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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칼럼] 벌써 35년 세월이 흘렀구나 - 권이복

권이복(전주 우아성당 주임신부)

막 새내기 신학생이 되어 설레임과 기쁨으로 충만할 때 첫 영성지도 시간을 맞이하였다.

 

머리가 하얀 노 사제(따지고 보니 지금의 내 또래 였지만)가 자리를 잡고 앉으시자 잠시 깊은 침묵이 흘렀다.

 

눈을 지그시 감으시고 한 참을 보내시더니 조용히 이렇게 첫 입을 여시었다.

 

“지금 내가 너희들을 보고 있자니 한편으로는 장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슴이 메어지는구나. 내가 살아온 세월을 너희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지난 주간 동안 우리 전주교구 사제들은 모두 사목 일선에서 물러나 안양에 있는 아론의 집에서 한 주간을 같이 보냈다.

 

피정 마지막 날 저녁 이제 갓 사제가 된 새 사제들과 삼십대 초반의 젊은 사제들과의 술자리가 있었다.

 

취기가 약간 오르자 몸도 마음도 같이 따뜻해져 서로의 애환이 섞여지기 시작하였다.

 

안쓰럽게 보였다. 그리고 그 옛날 35년전 내가 들었던 그 얘기를 똑같이 하고 있는 나를 발견 하였다.“얘들아 내 너희들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프구나. 나야 28년이란 세월을 사제로 살았으니 이젠 그럭저럭 살아 갈수 있겠지만 너희 같이 젊은 놈들이 그간 내가 살아온 그 세월을 똑 같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는구나.”

 

 

그 때 내 나이 또래의 노 사제(?)께서 하신 말씀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몰랐듯이 그들 또한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겠으나 그냥 그렇게 얘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도 내 또래가 되면, 지금에야 내가 그 말을 되씹듯이 그들 또한 이렇게 되씹으며 아파하리라.

 

 

산 다는 것! 이거 참 장난이 아니다.

 

저 파아란 가을 하늘을 나르듯 기쁘고 환희롭기도 하지만 천길 낭떠러지기에 추락하듯 어둡고 허망하기도 하다.

 

그리고, 그래서 남는 것은 무엇인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이제 나이 들고 병들어 쓸모없는 몸뚱이 밖에 없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그 무엇이 남았으니 드디어 보이지 않았던 내 모습이 서서히 보여 지는 것 - 그것이 남았다.

 

이제야 나는 지금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으며 현재의 나의 위치 - 나의 XY 좌표가 보이기 시작 한다는 것이다.

 

허나 이 또한 지금 이 자리에서의 나의 모습일 뿐이다.

 

더 나이가 들어 나의 좌표가 이동 되었을 때 나는 또 누가 되어 나타날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두렵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 날을 기다리며 산다.

 

참 아름다울 것 같다.

 

참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살아 있음이 참 고맙고 감사하다.

 

/권이복(전주 우아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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