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비발디의 ‘사계’ 연주로 유명한 이 무지치(I Musici)의 악장이었던 마리아나 시르브 여사가 한국에서 연주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한 말 기억납니다.
“그동안 한국을 수차례 다녀갔으면서도 한국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주최사 도움으로 정동극장에 가보았습니다. 마침 한국음악이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의 악기 소리들을 듣고 ‘아, 이런 소리도 있었구나’ 하고 너무 놀랐습니다. 물론 중국이나 인도 음악을 접했던 것은 꽤 오래 전이었지만, 그때 느낌하고는 다른 감흥을 받았어요. 앞으로 제 연주생활에도 영향을 끼칠 거예요.”
그 이후 이 악단에서 한국가곡과 민요를 소재로 한 모음곡 ‘한국의 사계’라는 타이틀을 붙인 음반을 낸 것을 보았습니다. 외국인들에게 국악은 ‘경이로운 예술’로 비쳐집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초월의 소리’이며 국악기에서 나오는 범상함에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전주세계소리축제’를 앞두고 이 생각이 난 것은 왜 일까요? 저는 처음 이 축제의 명칭을 대했을 때 누구 아이디어인지 참 잘 생각해냈다고 무릎을 탁 쳤습니다. ‘이 행사는 분명 월드뮤직 페스티벌을 말할 텐데 역시 소리의 고장인 전주에서 먼저 생각해냈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때는 바야흐로 21세기로 접어드는 시기였고 마침 제3세계 음악들이 소개되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월드뮤직’이라는 생소한 용어까지 생겨난 터였죠.
서양의 클래식 연주가들은 새로운 소리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20세기의 대가들이 이미 정복해놓은 ‘고전음악’의 위대한 영역(기교적, 철학적으로 완성된)을 그대로 답습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정상급 연주가들 중 몇몇은 기존의 클래식 작품에 남미의 탱고 리듬을 섞기도 하고 중앙아시아의 민요나 아프리카 북소리를 집어넣어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정말 세상은 넓고 음악은 많았습니다. 그런데 ‘전주세계소리축제’라니요. 이거 대단한 아이디어 아닙니까?
이 모든 음악들이 모이면 월드뮤직 시장(Fair)이 되는 겁니다. 시장에 오는 사람들은 ‘손님들’이 아니라 ‘고객들’입니다. 손님이 오면 대접을 해야 하지만, 고객이 오면 팔 수 있습니다. 또 저희들끼리 직접 팔거나(계약) 홍보할 수 있도록 부스를 임대해줘도 되겠지요. 그렇습니다. 각 나라의 음악회사들이 부스를 신청할 것입니다. 여기에 지구촌에서 음악가들과 음악도, 음악교육자들, 공연 또는 음반기획자들, 악보출판자들, 악기상과 악기제작자들, 극장 운영자나 무대예술연출가들, 종족음악학자와 문화인류학자 또는 고고학자이거나 교수인 사람들, 음악비평가 또는 음악저널리스트들, 여기에 영상제작자들이나 인쇄업자 또는 캐릭터 상품 개발자들까지 몰려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판소리’ 어떨까요? 해외초청 계약이 많이 이뤄질 겁니다. ‘전주’시민들 어떨까요? 외국사람들(음악)은 어떤지 구경하러 오지말래도 올 겁니다. 고객으로 온 외국인들, 판소리만 듣고 갈까요? 아마 잠도 자고 밥도 먹고 이 지역 특산품도 좀 사가지고 갈 겁니다.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축복입니다.
/배석호(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예술사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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