게 '포기'를 생각하곤 한다. 아무리 노력해봤자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을 것 같고 돈과 시간만 버리는 것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정말 잘못된 방향일 수도 있다. 이때 섣불리 판단하고 발걸음을 돌리기 전에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하얀 종이위에 지금껏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해왔던 일들을 적어보자. 아마 이렇게 작성된 종이는 당신의 목표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나타내주는 좋은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이 종이를 갖고 당신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한 사람에게 찾아가 보는 것도 좋다. 이미 그 길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당신의 노력들이 목표달성으로 가는 길이라는 확신을 줄 수도 있고 방향이 잘못됐다면 올바른 방향으로 안내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김 편집장은 군산대 경영학과 3학년으로 2011년부터 군산대신문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3.07.10 23:02

도서관에 가면 '죄인'입니까

지난해 여름, 청년유니온의 한 관계자가 명사로 초청된 특강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청년 유니온 관계자답게 오늘날 대학생들의 상황과 통증을 유창하게 대변하고 있었다.한 청중이 그에게 물었다. "오늘날 청년들은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정치에 문외한인데, 사회에서 청년들이 외면 받는 것은 그들이 자초한 일이 아닌가요?"라고. 그러자 명사는 당장 내일 월세와 등록금, 그리고 취직을 걱정해야 하는 대학생들이 정치에 문외한인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청년들을 변호했다.때때로 몇몇 청년들은 오늘날 대학생들을 7,80년대 대학생들의 모습과 비교하며 '비겁하다' 고 평하곤 한다. 스스로의 주권을 찾아 격렬한 학생운동을 펼치던 당시의 대학생들과 지금의 대학생들의 모습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들은 학생운동으로 기득권이 된 지금의 기성세대들이, 이제는 그 사다리를 걷어차고 지금의 청년들에게 경쟁을 요구한다며 기득권을 비판함과 동시에 그러한 요구에 응하는 청년들도 함께 비판한다. 이러한 대학가의 모습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일종의 문화충격 같은 것을 느꼈다. 아마 기성세대들과, 아직 대학생이 되지 않은 어린 학생들은 모를 것이다. 이곳에서는 '투쟁하지 않는 학생들' 이 마치 죄인처럼 취급받는다는 것을.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당시 한 선생님께 들은 말이 있다. 7,80년대 대학가에서는 특별히 정치적인 성향이나 관심이 없더라도 마르크스 평전을 손에 들고 다니는 것이 하나의 대학 트랜드였고, 그때는 그것이 멋이었다고 말이다. 나는 그 선생님을 다시 만난다면, 지금도 그것이 변하지 않았노라고 말하고 싶다. 분위기가 변했고 과거보다 '투쟁' 하는 학생들은 적어졌지만, 도서관과 고시원에 앉아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비겁하고 한심한 죄인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 이 대학사회이다.아니, '투쟁'이나 '운동'까지도 아니다. 이곳은 '진보' 라는 단어에 극도로 민감한 사회이다. 학내의 경사를 소개하는 기사를 쓸 때 마다 학교 홍보기사를 쓴다며 비겁하다 조롱하는 반응을 받을 때 느끼는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분명 기형적인 형태의 진보이다. 대학생의 의사를 관철시키기 위해 투쟁하는 그들의 노력을 무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건전한 사회에는 늘 행동하는 청년들이 존재했고, 변화된 사회 속에서도 자신의 미래를 걸고 용기 있게 투쟁하는 그들은 분명 이 사회에서도 필요한 존재이다.그러나 참여하지 않는 청년들을 비겁하다 매도하는 생각을 고칠 필요가 있다. 1점대 학점으로 졸업만 해도 어디로 취직할지 일자리를 고르던 시대는 끝났다. 오늘날 대학생들의 현실조차 이해하려들지 않으면서 그들을 위해 투쟁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이다.그러고 보면 이 사회는 청년들에 대한 강한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는 듯하다. 청년들과 대학생들은 반드시 투쟁해야 하고 현실보다는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고, 그런 암묵적인 강박관념은 오늘도 조용히 미래를 준비하는 대학생들의 목을 조른다.강요된 진보는 후퇴를 야기한다. 침묵하는 청년들에게 비겁하다 손가락질하기보다는 그들을 지켜봐주고 응원해 주는 편이 낫다. 그러한 응원과 관심이 당신이 생각하는 정답이 아니라면, 그들을 '비난' 할 것이 아니라 '설득'할 일이다.△ 윤 편집장은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3학년으로 6월부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전주지역회의 청년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3.07.03 23:02

전역하면 끝날 줄 알았나요?

