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희(시인)
민숙아, 내내 봄날처럼 졸립더니 오늘은 매몰찬 눈발이 잠시 다녀갔다.
네가 도시를 떠난 지도 예닐곱 해는 되었지 아마? 時고 사람이고 다 놔두고 가버린 네가 지독하다고 고갤 저었는데 이제야 네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래, 몸으로 쓰는 詩는 잘 되니? 시멘트 냄새를 벗기는 데만도 많이 아프고 힘들었을 거야. 자신을 뒤집는 일이 어디 아무나 하는 일이겠니?
진땀으로 버무린 네 새끼들 받아먹는데 가슴이 찡했다. 고구마, 감자, 표고, 키위, 청국장. 효소 그리고 네 사리인 듯 빛나는 쌀알들, 이 녀석들을 낳으며 허물었을 네 살과 뼈들이 목에 걸렸다. 네 살갗엔 햇빛 딱정이가 시커멓게 내려앉았으리라. 네가 없는 동안 이곳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내년에는, 내 후년에는 괜찮겠지... 하며 막연함과 잘 살았다. 아 다음에 내 묘비명에도 “큰 탈 없이 또한 아무런 변화 없이 잘 살다 가노라”라고 써야 하나? 요즘 쓰는 글들도 차마 네게는 보내지 못했다. 말로 뭐라뭐라 하는 게 무안해서 말야. 네가 사는 곳 뒤란 비닐하우스 커피숍에서 먹었던 탱탱 불은 라면과 햋볕이 철철 흘러 넘치도록 맛나게 먹은 맥심 커피가 그립다.
민숙아, 난 아직 흙이 되는 게 두려워 사치를 놓지 못하고 있다. 이슬밭에 앉아 싹이 돋았다고 소리소리 지르며 전화를 해대던 새벽 생각나니? 얼룩이랑 흙돼지 녀석이랑 다 보고 싶다. 몇 백리는 더 깊어졌을 네 속을 언제 훔쳐볼까? 詩佛이 되어 사는 그대의 땅끝 마을... 봄이 오기 전에 꼭 갈게. 보고싶다... 보고싶다.
/송 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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