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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예술 작품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없다

유현상 티티안은 16세기 르네상스의 위대한 화가다. 사람들의 눈에 그의 붓놀림은 너무 쉬워 보였다. 작품들 역시 쉽사리 금방 완성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경지에 이르기까지 티티안은 오랜 연마와 꾸준한 작업 과정을 거쳐야 했다. 결코 만만하지 않은 힘든 과정이었지만 그는 불굴의 장인이었다. 샤를 5세에게 <최후의 만찬>을 바치며 보낸 편지는 그가 그림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 알게 해준다. 폐하, <최후의 만찬>은 7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그린 결과물입니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고작 열흘 동안 일해 흉상 하나를 만든 대가로 50시킨(고대 베이스의 금화)이나 청구하는 것이오?하고 베니치아의 귀족이 그에게 불평을 하는 것이다. 티티안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내가 그것을 열흘 동안 만드는 법을 익히는 데 30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잊은 모양이군요. 맞는 말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쉽게 얻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평생을 피나는 노력과 땀의 결과이기에 다른 사람이 보기엔 쉽게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작품 마다 마다 돈 가치로 따지면 본인에게는 무한대의 가치인 것이다 모처럼 서예를 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기위해서 서예실을 찾았다. 한참 서예 연습을 하다가 반가이 맞이하면서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차 한 잔을 마시게 되었다. 친구는 서예를 언제부터 시작했지?, 거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했으니 거의 60년 쯤 된 것 같지?, 이제, 통달했겠구먼!, 이제 시작인데 뭘 서예의 외길을 거의 30년 걸었는데도 이제 시작이라니 할 말이 없었다. 한참을 둘러보다가 구석에 서예작품이 구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걸어가서 펼쳐보니 내가 보기엔 너무나 멋진 서예 작품이었는데 버린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 작품 내가 보기에 너무 훌륭한 작품인데 왜 버렸나., 응, 좀 마음에 안 들어서 , 그렇다고 이 아까운 작품은 버리는가. 그럼 혹 나에게 줄 수는 있나, 안 돼! 너무나도 결연한 자세로 말해서 나도 당황했다. 이왕 버릴 거니 나를 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한 말인데 친구는 단호히 말했다. 다음에 기회 닿으면 그때 한 점 해주겠네.하며 말하는 그의 본뜻은 이러했다. 자기의 작품 중에서 실패한 작품인데 우리 집에 가 있으면 서예를 한다는 사람이 보게 될 경우도 있을 텐데 자기를 욕보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조금이라도 실수한 작품이라 생각되면 아깝지만 과감히 버리는 것이 자신의 수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드는 완전한 작품만 세상에 내 놓는다는 것이다. 역시 프로의 근성을 알게 되어 공연히 얼굴이 빨개졌다. 평생을 절차탁마하며 피나는 노력을 해서 오늘의 그 멋진 작품이 나온 것이다. 모든 작품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시, 수필, 소설, 미술, 서예, 음악, 무용, 공예 등 모든 예술 작품이 그렇다. 김연아의 피겨선수도 그렇고, 양궁선수도 그렇고, 박지성 선수도 그렇고, 조용필 가수도 그렇다. 어려서부터 평생을 쌓아온 그 피나는 노력과 연습으로 오늘의 예술 작품이 탄생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예술을 감상할 때는 드러난 겉만 보지 말고 심오한 내용과 더불어 그 속에 담긴 작가의 피땀과 참모습까지 발견해야한다. ▲ 유현상은 순창 교육장과 전북과학교육원 원장을 역임했다.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한국아동문학회 중앙위원으로 있으며 동화집 <늦게 말한 사람이 진거야> 등 동화집과 동시집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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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14 20:56

[금요수필] 두물머리 물처럼

나인구 불가에 방하착(放下着)이라는 말이 있다.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뜻이다. 마음속에 번뇌, 갈등, 스트레스, 원망, 집착, 욕심 등을 벗어 던져버리라는 것이다. 이런 마음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 그러면 착득거(着得去)하라 한다. 즉 지고 가란 뜻이다. 이 말은 조주 스님이 엄양 스님에게 하신 말씀이다. 내 안의 집착을 버리고 자세를 낮추며 내 안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기 위한 끝없는 담금질을 통해 빈 그릇이 될 때 그 안에 생명수가 넘쳐흐를 수 있다. 비워냄이 없는 채움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들은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지나온 자리를 둘러보고 반성해볼 때가 종종 있다. 욕심, 집착, 갈등 등으로 후회스러운 삶이 얼마나 많았는가? 언젠가 전주 추천대교를 지나갈 때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다. 전주천이나 삼천천을 거닐 때는 그 흐르는 물에 대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추천대교 옆을 지날 때 갑자기 이렇게 많은 물이 어디서 흘러들어오지?하고 생각해보았다. 전주 천과 삼천 천의 발원지가 어디인가? 모악산과 저 멀리 임실이나 상관의 골짜기를 내려와 전주 시내를 관통하여 추천대 두물머리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와 시가지의 오염되고 악취가 풍기는 냇가를 어떻게 지내 왔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추천대교 아래에서 만났으니 지난 모든 것 버리고 우리 한마음으로 넓은 만경강으로 가자한다. 그곳에 가면 용담이나 대아리, 완주 동상면 밤샘에서 흘러온 물들과 만날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함께 어울려 유유자적하게 건강한 강물로 흘러 바다를 꿈꾸게 될 것이다. 나는 퇴직을 하고 나서 처음에는 아침이면 무의식중에 넥타이를 매고 옷을 챙겨 입었다. 이런 나를 보고 아내는 어디를 가려느냐고 묻기에 출근준비를 한다.고하며 웃었던 때가 있었다. 이후 흐르던 물이 고여 있을 수만 없어서 노인복지관, 교회, 그리고 평생교육원 등을 찾아다니며 아직도 비어있는 지식의 그릇에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서 부지런히 나다닌다. 상처로 얼룩진 지난날, 욕심으로 집착했던 마음을 다 비워버리고 살 요량으로 하루하루를 살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물질이야 내려놓을 만큼 많이 가지고 있지 않지만, 마음속에 채우고 싶은 여러 욕망은 아직도 다 내려놓지 못한다. 지금도 욕심을 부려 원망이나 미움으로 얼룩진 삶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욕망에 아름다움을 더하면 소망이 된다고 한다. 우리는 욕망보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소망을 바라기에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은 자신이 우주와 합일된 아름다움을 획득하고 그것을 관조함에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 어리석은 인간들은 현실에 너무 집착하여 소망과 욕망을 서로 혼동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도 모른다. 새해를 맞이해서 우리는 부질없는 욕망을 자제하고 아름다운 소망을 기원하여 그 소망이 이루어지는 포근한 삶을 이루었으면 하고 또 소망해 본다. 흐르는 두물머리 물처럼 함께 어울려 옛일을 잊고 그들과 어울려 사는 일이 즐겁고 건강하게 흐르는 강물이 되고 싶다. 모든 것 버리는 방하착의 심정으로 살고 싶다. 내가 버리고 죽어야 산다는 진리를 터득하면서 함께 손잡고 늘그막의 사람들과 두물머리에서 서로 사랑을 나누며 살고 싶다. 마음을 비우고 먼저 손 내밀면서-. * 나인구 수필가는 <대한문학>에서 시, 수필로 등단한 뒤 전북문인협회 이사, 전북수필문학회 이사로 활동했다. 현재 대한문학작가회 회장으로 전북수필문학상, 문맥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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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07 20:43

[금요수필] 추임새

김학철 국악인 박동진 명창이 언젠가 TV에 나와 우리 몸에는 우리 것이 제일 좋은 것이여라고 우리 먹거리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일이 있었다. 이렇듯 나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입으로 먹는 먹거리처럼 귀로 듣는 소리 역시 우리 소리가 들을수록 가슴에 와 닿게 되었다. 우리 소리는 언제 들어도 뚝배기에서 끓고 있는 구수한 된장찌개 맛이 난다. 며칠 전 어느 수필문예지 출판기념회에서 여류수필가가 <흥보가>를 불렀다. 판소리에서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주연이라면 고수는 조연이다. 그리고 관객들은 판소리 사이사이에 흥을 돋구기 위해 고수가 북을 치며 얼씨구- 또는 좋고- 좋지-, 아니면 으이- 따위의 추임새를 넣는다. 이런 조흥사助興詞나 감탄사인 추임새는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는 신이 나는 일이고, 관객은 관객대로 흥이 나는 일이다. 소리를 하는 사람이 김장철의 배추라면 고수는 양념이다. 배추와 양념이 제대로 버무려져야 맛깔스런 김치가 되는 것처럼 소리꾼과 고수가 일심동체가 될 때 완벽한 판소리가 되기도 한다. 고수 없이 소리를 하는 사람 혼자서 89시간이란 긴 시간 동안 완창 한다는 것은 맥이 빠지고 지루한 일이다. 이는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는 마치 드넓은 사막을 홀로 걸어가는 기분일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 이번 기념회에서는 소리꾼은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이고 전문고수도 없었다. 다만 많은 참석자들 중 남자수필가 56명만이 소리를 하는 사이사이 추임새를 넣은 것이다. 다행히도 그 수필가가 부른 흥보가는 맛깔스럽고 추임새가 잘 어우러져 행사장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생각해 보면 추임새는 소리를 할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가령 성악가나 대중가수가 노래를 부를 때 박수를 치거나 환호하는 것도 일종의 추임새다. 또한 어린 아이가 착한 일을 했을 때 칭찬해 준다거나 또는 얼굴 없는 천사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고 성금을 내는 일, 김밥할머니가 평생 고생해서 번 전 재산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쾌척하는 일 등으로 사회적 찬사를 받는 일도 추임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추임새는 널려 있다. 얼마 전 문우들과 함께 음식점에 갔을 때 밥을 먹다가 보니 반찬 그릇마다 비어 주인에게 추가반찬을 청하며 반찬이 너무 맛있어 동이 났습니다. 앞으로는 맛있게 만들지 마세요.라며 빈 반찬 그릇을 내밀었다. 그랬더니 맛있다는 말에 기분이 좋았던지 싱글벙글하며 반찬과 더불어 부침개 한 접시를 더 갖다 주었다. 이 또한 추임새의 덕을 본 셈이다. 나는 지금까지 세상을 살면서 남에 대해 험담이나 흉보는 일에는 익숙해져 있지만 칭찬하는 데는 인색하게 살아왔다. 선행을 하는 사람을 보고도 못 본 체하거나 그 순간에는 감동하다가도 곧 잊어버리는 일이 많았다. 인간 세상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험한 사건, 사고가 터진다. 단 하루도 평안한 날이 없다. 저렇듯 바쁘고 복잡하며 불안한 삶에 정말 필요한 것은 추임새가 아닐까? 의식적인 추임새나 무의식적인 추임새는 자주자주 넣어야 한다. 이는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는 힘이 빠졌을 때 힘을 받쳐주기 위한 것이거나, 강약을 보좌해 주거나, 소리의 공간을 메워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추임새가 들어가는 곳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고수의 감각에 의해서 적절한 때에 적절한 추임새를 넣는 것처럼, 또 소리꾼과 고수의 호흡이 잘 맞을수록 좋은 소리가 나오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추임새야 말로 인간의 마음을 바르게 하거나 밝은 사회로 나가게 하는 지름길이 아닐는지. 진정한 추임새는 곧 흥이고 칭찬이자 격려다. * 김학철 수필가는 2013년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 이사, 영호남수필문학회한국미술협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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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28 20:19

