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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동창생] 이리농림고



지난 99년 일본을 방문한 이종순 이리농림고 총동창회장은 일본 총동창회에 참석해 일본 동문들이 모교를 방문할 경우 3가지에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를 보는 순간 국립 익산대 간판에 길을 잘못 찾지 않았나 하는 것이 첫째요, 뛰놀던 운동장과 연못이 없어진 자리에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선 변화가 둘째다. 모교가 아닌가 하고 돌아설 때 모교 기념관과 모기(母旗)와 교패가 있는 것을 보고 감동으로 와닿을 것이라고 했단다.

 

이리농림고의 현주소를 이만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도 없을 것 같다. 지난 93년 졸업생을 끝으로 70여년 역사의 막을 내린 이리농림고. 그러나 학교 간판을 내리기는 했으나 폐교가 아닌 익산대로 발전 승화시키는 밀알이 됐다.

 

그럼에도 대학으로 승격됐다는 기쁨보다 이리농림고라는 이름이 현실적으로 없어진 것에 많은 동문들이 아쉬워 하고 있다. 익산대로 이름을 바꾸기 전만 하더라도 ‘이리’와 ‘농업’이라는 단어가 대학 이름에 들어가 그나마 위안으로 삼았지만 그도 유지되지 못한 상황에서 학교 명칭 어디에서 외관상 동질성을 찾기 힘들게 됐다는 게 동문들의 아쉬움이다.

 

동문들의 절절함은 학교 간판이 없어진지 10년이 다되도록 동문들이 이리농림고 동창회 간판을 꼭 붙들고 있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모교의 찬란한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기억하는 동창들은 이미 없어진 이름의 이리농림고 출신임을 지금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긴단다.

 

진주농고·수원농고와 함께 일제시대 전국 3대 농업고로 꼽혔던 이리농림고에는 설립 당시부터 많은 인재들이 몰렸다. 도내 유일의 국립 고등학교로 1992년 개교한 이리농림고 지원자는 도내 뿐아니라 전국에 걸쳤다. 함경남북도·경기도 등 전국에서 지원하는 학생들로 인해 입학 시험 경쟁률이 보통 30대 1이 넘었다.

 

함경남도 함주가 고향인 ‘문둥이 시인’ 한하운(본명 한태웅)이 멀리서 이리농림고를 택한 것도 이리농림고가 당시 수재들이 모이는 학교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당시 학교에는 기숙사가 완비돼 모든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했고, 졸업후 도청·시청·식산은행·동양척식주식회사 등 당시에 ‘물 좋은’ 직장이 1백% 보장됐다.

 

도청소재지인 전주 중심으로 주요 기관이 자리잡고 있는 현실에서 농업기술원·호남작물시험장 등 농업 관련 주요 시설만은 익산에 위치할 수 있었던 것도 이리농림고의 발전과 깊숙히 관련된 것이었다.

 

실제 일제시대 전주농림고를 졸업한 동문들은 광복 이후 우리의 근·현대화 과정에서 정·관계와 학계·경제계 등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 전북대 초대 총장을 지낸 고형곤박사(27년 졸업)와 전북대 최장수 총장을 역임한 심종섭 전학술원장(37년 졸)은 도내 대학의 기틀을 세우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던 인물들.

 

정계에서는 정직래(34년 졸)·김성철(35)·채영석(53) 세 국회위원을 배출했고, 내무부 차관을 역임한 이양호씨(34)와 전북도지사 및 노동부장관을 역임한 조철권씨(50)의 모교도 이리농림고다.

 

80년도 초기 한때 조철권 도지사에 심종섭 전북대총장, 김용욱 전주지방법원장(35년졸) 등 도내 주요 기관장 자리에 이리농고 출신들이 앉아 ‘이리농고가 다 해먹는다’는 소리까지 나오기도 했다. 조철권(육군준장)·유삼석(육군소장)·최규순(공군준장) 등은 농과 26회 동기들로, 한 학과에서 3명의 장성이 나오는 도내에서 흔치 않은 기록을 세웠다.

