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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아드보카트 감독의 미소

지난 주말,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2006독일월드컵 조 추첨 행사를 TV를 통해 보았습니다. 한국이 G조에서 프랑스 스위스 토고와 한 조가 되는 순간, 현장에 있던 아드보카트 한국팀 감독의 씩 웃는 장면이 화면에 클로즈업되더군요. 그의 웃음은 한결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그때 저는 만약 저 자리에 본프레레 감독이 앉아있었더라면 어떤 표정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 앉아있어야 했습니다. 작년 6월 한국축구팀 감독을 맡은 이래 어쩐지 맥 빠진 경기를 하는 듯 했지만 어쨌든 월드컵 본선 진출의 성과를 이뤄낸 장본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거기에 앉아있지 못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한국팀 감독으로 있었던 시절, 저처럼 그를 비난했던 한국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였을까요. 그것 때문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를 지지하고 도와주려고 했던 사람들도 많이 보았거든요. ‘히딩크 감독도 처음엔 그랬다. 좀 기다려봐라. 왜 한국사람들은 기다릴 줄 모르니?’ 그리고 ‘그게 왜 감독 혼자만의 책임이고 문제냐?’라거나 ‘이제 와서 감독을 또 바꿔봐야 무슨 소용 있겠냐’ 고 말한 친구들을 여럿 보았거든요.

 

비교적 좋지 않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꽤 긴 시간동안 한국대표팀 감독을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여론에서 비난의 화살이 쏟아질 때마다 그는 억울해 했습니다. 게임에 질 떼마다 ‘준비한 시간이 너무 짧다’든지 ‘선수들의 정신이 해이해진 탓’이라든지 하면서 결코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한국 대표선수들은 성숙해보였습니다. 본프레레 감독에 대하여 무능력하다거나 감독의 책임이라거나 비난한 예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본프레레는 한국팀의 월드컵 4강 성적에 대한 프라이드를 이렇게 꺾어놓기도 했습니다. ‘2002년은 과거의 일이다. 그때와 비교는 부당하다’. 정말 그는 ‘안 된다는 정신’으로 똘똘 뭉쳐진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결국 그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은 지난여름 개최된 동아시아대회였습니다. 형편없는 성적으로 ‘아시아 축구 하류국’의 슬픔을 안겨준 채 그는 ‘한국축구는 감독들의 무덤’이란 말을 남기고 짐을 싸야했습니다.

 

지난 10월, 아드보카트 감독이 부임했습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이란 스웨덴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등 강팀과 맞붙어 2승 1무의 멋진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항간에 그의 성적을 행운이 따랐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성적에 행운이 따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행운의 여신은 반드시 준비된 자에게만 손짓한다는 걸 여러분도 잘 알고 있겠죠.

 

2006년 독일월드컵을 기다리는 한국인들을 미덥게 한 것은 성적도 성적이지만 역시 그의 태도였습니다. ‘어느 조에 속하든 우리는 당당히 맞설 것이고 승리할 것이다. 우리에게 만약이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만약에 어느 조에 속하면 거기는 죽음의 조이기 때문에 절망할 것이고, 만약에 또 다른 어느 조에 속하면 거기는 쉬운 상대들과 함께한 조이기 때문에 웃을 일이 아니라는 거겠죠. 아마 이날 조 추첨에서 한국은 어느 조에 속하더라도 강팀들을 피하진 못했을 겁니다. 2002년 우리 한국팀이 쉬운 상대들을 만났기 때문에 4강까지 올라갔던 것이 아니듯 말입니다. 그보다는 꿈이 있었고, 그 꿈은 이뤄진다는 믿음을 온 국민이 가졌기 때문이었죠.

 

또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아드보카트 감독의 여유로운 웃음이 한국축구 2006년을 더욱 미덥게 하듯 우리도 씩 웃으며 새해를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배석호(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예술사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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