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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따구리] 크리스마스와 사기결혼

 

“결혼하기 위해 미국 연구원으로 유학간다고 속였다. 계속된 거짓말이 화를 초래하고 말았다.”

 

지난 24일 오후 익산시 낭산면 용기리 자신이 처가살이를 하던 집에서 일가족 3명을 살해한 사위 정모씨(33)가 ‘왜 살해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일가족이 난자당한 이번 사건은 최초 목격자인 정씨가 신고를 한 당시만 해도 원한관계에 의한 소행일 가능성이 농후했었다.

 

그러나 경찰조사 과정에서 사위 정씨가 용의자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뒤늦게 ‘자신의 죄를 뉘우친다’며 눈물로 하소연했다. 이어 정씨는 ‘아내가 보고싶을 뿐이다’는 말을 남기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과연 아내가 보고 싶었던 것일까.

 

대학 강단에서 시간강사로 일해왔다는 정씨가 던진 그 한마디는 기자를 당황스럽게 했다.

 

잔혹한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 사건 현장을 떠올려보면, 이같은 정씨의 대답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진로를 속이면서까지 결혼을 해야했던 그만의 속사정은 다소 이해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회적으로 푸대접을 받고 있는 시간강사라는 이유만으로, 결혼이 순탄치 않았던 것.

 

그는 박사과정을 밟고 미국 화학회사 연구원으로 유학을 간다는 ‘거짓 조건’이라는 돌파구를 찾았다.

 

이 때부터 아내에게 거짓말이 되풀이 됐고, 급기야 자신이 만든 굴레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그토록 사랑했다는 아내를 살해하는 끔찍한 일을 벌이고야 말았다.

 

자신이 애써(?) 만들었던 가정을 자신의 손으로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만 것이다.

 

비록 두번의 헤어짐이 있었지만 지난 94년 같은 대학교 같은 학과에서 만나 10년동안 알고 지내온 이들 부부사이에서 ‘거짓 조건’은 정말로 극복할 수 없었던 한계로 작용했을까.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남편의 입장을 이해하고 따뜻한 격려를 보냈다면 웃음꽃이 가득했을 이 가정.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을 솔직히 털어놓은 뒤 아내의 손길을 기다렸다면 씻을 수 없는 죄를 짓지 않았을 이 가정.

 

온누리에 사랑이 가득해야 할 크리스마스 전날에 피로 얼룩진 한 가정을 보면서 이 시대의 진정한 사랑은 어떤 것인지 다시한번 되묻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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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오 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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