 

오늘의 대상그룹 모태인 미원그룹 창업자인 임대홍씨(40년)와 증권업계 신화로 통하는 지성양 신흥증권 사장(51)·닭고기로 전국 시장을 제패해 신지식인으로 각광받는 김흥국 하림사장(78) 등이 이리농고 출신의 경제계에서 주목받은 대표적 인물들이다. 국내 첫 독일 경제학 박사인 백영훈 전KDI원장은 박정희 대통령과 헬기로 다니며 한국 고소도로의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양환승 전 전북대교수는 국내 제초학 분야 테두로 통한다.

 

일제시대와 비교하기 힘들지만 본격적인 공업화가 이루어지기 전인 60년대 말까지도 이리농림고에는 도내 전역에서 많은 지원자들이 몰렸다. 익산을 중심으로 군산, 정읍, 김제, 남원, 고창 등지에서 여전히 이리농림고에 대한 선호도는 높았다.

 

그러나 주요 산업에서 농업의 ‘찬밥 신세’와 함께 농림고에 대한 지원자가 80년대 이후 뚝 떨어지면서 이리농림고도 생존의 갈림길에 설 수 밖에 없게 됐다. 3대 농림고로 꼽혔던 진주농고가 경상대로, 수원농고가 서울대로 일찌감치 승격 발전된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때늦은 감까지 있었다. 물론 이리농고 역시 전북대 농대의 사실상 모태가 됐으며, 다만 전북대 농대가 전주로 이전하면서 ‘관계’가 끊겼다.

 

이리농림의 새로운 그림은 쟁쟁한 동창들의 주도로 그려졌다. 국립 전문대가 거의 없는 국내 실정에서 동창들이 발벗고 나서 현 국립 익산대의 전신인 이리농공전문대를 탄생시킨 것이다. 심종섭·조철권·채영석씨 등 이리농고 출신들이 1년 이상 교육부를 쫓아다니며 설득한 노력의 결실이라는 게 총동창회장의 이야기다.

 

이리농림고 대신 대학으로 승격된 동창회를 갖게 된 이리농림 동창회는 그러나 대다수 동문들의 정서가 이리농림이어서 당분간 익산대 동창회와 함께 이리농림고 동창회 두 가지 명칭을 병행 사용할 계획이다. 내년도 개교 80주년을 맞는 이리농림고 총동창회는 이리농림고라는 이름을 단 마지막 대규모 기념행사가 될 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동창회 명부 발간 사업을 비롯,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학교의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여러 물건들을 50주년 기념관에 모아 학교 박물관으로 모으고, 80주년 기념탑을 세울 예정이다. 1회 졸업생(1925년 졸)으로 유일한 생존자인 이기성옹(서울 동작구)과 일본인 동문들도 대거 초대해 과거와 현재·미래가 함께 하는 80주년 기념 행사를 치를 예정이다.

 

연혁

 

△1922.4.1 5년제 관립 농림학교로 인가
△1922.5.5 개교(농·임과 각 50명)
△1943 수업연한 4년제로 단축
△1946 6년제로 변경
△1947 이립공립농림중으로 교명 변경
△1947 도립농과대 설립 인가
△1951 이리농림고로 교명 변경(3년제)
△1957 농과대학과 농림고간 부지 문제로 분규
△1961 남중 병설 인가
△1963 농과대 전주로 이전
△1970 농고·남중 분리
△1972.5.5 개교 50주년 기념행사
△1973 일본 구마모도 농고와 자매결연
△1979 럭비 최우수교로 표창(대한체육회장)
△1984 남녀공학으로 학급 편성
△1990.10.15 91학년도부터 학생모집 중지
△1991.3.1 국립 이리농공전문대학으로 개편
△1993.2 이리농림고 마지막 졸업(한국인 1만3천9백70명, 일본인 1천2명)

 

동문 인맥

 

◇정계
정직래(34년졸업-이하 졸업년도·7대 국회의원) 김성철(35년 6,7대 국회의원) 남정금(36,국회 농수산 전문위원), 백영훈(49, KDI원장·국회의원) 채영석(53·13,14대 국회의원, 현 한국고속철도이사장) 남상덕(59, 도의원) 김상복(61, 도의원) 소병기(64, 도의회 부의장) 김진환(64, 민주당대외협력국장) 황성근(66·익산시의원) 이재희(67, 김제시의장) 허금기(68·부안군의회 의장) 김세현(68, 익산시의원) 고용수(70, 옥구군의원) 황호방(74·도의회 부의장)

 

