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건축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하다. 건축의 영어표현인 아키텍춰(architecture)는 예술(art)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를 기원으로 하고 있다. 예술과 기술의 양면적인 속성을 뜻하고 있는 셈이다. 1, 2차 세계대전 후에는 전시에 많은 건축물들이 파괴되어 건물의 대량생산을 유도하기 위해 ‘건축은 기계다’라고 정의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건축에 대한 생각은 시대적 상황에 맞도록 다양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한편, 건축의 공간을 ‘하나의 이야기 엮음’으로 해석하면, 건축공간을 더욱 다양하게 느끼는 체험을 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 생활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건축공간에는 각 공간이 갖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게 마련이다.
슬플 때 또는 외로울 때 찾게 되어 위로 받는 공간, 자연스럽게 사색에 빠져들 수 있는 공간, 꼬집어 설명할 수 는 없지만 어쩐지 편안해지고 차분해지는 공간, 또 괜히 불안하게 느껴지거나, 긴장되게 하는 공간이 있는 것이다.
건물을 설계하는 건축가는 공간이 갖고 있는 이러한 느낌과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연출가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연극, 영화, 시, 소설 등에서처럼 건축공간을 통하여 이러한 분위기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자 하는 것이다.
주위의 공간에 관심을 갖고 이러한 공간의 속성을 이해한다면, 공간이 주는 느낌과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건축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좋은 건축은 이러한 분위기가 분명하고, 이야기가 풍성한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건물에는 다양한 공간들이 존재한다. 어둡거나 밝은 공간, 좁거나 넓은 공간, 기쁘거나 슬픈 공간, 그리고 뿌리와 같은 기초, 기둥과 같은 골격, 벽과 같은 막힘, 문과 같은 열림, 지붕과 같은 덮임, 또한 배경이 되는 자연들, 땅과 바람과 향기와 구름, 하늘, 별, 달 들이 존재한다.
건물의 입구 공간은 환영의 인사와 이야기의 시작이다. 건축의 레벨(단) 차이는 전개되는 이야기의 구성을 보여주고, 공간의 꺾임은 새로운 이야기의 구성을 암시하는 복선을 의미한다.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햇빛은 공간의 물리적 요소들을 찬란히 비춰주어 더욱 선명하게 돋보이게 하는 공간의 중요한 요소이다. 위 아래 층이 뚫려 있는 공간(보이드(void)된 공간)은 이야기의 전과 후를 상통하게 해주는 연결의 고리이다.
건축의 색(色)들은 이야기의 이미지를 슬프게 또는 기쁘게 물들이는 화법(話法)인 셈이다. 공간의 좁음과 넓음은 이야기의 답답함과 시원스러움의 단락인 것이다. 유리의 투명함과 벽의 불투명함은 이야기 줄거리의 긴장과 이완을 조절한다. 이러한 구성 기법으로써 건축가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다.
건축 공간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건축가·전주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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