[금요수필] ‘덕분에’ 라는 말

박종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즐거운 설 명절 보내세요., 모두 다 이루어지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만사형통하세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충만한 한 해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금년에도 어김없이 이렇게 다양한 설 축하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그 중에 며칠이 지나서도 잊혀 지지 않고 내 마음 속에 남아있어 여러 번 들어다 본 메시지가 있다 세월 차암 빨리 가는군요. 우리말에 덕분에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 속엔 사랑과 은혜 그리고 감사가 들어 있다고 하네요. 오늘도 부모님 덕분에, 친구님 덕분에, 그리고 저를 아는 모든 분들 덕분에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하며. 특히 당신 덕분에 항상 잘 지냅니다. 사랑하는 많은 이들과 함께 하는 인생길, 덕분에 항상 고맙고 감사합니다. 새해를 맞아 복 많이 받으세요. 추워지는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고요.라는 어느 수필가가 보내준 축하메시지는 왠지 가슴을 찡한 울림을 주며 남아있다. 그것은 평소에 잊고 지내던 덕분에라는 단어가 새삼스레 다가와 가슴을 두드렸기 때문 이싶다. 덕분德分에 라는 말은 베풀어준 은혜나 도움이라는 뜻으로 덕德, 덕윤德潤, 덕택德澤, 은덕恩德과 같은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누구에게 덕을 나누어준 적이 있었던가. 누구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고 도움을 준 적이 있었던가를 돌이켜 보니 참 부끄럽기 짝이 없는 삶이었다. 주려는 것보다는 받으려고 힘쓰며 살아왔지 않았던가, 아마 의례적인 인사겠지 하면서도 덕분에 라는 말이 머릿속을 뱅뱅 돌며 떠나지를 않았다. 덕분에라는 말에 자신을 반추해본다. 육십이 넘도록 공직에 있을 수 있었으며, 노후에도 알량하지만 이렇게라도 지낼 수 있다는 것은 세 분의 덕분에 라고 생각된다. 돌이켜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토끼가 발을 맞추고 앞뒤 산에 간대를 걸치면 걸친다는 험한 산중에서 태어난 터라 마을사람들은 으레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농사일이나 시키던 때였다. 그런데 나를 대학까지 보내주신 아버지, 그건 순전히 아버지 덕분에였다. 또한 평생 한없이 예뻐해 주시며 대학입학금을 내 주신 외할머니의 덕분에도 있었다. 그리고, 새벽 일찍 밥을 지어 이십 리도 넘는 통학을 도와주신 어머니의 덕분에도 잊을 수가 없다. 젊은 시절 잔병치례로 고생하던 퇴계 이황이 양생법을 자세히 소개한 활인심방이라는 의서에 심취하여 치료보다 예방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각고의 노력 덕분에 일흔 살까지 건강하게 장수를 누렸다며,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주위에서 걱정과 우려 속에서도 저희는 잘 지내고 있으며 이제는 아이가 나한테 힘을 줘서 덕분에사는 느낌이라고 한 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전하는 기사가 문득 떠오른다. 나도 세분들의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음을 생각하니 가슴 깊이 흐르는 뜨거운 그리움이 폭포수 되어 목이 멘다. 덕분에 라는 말은 사실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두루 사용되고 있다. 당신 덕분에 꽃이 피었습니다.,당신 덕분에 꿈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당신 덕분에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당신 덕분에 오늘의 영광이 있었습니다.,당신 덕분에 행복합니다.,당신 덕분에 웃으며 살아갑니다., 당신 덕분에 여기까지 잘 왔습니다.,당신 덕분에 저녁 잘 먹었습니다.,당신 덕분에 잘 배웠습니다.,이런저런 일로, 덕분에 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덕분에 라는 그 말 한 마디 듣는다는 건, 덕德 하나가 쌓인다는 거 아닐까? 당신 덕분에라는 말을 듣는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흐뭇한 일인가. * 박종은 수필가는 고창교육지원청 교육장을 역임했으며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고창예총 회장으로 있다. 영랑문학상과 전북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나의 포트폴리오>와 산문집 등 10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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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21 20:31

[금요수필] 신춘문예 단상(短想)

김덕남 항상 새해가 되면 건강과 복을 기원하는 덕담이 이어진다. 그러나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정초에는 신춘문예 관한 관심이 제일 크다. 특히 올해에는 내가 소속된 문학단체 회원이 둘이나 중앙과 지방언론사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카 톡 방이 축하 인사로 뜨거웠다. 문학인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크고 작은 불씨를 안고 한 번쯤은 정상에서 불사르며 우뚝 서보고 싶은 꿈을 꾸고 있다. 그 실력을 공인받고 공개적으로 제 위치를 드러내 보이고 싶은 그 꿈의 첫 번 째가 신춘문예이다. 당선 가능성의 확률을 셈하며 자기지역은 물론 타 시도의 언론사 까지 응모 권역을 넓히며 응모를 한다. 그러나 많은 신춘의 도반들이 그 정상 가까이서 고배를 마시며 연일 수런수런한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에도 같은 해 장원을 비롯한 또 다른 급제의 영광을 안은 인재들이 많았건만, 신춘문예 당선만은 오직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수십 년, 적어도 수년을 갈았던 펜의 꿈이 모두가 허탈한 도전으로 끝나고 만다. 별을 따는 야망으로 은근한 기대를 안고 숨을 죽이며 분투했을 작가 지망생들이다. 그런데 그 고지에서 탈락한 글이라 해도 당선작과 견주어 한 치의 모자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은 자기 글에 대한 애정과 자존감 때문이다. 그래서 매년 미련을 안고 또다시 숙성되지 않은 글로 무모한 도전을 한다. 작가의 심상을 대상으로 평가하는 글의 당선작이란, 명확한 기준의 기계적인 잣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극소수 심사위원의 정서적 감정 코드와 맞아 떨어져야 하는 것이기에,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일처럼 어려운 일이다. 물론 기본 문법이나 주제 의식이나 감동을 주는 문학적 기교 등 타당성 있는 객관적인 심사기준은 있다. 그런 관점에 따른다 해도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고 색깔이 다르듯, 최종 작을 결정하는 분들의 문학적 관점이나, 사상이나 가치관은 각각 다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당선작은 유사한 공통점이 있다. 작가가 경험한 구체적 사건과 사물을 의미화하고 형상화하여 일상과 대입해 나가는 글이 많다. 신춘문예를 대비한 글쓰기 반이 따로 있다는 통설은 신춘문예의 글쓰기 기법과 유형을 짐작하게 하는 그럴듯한 이야기 아닌가. 요즘엔 파격적이고 통통 튀며 대담하게 글을 쓰는 신선한 문학도들이 많다. 그들은 신춘문예 쪽엔 아예 관심도 없고 자기만의 글을 쓴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웃음을 주고 눈물을 흘리게도 하고 묵직한 여운도 충분히 남긴다. 심지어 세상에 고백하기 어려운 육체적 정신적 갈등의 복합적인 내면 이야기까지도 높은 차원의 시각으로 통찰하여 숙련된 문장으로 이끌고 간다. 신춘문예는 또 다른 특성을 가진 글 마당이기에 그 당선만이 문학의 절대가치가 아니라는 어느 평론가의 위로는 위로로서 그친다. 신춘문예 당선은 국내 문학행사로는 유일하고 독보적인 수상이어서 역시 자랑스럽고 기분 좋은 일이다. 번뜩이는 창작력으로 무장한 풋풋한 문학도들, 농익은 삶의 지혜와 무한한 자기 숙련으로 다져진 경륜이 쌓인 문장가들. 무수한 그 별들이 밤하늘에서 저렇게 빛나고 있다. 저 어느 곳에 내별 하나쯤 떠 있었으면 좋으련만 아직도 나에겐 낙타 바늘귀 들어가는 일처럼 요원한 일인가? 그러나 저 하늘에 내 별 하나 오르지 못한다 해도 또 어떠리. 밤하늘을 우러르며 빛나지 못한 내 글일망정 온유한 생각으로 스스로 내 글에 빠져 지내는 것도 의미 있고 행복한 일인 것을. * 김덕남 수필가는 전주용소초등 교장으로 정년퇴직하고 에세이스트 신인 수필가상으로 등단했으며, 풍남제주부백일장(시), 전국 물사랑 공모전(은상) 향촌문학 대상을 수상했다. 수필집 <아직은 참 좋을 때>. <추억의 사립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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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14 19:54

