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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봄똥

이제 입춘이 지나고 또 우수(雨水)도 지나 경칩을 목전에 두고 있다. 겨우내 묵은 김치에 길들어 있다가 싱싱한 푸성귀로 입맛을 되찾을 때가 요즈음이다. 이런 입맛을 전해 주는 푸성귀로 ‘봄똥’이 있다. 시인 안도현은 이런 봄똥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렇게 인사드립니다/후줄근한 모습 용서해주세요/겨울은 참 무정도 하죠/채 한 뼘도 안되는 고도제한/낮은 포복으로 기어 왔어요”

 

이 봄똥은 아쉽게도 사전에 올라 있지도 않다. 봄똥이 ‘봄동’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겨울을 지낸 봄나물 정도로 해석하지만 크게 설득력을 갖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아직 어원도 분명치 안호 어감도 오해받기 십상인 봄똥을 되뇌다 보면 정감이 어린다. 본래 ‘봄’이란 계절의 분위기도 분위기려니와 그 발음 역시 입술에서 주로 실현된다는 점에서 부드러운 어감을 갖기 때문이다. ‘봄 떡은 들어앉은 샌님도 먹는다’는 말이 있다. 먹을 것이 궁한 봄철에는 점잖은 척하는 샌님도 먹고 싶어 한다는 속담으로 봄철에는 먹을 것이 귀했던 옛날을 읽을 수 있는 표현이다.

 

요즈음에 먹게 되는, 겨우내 추위를 힘겹게 이겨내 못난 푸성귀를 봄똥 말고 달리 부를 수 있는 품위 있는 말을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도 가까운 말로 ‘겨우살이’가 있는데 ‘겨울 동안 먹고 입고 지낼 옷가지나 양식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사전에 올라 있다. 그러니 봄똥만이 갖고 있는 푸성귀로서의 선명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이런 봄똥은 일반적으로 가을 김장배추감 중에서 낙오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김장거리 조차 되지 못하고 겨우내 버림받았던 배추가 이듬해 봄이 되면 비타민을 공급해 주는 귀한 신분으로 대접 받게 되는 것이다. 일부 지방에서는 김장배추를 뽑아낸 자리에 의도적으로 파종을 해서 봄 반찬을 준비하기도 한다.

 

이런 봄똥에서 빠진 게 있다. 봄은 대략 알겠는데 ‘똥’이 문제다. 시인 안도현은 이렇게 설명한다. ‘봄이 당도하기 전에 봄똥, 봄똥 발음하다가 보면/입술도 동그랗게 만들어 주는/봄똥, 텃밭에 나가 잔설 헤치고/마른 비늘 같은 겨울을 툭툭 털어내고/...중략.../텃밭가에 쭈그리고 앉아/...중략.../한 무더기 똥을 누고 싶어진다’ 이쯤이면 ‘똥’에 대한 설명으로 그럴듯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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