◇관계
이야호(34, 내무부차관) 김용욱(35, 전주법원장) 유윤수(37, 농림부 축정국장) 박기승(37, 농림부 농지국장) 양용식(41, 법제처 차장·변호사) 최병인(42, 국립동물방역소장) 지동수(42, 부안군수) 박진용(44, 전주시장) 김준(44, 새마을연수원장) 오병관(45, 가축위생시험소장) 박영배(49, 전북종축장장) 조철권(50, 전북도지사·노동부장관) 김인표(51, 산림청차장) 임병화(54, 전북잠종장장) 소재문(61, 현 도청감사관) 조주현(66, 현 도의회 전문위원), 이기훈(66, 현 익산시국장)

 

◇경제·금융
임대홍(40, 미원그룹회장) 임정홍(43, 아니크 회장) 지성양(51, 신흥증권 사장) 이현도(57, 전일석유대표) 김진수(59, 뉴화인 대표이사) 박노원(60, 전 축협전북도지회장) 황호천(60, 한일몰트공업 대표) 정현수(62, 신원사료대표) 윤여식(65, 풍남건설대표) 한규채(65, 농촌개발원장) 차봉길(66, 배풍토건대표) 조택수(66, 전농 대표) 김흥국(78, 하림 대표)

 

◇학계
김준석(33, 서울시립대) 김준보(35, 서울대) 심종섭(37, 전북대총장) 이종록(39, 군장대학장) 이종순(40, 전북대, 현총창회장) 이은웅(42, 서울대) 한대석(42, 서울대) 양환승(44, 전북대) 김영두(49,이리농공전 학장) 김중래(49, 군산대) 김윤수(50, 연세대) 조선웅(51, 전북대) 백영기(51, 전북대) 임정택(51,전남대) 한방근(〃)  김제환(52, 전북대) 이병기(〃) 이재구(〃) 기노석(54, 전북대) 김순재(54, 연세대) 홍재식(58, 전북대) 최만봉(59, 전북대) 김종승(59, 익산대) 박금규(60, 전주대) 김중만(65, 원광대) 김형중(67, 벽성대) 이명환(67, 대전보건대) 김남순(71, 조선대) 김성준(〃)

 

◇교육계
정연달(35, 전 중등교장) 이종관(44, 전 초등교장) 김영식(51, 전중등교장) 김용문(52, 동신여중교장) 김한석(53, 만경여중교장)

 

◇군·경찰
조철권(50, 육군준장) 유삼석(50, 육군소장) 최규순(50, 공군준장) 황학철(54, 육군소장) 유탁열(58, 육군대령) 전정의(59, 〃)백중기(67, 육군준장)  이호중(70, 육군대령)  고평곤(55, 군산경찰서장) 이성근(67, 서울시경 경정)

 

◇농업인
오규삼(58, 익산원예조합장) 한규채(65, 농촌개발원장) 한상우(66, 오산농협조합장) 김갑성(66,수도직파 전문농업인) 고석수(66, 서수농장 대표)

 

◇예체능·기타
김인곤(40, 대한미술원 운영위원장) 이기석(41, 안과원장) 황종규(48, 변호사) 신형조(52, 변호사) 정용근(53, 치과원장) 배성환(54, 한국일보 부사장) 김병헌(54, 변호사) 고원배(56, 시인) 안치행(62, 작곡가) 안천영(64,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전창기(65, 무역선 선장) 박종길(65, 대한사격연맹이사) 조병우(66, 약사) 채규화(66, KBS울산방송 아나운서)

 

*학과별 회수 차이가 있어 졸업년도로 기재함. 동창회 차원의 명부 작성중에 있어 전·현직 구분 잘 안된 점 양해 바람.

 

이리농림고 동창장학회

 

이리농림고가 익산대학의 전신이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데는 익산대가 과거의 농고 건물과 부지들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 외에 ‘동창 장학회’ 역할이 큰 몫을 하고 있다. 이리농림고 동창장학회가 매년 익산대 우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함으로써 동창회와 학교간 유대는 물론, 같은 뿌리임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이리농림고 동창장학회 기금은 현재 1억5천만원으로 평가되고 있어 다른 동창장학회에 비해 그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설립 과정에서부터 그동안 활동에 이르기까지 역사가 깊은 것으로 유명하다.