[금요수필] 버티며 사는 인생

한성덕 어느 덧 격동과 파란의 세대를 살아온 막내가 환갑을 맞는 돼지 해. 그것도 황금돼지 해인 기해년의 태양이 아파트 창 너머로 활짝 얼굴을 내밀었다. 내가 살고 있는 우아동 럭키아파트는 전주시내 중심지에서 동쪽으로 비껴 앉은 끝자락에 있다. 그야말로 오지중의 오지다. 그래도 아파트 뒤편 저 멀리서 올망졸망한 진안고원의 산들이 손짓한다. 그 유혹에 사로잡혀 아파트를 벗어나면서 곧바로 고향 쪽 도로로 들어서 시골집까지 자동차로 50분 거리이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그 50분을 달려가는 동안 꼬불꼬불한 산길 도로를 오르내리며 느끼는 스릴과 창밖의 풍광을 즐기는 재미에 취하다보면 기분이 무척 상쾌하다.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무주가 고향이 아니라면 그 기분을 어찌 알겠는가? 나만이 갖는 맛이요, 즐거움이다. 아파트에서 전주역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인데 전주역 바로 옆에는 30층짜리 오피스텔 아파트와 함께 대형마트가 들어선다며 공사가 한창이다. 그 대형마트가 10분 거리에 있다는 것이 좋아서인지 지날 때마다 설렌다. 그리고 전주역도 새로 건축되며 그 뒤쪽 드넓은 뜰에는 새로운 주거지와 공원으로 탈바꿈한다는 낭보가 들린다. 나와는 별로 상관없어 보이지만 무척 반가워서 아직 공사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가슴이 쿵쾅거린다. 몇 년 전부터 전주역 앞거리가 달라졌다. 관광객이 첫 발을 딛는 전주역 앞 약1km 가량의 첫 마중 길은 고향의 거리처럼 따뜻하게 맞아준다. 도로양쪽에는 느티나무가 멋을 뽐내니 살아 숨 쉬는 거리공원이 되었다. 몇 십 년이 지나면 아름드리나무로 가득한 싱가포르의 거리를 방불케 할 것이다. 차들은 그 사이의 공원 양쪽도로를 타고 서행한다. 창가에는 거리의 작은 것들이 낭만을 이루고 도심 속 허파가 되어 꿈틀거린다. 크리스마스 전부터 공원은 초롱초롱한 야등으로 출렁거린다. 연인들은 손을 맞잡고 추억을 담아내고 찾는 사람들의 가슴마다 깜박깜박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이처럼 달라지는 것들이 많아서인지 오지의 럭키아파트가 점점 좋아지고 사는 맛도 매일처럼 새롭다. 목회에서 조기은퇴하고 지금은 보금자리를 럭키(lucky)아파트로 정한 것 자체가 복이다. 이름처럼 여기저기서 행운이 샘솟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그 행운이 안겨주는 희망을 단단히 붙잡고 끝까지 럭키아파트에 살련다. 앞으로 그 주변에 더 좋은 일이 많아질 것 같아서 버티고 살아 볼 참이다. 버틴다고 하니까 얼핏 씨름의 버티기 생각이 난다. 씨름이라야 고작 초등학생시절 장난기서린 씨름이어서 씨름다운 씨름을 해 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름하면 이만기가 떠오른다. 씨름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게 버티기라고 한다. 실제경기에서 제일 많이 쓰이는 것은 공격보다 버티기라니 알만하다. 다리에 힘을 잔뜩 줘서 상대공격에 안 넘어져야하고, 두 팔로 샅바를 굳게 잡고 잘 견뎌내야 한다. 팔다리에 쏠리는 힘은 배와 팔뚝에서 땀방울을 만들고, 장딴지까지 땀이 송골송골 맺힌 것을 보았다. 서로가 힘껏 버티다가 약점이 느껴지면 후다닥 기술을 걸어서 쓰러뜨린다. 약점으로 무릎을 꿇으면 남는 것은 후회뿐이다. 하루하루 버티고 사는 인생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작년에도 잘 버텼으니, 올해도 잘 버티고 살아야지하는 생각이다. 무엇을 이루어서가 아니라 넘어지지 않고 굳건히 살아온 게 감사해서다. 후회 없는 인생이 되려면 잘 버텨야한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 * 한성덕 수필가는 은혜림교회 목사를 은퇴하고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현재 신아문예대학에서 수강 중이며 신(信).망(望),애(愛)로 버무려진 성직자 수필집 <단, 하루만이라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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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07 19:56

[금요수필] 생명의 터전 바다

이의 전북일보에 부안 앞바다에서 잡은 아귀의 뱃속에서 500ml 페트병이 나왔다는 기사를 보고 놀란 가슴을 한참 진정해야했다. 그래도 우리나라 해안은 아직 청정하지 않을까 했었는데 우려했던 현실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요즈음은 쓰레기도 국제화 되어 이웃나라 플라스틱이 우리나라 연안까지 밀려온다니 바다 오염은 지구인 공동체가 책임을 져야할 문제다. 어느 날 환경운동연합회로 부터 크리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알바트로스를 상영한다는 문자를 받고 감상을 한 적이 있다. 알바트로스는 바다에 떠 있는 플라스틱을 먹이라 생각하고 어린 새에게 이를 먹이는 가슴 아픈 장면이었다. 북태평양 한가운데의 미드웨이 섬에 수천 마리의 어린 알바트로스가 뱃속에 플라스틱이 가득한 채로 죽어 볕에 말라가고 있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플라스틱 등 우리가 버린 쓰레기가 생태계를 파괴하는 비극을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알바트로스>는 태평양 외딴 섬에 무리 지어 살고 있는 새의 삶과 사랑이야기이자 인간의 무분별한 소비 때문에 죽어가는 가여운 생명, 그 생명을 사랑하게 된 어느 남자,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영상을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매일 사용하는 플라스틱 용기가 생명을 죽이는 도구가 될 수 있다니 기가 막혔다. 언제부터인가 가볍고 편리한 플라스틱이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되다 보니 공동주택의 쓰레기장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들이 모여 먹고 마시고 장소에는 플라스틱 병이 뒹굴어 다닌다. 그런데 순간 사용하여 버린 이것들의 재활용은 20%도 안 되고 나머지는 지구상에서 남아 분해되는 시간이 무려 400년이란다. 인류의 역사를 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로 구분한다면 현대는 플라스틱시대라고 한다. 플라스틱 없이는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혁신적인 제품들을 제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상용품들은 말할 것 없고 반도체, 얇고 화려한 LCD와 유기EL 디스플레이, 고성능 2차전지, 초극세사와 기능성 섬유, 자동차 내장재 등은 플라스틱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볼 수 없을 제품들이다. 이처럼 가볍고 단단한데다 가공이 쉬워 20세기 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히며, 편리함을 앞세워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 플라스틱이 이제는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바다하면 낭만의 푸른 파도로 설렜는데 생명을 죽이는 플라스틱 잔해가 떠돌아다니고 있으니 한심하다. 바다로 흘러 들어간 플라스틱은 조류에 의해 태평양으로 모여든다. 그로인해 한반도 크기의 일곱 배보다 큰 플라스틱 쓰레기 섬이 생겼다고 한다. 플라스틱은 햇빛과 파도에 의해 찢기고 부서져 크기가 점점 작아지겠지. 작은 조각이 물위를 떠다니면 해양 생물체들이 먹이로 알고 주워 먹는다. 이 쓰레기의 잔해가 우리들의 밥상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도 하겠지. 지구의 70%인 바다는 오늘도 몸살을 앓고 있다. 환경단체에 따르면 고래의 사망 원인 중 56%가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해 사망한다고 한다. 바다로 유입된 미세 플라스틱은 새우, 홍합, 굴 등 다양한 해양 동식물의 먹이가 되고, 결국 이들은 인간의 식탁에 오른다. 지구의 70억의 인류가 살아가기 위한 과학의 발달은 사람이 먼저가 아니라 모든 만물이 공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도 지구의 일원일 뿐 만물과 함께 살아야 할 책임을 져야 되리라. 공생의 순리를 지킨다면 아름다운 지구는 초록별로 남으리라. * 이의 수필가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한국문협, 전북문협, 전북수필, 영호남수필. 덕진문학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집 <여자나이 마흔 둘 마흔 셋>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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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31 20:02

[금요수필] 그때는 몰랐다

임영희 언젠가부터 <웰빙>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었다. 웰빙(Well Being)이란 미국에서 건너온 새로운 생활 방식으로 자연, 건강, 안정 등 정신적인 가치까지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육체적인 질병뿐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질병도 없는 상태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당시에는 여기에 영적인 건강을 추가해 심리적 건강을 중시하는 추세다. 그러더니 얼마 후 몸이나 마음의 치유를 뜻하는 <힐링(Healing)>이 대세라며 영육 간 치유의 생활과 방법이 많이 밀려왔다. 물론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면 얼마나 좋을까. 이는 모든 사람의 희망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즈음은 바야흐로 <웰 다잉>의 시대가 뜨고 있다. 웰 다잉(Well Dying)은 살아온 날을 정리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고령화와 가족 해체 등 여러 사회적 요인과 맞물려 등장한 현상이다. 또한, 노인 1인 가구 증가로 가족의 도움 없이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의식이 퍼졌다. 건강 체크로 고독 사를 예방하고 그동안의 삶을 기록하거나 유언장을 미리 준비하는 등의 행위를 통해 웰 다잉을 실천할 수 있다. 웰 다잉에 대한 관심이 늘자 기업과 복지관 등에서는 비문 짓기부터 사후 신변 정리까지 웰 다잉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인간은 생로병사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모두가 평등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죽음이란 소멸되는 게 아니라 새로이 태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무엇을 하며 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잘 살고 마지막을 후회 없이 맞이할 수 있을까. 한때는 60까지만 살려고 한 적도 있다. 여러 어려움이 한꺼번에 닥치자 극단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 하지만 다 지나고 보니 잘 견디고 참아왔다고 자신을 스스로 위로해 본다. 물론 고희에 이르러서야 모든 걸 내려놓고 희생 인내하는 생각으로 살려고 애쓰는 걸 감출 수 없다. 나중에 그런대로 중간 점수는 받고 싶은 마음이리라. 친정어머니 병구완 중에 교통사고 수술 후유증으로 심한마비와 통증이 나를 짓눌러도, 아침저녁에 수도하는 마음으로 잘 견디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지낸다. 그러면 마음으로나마 잠시라도 위로를 받는다. 사는 게 뭐 별것인가. 일하고 사랑하며 아름답게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주위를 정리하며 단순하게 살려 한다. 그래서 필요한 사람에게 소중히 간직했던 것을 나누어주고 아주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살고 있다. 그러니 마음도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것 같다. 의식주에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사는데 별로 불편함이 없어 개운하기 까지 하다. 그런 연유서인지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항상 좋은 긴장감을 갖고 만끽하며 지내련다. 신과 함께 그 분 안에서 그리고 책과 꽃으로 내 빈 가슴을 채우기도 한다. 요즘에는 가끔 운명을 사랑하라는 김연자 아모르파티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김종환 가족을 위한 노래도 내 심금을 울린다. 두곡 모두 영혼을 살짝 건드리며 좋은 자극을 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 어느 날에 천상의 선물을 받을지 모르지만 그런대로 즐겁고 후회 없이 지냈다고 웃으며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따라 유난히 달빛이 몽환적으로 보인다. * 임영희 수필가는 전북백일장에 시가 당선되어 문학에 입문해 대한문학 수필로 등단했다. 현재 전북문화 해설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이야기할머니로 유치원 봉사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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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24 19:57

