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흘러가는 무심한 것이 세월이다. 연말이 다가옴을 안타까워하며 한 해가 하릴없이 저문다고 허전한 마음을 어루만지며 아쉬워한다.
예쁜 꽃들이 피고 새소리 곱게 지저귀던 희망의 새 봄이 엊그제 같다. 그런데 삼라만상이 추위에 떨며 지구의 종말이라도 다가오는 듯 검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음험한 겨울을 몸서리치게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인생이 즐겁고 행복한 순간은 무관심 속에 헤프게 허송 세월을 보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둡고 힘겨운 삶에 지쳤을 때는 세상이 왼통 원망스럽고 이웃이 걸거침스러워 진다.
내 가족조차 짐스럽게 느껴져 한없는 무력감에 스스로 저주와 미움의 적개심에 불타며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허둥대며 절망하게 된다. 지난 19일에 날씨도 매섭게 차가운 한강 동작대교에서 20대의 어린 애비가 다섯 살과 여섯 살 된 철모르는 자녀들을 차디찬 한강에 내던지고 도망쳤다는 비정의 뉴스가 들리는가 싶더니 곧바로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다. 입이 있어도 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다. 카드 빚에 쪼들려 자녀들을 키울 자신이 없었단다. 남매에게 수면제를 먹여 죄의식 없이 호랑이의 아가리보다 더 무섭고 소름끼치는 한강 물에 매정하게 내던졌단다. 그것도 사전계획까지 세워 답사까지 마친 상태였다니 하늘과 땅이 대노(怒)하여 대성통곡할 엄청난 비극이다.
?자녀들이 저 세상에서라도 행복하길 바란다.?는 뒤늦은 회한을 내뱉는 무책임한 아버지의 얼굴에는 고달픈 삶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연민의 정을 느끼게 했다.
막다른 골목이라지만 사랑하는 자식들의 행복을 바랐다면 고아원이나 종교단체에라도 위탁하던지 타인에게 입양이라도 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에 더욱더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다. 인생 파노라마처럼 떠오르는 자살 사건들이 클로즈업된다. 기간제 여교사와 차 시중문제로 전교조와 갈등을 빚다 지난 4월 4일 목숨을 끊은 충남 보성초등학교 서승목 교장 자살사건 은 교직사회에 큰 파란을 불러왔다. 수능시험일과 수능성적 발표일에 성적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고생들의 사연도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8월 4일 새벽 종로구 계동 현대 사옥내 집무실에서 투신 자살한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바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사건은 서민들의 잇단 가족 단위 동반 자살이라 하겠다.
인천에서 30대 주부가 생활고를 비관해 죽기 싫다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세 자녀와 함께 투신 자살을 했다. 경남 밀양의 한 여관에서도 빚 독촉에 시달리던 일가족 6명이 음독 자살을 했다.
하반기 들어서만 생활고에 시달린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거나 동반 자살한 사건은 12건으로 아동 23명을 포함한 39명의 아까운 목숨을 앗아갔다고 한다.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 이 세상 그 어디에 있단 말인가?
순간의 억한 심정을 참아내지 못하고 죽어간 영혼들, 부모를 잘 못 둔 죄로 억울하게 죽어간 꽃다운 어린이들이 하늘 나라에서나마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기원하며 명복을 빌어본다.
전문가들은?탈출구 없는 삶에 대한 분노와 절망이 극단적으로 표현된 행동이 자살?이라고 말한다. 물론 생활고에 앞뒤가 꽉막혀 막막하거나 권위의 심한 추락 또는 신상에 엄습하는 감당못할 죄의식 등 희망의 탈출구가 안보이는 경우에 심각한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죽음을 택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고통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외로움이 아닌가싶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고독감을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은 '군중속의 고독?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생활하고 있지만 한없이 외로워 고독에 눈물 적시며 가슴 시려워 온다.
인생살이가 힘들고 어려워질수록 더욱더 외로워 인간미 넘치는 아늑한 사랑이 그리워진다.
그렇다. 우리 주위의 선량한 이웃들이 연속극의 시리즈처럼 자살 또는 동반자살로 죽어간 것은 가까이는 부모, 형제, 친인척 더 나아가서 국가 사회의 무관심과 냉대 속에 진한 고독을 헤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로운 가슴에 모닥불을 피워 따뜻한 가슴으로 어려운 이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다. 서로 돕고 도움을 받으면서 ?상부상조?속에 이웃끼리 생활고로 죽어가는 폐륜만은 우리 스스로 막아야 한다.
/조정식(전주금암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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