얼마 전, 진행요원 아르바이트로 간 한 대기업 체육대회에서였다. 그날따라 속이 영 좋지 않아서 일하는 내내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일하다가 몇 번 의자에 앉아있던 게 동료들 눈에 볼썽사나워 보였나보다. 같이 아르바이트하러 온, 그 날 처음 본 스물여섯 먹은 형이 충고랍시고 이런 말을 던졌다. "군대를 안 갔다 와서 그 모양이냐? 눈치껏 알아서 좀 하란 말이야. 그거 우리 사장님 의자인데 거기 앉으면 어떡해?" 의자에 이름이 붙어있는 것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기억하나 싶었다.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기 직전, 걱정한답시고 또 말했다. "아무래도 넌, 군대에 빨리 갔다 오는 게 좋겠다. 정말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사회생활 잘하려면 군대는 꼭 갔다 와야 돼"라고 말한 그는 그 날 번 돈을 나이트클럽에 바치러 총총히 사라졌다."군대 다녀와야 사람 된다"는 말은 군대가 개인의 인격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인정함으로 성립된다. 군대에서 배운 대로만 하면 사회생활 어렵지 않다는 수많은 증언은 이 사회가 군대와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는 뜻으로 비춰진다. 인격이 완성되지 않은 20대 남성들은 2년 동안 군대 질서를 체득하고 사회에 진출한다. 그리고 그 남성들이 사회를 이끌어감에 따라 자연스레 군대의 논리는 사회 질서의 큰 축으로 자리 잡는다. 상명하복, 소속 집단에 대한 충성, 극단적 반공주의, 평범함의 강요 등이 바로 그것이다.그것은 하나의 순환구조로 자리 잡았고, 우리는 어릴 때부터 군대를 주입받게 됐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차렷 자세로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맹세해야했다. 사회에 진출하면 흔히들 사회초년'병'으로 불린다. 여성들은 남성들로 채워진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진짜 사나이'같은 군대 관련 예능을 시청함으로써 군대의 질서를 간접경험으로나마 체득한다.군대의 논리는 사회에 대한 건전한 비판을 사전에 차단한다. 그 논리에 머리가 굳은 사람들은 모든 인간을 아군과 적군으로 구분하며 소속집단을 위해 수많은 진실을 왜곡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입각한, 국가기관 선거개입 수사 촉구에 대한 대학생들의 시국선언을 그 사람들은 종북주의자의 사주로 인한 행위로 매도한다. 정권에 조금이라도 반대하는 이는 종북좌파의 딱지가 붙는다.군대를 없애야한다는 말이 아니다. 사회의 자유를 위해서도 군대는 반드시 필요하다. 네드 돌런은 "자유는 절대 그냥 얻을 수 없다. 그리고 미 해병대가 그 대가의 대부분을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군대의 시간은 2년으로 끝나야한다. 군대의 논리가 평생으로 확장되고 타인에게 강요될 때, 자유와 평화를 위해 만들어진 군대로 인해 우리는 자유롭고 이성적인 사회를 상실한다. 앞서 말한 체육대회 축구 토너먼트에서, 회장이 속한 팀은 몇 년째 우승을 거머쥐고 있었다. 실력자들이 잔뜩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팀들은 절치부심하고 오랜 시간 훈련을 거쳐 이번해에 우승 트로피를 가져왔다. 군대 논리로 어그러진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긍정적인 신호가 아닐까 싶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3.06.26 23:02

바람도 제 역할을 하는 것일 뿐

두껍던 옷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이제는 얇은 옷들이 옷장에 가득하다. 언제 추웠나는 듯이 더운 날들 계속되어 달력을 보니 벌써 6월 중순이 지나가고 있으며 곧 7월이 찾아올 기세다. 2013년의 시작이 며칠전이었던 기분이 들지만, 그저 내 기분일 뿐인가 보다. 한 학기가 끝나는 마지막 기말고사를 남겨두고 이제 더 더워질 날씨를 걱정하고 있으니 말이다.며칠전 일이다. 주말이라 집 근처에서 기말고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조금 이른 시간에 찾은 이유에서인지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그 공간이 덥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단지 너무 조용하다는 기분만 가득할 뿐이었다. 한참을 앉아서 기말고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해가 더 높이 떠 있었고 창가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뜨거운 기운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에어컨에 의지할 정도의 더위가 아니었기 때문에 창문을 열기로 마음먹었다. 창문을 열고 자리에 앉자 주변의 소리가 더 잘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났는데도 답답함이 가시질 않았을 때 갑자기 서늘한 바람이 들어왔고 그 바람이 내 답답한 마음을 한결 부드럽게 만들어주었다. 바람이 불어온 뒤 사람의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 나만 존재하던 그 공간에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답을 알았다. 답답한 마음을 누그러뜨린 바람이 불어온 이유는 그 사람이 창문과 마주보는 위치에 있던 문을 열고 들어왔기 때문이었다.조금은 웃음이 나왔다. 내 답답했던 마음이 다른 사람에 의해 해결되었다는 사실이 말이다. 나는 결국 문을 열고 나와 바람이 더 잘 부는 곳에서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 순간에도 나는 계속해서 헛웃음이 나왔고 그 헛웃음은 곧 작은 미소가 되었다. 마음이 가벼워졌다고나 할까? 기말고사라는 단어로 내가 나를 억압하고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들어가 하던 공부를 계속 했고 답답한 마음이 들 때 마다 바람이 잘 불던 그 곳으로 다시 찾아갔다. 답답함의 이유와 그 답을 알게 되어 한결 더 수월했던 하루였다. 겨울에는 그토록 미워했던 바람이 지금은 내 하루의 여유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올 여름을 보내면서 쉴 틈 없는 더위에 착한 바람이 계속 찾아오길 바랄 수도 있겠다. 겨울에는 차디찬 바람으로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으로 때마다 바람도 다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 역할을 할 뿐인데도 시간에 따라서 계절에 따라서 좋다고 말하고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뿐이다.어쩌면 너와 내가 살아가는 것도 이와 같을 것이다. 어디선가 갑자기 답을 얻어 기뻐할 수 도 있고 문제의 원인이 나에게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할 일을 멈출 수 는 없다. 언제나 내 자리에서 내 할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는 운수좋은날이 찾아오고 아닌 날들도 찾아올 것이다. 언제 어느 순간에 운수좋은날이 찾아올지는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때 알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운수좋은날이 어디쯤인지, 답이 뭔지는 알지 못한다. 단지 내 자리에서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 오피니언
  • 기고
  • 2013.06.19 23:02