엄지손가락 - 정근식

정근식 수필가 퇴근 무렵 직원이 갑자기 휴가를 냈다. 광주에 계신 아버지 때문이란다. 아버지께서 팔순이 넘으셨는데 교통사고와 노환이 겹쳐 치매 증세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점심식사를 하고 나간 뒤 날이 어두워졌는데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직원은 휴대폰도 집에 두고 가셨으니 찾으러 다니는 수밖에 없다면서 전화를 받자마자 형제들에게 연락을 한 뒤 급히 자리를 떴다. 서둘러 허겁지겁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모습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그는 가정의 엄지 역할을 하는 장남이다. 엄지는 첫 번째 손가락이다. 짧고 굵어 볼품없지만 손의 중심이다. 엄지와 나머지 손가락이 연합하여 물건을 집거나 들 수 있는 기능을 한다. 엄지 없이 다른 손가락만으로는 손의 기능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엄지와 다른 손가락은 형제처럼 서로 협력의 관계이다. 그렇다고 둘째나 셋째의 역할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엄지가 다른 손가락과 힘을 합하여 손의 기능을 하듯이 형제들은 서로 협력하는 관계라는 것이다. 세월이 변해서 장남의 역할이 다소 희석되기는 했지만 형제간의 마음을 모으는 중심은 역시 엄지로써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부모는 장남을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언덕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급히 휴가를 내고 부모님을 찾으러 가는 그 직원도 삼남매 중 장남이기 때문에 먼저 연락을 받고 또 엄지라는 책임감 때문에 다른 자녀들보다 먼저 부모님을 찾기 위해 광주로 내려가곤 한다. 나도 그 직원처럼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시고 삼남매의 맏이다. 그리고 부모님 모두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 어머니는 십 년째 암 투병중이시고 아버지는 척추염으로 고생을 하신다. 그래서 어머니는 항암치료를 받으시고, 아버지는 대학병원에서 최근 대수술을 두 번이나 하셨다. 그 결과 두 분 다 건강이 많이 호전되어 다행이다. 우리 부모님도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불편한 일이 있으면 내게 맨 먼저 연락을 하신다. 그러면 나는 혼자서 해결하기 힘든 일은 두 동생들과 의논을 한다. 특히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간병에 대해 의논하고 치료비를 나누어서 부담하기도 한다. 내가 힘들 땐 가끔 의논하고 의지할 수 있는 동생들이 있어 좋다. 다음날 휴가를 냈던 직원은 정상적으로 출근을 했다. 다행히 아버지를 찾아 밝은 표정이었다. 다른 형제들까지 모여 찾았는데 그의 아버지가 집 근처에서 길을 잃고 주위를 몇 시간이나 헤매다가 정신이 들어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최근 합계 출산율이 매우 낮아졌다. 지난해 출산율이 1.24명이라고 한다. 자녀의 수가 1명 정도라는 이야기다. 예전에는 형제들이 많아 장남, 차남, 삼남이라고 했지만 요즘 어린 아이들은 대부분 장남이거나 장녀이다. 고령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 현실을 본다면, 노부모를 부양하는 기간은 길어지고 자녀의 수는 줄어들고 있다. 형제들이 힘을 합하여 부모님을 부양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혼자 부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인 부양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제도가 마련되더라도 자기 부모의 힘든 모습을 보는 자식들의 마음은 아프다. 그런 상황에서 부모님에 대한 걱정을 함께 나눠야 할 형제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요즘 출산의 현실을 보면 다음 세대가 심히 걱정이 된다. 검지, 중지가 없는 세상에서 엄지손가락 홀로 손을 책임져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 정근식 수필가는 현대수필로 등단하고 수필사랑문학회, 행촌수필, 대구수필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국민연금공단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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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17 21:57

[금요수필] 김장배추와 김장

김재교 해마다 가을이면 김장철이 된다. 김장은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자연환경 속에서 모든 생명이 숨을 죽이는 겨울철을 내내 싱싱한 푸성귀를 사람들이 잘 먹고 건강하게 지내도록 하는 참으로 고마운 음식이다. 올해도 뜰안 꽃사과나무 능금 볼에 노랑물이 비치는 걸 보니 김장철로 접어든 것 같다. 이때쯤이면 감도 많이 붉어진다. 나는 올해 벌레 때문에 조금 늦게 항암배추 한 판을 일반 모보다 비싸게 샀다. 미리 거름도 많이 넣고 물도 주고 정성을 쏟았다. 늦게 심어서인지 남의 일반배추는 속이 차는데 우리 배추는 속이 찰 생각은 없고 검푸르고 키만 자랐다. 아내가 짚으로 포기 위를 묶어 주었다. 그리고 저녁때는 구집포로 덮으며 모를 잘 못 구입했단다. 걱정이 되어 속으로 사면되지 생각했었다. 아내는 서울에 있는 아이들과 김장 날을 정했으나 그때까지는 배추 속이 차지 않아 못할 것 같아 20여일 늦추었다. 수필수업을 마치고 오후에 컴퓨터 공부 도중 배추 사정을 잘 아는 컴퓨터 반 친구 말을 꺼냈다. 앞에 앉은 컴우 님이 20여 포기 여유가 있으니. 공부 끝나면 뽑아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또 한 분이 20여 포기가 있다고 했다. 순간 40여 포기를 얻게 되었다. 아내한테 이야기 하니 반가워했다. 컴우 님들 댁에 가서 배추 22포기를 얻어왔다. 다음날 컴 총무님이 배추 23포기를 자기 차로 실어다주었다. 그래서 갑자기 배추부자가 되었다. 김장 날이 바뀌니 무도 필요한 것만 남기고 땅에 묻었다. 묻고 보니 필요한 분들이 있어 봄으로 약속을 했다. 다음날 수필 수업을 마치고 오면서 귤 2상자를 사서 그동안 몇 달을 땀 흘려 가꾼 배추를 기꺼이 주신 컴우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김장 5일 전에 밭에 있는 배추를 거두어 보니 걱정보다 속이 많이 찼다. 수원에 사는 손녀가 자기도 김치를 담그겠다고 야단스레 문자가 왔다. 우리 내외는 3일 전에 김장할 배추를 다듬고 다음날 3년 된 소금에 절여 그 다음날 지하수로 4번을 씻었다. 절인 배추를 보니 여기저기서 보태주어 정말 많았다. 전주에 살고 있는 이모 둘과 조카, 큰아들 내외, 손녀와 딸, 우리 내외 등 대식구의 김장축제가 시작되었다. 이모가 닭을 세 마리나 가져 오고, 돼지 목살 5근을 삶으니, 잔칫상이 되었다. 잔칫상 앞에서 경기도에 사는 손녀가 영어로 말하기 도 대회에서 1학년 전체 대상을 받았다며 대견스럽게 모든 식구들 앞에서 시연을 했다. 얼마나 진지한지 대견스러운지 박수가 절로 나왔다. 작년에는 서울의 언니 봄이가 서울시 주최 영어 토플에서 만점을 받았는데, 올해는 아인이가 대상을 받았다며 아인이에게 박수를 보냈다. 올 김장은 열다섯 집이 나누게 되었다. 기상청에서는 김장한 날이 올해 가장 추운 날이었다고 하지만 우리 집은 제일 따뜻하고 화목한 날이 되었다. 내년에는 조금 일찍 심고 더욱 정성을 들여 컴우 님들과도 나누어야겠다. 배추를 나르고, 자르고, 절이고, 속을 무치며 김장 준비하는 일은 힘이 무척 든다. 이 때 일을 분담해서 할 일을 줄여주고 또 이야기도 해가면서 김장하는 일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은 미풍양속이다. 서로서로 도와가면서 할 일을 줄여주는 정다운 풍습이 또 하나의 문화유산이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조화로운 그 모습이 바로 한국인이 추구하는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다. * 김재교 수필가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백두산 문학 신인상을 수상했다. 자신의 선조인 임진왜란 구국공신 의병대장 김면 장군의 일대기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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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10 20:02

[금요수필] 여기, 지금(Here and Now)

