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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기록문화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검사를 하다 보면 각각의 성격유형에 따라 그 특성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같은 크기의 종이에 글을 쓰지만 그 내용에서부터 글자의 크기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이런 성격유형들을 보면서 유달리 기록에 집착하는 사람들도 그 성격에서 발원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록문화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대표적인 기록물로는 2001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승정원일기’를 들 수 있다. 2억4천만 자가 3,245권에 담긴 승정원일기는 4천7백만 자, 1,893권에 이르는 조선왕조실록보다 5배나 더많은 분량이다. 이만하면 우리 조상들의 기록에 대한 애착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도하다. 이러한 기록물은 왕이라 하더라도 열람할 수 없도록 제도화하여 객관성을 최대한 유지하려는 노력이 가져온 결실이다.

 

이러한 방대한 기록은 기록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승정원일기는 왕명의 출납과 행정사무 그리고 의례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기록된 내용은 훗날의 전범으로 활용되있기 때문이다. 양적으로 풍부할 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보존하고 참고할 가치가 컸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크다.

 

조정에서 국사를 논하는 과정과 내용을 최대한 기록하던 전통은 한일합방을 기점으로 사라지게 된다. 일제 치하에서 기록될 문헌뿐 아니라 해방 이후에도 국정에 대한 기록은 부실하기만 하였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구두보고를 받고 자료는 파기토록 했으며 이후의 정권에서도 국정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들 정권이 기록물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이유는 기록문화에 대한 무지(無知)와 더불어 통치행위의 정당성에 대한 자신감 결여가 한 몫을 했기 때문이다. 통치 기록물의 부재는 집권층 스스로도 통치행위가 떳떳하지 못한 것을 알고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최규하 전대통령이 세상을 떴다. 10.26 이후 대통령 자리에 올랐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대통령직을 스스로 물러났고 당시 전두환 합수부장이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것은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신군부가 어떠한 일을 꾸몄는지에 대해서 최 전 대통령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평소 꼼꼼한 기록습관을 갖고 있었다고 하니 유품정리에 한 가닥 기대를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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