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막 꿈결처럼, 판소리가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실은 2년쯤 전부터 문화계에서 우리 판소리가 세계문화유산이 될 가능성이 조심스레 모색되기 시작했고, 지정의 선후가 문제일 뿐, 판소리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예고되어 있었다. 동아시아의 한 궁벽한 지역에서 조선후기에 산출된 판소리가, 세계문화의 유산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는 큰 영광이다. 그러나 큰 기쁨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이제부터 어떻게 판소리를 보존하고 전승시켜 나가야하느냐의 문제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부여된 책임이기도하다.
판소리는 광대가 마당이나 공연장에 무대 장치 없이 돗자리만 펴고, 고수의 북 반주로 짧게는 서너 시간, 길게는 대여섯 시간에 걸리는 긴 이야기를 몸짓 섞어 가며 흥미롭게 노래하는 판의 예술이다. 연행 형태로 보자면 음악극이기도 하고, 담고 있는 내용으로 보자면 재미난 서사극이기도 하다.
18세기 경 처음 판소리가 생겨났을 때는 서민들만이 즐기는 민중의 예술이었다. 그런데, 19세기부터는 판소리의 애호층이 양반과 왕족으로까지 확대되면서, 판소리는 '국민의 예술'이 되었다. 판소리 광대는 양반집에서 제대로 대우 받으면서 공연을 벌였으며, 궁궐에서도 판소리가 연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20세기초반, 일제 식민지 지배의 시기를 거치면서 판소리는 청중과 애호가를 잃어버린 예술로 다시 전락하게 되었다. 고사상태에 이르러 거의 전승의 체계를 상실했던 판소리는 20세기 후반,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판소리는 새롭게 조명되고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나라 안팎에서 판소리 명창들의 활약상은 두드러졌고, 최고의 관록과 기량을 자랑하는 내로라하는 명창들이 완창무대를 가졌다.
95세의 정광수 명창이 <적벽가> 로 무대에 섰고, 80객인 한승호 명창도 무대에 올랐다. 성우향 박송희 오정숙 명창 같은 분들도 완창무대로 노익장을 과시하였다. 안숙선 송순섭 조통달 김일구 김영자 등 중견 명창들은 국내뿐 아니라 파리, 뉴욕, 그리고 에딘버러에 까지 판소리판을 벌여 판소리의 이미지를 세계에 심어놓았다. 적벽가>
판소리의 가장 큰 힘은 광대 혼자서 온 무대를 차지하고, 서너 시간을 파노라마식으로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데에 있다.
이번에 판소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판소리의 이 역동적인 힘이 높이 평가된 데서 기인한 것이다. 판소리는 세계문화유산에 값한다. 물론 그 공의 가장 큰 부분은 당연히 판소리 광대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 판소리 광대는 작품의 문학적 이해와 그에 근거한 음악적 표현 기술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광대는 전통 사회의 예술인으로서 음유 시인이자, 작곡가이며, 가수이다. 좋은 목을 가져야 하며, 오랜 훈련을 통하여 완성한 성음을 구사하여 득음을 한 광대야말로 진정한 예술가이다. 우리는 그 같은 진정한 예술가를 후원할 책무가 있다.
올 여름 에딘버러에 공연을 다녀온 조통달 명창은 그곳 청중들이 판소리에 환호하며 진정으로 갈채를 보내는 것에 어안이 벙벙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사설 텍스트는 대목대목 번역이 되어 프롬프터에 비쳤다고는 하지만 우리말이라고는 전혀 알지 못하는 청중들이 소리 대목대목마다 적절하게 반응을 보이고, 게다가 그 반응이 너무도 정확해서 이 명창을 더욱 신바람나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던 판소리 공연을 생각하고는 씁쓸했노라고 고백하였다.
우리민족은 전통적으로 내가 가진 것이 보물인 줄을 모르고 살아왔다. 그러나 서양사람들이 좋다고 감별하고 나면, 그제서야 좋은 것인줄 깨닫고 애호하고 보호하는데 앞장선다. 사물놀이도 그랬다. 결국은 판소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양사람들은 판소리를 들어보고 담박에 '세계가 길이 보존해야할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이제, 그것을 잘 보존하고 제대로 전승시켜야할 즐거운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
판소리가 가진 가능성은 요새 젊은이들의 취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근래들어 젊은이들이 판소리를 낯설지 않게 생각하는 풍토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본다. 훌륭한 명창을 길러내고, 후원하고, 그들의 소리에 갈채를 보내는 일. 그래서 저변을 확대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비로소 세계문화유산이 된 판소리가 우리에게 되돌아와 '살아있는 판소리'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유영대(고려대 교수, 한국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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