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28차 회의에서 북한의 덕흥리 벽화무덤, 약수리 벽화무덤 등 모두 63기의 고구려 벽화무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북한의 고구려 벽화무덤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TV나 책자 등으로 공개되어 왔지만, 불과 20여년 전에 소개된 내용과 비교해 볼 때 벽화에 너무 많은 손상이 진전되고 있어 우리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고구려 무덤벽화와의 관련성으로 유명한 이웃나라 일본의 다카마쓰(高松) 무덤벽화 역시 더 이상의 훼손을 감내하지 못하고 드디어 해체보존이라는 최후의 방법을 택하기에 이르렀다.
고구려 무덤벽화나 실크로드에 산재한 여러 석굴사원의 벽화 등은 그 소재 등이 환경의 변화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에 인위적 요소나 자연의 재해 등으로 언젠가는 무너져 내릴 위험성이 있다. 이 때문에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보존과학자 등이 여러 방책을 강구하며 수리와 보존처리에 임하고 있지만 결국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퇴색이나 열화를 피하기 힘든 운명을 안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벽화와 같은 문화재는 옛부터 현 상태를 원화와 동일한 안료를 사용하여 그대로 화폭에 담아 전하는 현상모사작업이 매우 중시되어 왔다. 이미 불타 없어진 일본 호류지(法隆寺)의 금당벽화나 훼손된 고구려 벽화는 이와 같은 모사작업이 없었다면 원래의 모습을 유추하기 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때문에 모사나 모조는 양(洋)의 동서를 막론하고 고대로부터 수많은 예술가들이 고전의 재생과 새로운 창조의 원동력으로서 이에 적극적으로 임하여 왔다. 한국이나 중국 일본에 서도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서화가나 공예가들에 의해 모사 모조의 전통이 꾸준히 계승되어 왔으며, 이를 통하여 높은 예술성과 고도의 제작기술 역시 전승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는 전하여지지 않고 있는 작품들에 대해서도 재료나 제작기법 등 다양한 조사와 연구를 통하여 복원모조를 시도함으로써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고 이를 발전시켜 나가기도 한다.
전주는 옛부터 한지의 고향으로도 유명하였지만, 조선시대의 궁중에서 사용하였던 고급 지류의 생산기술은 단절된 지 이미 오래되었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근근이 그 명맥만을 유지해오고 있다. 그리고 근자에는 원주 등지로 그 주도권마저 넘어가려 하고 있다.
앞으로 한지공예나 죽공예 등 전통문화도시 전주의 전통 수공예와 예술의 활성화를 기하고 창조적인 장인의 맥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도, 대학 등에서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관련학과의 설치 및 산업현장과의 접목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학이나 시의 부설기관으로서 전주의 전통공예를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문화산업으로서 연계시킬 수 있는 전문 연구소의 설립과 활성화 또한 절실하다. 그래서 전주에서만 접할 수 있고,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경쟁력을 지닐 수 있는 뛰어난 디자인의 품위 있는 문화상품을 개발해 나가야 한다.
나아가 지난 8월에 탄생한 국립고궁박물관이나 국내 유수의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 관련 작품을 체계적으로 분석연구하고 모사 또는 모조작업을 통하여 축적된 제반 기술정보를 바탕으로, 전통의 창조적인 계승발전을 도모하고 나아가 후세의 한국미술과 공예 발전의 기반을 구축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민병훈(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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