백봉기 여기, 지금(Here and Now)은 톨스토이가 자주 쓰던 말이다. 그의 저서 <지금, 여기, 당신> 제목에는 숨은 비밀이 있다. 지금, 현재를 온전히 살아가자. 여기, 발 디딘 곳에 행복이 있다. 당신, 진짜 나로 살아야 한다. 우리, 더불어 산다는 의미다. 지금은 영원의 축소판이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영원히 사랑하는 사람이요, 지금 미워하는 사람이 영원히 미워하는 사람일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내 앞에 있는 사람이다. 왜 이 말을 갑자기 꺼냈을까? 연말연시에는 행사가 많다. 따라서 건배사를 미리 준비해 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다른 사람의 건배사를 들어야할 때가 있다. 그 때마다 저 사람은 무슨 말을 할까? 어떻게 분위기를 띄울까? 귀를 쫑긋 세우고 듣게 된다. 건배사는 회식 분위기를 기대 이상으로 살리기도 하고 반대로 가라앉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와인보다 진한 향을 남기는 센스 있는 건배사를 하면 덤으로 좋은 이미지와 더불어 주목을 받게 된다. 건배사는 일단 술잔을 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짧게 하는 것이 좋다. 길게 하면 자칫 분위기를 망칠 수가 있다. 그리고 건배사를 하기 전에는 동기유발을 위해 간단한 소개가 필요하다. 또한 선, 후창이 필요할 때는 제가 OOO라고 선창하면 다같이 OOO라고 함께 외쳐주시면 고맙겠습니다고 사전 고지를 한다. 삼행시로 된 건배사는 먼저 운을 띄어 주고 답한 다음 다 끝난 후에는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하는 것이 좋다. 회사직원들이라면 회사 이름이나 본인의 부서 이름으로 삼행시를 외쳐보는 것도 무방할 것이다. 미리 준비한 사람과 준비가 안 된 사람의 건배사는 차이가 있다. 준비 안 된 사람은 엉거주춤 일어서면서 여러분, 건강이 최고입니다. 우리 오래오래 삽시다. 라든가 아니면 행복 합시다. 등 식상하고 상투적이고 건배사는 분위기를 잡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건배사다. 건배사는 건배할 때 자신의 소원과 기원을 담는 말로 보통 건강과 발전, 행운을 빌지만 술잔을 맞대어 소리를 내는 것은 서로의 마음이 통한다는 뜻이 있다. 건강이 중요하지만 건강이라는 말을 빼고 차라리 9988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이틀 앓고 3일째 죽는 것이 행복한 인생이라는 뜻)처럼 다른 의미의 멘트를 통해 건강을 강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누구든 건배사 한두 개씩은 준비해 두는 것이 좋다. 나는 친구들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는 나이야 가라!를 외친다. 건배사를 하기 전에 먼저 세계에서 가장 큰 폭포가 무엇이죠?라고 물으면 금방 나이아가라폭포라는 답변이 나온다. 그러면 곧바로 건배사는 나이야 가라! 로 하겠습니다.라며 건배를 하면 모두가 목청 높여 건배를 한다. 여기에는 세월아 저리 비켜라는 중의적 의미도 있다. 또 하나 준비한 것이 바로 톨스토이가 말한 Here and Now, 여기, 지금이다. 이것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금이 있습니다. 황금, 소금, 지금입니다. 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지금입니다. 지금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지금 나와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지금 같이 있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라며 지금, 여기, 당신을 위하여!!를 외치면 금방 분위기가 살아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지금 이 순간, 지금 나와 함께 있는 가장 소중한 사람,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가장 좋은 일을 하는 것. Here and Now, 여기, 지금! ※ 백봉기 수필가는 한국산문으로 등단하여 <여자가 밥을 살 때까지> <탁류의 혼을 불러> <팔짱녀> 등 3권의 수필집을 내고 현재는 전북예총 사무처장과 온글문학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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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3 19:51

[금요수필] 첩첩산중(疊疊山中) 여행기

김세명 만원의 행복 도내 순환관광에 참여했다. 나는 일요일이면 특별한 종교도 없어 혼자 여행을 떠난다. 지난번에는 선운사 코스와 내장산 코스를 답사하고 11월18에는 덕유산 향적봉에 올랐다. 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오르니 편했다. 백두대간 덕유산은 언제나 힐링을 하게 해준다. 발아래 멀리 보이는 계곡의 집들이 두세 두세 하다. 첩첩산중이다. 그곳에서 내가 태어나 자랐다니, 나의 인생길처럼 참 멀리도 왔다. 부모님이 너무나 훌륭한 분이라고 되뇌어 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확실해 지는 것이 있다. 앞서 세상을 사신 분들의 삶이 결코 나보다 못한 분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 분들이 살아왔던 삶의 날들은 분명 오늘의 나보다 훨씬 어려운 환경에서 세상살이를 하셨다. 그런 속에서도 묵묵히 그 모든 어려움과 아픔을 이겨내면서 자신의 몫을 아름답게 감당하셨다. 오늘의 상황을 살펴보아도 그분들보다 어렵다고는 할 수 없겠고, 특히 그분들이 처했던 시대는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이 어렵고 힘든 시대였다. 1944년 음력10월14일 나를 낳으셨다. 어머니는 28살 아버지는 27살 때였다. 평생 농사꾼으로 사시면서도 나와 형제들을 잘 기르시고 가르치셨으니 그 은혜를 갚을 길이 없다. 어제는 나의 자식들이 서울에서 내려와 내 생일을 축하했다. 감회가 깊었다. 첩첩산중에서 태어나 나를 비롯하여 자손들이 번창했으니 지하에 계시는 부모님도 기뻐하시리라. 나의 고향에 대한 추억은 일에 파묻혀 지게를 지고 모내기를 하며 풀베기와 보리타작, 콩 털이를 하던 생각뿐이다. 몹시 가난했던 게 내 어린 시절이었고, 그 뒤 군대에 입대하면서부터 객지생활이 시작되었다. 어쩌다 고향엘 가면 괜스레 무슨 죄라도 지은 것 같아 주눅 든 마음으로 몸가짐에 조심했다. 다른 사람들은 향토를 지키며 흙 속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데 나 혼자만 객지 바람에 거덜난 사람 같아 자괴심이 들었다. 물레가 도는 가슴으로 어둑어둑한 길을 올라가는데 개구리 합창소리가 대낮보다 더 시끄럽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난 그만 너무 반가워서 하마터면 소리를 빽 지를 뻔했다. 그것은 벌거숭이 내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할 때의 왁자지껄하던 함성이었으며, 타작마당의 기계소리나 도리깨질 소리 같았다. 아니 풍물 치는 소리나 밤안개 속에서 들려오던 개짖는 소리 같았다. 첩첩산중 가난하게 살던 어린 시절에 본 붉게 물든 아름다운 저녁노을은 나의 희망이요 꿈이었다. 동네밖으로는 한 번도 나가 본 적 없는 어린 소년의 눈에 비쳐오는 타는 놀빛은 한없는 동경과 꿈의 세계였다. 그러나 전광석화처럼 청장년시절이 지나가 버렸다. 노년에 향적봉에서 발아래 보이는 고향의 모습을 보며 명상에 젖었다. 멀리 보이는 지리산 천왕봉과 첩첩산중의 두메산골은 자연의 소리며 힐링 장소였다. 사람도 대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진즉 알았지만 오늘 다시 실감했다. 장수 장안산 덕산 계곡으로 향했다. 제2용소는 남부군 영화 촬영지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했던가? 논개의 생가 터를 보고 전주로 향했다. 오늘은 짧은 여행이지만 나에게는 의미하는 바가 컸다. * 김세명 수필가는 경찰공무원으로 퇴직하여 <수필과 비평>에서 등단했으며 수필집 <업業> 등이 있다. 전북문인협회 회원과 행촌수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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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20 19:57

[금요수필] 받아들여야 할 운명

김현준 우리는 살면서 많은 이별을 경험하는데 마지막 이별은 죽음이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렇다면 이 마지막 이별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가 중요하다. 내가 올 한 해 동안 한 일 중에 잘한 일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전주 효자 추모관 프레미엄실에 부부 유택(幽宅)을 장만한 것이고 또 하나는 사전 연명 의료중단 의향서의 등록이다. 원래는 대학병원에 시신을 기증하려 했는데 아내의 반대가 완강하여 포기했다. 그러나 이제는 숙제를 끝낸 아이처럼 무척 홀가분한 마음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여유로울 때는 나의 장례식 그림을 미리 그려보기도 한다. 얼마 전 성도들이 모여 구역예배를 드리면서 목사님이 소망이 무엇이냐고 묻기에 건강하게 살다가 부르시는 날 평안히 가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즉 병사를 하거나 사고사를 당하지 않고 타고난 명만큼 살다가 평안히 죽고 싶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꼭 이루고 싶은 기원이다. 91세 된 할머니가 입원했는데 병이 위중하다는 연락을 받고 자손들이 모였다. 혼수상태에 빠지자 신부인 아들이 함께 마지막 미사를 올렸다. 할머니는 눈을 번쩍 뜨고서 나를 위해 기도해주어서 고맙다며 마지막으로 위스키를 한 잔 마시고 싶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놀랐지만 마지막이라 생각하여 위스키를 드렸더니 한 모금 마시고는 얼음을 넣어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맛있다면서 이번에는 담배를 피우고 싶다 했다. 아들이 안 된다고 하니 죽는 것은 의사가 아니라 바로 나다. 담배 한 개비만 다오.하며 간청했다. 담배를 받아들고 여유 있게 피우더니 모두에게 감사를 표한 뒤 얘들아,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 안녕!이라 말하고 숨을 거두었다. 비록 일화이지만 가족들은 죽음의 순간 그녀가 보여주었던 밝은 행동을 생각하고 얼마나 어머니다운지 서로 이야기하며 웃었다. 할머니는 평생 위스키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워본 적이 없었는데 참으로 위대한 할머니였다. 대개는 준비 되지 않은 채 마주친 육친의 여러 죽음을 통하여 비통하고 애절한 경험을 한다. 이렇게 마음 편히 고인을 보내드린 적이 없다. 나도 이처럼 발길 가볍게 떠나면서 남은 가족에게도 슬픔을 남기고 싶지 않다. 어느 유서 이야기다. 할머니가 호스피스병원으로 옮기면서 유족에게 유서를 썼다. 너희들이 내 자식이어서 고마웠고 그동안 나를 돌보아주어 고맙다. 너희들이 세상에 태어나 나를 어미라 불러주고, 젖 물릴 때 나를 바라보던 눈길에 행복했다. 하느님이 부르실 때 이렇게 곱게 갈 수 있도록 곁에 있어줘서 참말로 고맙다. 남편을 잃고 세상 무너지는 험한 세상 속을 버틸 수 있게 해줌도 너희들이었다. 너희가 있어서 행복했다. 자녀들은 이 유서에 감동했고 그와의 이별을 잘 견뎠다. 평소 하고 싶은 얘기는 이미 수필 속에 녹아있지만 나도 이제 자녀들에게 짧은 고별사는 준비해야 될 것 같다. 말을 할 수 없는 경우를 대비하여 몇 마디 적으면 모두 고맙다. 가족이 있어 살맛이 났고 행복했다. 서로 사랑하며 잘 살아라.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삶을 마감할 때 도움을 받은 누군가에게 감사해야 한다. 생명을 주신 신과 부모에게 마땅히 감사해야 할 것이며, 노년을 외롭지 않게 돌보아준 자녀에게도 고마워해야 한다. 사람은 죽는 순간에 업을 정화하기 위한 강력한 기회가 주어지므로 마음을 바꿀 수 있다면 업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는 순간에 가급적 좋은 생각을 하는 게 필요하다. * 김현준 씨는 대한문학 수필부문으로 등단하고 영호남수필 전북부회장, 대한문학 작가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수필집 이젠 꼴찌가 좋아 등 6권이 있으며, 대한문학 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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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13 19:59