익숙해지기, 시간과 노력이 필요

나는 만년필과 잉크를 모으는 취미가 있다. 말만 들으면 무척이나 비싼 취미인 것 같지만, 사실 그렇게 비싸지는 않다. 그런데 가끔 만년필을 보다 보면, 이 녀석들이 사람과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브랜드나 라인에 따라서 모습이 현저히 다르며, 뚜껑을 여는 방식과 마감 처리도 각기 다르다. 펜촉도 각각 재질이 다르고, 같은 라인이라고 해도 색이 다르다. 똑같은 제조사의 똑같은 만년필이라고 해도 미묘하게 그립감이나 잉크의 농도가 다르다. 그러나 이렇게 서로 '다른' 만년필이라도 같은 점이 있다. 쓰면서 길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처음 만년필이 종이에 닿을 때는 특유의 사각거리는 소리가 심하다. 가끔씩은 펜촉이 종이를 긁어 파내는 것 같은 소리가 나기도 한다. 어린아이 같이 글씨가 원하는 대로 써지지 않을 때도 있다. 가끔씩은 잉크를 방울방울 흘리기까지 한다. 새 만년필이 마치 고장 난 것처럼, 혹은 헌 만년필 보다 안 좋게 느껴지는 것은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년필로 글씨를 많이 쓸수록 점점 긁히는 소리가 줄어들고, 글씨가 예쁘게 각이 잡힌다.내가 가지고 있는 라미 만년필들도 하나는 시집 한 권을 필사하니까 겨우 길이 들었고, 하나는 시집을 반 권 필사하기도 전에 익숙해졌다. 확실한 건 필사를 하면, 글씨를 쓰면 쓸수록 긁히는 것 같은 소리는 줄어들었고, 글씨가 튀지도 않았다. 만년필이 길이 든 것이다.어떤 일에 익숙해지는 것도 만년필을 길들이는 것과 같다. 처음 할 때는 어색하고 힘들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시간을 들일수록 익숙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과를 처음 깎는다고 생각해 보자. 처음 사과를 잡았을 때는 분명 과육을 조각해놓았을 것이다. 너무 사과를 두껍게 깎은 나머지, 껍질에 붙은 과육을 그냥 먹어도 되겠다는 소리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일을 깎으면 깎을수록 점점 껍질을 얇게 깎을 수 있었을 것이다. 손때도 덜 묻고, 나름대로의 노하우도 생길 것이다. 이렇듯 중요한 것은, 자신이 잘 하고 싶은 그 일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생택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도 길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여우는 '네가 장미꽃을 위해 소비한 시간 때문에 너에게 장미꽃이 소중한 거야' 라고 어린왕자에게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길들이는 데에는 일정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어린왕자와 장미처럼, 그 일과 직접적인 대화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일에 마음을 주어야지 자신에게도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익숙해지려는 노력도 해보지 않고서 편법만을 찾으려고 하면 절대로 그 일을 잘 하지 못하게 된다. 만년필에서 나는 종이 긁는 소리가 싫다고 해서 부드러운 종이만을 찾으려고 해선 안 된다. 종이 위에서 잉크가 번지는 결과만을 낳을 뿐이다. 잘해보겠다는 가장 처음의 열망조차도 편법 위에서는 사라질 뿐이다.일 년의 반이 벌써 지나간다. 2013년을 시작하면서 잘 하고 싶었던 일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만약 아직 그 일을 잘 하지 못하고 있다면, 더 그 일에 시간을 쏟자. 남은 반 년 동안 그 일이 당신에게 온전히 길들여지기를 바란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3.06.12 23:02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