가난하지만 우수한 농촌 학생들이 많았던 재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동창회 차원에서 모색한 끝에 1968년 기금모금 추진위가 결성돼 재단법인 설립에 필요한 2백만원의 기금을 조성한 것이 그 모태가 됐다.
2년만에 만들어진 재단법인 이농동창장학회가 출범하기까지 2백여명의 동문들이 십시일반으로 참여했으며, 특히 임대홍 당시 미원그룹회장(수의과 7회)이 1백만원을 쾌척 장학회 발족에 큰 도움을 주었다.

임회장은 동창장학회 기금 외에도 모교에 대한 애정이 특별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익산대에 있는 개교50주년 기념관 건립을 위해 1971년 1천만원을 희사한 것을 비롯, 76년 농업개발전시관 신축 등을 위해 3천만원을 선뜻 내놓기도 했다. 91년 동창회기금으로 다시 1억원을 쾌척해 현 동창장학회 기금이 조성되기까지 임회장이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장학회 기금에는 나까노 히로시 재일동창회장이 일화 2만엔, 國 廣守 재일동문이 11만엔 등을 내놓는 등 국내 동문 외에 일본인 동문들까지 참여했다.

이같이 조성된 기금으로 동창회는 20명에 이르는 장학생들을 선발해 80년대 후반 이후 연간 1천만원 가까운 장학금을 지급해왔으며, 지금도 그 수혜자가 익산대 학생으로 이어지고 있다.

매년 익산대생 34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지금까지 1천3백여명에게 1억9천8백여만원을 지급했다. 현재 익산대 옆에 위치한 동창회관 건물과 익산시내 별도 상가건물도 장학회 자산으로 돼 있다.

 

일본일 졸업생들 현황

 

일제시대 세워진 대부분 학교에는 일본인 학생들이 있었다.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고 있었던 이리농림고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1925년 이리농림고 첫 졸업생 38명중 일본인 학생이 27명으로 11명의 한국인 졸업생보다 더 많았다. 해방될 때까지 거의 같은 수의 학생들이 매년 졸업해 이리농고를 모교로 한 일본인은 1천2명이나 된다.

높은 경쟁률 속에 어렵게 입학한 한국인과 달리 일본인간 경쟁으로 시험을 치른 까닭에 상대적으로 입학이 쉬웠다. 일본의 패망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간 졸업생들은 오랜 외국 생활에 자체 입지가 그만큼 좁아 사회적으로 뛰어난 활동을 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주일대사를 역임한 이리농고 출신 김영선씨(37년 졸업)에게 일본인 한 동문은 “출세 복은 한국 동문이 다 가져가고 일본 동문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고 있다”고 말한 일화가 전한다.

일본인 졸업생들의 모교인 이리농고에 대한 애정은 지금도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 졸업생(1945년 3월)이라 해도 지금은 7순이 넘은 고령. 그럼에도 많은 졸업생들이 모교를 그리워 하며 일본에서 매년 한 차례씩 총동창회 정기총회를 갖고 있다.

60년대부터 지금까지 10여차례에 걸쳐 히마라야·독일가문비나무 등 각종 묘목 씨앗에서부터 학교 밴드부를 위한 관현악 악기와 실습 말까지 기증하는 것으로 모교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을 나타냈다. 이리농림고가 지난 73년 구마모토 농림고와 자매결연을 갖게 된 것도 이곳에 사는 총동창회장인 나까노 히로시씨(中野廣·44년졸) 등 여러 동문들의 주선에 의해서였다.

이리농고 60주년과 70주년(1992년) 행사때에는 일본인 동문들이 단체로 모교를 찾아 기념식에 참여하기도 했다.

지난 99년 초청을 받아 일본 총동창회에 참석했던 이종순 총동창회장은 학교 폐교 소식과 학교 관련 여러 소식을 전하자 많은 동문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일본 동문들은 내년 80주년 행사에 맞춰 성적표와 상장·앨범에 이르기까지 당시 학교 시절 물건들을 동창회에 보내고 있으며, 대거 모교에 참가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단다. 8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건강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는 한 일본인 동문의 편지글도 모교 사랑의 절절함을 느끼게 한다.

대부분 고령인 관계로 일본인 동문들은 모교의 80주년 기념식까지만 총동창회로 운영한 뒤 이후 총동창회를 폐지하고 대신 기수별 모임만 운영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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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용 kimwy@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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