[금요수필] 고향 선물

문진순 이것저것 정신없이 챙겨서 아이들 휴가를 보내고 집안에 들어서니 거실과 주방이 발 디딜 곳조차 없이 엉망이다. 그래도 피곤이 몰려와 잠깐 쉬었다 치우자고 밀쳐두고 방으로 들어가 누웠는데 일어나 보니 한나절이나 자버렸다. 부리나케 일어나 세탁기에 빨래 돌리고 청소하고, 주방 가득 널려있는 그릇들을 씻고 닦아서 제자리에 넣고서야 한숨을 돌렸다. 갑자기 어느 시인의 커피 한 잔의 여유라는 시가 생각났다. 하루를 견디기가 지루하고 힘이 들 때에는/커피 한잔 마시는 여유가 있다면/내일의 하늘은 코발트 빛 희망일 겁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 한 잔을 들고 베란다에 서서 어둑해진 거리를 바라보며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기억하기 싫은 일들일랑 말끔히 지워버리고 아름다운 추억만을 잔 속에 채워 내일을 살아가는 지혜로 만들어 보자. 마음을 가다듬는 순간 엄마, 같이 못 와서 섭섭해요.라는 문자가 왔다. 뭘, 나는 내일 옛 친구들 만나러 동창회에 가는데.라는 문자를 보내고 싱긋 웃었다. 우리 고향 초등학교에서는 매년 8월 15일 전후해서 전국에 흩어진 회기별 동창들이 만나 그리움과 설렘을 안고 꼴짝 꼴짝 예약된 장소로 모여든다. 그래서 이때쯤이면 모두가 싱크 홀에 빠진 듯 그날만을 기다리다가 만나면 서로 끌어안고 모두가 옛날로 돌아간다. 올해에도 고향 친구들의 배려로 땡양지 생태마을 펜션에 도착했다. 하늘은 맑고 산과 들엔 싱그러운 푸르름이 폭염과 가뭄에 지친 눈을 뜨고 있었다. 하지만 골짜기를 흐르는 물소리도 정겹고, 달디 단 공기도 우리를 환영했다. 친구들은 오는 대로 가볍게 포옹도 하고, 악수도 하며, 마주 보고 웃는 인사로 서로 반겼다. 총무가 새벽 내내, 청소하고 물을 받아 채웠다는 검정 그물망 밑의 풀장은 물이 가득 차 넘실대고, 식당에서는 맛있게 준비한 어머니 표 산채반찬을 안주삼아 술잔이 오가며 이야기꽃이 피었다. 소, 사슴, 돼지, 염소 철렵국까지 갖가지 안주와 폭주로 떠들썩했던, 젊은 날의 추억은 그리움으로 남고, 콩비지 찌개 안주가 제일이라며 이구동성으로 엄지 척하는 친구들이 정다웠다. 허리가 굽고 희어진 머리카락으로 나이 들어가는 친구들의 모습이 정겹다. 친구들이 하나둘, 별이 되어 떠나고, 어딘가 아파서, 체력이 달려서 올 수 없다는 친구들의 소식을 들으며, 어릴 때 앞니가 다 빠진 입으로 열심히 뜯던 옥수수의 빈자리를 떠올려본다. 지글지글 숯불에 익어가는 삼겹살의 고소함이 몇 점의 젓가락질로 느끼해지는 나이, 밤새워 마시던 소주와 막걸리도 적당히 조절하며 거절할 줄 아는 나이, 노래방 평상과 풀장과 산책길에서 끼리끼리 어울려 노래하고, 춤추고, 정치 이야기, 사는 이야기에 열도 올리지만, 바람 빠진 풍선처럼 적당히 주저앉을 줄 아는 나이, 먹는 거는 줄이고 잠자리는 편해야 하는 나이다. 그래서일까? 동창회에 와서 처음으로 11시에 숙소에 들어 잠자리를 준비하며, 자연스럽게 변화되어가는 친구들의 건강한 정신에 작은 긍지를 느낀다.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활짝 열어놓으니, 새벽 찬바람에 이불을 서로 끌어당기며 힘자랑을 한 번 해보며 그 추억을 고향 선물로 가져가리라 기대해본다. * 문진순 수필가는 대한문학에서 수필로 등단했다. 영호남수필 사무국장, 대한문학 작가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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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06 19:58

[금요수필] 지켜야 할 양심

신팔복 오늘은 모처럼 모악산을 갔다. 산은 혼자 오르는 길도 좋지만 친구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오르는 것도 좋다.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한 산이 주는 정서와 자연의 감성은 인생의 참맛을 더해준다. 제철을 맞았던 단풍들은 다졌지만 아직도 안간힘을 다해 매달리고 있는 나뭇잎이 스산한 바람에도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등산길에는 자연을 사랑하자든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자는 여러 개의 리본이 바람에 나불댄다. 좋은 말이다. 헐벗은 산을 가꿀 때 온 국민이 나무 심기에 동참했고 관심을 가지고 숲을 가꿔왔다. 꽃샘추위가 몰려와도 식목행사는 어김없이 이뤄졌다. 그저 얻어진 게 아니다. 관심과 사랑으로 가꿔진 것이다. 앞산도 점점 물이 들어간다. 우리의 산하는 이제야 겨우 아름다운 금수강산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국가 경제를 발전시켜 가듯 우리의 자연환경도 잘 보호하고 가꿔나가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일부 양심을 버리는 얌체족이 있어 안타깝다. 한마디로 꼴불견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한심하다. 함부로 버린 쓰레기들이다. 산 정상에 올라 자연을 벗 삼아 먹는 점심은 어느 요리 집 음식에 비하랴. 그런데 문제는 먹고 남은 빈 병이나 깡통, 과자봉지, 음식물 찌꺼기, 휴지 등을 함부로 버려 자연을 훼손하고 있어 볼썽사납다. 수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는 생활 쓰레기들이 나 몰라라 방치되고 있다. 적어도 자기 쓰레기는 되가져가 분리해서 수거하고 쓸 만한 물건은 재활용해야 마땅하다. 우리 모두가 깨끗하게 보존해야할 아름다운 산에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버린 각종쓰레기들로 인해 자연경관이 병들어가고 있다. 조그만 양심이 남아있다면 버리지 말고 배낭에 넣어 가져가면 얼마나 좋은가. 최소한의 양심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자연을 죽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함부로 버린 쓰레기는 결국 좋은 경관을 망치고 금수강산을 썩게 할 뿐이다. 작년에 아들이 사는 캐나다에 갔을 때 아내와 밴프 공원을 관광했었다. 그런데 그 어디도 오염되지 않고 맑고 깨끗한 환경들이 보존되어있어 참으로 부러웠다. 선진국의 면모가 보이는 관광지였다. 지금도 그 아름다운 경관이 잊히지 않는다. 모악산은 우리에게 눈을 즐겁게 해주는 아름다운 경치를 선사해주고, 맑은 공기도 제공해주고, 자연의 소리도 선사해주는 등 우리의 정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쉼터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무의식중에 버린 쓰레기들로 인하여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진다. 최소한 각자가 가지고 간 쓰레기는 가지고 오는 작은 실천이야 말로 우리의 등산길과 문화유산을 더욱 값지게 만드는 길이 될 것이다. 양심을 버린 꼴불견은 주택가에서도 볼 수 있다. 감시카메라도 무용지물이다. 전봇대 밑에 슬쩍 버린 쓰레기는 누가 치워줘야 하는가. 환경미화원들도 눈살을 찌푸릴 일이다. 우리는 이웃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 속에 살고 있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살기 좋은 우리의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은가. 실천하는 양심으로 버려진 물병을 배낭에 담았다. 비록 쓰레기를 버리는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있을 지라도 그 반대편에 아무도 보지 않은 곳에서 묵묵히 쓰레기를 줍는 고마운 손길들이 있으면 모악산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며 지나간 수많은 역사가 숨 쉬는 모악산에 보답하는 것보다 얻어가는 것이 더 많아 고마운 시간으로 내 마음 속에 남는다. * 신팔복 수필가는 중등교사로 퇴직하여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전북문인 회원, 진안문협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집 <마이산 메아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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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29 19:59

