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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백의 一日五話] 1948년 힌두교 광신자 인도 간디 암살

◎ 1월 30일

 

①암살범은 허태영 대령

 

1956년의 오늘 아침, 육군특무부대장 김창룡 소장은 서울 원효로 자택에서 출근하려고 짚차에 올랐다. 이때 난데없이 총성이 울려 김 부대장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실로 찰라에 일어난 일이었다. 범인은 특무부대의 부하였던 허태영 대령과 그 부하들이었다. 허 대령은 그 후 처형됐다.

 

②인도의 성자 간디 암살

 

황혼의 기도는 이날도 예정대로 시작될 참이었다. 간디는 “누구나 자유롭게 오도록 하라”고 선언하고 있었다. 수백 명의 군중이 모였다. 그 속에서 나타난 한 청년이 권총을 들이대며 쏘았다. 그는 힌두교 광신자였다. 인도의 성자 간디는 이렇게 암살됐다. 1948년의 오늘이었다.

 

③나치의 히틀러 수상에 취임

 

제1차 세계대전의 대전 국 독일은 실업 인플레 등으로 사회불안이 극도에 달했었다. 이에 보수적인 지배세력의 지지를 받았던 나치스당이 정계 정면에 나섰다. 이때 힘을 얻은 당수 히틀러는 1933년의 오늘 내각 수상에 취명했다. 그는 반대파의 탄압을 강화, 1인 독재의 총통이 됐다.

 

④영국 챨스 1세 처형

 

1649년의 오늘, 런던의 화이트 홀은 챨스 1세의 처형을 보기위해 모여든 군중으로 가득했다. 국왕은 “ 국민은 자유를 바라지만, 자유란 국민이 통치에 참여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연설을 했다. 그러나 그는 잠시 후 단두대에 올랐다. 이때 영국의 의회주의는 확립됐다.

 

⑤계엄사 ‘법난’에 사과

 

1989년 군사정권은 종권다툼으로 분규를 겪고 있던 불교계를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전국 사찰을 불법수색, 승려 18명을 구속했다. 이 외에도 많은 승려들이 불법구금, 취조 등의 곤욕을 치렀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1989년 오늘, ‘10·27 법난‘(法難)에 계엄사는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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