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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철의 건축이야기] 장마철에 생각해보는 집의 의미

'갇힌 공간'서 자연감각 잃어

장마철이다. 옛날 허름했던 시절에는 이런 장마로 불어난 물에 축사가 무너져 마을 앞 냇가로 돼지나 염소가 둥둥 떠내려가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고, 서둘러 물꼬를 트러 나가는 농부의 잰걸음 뒤로 원두막에서 비를 피하는 낭만도 적잖았지만, 지금은 비가 아무리 쏟아져 내려도 그런 살가운 풍경은 좀처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도로가 침수되고, 식수가 끊어지고, 또 저지대에 사는 주민이 고립됐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자동차는 빗물을 튀기며 아스팔트 위로 질주하고 있고, 또 지금은 아무리 장맛비가 쏟아진다고 한들, 아파트 현관문만 열고 들어서면 비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젠 비가 내려도 옛날처럼 그렇게 따로 비설거지를 할 필요도 없어졌고, 아무리 태풍이 불고 폭염이 내려쬐더라도 아파트에 들어와서 문만 걸어 잠근 채, 냉난방 스위치만 틀어놓으면 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확실히 살기 편해진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 편리를 향한 집착과 욕망은 여기서 그만 멈출 것 같지가 않다. 주부들의 취향에 맞춘 가전제품과 통신시설의 비약적인 발전이, 미래의 주거형태마저 인간의 노동을 소외시키는 방향으로 창출해나가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가 되면 정말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손 끝 하나 까닥하지 않고도 살 수 있을지 모른다.

 

어쨌든 주거공간은 더 넓어지고, 화려해지고, 또 더 편리해진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만큼 문제도 많다. 현대건축은 지금처럼 장마철에 쏟아져 내리는 비에 잠시 쉬어갈 원두막 하나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고, 낙숫물 소리 하나도 제대로 들을 수 없는 구조로 변모되었다. 지나치게 프라이버시 보호와 기능을 추구한 결과, 이젠 자연이 주는 그 오묘한 시청각 소재마저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물론 주범은 건축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아파트들이다. 닫고 가리고 낮춰놓았고, 그것도 부족해서 자연과의 유일한 소통공간이었던 발코니마저 「확장」이란 미명아래 아파트에서 헐어내고 있는 지금, 우리는 주거공간에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값비싼 공간」에 갇히게 되고 말았다.

 

그래서 이렇게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에도 처마 밑으로 「툭툭」 떨어지고 있는 빗소리 하나도 제대로 들을 수 없게 되었고, 비를 피해서 황급하게 집으로 뛰어 들어오는 가족들의 종종걸음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입으로는 모두들 「친환경」이라고 외치면서도 이미 자연과 유리된 공간 속으로 들어와 버린 것이다. 그것이 안타깝다.

 

/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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