[금요수필] 은발(銀髮)의 단상

최기춘 거울에 비친 은발의 모습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 60세까지만 해도 흰머리가 서릿발 같아 감추고만 싶었는데 고희를 넘긴 지금은 은발이 인생의 계급장 같아 빛나 보인다. 고희란 두보의 곡강시에서 비롯된 말로 옛날부터 70세까지 살기가 드문 일이라는 뜻에다. 두보가 활동하던 1200년 전에는 70세면 오래 산 나이지만 지금은 평균 수명에도 훨씬 못 미치는 나이다. 그래도 70이 넘으면 달마다 늙는다고 한다. 갈 길이 그리 멀지 않은 나이다. 고희는 인생 4계절 중 가을이다. 해 질 녘의 저녁노을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잎과 비교된다. 가을 산에 올라 일렁이는 황금들판을 바라보면 이른 봄부터 농부들이 씨 뿌리고 가꾼 땀의 결실들이 풍요롭다. 가을은 수확의 기쁨도 크지만 왠지 마음 한편이 허전해지는 계절이다. 가을밤에는 유난히 구슬프게 우는 풀벌레 소리, 귀뚜라미 울음소리, 가랑잎 구르는 소리들이 가슴을 파고들며 옛 추억을 떠 올리게 한다. 그래서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며 홀로 사는 사람들의 옆구리를 더욱 시리게 하는 계절이다. 붉게 물든 가을의 저녁노을은 한낮의 태양보다 더 뜨겁게 이글거린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에 묻힐 것을 생각하면 허망하다. 아름답게 물든 단풍도 머지않아 나무와 작별을 하고 뿌리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가을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떨어지는 단풍잎들을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봄부터 같이 지내던 어미나무와 이별의 아쉬움이 있을 법한데 아쉬움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은 이미 이별의 약속이 있었던 것 같다. 마치 즐거운 파티에라도 가려는 모습으로 곱게 차려입고 소슬한 가을바람의 반주에 맞춰 춤을 추며 작별한다. 그간 꼼짝 못하고 한곳에서 매달려 지낸 한을 풀려는 듯 사방으로 너울너울 춤을 추며 유유자적 한다. 낙엽의 모습은 마치 여행을 떠나는 방랑자를 연상케 한다. 고추잠자리와 경쟁이라도 하듯 공중제비를 돌다가 어디론가 가버리는 녀석들도 있다.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자동차기 범람하는 도로 위를 뒹구는 처량한 녀석들도 있다. 얌전한 새색시마냥 한눈도 팔지 않고 사뿐히 뿌리로 내려앉아 효심을 다하려는 듯 알몸이 된 나무의 뿌리를 감싸는 모습은 너무도 아름답다. 낙엽들이 바람에 날려 뿔뿔이 흩어지는 것 같아도 제 뿌리에 내려앉은 낙엽들이 참 많다. 그래서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 했나 보다. 계절마다 낙엽과 나이 들어가는 내 인생을 동일시하며 때로는 울적해 한다. 하지만 시들어 떨어지는 낙엽의 몸짓은 얼마나 고맙고 성스러운 것인가. 그 몸짓을 생의 소멸로만 읽어온 내 사색이야말로 얼마나 얄팍한 것인가. 낙엽은 봄과 여름엔 푸르름과 녹음으로 산에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린다. 가을이면 노랑, 빨강으로 멋진 수를 놓기도 한다. 그리고 뿌리에 내려앉은 낙엽들은 뿌리를 감싸주고, 알몸으로 엄동설한을 외롭게 보내는 나무들에게 따뜻한 이불이 되어 준다. 또한 내년 봄이면 새싹을 틔우는 데 필요한 영양을 공급해주기도 한다. 이렇게 낙엽이 자기의 역할을 다하고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의 오묘한 섭리에 찬사를 보낸다. 어린 시절에는 곱게 물든 단풍잎을 책갈피에 끼워 두었다가 친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넣어 보내기도 하고 창문을 바를 때 같이 붙여 놓았던 생각이 난다. 나도 낙엽처럼 살고 싶다. 멋있고 아름다운 무늬를 그리며 살고 싶다. ------------------------------------- * 최기춘 수필가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수필집 〈머슴들에게 영혼을〉이 있다. 현재 대한문학작가회, 영호남수필, 전북수필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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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22 20:02

[금요수필] 홍엽(紅葉)을 밟으며

김철규 수필가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가을을 보내는 것이 서러워서인지, 아니면 살바람에 폭설이 쏟아질 겨울이 다가옴을 두려워해서인지 직지사 일주문부터 대웅전 앞까지의 도로는 홍엽으로 단장한 실크로드다. 비에 젖은 홍엽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차마 밟혀 상처를 입지 않을까하여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듯이 몇 번이고 발밑을 보았다. 대웅전 부처님께 참배를 하고 나와 보니 비는 멈추고 화사한 오색단풍은 손짓을 하며 기념사진을 찍으라는 신호를 계속 보낸다. 마침 군산예술촌 동아리 문인 일행들과 함께 문학기행을 왔기에 합동기념촬영이 필요해 저마다 멋진 포즈로 몇 컷했다. 직지사 경내 어느 곳이든 가나는 사람들은 홍엽 꽃 속의 주인공들이다. 마치 음력 10월 초 하룻날이어서 절간의 고요함을 깨는 스님의 법문소리와 목탁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메아리 지고 있다. 숙연함 마저 감돌게 하는 침묵의 고요 속에 청아하게 울려 퍼지며 중생들을 일깨우는 소리가 백팔 번뇌 고깔모자를 쓰고 지나간다. 30여명의 일행은 끼리끼리 기념사진을 찍으며 자연과 어우러진 진풍경의 낙엽의 화두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사방에 둘러싸인 산은 구름의 자태로 장식되어 동양화 한 폭이다. 특히 박물관 옆길에 쏟아진 낙엽은 어느 소녀가 제 무게에 겨워 스스로 몸을 놓고 한없이 가벼움으로 세월에 날리는 파편을 주우려는 모습에 발걸음이 멈춘다. 홍엽의 양탄자를 걸으면서 흰 구름이 산자락을 휘어감은 모습에 취해 비를 멈춰준 하늘을 보느라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깜빡했다. 뒤늦은 달음박질은 약속장소인 일주문 앞에서 모두를 만날 수 있었다. 직지사에 인접해있는 백수 정완영 문학관을 찾았다. 우리나라 시조시학에 권위자중의 한사람으로 자연과 아름다운 삶을 노래한 백수의 <조국>시를 새삼스레 바라보며 마지막 소절인 청산아 왜 말이 없이 학처럼만 여위느냐를 되새겼다. 97년이란 긴 인생여정에서 생전인 2008년 국비, 도비, 시비 등 22억여 원으로 백수문학관을 세웠다는 설명에 아연했다. 왜냐하면 군산의 채만식문학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백수문학관과 이웃한 몽향 최석채 선생 유적비와 세계 언론자유영웅 50인 기념비를 보았다. 몽향 최석채 선생은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주필, 문화방송과 경향신문의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세론을 대변하고 역사를 증언했다. 우리 언론사에 크게 새겨질 정론의 대 논객이었고, 직필의 참 언론인이었다. 같은 언론인 출신으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비문을 새겨 읽으며 매주 한 차례 실리는 그의 칼럼은 서슬 퍼렇던 독재정부에서 한줄기 소나기였고, 핍박받는 자들의 위안이자 피난처였다는 업적에 고개를 숙였다. 세상이 잠시 홍엽으로 장엄하다. 홍엽들이 마지막 떠나가는 길 위에서 몸 버리는 저들 중에 어느 하나 생애에서 목마른 사랑을 이룬 자 있었을까? 저들만의 그리움이 안타깝게 쌓여가고 있다. 올가을의 동아리문학기행은 내 마음이 오색중 하나인 홍엽에 젖은 까닭을 묻고 있다. * 김철규 수필가는 전북일보 편집부국장과 논설위원을 거쳐 전라북도의회 의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한국문인협회 군산지부장과 새군산신문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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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15 19:53

[금요수필] 봉실산의 당산제

이숙자 수필가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완주군 봉동읍 신봉암리 고향마을을 잊은 적이 없다. 마을 뒤쪽으로 봉실산이 우뚝 솟아있고 그 양쪽으로 활짝 편 매의 날개처럼 산줄기가 펼쳐져 있다. 바로 이 봉실메산 줄기가 동네를 보호한다고 한다. 정상의 봉우리가 옥녀봉이다. 농사철에 가뭄이 들면 동네어른들이 그 산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다. 옥녀의 가랑이 사이로 오줌줄기 같은 물줄기가 가득 흐르기를 비는 것이다 마을 어귀에는 힘센 장사가 갖다 놓았다는 크고 검푸른 바위가 장승처럼 서 있었다. 동네를 수호하는 그 신성한 바위의 이름은 바우쟁이다. 신봉암리는 봉황이 알을 품은 형국인 명당이라 그런지 시골의 자그마한 동네에서 면장이 셋이나 났고 출향한 여섯 명의 목회자가 활동을 하고 있다. 조그만 산동네지만 별일들이 많다. 연애당 솔밭이라고 하는 곳에서 겨울이면 몇 쌍의 부부가 탄생하곤 했으니 말이다. 결혼식장이 없어 마을 처녀들이 결혼식장을 꾸미곤 했다. 색종이테이프를 사다가 솜씨를 부려 사철나무에 꽃처럼 꽂아서 식장을 마련했다. 시골마을에서의 결혼식은 곧 마을의 축제며 잔치이고 놀이였다. 워낙 빈궁한 시절이라 혼례 집의 잔치음식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 너나없이 잔치의 주인공처럼 즐거워했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때 나는 마을부녀회장을 5년이나 맡았다. 그때 우리마을은 120호로 이웃 간에 꽤 다정하게 지냈다. 동네 어른들은 마을길을 넓히고 초가지붕을 슬레이트지붕으로 개량하느라 힘을 합쳤다. 가난의 배고픔을 눈물과 푸념을 섞어 나누며 서로 이해하고 살았다. 정월 초엿샛날엔 당산제를 지냈다. 마을에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언젠가부터 연례행사로 치러졌다. 마을의 재앙을 막고 가정마다 복되고 기쁜 일을 축원하며 일년 농사의 풍년을 소원하는 기복행사였다. 당산제를 열기 전에는 어떠한 살생도 금하였으며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냉수욕을 했다. 그리고 고깔을 쓰고 풍물소리에 맞춰 얼쑤덜쑤 춤을 추며 시멘트종이에 돼지머리를 근사하게 그려 깃발처럼 매단 장대를 앞세우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면 할머니들은 고쟁이 허리춤을 양손으로 벌려 배뿔뚝이마냥 몸을 흔들흔들하며 춤을 추었다. 아저씨들은 얼굴에 숯검댕이칠을 하고 다리를 들썩거리며 돌아다녔다. 마을의 액을 몰아내는 몸짓이었다. 그 춤의 행렬은 옹달샘에서 시작하여 마을의 모정과 우물, 공동변소까지 두루 돌아 바우쟁이의 바위장승에게까지 제사를 지냈다. 남녀노소 어우러져 경건한 맘으로 비손을 하고 함께 나눠먹는 신성한 축제였다. 동네어른들이 비록 배우지 못하고 가난했지만 착한 심성이 마을을 포근하고 그립게 만들었다. 해마다 새해는 오건만, 나는 추억으로 풍물을 치는 소리를 듣고 신명나게 춤을 춘다. 이미 귀천하신 어른들 .그분들은 생활의 고난과 고통을 신에게 맡기고 오직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다할 뿐으로 살았을 것이다. 개인욕심보다는 그야말로 이웃사촌과 동고동락하는 화합과 우애의 정신으로 살았던 것 같다. 비록 궁핍했지만 나눌 줄 알았던 사람들. 서로서로 챙겨주며 도왔던 사람들. 초가삼간이나 오두막집의 산골마을이 정말 그립다. 산자락에 나락이 누렇게 익어가는 계절에 불현듯 친정나들이를 하고 싶다. * 이숙자 수필가는 <지구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전북문인협회 회원으로 할동하고 있다. 수필집 <늦은 햇살이 아름답다>가 있으며 현재는 시낭송가로 각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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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08 21:36

