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한주먹과 그렝이질로 단련
무슨 일이든 그 근본이 송두리째 흔들릴 때, 우리는 흔히 「기둥뿌리가 흔들린다」고 표현한다. 무서운 일이다. 기둥뿌리가 흔들리게 되면 그것이 지붕이든 대들보든 모든 부재는 아예 그 존재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만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원래 기둥뿌리라는 것은 따로 없었다. 기둥이 땅에 뿌리를 박고 자라는 나무가 아닌 다음에야 그 뿌리가 있을 리 만무하다. 굳이 「기둥뿌리」라고 한다면, 기둥이 주춧돌에 맞닿은 「기둥밑 부분」을 말하는데, 콘크리트나 철골구조처럼 그렇게 강하게 정착되어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살짝 얹혀있는 정도다. 그래도 그 육중한 집 한 채가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서있는 것을 보면 참 희한한 일이다.
때로는 불완전한 구조방식이라고 책망받기도 하지만,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기둥 밑 부분은 보통 주춧돌 윗면 형상에 따라서 대충 깎고 다듬어서, 그 위에 그저 간단하게 세워놓는 「그렝이질」이라는 전통결구방식으로 처리되어 있는데, 그래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느 사찰이고 간에 절 입구에 들어서면 보통 일주문(一柱門)을 처음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게 또 가관이다. 한 줄로 나열된 단 두 개의 기둥으로 그렇게 거뜬히 서있는 것이다. 물론 모두 다 「그렝이질」의 공덕이다. 비록 뿌리는 미약하지만 「그렝이질」로 단련된 제 기둥뿌리를 주춧돌에 들이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안전하게 서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돌과 나무는 어쩔 수 없는 이질재료다. 그 접합면에서는 당연히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외력에 곧잘 흔들리기도 하고, 또 처마 끝에서 들이치는 빗물에 의해서 기둥뿌리는 쉽사리 썩기도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기둥 밑 부분을 우묵하게 파고 거기에 소금을 한 주먹 채워 넣게 된다. 그 덕에 오랜 된 기둥은 그 밑 부분이 희뿌옇게 변해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소금이 빗물에 녹아서 기둥뿌리로 스며들었던 흔적이다.
어쨌든 우리한옥은 기둥뿌리가 쉽게 썩고, 또 강하게 정착되어 있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 때문에 기둥상부의 하중은 좀 무거운 게 좋다. 무거울수록 주춧돌과 기둥뿌리가 빈틈없이 더 밀착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네 인생살이와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가끔 이런저런 애환으로 우리네 「삶의 뿌리」마저 흔들리게 될 때, 그럴 땐 정말 「소금한주먹」과 「그렝이질」로 단련된 저 기둥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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