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한국수출보험공사 전북지사장)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미국으로 출장을 가게 됐다. 약 한 달간 미국에 체류할 예정이어서 달러를 넉넉하게 환전했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던 달러의 그 깔깔한 철분촉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남은 달러는 한동안 소중하게 보관했다. 달러를 보는 나의 기분은 매우 흐뭇했다.
달러는 지불수단으로서, 가치의 저장수단으로서, 그리고 가치의 평가수단으로서 최고의 화폐로 인정돼 왔다. 화폐의 일반기능으로서의 뛰어난 역할에 미국의 패권마저 더해졌으니 달러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던 귀한 몸이었던 것이다. 통한의 IMF구제금융사태도 우리나라에 달러가 부족해 발생된 것이 아니었던가.
그 달러의 신세가 이제 말이 아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던가? 달러가치가 예전같지 않은 것은 한국은행 금고에 달러가 넘치고 우리나라의 내로라 하는 대기업들이 달러로 돈벌이를 너무 많이 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IMF통제 시기의 그 귀하디 귀한 달러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달러가치가 떨어져도 내가 달러를 가지고 있거나 앞으로 달러를 손에 쥘 일이 없으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출은 늘려야 하고 달러를 들고 오는 외국관광객은 더 많이 모셔야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아니겠는가.
미국의 여러 가지 경제사정과 한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의 뛰어난 경제실력으로 인해 달러가치는 앞으로 꾸준하게 떨어질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전망이다. 이러한 전망 앞에 무상한 달러사랑을 고집하며 손해를 감수할 수 만은 없는 것이다.
바이어에게 달러 대신 유로(EURO)로 수출대금을 달라고 해 볼 일이다. 바이어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 달러보다는 유로로 결제하는 것이 이익이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 일단 유로로 결제할 것을 주장해볼 필요가 있다. 다른 한편 수출지역을 유로화가 통용되는 유럽과 중동 등지로 전환해 달러결제를 줄이는 것도 시도해 봐야한다. 수출계약을 체결하면서 사정을 봐가며 과감하게 결제통화를 원화로 하는 것도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이다. 더불어 수출보험공사의 환변동보험에 가입해 입도선매식으로 앞으로 받을 달러를 미리 매각해 환차손을 막는 조치도 해두는 것이 좋다. 환변동보험은 절차가 간편하고 구조가 단순해 우리지역에서 연간 1억불정도 보험에 가입되고 있다. 전북도청은 우리지역 중소수출자들의 환차손 방지를 위해 환변동보험을 이용하는 중소기업에 대해서 보험료를 대납하고 있으니 더욱 관심을 가져볼만하다. 주변에 환위험관리를 잘 하는 수출기업을 벤치마킹해 자신의 회사 실정에 맞는 환위험관리조치를 반드시 해야할 상황이다.
지금까지의 달러가치 하락이 회사 이익을 잠식하는 수준이었다고 하면 앞으로 추가로 발생될 달러가치의 하락은 수출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이 될 것이므로 환위험관리에 보다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가 나서서 달러가치를 높이는 것은 아주 옛날의 그리운 추억과 같은 것이다. 정부가 떨어지는 달러가치를 붙잡겠다고 쏟아 부은 돈이 금년말까지 100조원에 이른다고 하니 정부도 이제 그 무상한 짝사랑의 댓가를 많이 치렀으므로 정부를 기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개별 수출기업이 스스로 환차손을 막는 조치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달러는 더 이상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인 것이다.
/이경래(한국수출보험공사 전북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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