[금요수필] 등 굽은 소나무

박순희 수필가 몇 달 전 여름이 가기 전, 남덕유산을 다녀왔다. 신 기슭의 야생화와 눈 맞추며 사진도 찍고 쉬엄쉬엄 세월아 가거라 해찰하며 오감을 즐겼다. 비단결 같은 햇살이 내려앉은 능선위로 여린 초목의 숨소리가 가빠진다. 갈맷빛 치마 주름의 능선에는 얇은 사(絲) 하얀 구름이 바람결 따라 가렸다 들쳤다 유혹하는 풍광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전망이 탁 트인 넓은 시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늘에 맞닿은 높은 봉우리와 깊숙이 내려앉은 계곡에 여기는 햇살이, 저 골짝엔 수묵화 한 점 덩그러니 내건 오솔길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아련한 마을들이 정겹게 엎드려있다. 인생길과도 같은 산길! 산길을 걸으면 비단길만 있는 게 아니다. 오르락 내리락 하다 보면 바위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난코스도 자주 만난다. 산봉우리에서 산봉우리로 바로 가는 길은 없다. 누구나 바닥에서부터 오르는 법이다. 때로는 돌 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깊은 수풀 속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처음에는 어느 골짜기나 다 낯설다. 아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세월의 켜가 온몸에 화인처럼 남아있다. 마디마디 삭풍과 타는 가뭄을 견딘 상흔으로 점철된 몸피가 애달프다. 길을 가던 나는 오한에 떨고 있는 노송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까맣게 옹이 뽑힌 그 아득한 시간의 틈새로 새떼들이 보이고 바람 부는 날이면 낡은 관악기 소리가 들리는 곳에 둥지를 틀고 있는 노송, 저문 날 꽃들의 유배가 하늘 길에 닿아있는 천년 서린 한에 검버섯 슬은 노송 앞에서 나는 문득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쭉쭉 벋은 소나무는 대들보 감으로 이미 뽑혀 갔지만 등이 굽은 나무는 땔감으로밖에 쓸모가 없어 아직도 남아있는 노송을 보며 조용히 귓속말을 전했다. 세계적인 명품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도 로키산맥의 3천 미터 수목한계선에서 자란나무로 만든단다. 모진 설한풍에 굽은 허리를 펼 날 없이 상처투성이로 박힌 옹이가 천상의 공명으로 맑은소리를 낸단다. 그때까지는 이 산을 지키며 기다려라. 사물의 정의는 생활과 문화의 트렌드에 따라 다르게 해석 된다. 먹고살기 급급했던 시대에는 꽃이나 분재에 눈 돌릴 새가 없었지만 삶의 질이 향상되어 집집마다 정원을 가꾸고 아파트마다 화분 몇 개씩은 들여 놓을 수 있는 살림이 되었다. 따라서 굽은 나무의 가치와 위상이 역전됐다. 이제 굽은 나무는 정원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터줏대감이 되었고 굽은 나무분재는 칙사 대접을 받는다. 굽은 나무에 대한 가치와 인식을 백팔십도로 바꾸어놓은 것이다. 굽은 나무의 옹이에서 인생의 간난신고를 읽는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은퇴를 한 후 전원생활을 꿈꾼다. 꿈을 실현하기 전원주택을 짓고 농지를 매입하고 제2의 인생을 구가한다. 등 굽은 소나무로 비유되는 터줏대감들은 귀농 귀촌인의 친절한 멘토까지 자임한다. 진정으로 고향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저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등 굽은 소나무의 주가는 상승일로에 있고 등 굽은 소나무가 있는 한 고향은 언제나 포근하고 청청하다. 산을 내려갈 때에는 뻣뻣하게 세우고 내려갈 수는 없다. 언제나 허리를 낮추어야 한다. 고개도 숙여야 한다. 허리를 낮추고 고개를 숙이고 산길에서 배운 진리를 되새기며 귀가를 했다. * 박순희 수필가는 <한국문인>으로 등단하였으며 행촌수필 문학상 수상을 수상했다. 현재 행촌수필 문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수필집 <꽃으로 말한다>, <대체로 맑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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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01 19:25

[금요수필] 내 노년의 삶과 놀이터 - 진안 마이산

이용미 마이산은 내가 태어난 고장의 명산이면서 내 노년의 삶과 놀이터다. 결혼 전 짧은 직장생활 외엔 살림만 하던 주부가 21C들어 처음으로 시행한 문화관광해설사가 되어 지금까지 이어가는 삶을 그 무엇에 비교할 수 있으랴. 마이산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과연 있었을런지. 조선 태조가 왕이 되기 전, 선인으로부터 왕권의 상징인 금자(金尺)를 받는 꿈을 꾸는데 그곳이 마이산으로 전해진다. 당시 고려 장수이던 이성계는 그 꿈을 꾼 얼마 뒤 남원 운봉까지 쳐들어온 왜군을 크게 이긴 후 개선 길에 특이한 봉우리를 만나는데 그 모습이 마치 꿈속에서 받았던 금자를 뭉텅이로 묶어 놓은 것 같아 속금산(束金山-금자를 묶어놓은 산)이라 명하고 돌아간 12년 뒤 조선을 개국하게 된다. 이후 결코 잊을 수 없는 고마운 마이산을 형상화한 일월오봉도를 항상 용상 뒤에 두어 든든한 울타리로 왕을 지키는 왕의 상징물이 되었다는 등 역사와 야사, 전설과 설화가 어우러진 갖가지 이야기 속에는 청실배나무도 함께한다. 청실배나무 이성계 고려 말 장수 시절 시간만 나면 전국 명산을 돌며 기도를 했는데 마이산에도 들러 기도의 증표로 심었다는 돌배나무 일종인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다. 은수사(銀水寺) 배나무 옆에는 사찰명의 유래가 되는 맑은 우물이 있다. 그 우물 뒤로 수마이봉이 위용을 자랑하고 그 바로 아래는 신라 시대부터 나라에서 제를 올리던 제사 터로 지금까지도 매년 군민의 날 전날 산신제를 올리고 있는 신성한 자리다. 그 아래 우물과 그 옆 배나무라면 옛이야기 속 풍경이 떠오르고 배나무의 장수(長壽) 이유가 그럴듯하지 않은가. 이런 청실배나무와 나와의 인연은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엮은 문화유산 스토리텔링 전국대회 수상이다. 상금과 함께 자신감과 자부심 그리고 열망 등 내게 참 많은 것이 주어졌다. 사오정, 오륙도라는 빠른 정년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표현하는 신조어가 떠돈 지 오래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삼포 세대를 넘어 집 장만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해 오포 세대라는 젊은이들의 실상이 안타깝기만 하다. 정년을 하고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로 아직은 더 일하고 싶은 나이 많은 젊은이가 주위에는 너무 많다. 남편도 그중 한 사람이다. 35년 직장생활이 즐겁기만 했을 리 없는데 퇴직 후 내 출근길을 도우며 정류장에서 부러운 듯 배웅하는 모습이 짠할 때가 많다. 내 하는 일과 일터가 그래서 더 고맙다. 수없이 되풀이되는 새로운 사람들과 만남과 소통은 삶의 활력이 되면서 걷는 그 길은 바로 자연스러운 내 운동장이 된다. 엄니 어디 가요?/속꼼산(마이산)에/왜요?/니(너) 잘되라고 빌러 말을 아끼며 바쁘게 집을 나서던 어머니는 나들이 차림에 쌀자루였겠지, 작은 보퉁이 하나 머리에 이고 계셨다. 가지각색으로 피어나던 꽃들 이울고 나뭇잎 차츰 무성해지는 사월 초파일이면 연례행사로 이어지던 어머니의 마이산 행이었을 텐데. 칠십이 멀지 않은 내가 아직도 건강히 일과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이 축복과 고마움에 예닐곱 살 때쯤이었을 그날의 짧은 대화 속 정경을 자주 떠올린다. 마이산에 다녀온 그 날 밤 어머니 꿈속에서 날 위한 목자(木尺) 하나 받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모자라면 채우려 노력하고 넘치면 덜어내는 여유, 마이산은 그런 마음의 여유로 꿈을 꾸며 사랑을 생각하는 이야기 동산이다. 거기에 각자의 사랑 이야기 한 자락 넓게 펼치거나 걸쳐놓아도 탓하거나 흉보는 이 없는 너르고 편안한 나의 놀이터다. * 이용미 수필가는 수필과비평으로 등단하여 현재 마이산 문화해설사로 활동 중이다. 수필집 「그 사람」외 2권을 펴냈으며, 행촌수필문학상과 진안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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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25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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