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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숙 칼럼]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

유효숙(우석대 교수)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여자라면 직업의 종류를 떠나 회식이나 술자리에서의 겪은 예기치 않은 불쾌한 경험을 몇 가지씩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여기자가 당한 정도가 심한 추행이건, 불쾌감과 모멸감을 유발하는 언어적 희롱이건 말이다. 술자리에서 모든 게 용서되며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면 배석한 사람들의 기분은 아랑곳 하지 않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 우리의 술 문화 속에서 간혹 여자들이 불쾌한 경험을 당한다 해도 ‘분해도 참아라’라는 주변 여론에 떠밀려 대다수의 사건은 술자리에서의 작은 실수나 해프닝으로 유야무야 묻혀 버리기 마련이다.

 

최근 엄청난 분노와 사회적 이슈를 제공한 현역 국회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도 언론 보도와 공론화가 없었다면 심심찮게 일어날 수 있는 술자리에서의 작은 실수로 묻혀버릴 사건이었다. 성추행을 당하자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르고 뛰쳐나가는 데서 그치지 않고, 보도를 통해 가해자의 의원직 사퇴와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을 이끌어낸 피해자 여기자의 용기는 ‘나 하나 참고 말자’라는 체념으로 묻혀버렸을 수 없이 많은 비슷비슷한 사건들이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공론화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이 처음 보도되었을 때 ‘여기자가 아닌 음식점 주인인줄 알았다’라는 가해자의 변명이 우리를 더욱 경악하게 만들었지만, 이 사건의 점입가경은 이후 불거진 그를 옹호하는 여, 야당의 국회의원들의 반응이다. ‘아름다운 꽃을 보면 만지고 싶은 게 사람의 심정’ 운운하는 가해자 옹호의 글을 자신의 홈피에 띄운 국회의원, 사건의 원인은 폭탄주라며 폭탄주를 몰아내겠다는 또 다른 국회의원 등이 보인 반응은 사건의 본질을 벗어난 그들의 문제의식 이해 수준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자질이 의심되는 그들뿐 아니라 ‘40대 이상의 수많은 대한민국 남성 중 그에게 자신 있게 돌팔매질을 할 사람이 몇이나 되랴‘, 혹은 ’이제 그 문제는 그만 이야기하자‘ 유의 보통 사람들의 글이 인터넷에서 떠도는 것을 보는 심정도 참담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는 가해자 국회의원이 보인 추한 행태 이후의 잠적과 침묵을 보며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적지 않은 기성세대 남성들의 의식 속에 세상의 여자들은 어쩌면 두 부류로 단순무식하게 나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 본다. 자신의 아내, 딸, 여동생 등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존중하고 보호해야 할 여자들과 집 밖에서 마주치는 여자들의 두 부류. 집 밖에서 만나는 여자들을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만져보고 싶은 아름다운 꽃’ 정도의 대상으로 무의식 속에서 만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런 사건들이 수없이 재현되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제 사라져가는 혹은 무감각해진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의를 다시 되찾아야 한다. 이런 사건들이 단순히 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이나 작은 실수가 아닌 한 인간의 인격을 드러내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며 한 인격체에 가하는 물리적인 뿐 아니라 정신적 폭력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할 때다.

 

/유효숙(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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